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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옥/ 타자 혹은 세계감정, 모호한, 익숙하지 않은, 두려운

고충환

이준옥/ 타자 혹은 세계감정, 모호한, 익숙하지 않은, 두려운 


보통 레지던시로 치자면 지역리서치 아니면 장소특정성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마련이다. 따로 정해진 것도 없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지만 작가나 주최 측이나 왠지 그래야할 것 같은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편이다. 주최 측에선 레지던시를 특화해 다른 레지던시와의 차별성 내지 변별성을 기할 수 있어서 좋고, 작가 입장에선 형식실험을 통해 혹 모를 자신의 또 다른 잠재력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을 수가 있다. 이처럼 지역리서치와 장소특정성을 레지던시의 암묵적인 전제로 인정한다면, 아무래도 사진과 영상과 같은 기록성과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를 매개로 현실을 재현하고 재구성하는 데 용이한 매체가 유리하기 쉽다. 
이에 반해 회화는 좀 그런데, 사진과 영상에 비해 사물대상과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가 않고, 주관(혹은 몸의 직접성?)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린다는 행위는 사물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한다기보다는 주관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며, 주체와 객체가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삼투되는 경험을 그린다는 것이며, 다름 아닌 바로 그 경험의 생생한 현장을 그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물대상의 특정성은 흐릿해지고, 꼭 그만큼 더 주체는 또렷해진다. 그러므로 그리기란, 회화란 어쩜 사물대상으로부터 고유의 혼을 빼앗아와 자기를 밝히는, 세상을 숙주 삼아 세상을 재현한다는 구실로 사실은 자기를 그리는 자기반성적인 행위에 강한 매체일 수 있다. 
군산의 장소성은 모호함으로 다가왔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를 여행하는 것, 늦은 밤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등산하는 긴장감, 잘 알지 못하는 세계로 발을 옮기는 두려움이 마치 갓 학교를 졸업하고 고민이 많은 자신의 처지를 닮았다, 고 작가는 근작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모호한, 익숙하지 않은, 두려운 감정이 주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어쩜 일종의 이방인의식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전작에서 익명의 이주민 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일종의 역할극을 통해서, 이를테면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를 통해서 이런 이방인의식을 역으로 투사 경험한 적이 있다. 참고로 친근한 것이 낯설게 다가올 때 두려운 감정이 생기고(프로이트), 자기 스스로를 낯설다고 느끼는 자기소외감정이 이방인의식의 본질이다(카뮈). 그러므로 작가의 근작은 이방인의식(사람에서 장소로 모티브를 옮겨온)의 또 다른 버전일 수 있고, 그 이면에는 자기소외로 나타난 존재론적 생경함, 이질감, 그리고 낯선 감정이 작동하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산을 야행하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고, 어둠을 엎고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다. 가로등 불빛이 가장자리의 어둠과 대비되는, 가장자리를 감싸고 있는 어둠과 대비되는 인공불빛으로 인해 마치 조명을 받고 있는 무대 같은, 일종의 상황극을 보는 것 같은, 어둔 부분과 밝은 부분과의 대비가 정작 빛보다는 어둠을 강조하는 것 같은, 조명불빛을 따라 단색조로 톤 조절이 된 그림이 내면적이고 불안하고 극적 긴장감을 준다. 작가는 마치 어두운 곳을 더듬어 발걸음을 옮기듯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모호한, 익숙하지 않은, 두려운 관계를, 장소를, 세계를, 세계감정을 그리는 작가만의 방법이다. 
전작에서 작가는 윤리 문제에 고민이 많다. 시위의 표시로 삭발하는 사람들, 그렇게 잘려나간 머리카락과 자라나는 풀들을 유비적으로 대비시킨 풍경들, 익명적인 이주민 여성의 삶을 재현하고 재구성한 그림들이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윤리적 연대를 요구해오는 얼굴이라고 정의한다. 아마도 미학적 실천으로서의 윤리문제는 이런 레비나스의 타자에 대한 정의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타자는 모호한, 익숙하지 않은, 두려운 대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어쩜 작가의 근작은 작가의, 작가가 그린 그림의 저변에 깔린 타자며 윤리문제를 감정적인 대상으로 객관화한 그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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