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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팝, 하이브리드판타지

고충환

포스트팝, 하이브리드판타지 


1987년 앤디 워홀 사망, 1988년 바스키아 사망, 1990년 키스 해링 사망, 그리고 1958년생인 케니 샤프는 세계적인 팝아티스트로서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앤디 워홀과 함께 뉴욕 이스트 빌리지 스쿨을 대표하는 이 화가들 중 바스키아, 키스 해링, 그리고 케니 샤프는 원래 앤디 워홀 키드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팝아트를 확장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그들 사이엔 60년대와 80년대라는 세대 차이가 놓여있고, 그런 만큼 앤디 워홀이 팝아트의 원조라고 한다면, 다른 작가들은 팝아트를 확대 재상산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세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히피와 비트 세대가 발아한 것이 60년대고, 꽃피운 것이 80년대다. 그동안 정치적 히피(유럽의 1968년, 미국으로는 베트남전쟁과 반전운동으로 대변되는)가 문화적 히피로 전이되고 정착된 경우로 볼 수 있겠고, 그들 사이엔 꼭 그만큼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그들 가운데 키스 해링은 꼭 10년간 불꽃같은 삶을 살았고, 케니 샤프는 이들이 차례로 죽은 이후에 공동체가 해체되는 아픔과 함께 일시적인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 사람이 앤디라고 한다면, 공간적으로는 클럽 57이 있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대안공간의 원조로 볼 수가 있겠고, 미술과 대중문화, 클럽과 음악, 패션과 퍼포먼스, 만화와 디자인 같은 상호 이질적인 분야와 장르들이 경계 너머로 혼성되는 형식실험장이었다. 지금의 대안공간보다 더 급진적이었다. 
앤디에서 비롯된 팝아트를 계승하고 확장시킨 경우란 점에서 포스트팝으로 정의할 수 있겠고, 혼성의 배아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선취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가 있겠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게 문제의식으로 보나 감각적으로 볼 때 동시대성을 담보하면서도, 동시에 팝의 고전, 팝의 클래식, 팝의 완결판을 보는 것 같은 인상도 든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급진적이라기보다는 안정화된 느낌이고, 처음의 저항정신이 제도화된 느낌이다. 아마도 대중문화를 파고든 파급효과가 주는 친근함과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이미 미술의 경계를 넘어 팝아트가 일상화, 생활화, 보편화 되었다고도 볼 수가 있겠다. 키스 해링이 사망한 것이 근 30년 전 일이라는 것이 놀랍고, 그럼에도 지금 봐도 여전히 젊어 보인다는 것이 놀랍고, 케니 샤프가 불과 58년생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케니 샤프는 말하자면 팝아트의 살아있는 전설인 것이다. 

최근에 키스 해링과 케니 샤프의 대규모 전시가 열렸다. 그동안 키스 해링 전시는 몇 차례 있었지만, 케니 샤프 전시는 아시아 최초라고 한다. 키스 해링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전시에는 키스 해링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175점이 선별 전시된다. 키스 해링 하면 빠지지 않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로 지하철 광고 보드에 낙서하는 것으로 화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한 것이다. 따로 개제된 광고가 없을 때는 보드 위에다 검은 종이를 붙여 놓았는데, 그 종이 위에다 분필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당연히 불법임을 생각하면 단순한 그림을 넘어서는 저항정신의 표출로 볼 수가 있겠다. 
그 사건 이후 작가에게는 언더그라운드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게 된다. 작가에게 언더그라운드는 말하자면 지하철로 대변되는 서브컬처를 의미하고 저항정신을 의미한다. 서브컬처를 저항정신의 도구로 사용한 것인데, 그게 제도권의 눈에 띤 것이고 제도권 예술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관계 곧 저항정신과 제도권의 생리와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저항정신은 말할 것도 없이 제도권을 향한 것인데, 정작 제도권이 그걸 자신의 일부로서 흡수하는 것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새 피를 수혈 받아야 하는 제도권과 태생적으로 자기갱신을 꾀하는 예술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물신이 매개가 되면서 저항정신을 상품화한다. 급진적인, 진보적인, 파격적인, 충격적인 저항정신의 실천논리가 새로운, 신선한, 참신한, 이색적인, 그리고 남다른 상품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제도권에 의해 발탁된 이후 키스 해링은 앤디 워홀도 그랬지만 유명 인사들이 여는 파티에 빠짐없이 초청을 받는 주요 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그걸 공공연하게 즐겼다. 저들을 향한 욕(저항정신)이 저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이중적이고 이율배반적인 관계를 엿볼 수 있고, 예술과 자본과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엿볼 수가 있다. 언더그라운드가 제도화될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작가는 사람들의 삶을 파고들었고, 그들의 삶을 바꿔나갔다. 세계평화, 인종차별철폐, 에이즈 예방, 동성애자 인권문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마약, 전쟁, 폭력 및 환경보호와 같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적 현장에는 빠짐없이 그가 있었다. 정치적이고 계몽적인 포스트를 제작 배포하는 한편,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이라는 생전 작가의 말처럼 예술과 삶과의 경계를 허무는 일에 예술을 도구로 사용했는데,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일에 진력한 앤디 워홀의 실천논리를 계승한 것이다. 지하철 광고보드에 분필로 그린 그림에서도 예시되는 것이지만, 작가의 그림은 페인팅보다는 드로잉에 가깝고, 선명한 색채와 간결한 드로잉 그리고 여기에 뚜렷한 도상이 특징이다. 그렇게 빛나는 아기, 기어 다니는 아기, 세상을 향해 컹컹 짖는 개, 천사, 웃는 얼굴, 그리고 다양한 포즈의 군상과 같은 도상들이 태어났다. 그것들은 어쩜 간결한 도상과 즉각적인 어필로 인해 이모티콘의 원조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디자인과 패션 같은 삶의 모든 부분을 파고들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고, 그 전모를 이번 전시에서 새삼 재확인할 수가 있었다. 

