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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초롱/ 지나가는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

고충환

황초롱/ 지나가는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 


핸드폰을 보고 걷는 사람, 실내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사람,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익명적인 사람들. 황초롱은 일상을 그렸다. 아마도 작가 자신의 일상을 재구성해 그렸다. TV뉴스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건도 없고, 일간신문을 도배하는 극적인 상황도 없다. 매체를 통해 본 일상은 스펙터클소사이어티 곧 구경거리의 사회를 증명해보이기라도 하듯 급박하고 자극적인데, 그런 급박도 없고 자극도 없다. 
작가가 그려 보이는 일상의 정경은 평범하다. 그렇담 그 일상은 다른 일상인가. 일상에는 두 개의 다른 층위가 있다. 급박한 일상과 평범한 일상이 있다. 급박한 일상이 이면이라면, 평범한 일상은 표면일 수 있다. 이처럼 급박한 일상과 평범한 일상이 불일치하는 것에서 불안과 소외가 새어나온다. 여기서 급박한 일상은 평범한 일상이 애써 외면한 일상, 그러므로 어쩜 일상의 진정한 민낯일 수 있다. 다시, 그러므로 그 민낯으로 대면한 불안과 소외는 평범한 일상의 그림자일 수 있다. 그 흰 그림자가 우수를 자아내고, 우울을 자아내고, 향수를 불러온다. 그 불합리한 감정이 낯설지가 않다. 바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감정이다. 미국 중산층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짧은 휴식과 막간과도 같은 휴양이 불러온 감정이고, 정적인 그림이 오히려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던 감정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특히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 그림에서 보듯 불안과 소외를 내재화한 사람들이지만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일상은 어쩜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일 수 있다. 그림은 주관을 객관화하는 과정인 것이고, 사사로운 경험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추상해내는 과정이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비록 작가 개인의 경험을 그린 것이지만, 동시에 보편성을 얻고 공감을 얻는다. 현대인의 초상으로 불러도 되겠다. 그림 속에서 현대인은 지나가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뭔가 시대적 알레고리 같지 않은가. 정박할 곳이 없는 사람들,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들, 그러므로 어쩜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좀 과장해 말하자면 현대인은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상실감은 현대인의 징후며 증상이다. 지극한 상실감이야말로 그가 다름 아닌 현대인임을 증명해주는 징후며 증상이다. 
실제로도 발터 벤야민으로 하여금 오래된 미래(새로운 모든 것들이 재빠르게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와 다공성의 도시(그렇게 비대해진 과거로 축조된 도시)에 대한 착상을 가능하게 해준 게오르그 짐멜은 현대인의 징후며 증상으로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들었다. 여기서 고향은 지정학적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뿌리의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짐멜은 현대인이 바로 이런 뿌리의식을 상실했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뿌리 없는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들, 그러므로 다만 겉보기에 평범해 보일 뿐인, 사실은 불안과 소외를 내재화한 사람들을 그렸다. 

형식 곧 작가의 그림 그리기와 관련해 흥미로운 부분이 에스키스다. 어쩜 일종의 드로잉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레핀아카데미 출신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학업과정에서 몸에 밴 습성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콜라주 형식의 에스키스다. 본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본을 떠보는 것인데, 사진과 인쇄물을 부분 발췌해 작은 그림을 재구성한 것이다. 요새로 치자면 에스키스며 드로잉 과정을 곧잘 컴퓨터로 대신할 것이지만, 종이를 찢어 붙인 흔적이 여실한 아날로그 방식이 회화와는 또 다른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방식을 왠지 정직한 방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게 재구성된 작은 그림이 자족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 자체 일종의 예술가의 책(아티스트북)으로 봐도 되겠다. 재구성된 그림이라고 했다. 여기서 작가는 편집자가 되고, 연출가로 변신한다. 현대미술에서 작가는 단순한 페인터를 넘어 이미지를 편집하는 사람, 개념을 재구성하는 사람, 그리고 상황을 연출하는 연출가의 얼굴을 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그림과 함께, 때로 그림보다 오히려 에스키스에서 진솔한, 아기자기한, 밀도감이 있는, 손맛이 주는 쾌감이 큰 편이다. 
그렇게 재구성된 그림이 삶이라는 이름의 무대를 보는 것 같다. 평범한, 사실은 불안과 소외를 내재화한, 그래서 다만 겉보기에 평범해 보일 뿐인 삶의 이율배반을 보는 것 같고 부조리를 보는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로 나타난 삶의 알레고리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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