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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성, 한글자모와 문자조형

고충환

금보성, 한글자모와 문자조형 


모든 사물대상은 고유의 형태와 구조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 조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며 필요충분조건이다. 감각적 재현과 추상, 상징과 은유, 도상과 기호와 같은 일체의 조형의 소산들이 이로부터 비롯된다. 문자도 마찬가지. 여기서 문자를 여타의 사물대상으로 환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분명 사물대상은 문자의 존재방식 중 하나로 보는 것이 상식이고 자연스럽다.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 전통적인 서체와 현대디자인 영역에서의 문자조형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 사정은 이와는 좀 다르다. 초현실주의 화가 앙드레 마송과 좀 더 최근의 경우로는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 정도를 제외하면, 현대미술에서 문자조형은 그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현대미술 중 특히 개념미술이 문자보다는 텍스트와 꽤나 친한 편이지만, 텍스트와 문자조형은 그 경우가 다르다. 
작가 금보성은 한글작가로 부르고 한글 전도사로 불린다. 모든 것이 조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작가는 한글을 소재로 택했다. 평면과 입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문자를 조형하고 한글을 변주하는 것이 그의 평생 작업이 되었다. 사람 이름을 무슨 건축물 마냥 재구성한 입체작품에서 보듯 한글이 영 없지는 않지만, 대개 한글보다는 한글자모를 소재로 취하는데, 한글보다는 조형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고 자유로운 편이다. 한글을 자모로 해체한 것인데, 그 자체가 기하추상 같고 색면추상 같다. 해체된 한글자모가 회화를 위한 최소단위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의미소보다는 형태소에 가깝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얼핏 순수추상회화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그 속에 낱낱의 한글자모가 들어있다. 무슨 퍼즐놀이 마냥 머릿속에서 그 자모를 맞춰 가다보면 한글로 재구성되는 것인 만큼, 비록 잠재적인 형태로나마 그림 속엔 의미도 들어있다. 그렇게 한글자모를 소재로 한 작가의 그림은 형식과 내용, 조형과 의미 간 긴장관계를 내재화하고 있고, 이로써 조형예술을 지지하는 기본적인 형식논리를 새삼 재고하게 만든다.  
작가는 한글자모를 이용해 모든 그림을 그린다. 심지어 한글자모로 사람얼굴을 그리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기하학적 닮은꼴로 인해 크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도시 변두리의 정경을 떠올리게도 한다. 기하는 논리에 가깝고 수리에 가깝다. 그래서 정서적 환기력을 갖기 어려운데, 예외적인 경우로 보이고, 작가의 회화적 감수성의 결과로 보인다. 이처럼 구상적이고 재현적인 경우가 없지 않지만, 대개는 기하추상과 색면추상을 통해 화면을 전개하고 변주한다. 그 대략의 과정을 보면, 먼저 한글을 자모로 해체하고, 그렇게 해체된 자모 그대로 종이에 본을 뜬다. 그리고 오려낸 본을 자모의 꼴을 따라 접은 후 바닥에 흩뿌린다. 그러면 기하학적 꼴의 입체조형이 눈앞에 전개되는데, 그대로 화면에 옮겨 그리면 된다. 작업의 착상과정을 유추해본 것이지만, 컴퓨터로 이루어지든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든 아니면 다만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든 실제 제작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화면에서 그런 입체조형이 실제로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며, 평면이면서 입체인 조형의 변주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 그 자모를 끼워 맞춰 화면에 숨어있는 이름, 단어, 의미를 발견하고 캐내는 일은 관객의 몫으로 주어진다. 
이런 평면작업과 함께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로 인식되고 있는 입체조형작업으로 테트라포드가 있다. 속에 바람을 채워 부풀린 거대한 풍선조형작업으로, 정면에서 보면 한글자모 중 시옷(ㅅ)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한문자 중 사람 인(人)자 셋이, 그러므로 어쩌면 세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어 서 있는 형국이다. 논리적이고 수리적인 기하추상에 정서적 입김을 불어 넣었던 것처럼, 한글에서 사람냄새를 맡은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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