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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출/ 농사짓는 판화가, 땅을 새기고 풀을 그린

고충환

지용출/ 농사짓는 판화가, 땅을 새기고 풀을 그린 



국내적으로 1980년대는 현실참여를 표방하는 민중미술과 순수미술을 지향하는 제도권미술(모노크롬, 지금은 단색화로 범주화되는 추상회화) 간의 이념대립이 첨예했던 시대다. 그런 만큼 미술사적으로 민중미술은 당시 제도권미술과 함께 1980년대를 대표하는 양축으로 자리매김 된다. 이후 민중미술은 형상미술, 매체미술, 참여미술, 정치미술, 그리고 여기에 행동주의미술이라는 새 이름을 얻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리얼리즘 미학과 실천 논리를 표방하는 이념적 태도에 비추어볼 때, 지용출은 민중미술가로서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민중미술을 현실참여 미술이라는 좁은 의미로 이해한다면, 여기에 해당하는 작가의 이력은 초기에 한정된다. 이를테면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 졸업을 전후한 시기, 그러니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1993년) 전주에 막 내려와 정착한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소재로 치자면 노동자를 테마로 한 투쟁적인 판화들이고, 건설현장과 개발지구, 허름한 정미소와 새만금 같은 자본의 착취로 피폐해진 현실과 현장을 그린 판화들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어쩜 민중미술의 끝물에 해당하는 세대로 볼 수가 있겠다. 


그리고 이후 작가는 정직한 노동, 행복한 노동에서 삶의 의미며 예술을 위한 실천논리를 찾는, 소위 농사짓는 판화가로 변신한다. 농사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노동이다, 라는 작가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 농사짓는 일과 그 일을 판화로 옮기는 일을 하나로 본 것이며, 그러므로 농사나 판화(그 자체 또 다른 농사)가 모두 예술이라고 본 것이다. 담론으로 치자면 이데올로기와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미술, 삶과 예술이 그 경계를 허물어 하나로 합치되는 미술로 나타난 작은 서사를 지향하게 되고, 작고 소박한 소재들에서 그 당위성을 찾게 된다. 그렇게 호박, 호박잎, 파, 파꽃, 마늘, 무단과 같은 채소류, 잠자리, 달팽이 같은 곤충류, 나팔꽃, 들국화, 질경이, 야생화, 하늘거리는 풀잎, 가시나무, 대추나무, 느티나무 같은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소재들이 판화로 그려진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이 달라진 것에는 실제 환경 변화도 당연히 작용했겠지만, 이보다는 현실참여를 위한 구실을 농사를 통한 정직한 노동, 그러므로 행복한 노동에서 찾는 것으로 자기 변신을 꾀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작가의 경우에서처럼 실제로 농사를 짓는 것을 제외하면, 1980년대를 치열하게 관통했을 민중목판화가들이 이후 보여주는 변신의 경우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생활환경의 주변머리에서 찾아진 소재들이나 자연친화적인 소재들, 생활관습을 소재로 한 판화들(풍속 혹은 풍물판화), 역사적인 현장을 답사하고 기록한 판화들(기행목판화), 명상적이고 선적인 판화들(선화), 그리고 존재(이를테면 흙 그러므로 땅)의 본성인 생명에 주목하는 것(생명사상)이 그렇다. 그 경우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그 경향의 대개는 작가의 판화에서도 그대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작가는 농사를 통한 정직한 노동, 그러므로 행복한 노동에서 예술을 위한 실천논리를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농사와 판화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사실은 농사가 예술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같은 의미로 봐야 한다. 이처럼 농사와 판화가 같다고 보는 것은 물론 비유법이지만, 보기에 따라서 그 비유는 상당할 정도로 실재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이를테면 농사가 정직한 노동이라면, 판화가 그렇다. 농사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라면, 판화도 그렇다. 농사가 기다림이 요구되는 것만큼, 판화 역시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판화는 간접적인 매체다(간접성). 하나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따로 판을 새겨야 한다. 여기에 이미지가 거꾸로 찍혀져 나오기 때문에(이미지의 반전성), 오랜 숙련을 거쳐 예상되는 결과물에 대한 감각을 익혀야 한다. 판 그대로 이미지가 찍혀져 나오기 때문에 판을 새기는 과정에서나 이미지로 찍어낼 때 빈틈이 없어야 한다. 판화가 정직하다는 말은 바로 이처럼 오류(그리고 어쩜 우연한 효과)를 인정하지 않는 기계적인 프로세스와 고지식함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판화의 미덕으로 치자면 한 번에 똑같은 이미지를 여러 장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복수성과 복제성 그리고 에디션). 아마도 1920_30년대 카프 미술이, 그리고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1980년대 민중목판화가 프로파간다와 민중의 계몽을 위해 판화에 특히 목판화에 주목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농촌의 생활과 자연을 소재로 한 판화에, 특히 목판화에 주력한다. 실크스크린, 동판화(주로 드라이포인트)와 석판화와 같은 다른 판종이 없지 않지만, 초기 현실참여미술을 실천하고 표현하던 때의 일이다. 아마도 농사를 지으면서 작업을 병행하기에는 목판화의 단출한 작업환경이 한몫했을 것이고, 농촌의 생활과 자연소재에 그 성정이 부합하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세부적으론 다색판화 혹은 채색판화가 있는데, 색면 수만큼 판을 따로 제작한 연후에 차례로 겹쳐 찍거나, 하나의 판을 거듭 새기고 찍는 소멸법으로 제작된 판화들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보면 특히 갯벌에 버려진 폐선의 잔해를 소재로 한 판화가 그렇다. 그리고 채색을 도입한 경우로 수인목판화가 있는데, 먹물과 수채물감을 이용해 번짐 효과와 그러데이션이 있는, 마치 수묵화와도 같은 분위기의 판화들이다. 전통적인 초충도를 재해석한 것 같은, 사물 대상의 실체가 손에 잡힐 것 같은 실감과 함께, 부드럽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은근한 판화들이다. 다색판화가 색이 면으로 떨어지는 것에 반해, 음영과 농담 표현이 가능한 것이 다른 점이다. 

