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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원/ 밀어, 왕의 속삭임

고충환

양대원/ 밀어, 왕의 속삭임 


밀어, 왕의 속삭임. 이번 전시의 주제다. 왕이 털어놓는 비밀을 의미한다고 했다. 왕도 때로 아프고 슬프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이 왕이 털어놓은 비밀이다. 결국 생로병사가 왕의 비밀 속에 숨은 진정한 주제다. 왕의 비밀을 통해 보편인간이 겪는 존재론적 조건을 발설한 것이다. 그렇담 여기서 왕은 누구인가. 권력의 주체를 의미한다. 작가는 진즉부터 권력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까지 대개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에 집중했지만, 근래에는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정치적 상황도 가변적이고 이에 따른 이해관계도 가변적이다. 그런 만큼 권력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도 그때그때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뀔 것이고, 그렇게 매번 당대적인 정치적 상황과 시대감정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왕은 작가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고, 저마다의 주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말이 있다. 저 잘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에 저 홀로 내던져진 존재(하이데거), 단독자, 고독자란 말이다. 모든 존재는 단독자들이며, 그러므로 주제에서 왕은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고독한 존재자들을 의미한다. 
그렇게 작가는 생로병사를 그렸다. 주로 생로병사에 해당하는 한글과 한문자를 기저로, 여기에 각 문자의 의미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문자를 조형했다. 그 발상이며 꼴이 전래하는 문자도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경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조형을 위해 한글과 한문자가 도입된 것은 효과적인 의미전달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문자의 경우 덧붙이고 쌓는 글꼴이 구조적이고 구축적이고 건축적인 작가 고유의 조형양식에도 부합하는 면이 있다. 이런 평면회화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 주목되는 특징으로 치자면 오브제의 광범위한 차용과 오브제를 재구성해 보여주는 설치작업을 들 수 있다. 줄곧 평면작업에 진력해온 작가가 작업의 확장과 함께 자기변신을 꾀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오브제로는 액자와 두루마리 족자, 진열장과 장식장, 인형과 구제 마네킹, 대못과 폐자전거, 금박장식과 흑백 인물사진 등 각종 생활오브제와 골동오브제를 망라한 것으로서, 주로 일본 벼룩시장을 통해 흘러들어온 것들이다. 그런 만큼 그 자체 한국과 일본과의 권력관계에 대한 최근 작가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 오브제 설치작업 중 특히 흑백 인물사진 위에 검은 점을 그려 넣은 것이 눈에 띤다. 검은 점은 가슴 위에도 얼굴 위에도 눈 위에도 그려져 있다. 화(분노)를 그리고 눈물(검은 눈물?)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화라면 불인데, 작가는 검은 색으로 그렸다. 아마도 마음이 타들어가 새까만 숯검정이 되었다는 속설을 표현한 것일 터이다. 화는 상화 위에도 있다. 각 호랑이와 새 그림 위에 검은 색으로 덮어서 가린 것인데, 권력의 무상함(숨은 권력?)과 왕의 죽음(세상 저편으로 날아오르는 새)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자체 홀로그램의 아날로그 버전을 보는 것도 같다. 그리고 마네킹의 원조랄 수 있는 압축스펀지를 소재로 만든 수제마네킹과 인형들의 친근하고 낯선(양가적인?) 표정을 통해 이러저런 인간적 상황을 대리하게 했다. 흔히 그림을 위한 감각과 설치작업에 소용되는 감각이 다르다고 한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이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무엇이 있다. 오히려 매체가 달라졌음에도 여전한 감각을 확인시켜준 전시며, 이로써 향후 작가의 자기 확장성을 예감하게 만든 전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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