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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픽셀로 꿈꾸는 세상 그리고 그림

고충환

김현우, 픽셀로 꿈꾸는 세상 그리고 그림 


김현우는 장애인예술가의 창작산실인 잠실창작스튜디오에 9기 작가로 입주한 후 2년간 작업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집안의 한 평짜리 공간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공간 환경 그대로 전시장에 재현하는 형식을 취했다. 작업실을 전시장으로 옮겨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나의 단 한 평 작업실>이라는 전시 타이틀은 그렇게 해서 붙여졌다. 
여기에는 단순히 공간을 전시장에 재현한다거나 작업실을 전시장에 옮겨놓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작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을 한다(혹은 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과 같은. 아마도 내면의 소리를 옮겨 적은 것 같은 음표를 기록하고 알 수 없는 수학공식을 작성하는 것과 같은. 전시기간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어쩜 한시적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전시한다고나 할까. 보통 제작 완료된 작품을 전시하는, 그래서 전시 기간 내내 전시장의 공간 환경이 처음 그대로인 전시관행과는 사뭇 혹은 많이 다르다. 전시장이 곧 작업실인 만큼 현재진행형의 작업들이 생산되고 전시된다. 덩달아 전시장의 공간 환경도 매번 변한다. 이로써 어쩜 작가의 평소 작업과 함께, 공간을 매개하고 변형시키는, 공간조형작업이 같이 수행되는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사실은 말할 것도 없이 전시장을 작업실처럼 사용하는 것에 기인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수행과정에 일반 관객을 끌어들인다. 관객참여를 통해 수동적인 관객을 능동적인 창작주체로서 거듭나게 하는 한편, 작가와 더불어 공간을 매개하고 변형시키는 공간조형작업을 위한 조력자로서 관객을 초대하는 것이다. 결국 현재진행형의 작업이 공간조형작업을 유도하거나 결과한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인데, 이러한 사실은 작가가 명명한 <드로잉 폭발>이라는 개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드로잉은 종이에 한정되기도 하지만, 곧잘 종이의 경계를 넘어 공간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바닥이며 벽이 온통 드로잉으로 채워지면서 공간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일종의 벽화로 확장될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가 있겠다. 
이제 그림을 보자. 작가의 그림 중엔 캔버스에 아크릴, 혹은 석고 위에 아크릴로 채색한(과슈?) 그림도 있지만, 대개는 종이에 마카로 그린 그림들이다. 한자리에 앉아서 밑도 끝도 없이 그리기(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내기)에 용이한 매체고, 특히 드로잉(매개 없이 그리기, 즉흥적으로 그리기)에 강한 매체다. 그렇게 작가는 크고 작은 격자들이 연이어지고 어우러지면서 이러저런 형태를 만드는, 그리고 그 격자 속에 마치 꿈을 꾸듯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칠해진 특유의 그림을 만든다. 그린다고 해도 될 것을 굳이 만든다고 표현한 것은 작가의 그림이 구조적이고 구축적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마치 레고처럼 격자들을 쌓아나가면서 형태를 구축하고 있는 프로세스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무의식을 즉흥적으로 기록한 것 같은, 자동기술법 내지 프리페인팅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잠재적인 경우며 가능성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렇게 친다면 이처럼 격자를 매개로 한 일련의 경향성의 회화야말로 작가의 작업을 대표하는 경우로 봐도 무리가 없겠다. 
이 그림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격자회화? 정작 작가 자신은 <픽셀회화>라고 부른다. 격자든 픽셀이든 대동소이한 의미로 봐도 되겠다. 편의상 이미지는 크게 회화 이미지, 인쇄 이미지, 그리고 영상 이미지로 구분된다. 여기서 회화 이미지의 최소단위원소(모나드)는 터치, 인쇄 이미지의 최소단위원소는 망점, 그리고 영상 이미지의 최소단위원소는 픽셀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지금은 영상시대다. 어쩜 작가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이런 영상세대로서의 시대감정을 작업에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영상 이미지가 그런 것처럼 픽셀이 조합되고 재구성되는 여하에 따라서 이런저런 형태가 조형된다. 도시 같은. 빌딩 같은. 나무 같은. 그리고 사람 같은. 00같은, 이라고 했다. 작가의 그림은 얼핏 00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같이 상상력의 산물들이다. 비록 모티브는 현실에서 건너오는 것이지만, 현실은 다만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에 그친다. 그렇게 상상력으로 축조된 도시가, 빌딩이, 나무가, 그리고 사람들이 저마다 작은 창으로 빛을 발하듯 알록달록하다. 꿈을 꾸듯 몽롱하다. 터치에 아님 센서에 반응해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 다이오드를 보는 것 같다. 
이로써 작가는 어쩜 꿈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폴 클레, 니키드 생팔, 훈데르트 바서 같은, 현실을 그리고 세상을 꿈으로 바꿔놓고 싶어 했던 꿈의 혁명가들처럼 알록달록하고, 몽롱하고, 아롱거리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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