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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우리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17개의 기둥들

고충환

박지선, 우리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17개의 기둥들 


여기에 17개의 기둥이 있다. 우리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17개의 시와 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17개의 시와 도? 이게 단가? 일차원적 사실을 일차원적 방법으로 표현한 것인가. 너무 심심하지 않은가. 섣부른 판단을 접고 작품을 뜯어보면, 어쩜 당연하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당신이 보는 것이 보는 것이라는 동어반복으로 표면적인 의미를 강조한 프랭크 스텔라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작가들은 표면적인 의미보다는 중의적인 의미에 끌리는 편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품을 다시 보자. 표면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의미가 그럴 뿐,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보다 깊은 속뜻이 숨어있다. 그 속뜻을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겉뜻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속뜻이 수면 위로 자기를 밀어 올리고서야 비로소 겉뜻도 이해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어쩜 속뜻이 곧 겉뜻이다. 최소한 속뜻과 겉뜻의 상호작용을 이해할 일이다. 

기둥을 보면 속이 빈 반투명의 주렴처럼 보인다. 주렴을 손으로 젖히면 기둥 속에 들어갈 수 있고, 안과 밖을 들락거릴 수 있을 것 같다. 주렴인가. 주렴인 건 맞지만, 너무 허약한 주렴이라 손으로 만지기가 조심스럽다. 글루로 만든 주렴이다. 일일이 글루건을 쏘아 만든 주렴이다. 평면 위에 뉘어놓은 상태에서 글루건을 쏘아 반투명한 띠를 만든 다음, 그 띠들을 세로로 세워 기둥형상을 재구성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랬더라면 보다 균일한 라인을 얻을 수 있을 터이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라인은 균일하지도 정형적이지도 않다. 여기에 어떤 띠와 띠는 서로 엉켜 붙어 있어서 이런 비정형성과 함께 우연성마저 감지하게 된다. 도대체 이게 뭔가. 문득 제작과정이 궁금해진다. 

사실을 말하자면 작가는 글루건을 허공에 대고 쏘아 흘러내리는 글루의 띠를 만든 것이라고 했고, 반복과정을 통해서 그 띠들의 주렴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각 기둥의 상하부에 해당하는 원형 프레임을 세팅해놓고, 그 프레임을 기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대개는 하나의 선을 한 번에 얻는 것이지만, 더러 중간에서 연이어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선이 균일하게 떨어진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예기치 않게 선과 선이 서로 엉켜 붙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손으로 젖혀 안과 밖을 들락거리기에는 너무 박약한 글루 주렴기둥이 만들어졌다. 

알고 보면 이건 알레고리다. 지금여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코멘트다. 17개의 시도가 우리나라를 떠받치고 있다고 했다. 그 17개의 시도를 기둥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기둥의 실재는 무엇인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기둥일 수밖에 없다. 글루 주렴은 바로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 틀리고, 관계 또한 다 다르다. 균일할 수가 없고 정형적일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고, 어떤 사람들은 서로 엉켜 붙어 싸운다. 대부분의 별 볼일 없는 선남선녀들 위로 그렇게 아귀다툼 하는 사람들이 엉켜 붙어 있다. 

작가는 이 전시의 주제를 <반투명>이라고 부른다. 일차적으론 글루의 색채감정을 주제화한 것이다. 그리고 정작 이보다는 투명하지도 불투명하지도 않은 상태, 속이 들여다보일 것 같으면서도 정작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는 상태, 애매한 상태,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미증유의 상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 오리무중의 종잡을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시대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보이는 건 다만 착각(착시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절망의 표현일까,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잘 안보이지만 잘 보면 보인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이로써 작가가 굳이 비정형과 우연성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도, 선과 선이 서로 엉켜 붙는 것에 무심했던 이유도, 그리고 특히 허공에다 글루건을 쏘아 띠를 만드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방법을 고집했던 이유도 분명해진다. 이 이유며 방법들이 모여 우연한, 무분별한, 알 수 없는 미증유의 시대감정을 표상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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