키스 해링과 비교해볼 때 케니 샤프의 회화적 표현의 스펙트럼은 더 넓고 다양한 편이다. 케니 샤프 스튜디오가 소장하고 있는 회화, 조각, 영상, 사진 등 100 여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직접 내한해 현장 작업을 하기도 했다. 태극과 용 두 마리가 어우러진 벽화로 남북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 외관에 그래피티 작업을 한 카밤즈는 커스트마이징의 연장으로서 삶과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 삶을 파고드는 예술이라는 팝아트의 모토를 실천한 것이다. 작가는 커스트마이징을 위한 또 다른 자아 반 크롬을 내세울 정도로 이 일에 애착을 보였는데, 시계와 라디오 같은 생활오브제에다 그림을 그린 것이고, 특히 얼굴을 그린 것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청소기에다 그림을 그려 마치 애완견처럼 끌고 다니면서 산책을 했는데, 바이올린을 끌고 산책한 백남준을 연상시킨다. 특히 구형 TV 뒷면에다가 얼굴을 그려 넣기도 했는데, 작가는 모든 사물에서 얼굴들이 보인다고 한다. 
이런 커스트마이징 곧 오브제에 그림 그리기의 결정판이 코스믹 카반(Cosmic Cavern)이다. 그 표면에 형광물감을 칠한 생활오브제들로 꾸민 클럽 같은 분위기의 방으로, 사이키델릭한 우주로의 탈출을 상징하는 유토피아 공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자신의 집 옷장 속을 환상공간으로 꾸민 것이 발단이 돼 클럽 57에서 더 확대된 형태로 선보였고, 이후 지금까지 30개소가 넘는 장소에서 선보인 바 있다고 한다. 현장작업 혹은 장소특정성 작업의 경우로 볼 수 있겠고, 임기응변에 강한 그리고 가변성에 능한 팝아트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보기에 따라서 커스트마이징은  오브제를 재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겠고, 그 연장선에서 일종의 키치화를 재활용한 경우가 있어서 흥미롭다. 눈 덮인 산골마을에 외딴 오두막이 불을 밝히고 있는, 적막감과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상화에 설인을 그려 넣어 초현실적인 느낌의 또 다른 그림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세상의 모든 폐기된 오브제들에게서 저마다 걸 맞는 얼굴들을 발견하고, 그 얼굴들을 그려 넣어 새 삶을 불어 넣는다. 그건 어쩜 폐기된 오브제처럼 싫증난 세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활기를 되찾아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가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과 우주가족 젯슨과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공상과학만화 캐릭터를 그렸고, 별을 의인화한 에스텔의 죽음을 그렸고, 핵폭발과 지구 종말의 순간을 그렸고, 액체처럼 흐르는 유기체적 인간 블롭을 그렸고, 유성처럼 우주공간을 떠도는 거대한 도넛과 피자와 핫도그를 그렸다. 여기서 도넛과 피자와 핫도그는 아메리카드림을 상징한다. 특히 도넛에 대해서 작가는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대중에게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대상이라고 했다. 코카콜라를 그리는 이유가 보통사람들도 마시고 대통령도 마시는 것이라서, 라고 한 앤디 워홀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 작가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도입한 팝 쉬르레알리즘을 그렸고, 모든 종류의 그림들이 하나의 그림 속에 혼성 중첩되는 슈퍼팝을 그렸다. 작가는 최초의 컬러TV세대이기도 하다. 당시 13개 채널이 있었는데, 각각 13개의 이즘을 보는 것 같았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현실에 대한 불안과 판타지에로의 도피가 공존하는, 그리고 특히 하나의 그림 속에 상호 이질적인 형식과 이념이 혼성 종합되는 슈퍼팝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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