이처럼 목판화에 채색을 도입한 경우가 있지만, 다른 경우들에 비해 작가의 작가적 아이덴티티며 완성도가 높은 경우로 치자면 단연 흑백 목판화를 들 수가 있다. 마치 붓으로 그린 듯 거침이 없고 세세한데, 비유를 하자면 큰 맛(주로 나무)과 작은 맛(주로 풀)을 가리지 않는다. 곁에 있는 나무, 바람 소리, 그리고 소나무와 같은 일련의 나무 시리즈가 여기에 해당한다. 느티나무 둥치의 뒤틀린 형태나, 소나무의 깡마르고 질박한 질감이 생생한 것, 그러면서도 세부가 오롯한 것, 그리고 하늘거리는 풀에서 바람이 느껴지는 것에서 칼을 붓처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수련의 시간이 있었겠다 싶다. 

이쯤에서 작가의 말을 인용해 보자면, 단색의 모노크롬이 주는 아름다움, 그것은 먹색이 주는 한국적 이미지와 정신성이다. 절제되고 소박한 표현이야말로 흑백목판화의 장점이라고 했다. 그에게 흑백목판화는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고, 현상을 넘어 정신세계마저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흑백목판화가 주는 절제되고 소박한 표현은 아마도 유교의 세계관을 그림으로 표현한 사대부 문인화의 미의식이며 정신세계를 계승한 것일 터이다(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은 사대부 계급의 미의식을 현실주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지만, 시대와 환경이 다른 만큼 다른 문제 아님, 지엽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의 목판화에서 특이한 경우로 황토목판화를 들 수 있다. 종이의 원료인 닥죽에 황토를 섞어 갠 것을 얇게 펴서 말린 종이에 흑백목판화를 찍어낸 것이다. 대개는 풀과 야생화 같은 여린 식물이 나비와 무당벌레 같은 곤충과 어우러진 초충도 이미지를 소재로 한 것인데, 먹색으로 찍어낸 이미지가 터실터실한 종이의 질감이며 황톳빛 색감과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어쩜 종이의 질감을 만들면서 흙의 질감 그러므로 땅의 질감을 의도했을 것이고, 그런 만큼 생명을 낳고 거두는 모태로서의 땅 자체를 재현하고 있다는 또 다른 의미를 얻는다. 농사를 매개로 한 정직한 노동, 그러므로 행복한 노동에 기울어진 작가의 평소 관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외에도 작가는 남고산성, 귀신사, 동고사, 오목대, 한벽당 등등 전주와 인근의 주요 사적지를 소재로 한 <유적지> 시리즈에서 고지도(그림지도) 제작방식을 차용하고 변용한다.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부감법을 적용해 그린, 일종의 기행 목판화로 범주화될 수가 있겠다. 일부 판화가 아닌, 직접 그린 그림들이 있지만, 크게는 판화의 연장선에서 봐도 무리가 없겠다. 그리고 김제, 무안, 전주 등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판소리를 소재로 한 <소리 여행> 시리즈, 기타 <물고기> 연작과, 원불교 달력 같은 시리즈 작업들이 있다. 물고기 연작이 교육이 목적인 만큼 세밀 목판화로 제작된 것을 제하면, 대개 선화의 전형적인 형식을 예시해주고 있다. 그림보다 여백이 많고 허허로운 화면이 문기와 문향을 느끼게 하는 그림들이다. 

각 매체(이를테면 문화저널)에 연재될 삽화를 위해, 주문제작과 프로젝트의 형식을 빌려서, 교육적인 목적으로, 그리고 종교의 경우에는 포교를 목적으로 제작된 판화들이다. 생활 속의 쓰임새를 목적으로 제작된 생활판화로 범주화되는 경우들이다. 소위 순수판화와는 비교되는 것이지만, 어쩜 판화를 도구로 한 현실참여라는 면에서 또 다른 실천 논리와 당위성을 얻고 있는 경우로 봐도 되겠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3년 지역의 미술애호가 단체인 전북미술관회가 작가의 판화를 기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기증작품 63점에 소장품 3점을 더한 총 66점의 소장 판화로 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사실상 작가의 전작을 망라한 경우로 보이고, 최소한 주요 작품을 포함하고 있어서 작가의 판화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 같다. 소장작품 관리는 미술관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서, 미술관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그런 만큼 이번 전시가 작품 기증이 활발해져 지역민 모두의 자산인 미술관을 건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작가 개인으로는 미술사적으로 민중목판화의 후사를, 그리고 한국현대목판화의 빈 곳을 채워 넣을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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