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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흔적교환소와 운세조형

고충환

김현, 흔적교환소와 운세조형 


옛날에 교통도 열악하고 물건도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교통이 열악하니 사람 간 교류할 일이 없었다. 물건이 귀하니 물건을 교환할 일도 없었다. 이런 시절에 사람을 교류시키고 물건을 교환하는 역할을 도맡은 사람이 방물장수다. 온갖 물건들을 머리에 이기도하고 짐짝을 어깨에 지고 다니면서 동네방네를 순례하는데, 구경꺼리도 없던 시절이라 방물장수가 뜨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였다 싶으면 방물장수는 물건보따리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사람들에게 외계에서 온 물건들은 단순한 쓰임새를 넘어 세상소식을 전해 듣는 매개체며 메신저 역할을 했다. 
지금은 교통도 좋아졌고 물건도 흔한 편이다. 교통이 좋아졌으니 사람 간 교류할 일도 많아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저마다 손안의 SNS며 가상현실 속에 빠져 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실 속에선 더 고립된 삶을 산다. 물건도 흔해 한번 쓴 물건은 다만 버리면 그 뿐, 물건을 교환할 일도 재활용할 일도 없다. 버리는 게 편하다. 아니다 싶으면 버리면 된다. 그렇게 물건도 버리고 사람도 버리고 인연도 버리고 추억도 버린다. 아니다 싶으면 다만 버리면 되니 참 편한 세상이다. 빈곤 속의 풍요를 살던 시절이 뒤집혀져 풍요 속의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흔적교환소를 운영하는 김현은 옛날로 치면 방물장수 같다. 고가구 같이 생긴 직접 짜 만든 궤짝을 메고 여기저기 다닌다. 궤짝 안에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이러저런 물건들이 있는데 페트병, 종이컵, 실장갑, 고무 밴드 같은 조금은 아리송한 물건들이다. 한눈에도 허접한 것들이고 재화적인 가치는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지만, 사사롭게 의미 있는 물건들, 이를테면 누군가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페트병, 누군가의 체온을 간직하고 있을 종이컵, 누군가가 일을 할 때 손을 보호해주었을 실장갑, 그리고 아마도 가스가 떨어진 라이터와 뭔가가 메모된 구겨진 종이 같은 것들이다. 의미의 경중을 떠나 익명적인 주체들의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이다. 이처럼 익명적인 사람들에게 받은 물건들을 다른 익명적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그 감상을 묻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물건에 대한 감상을 전해주기도 하고, 그 물건의 주인에 대한 감상을 전해주기도 하고, 다만 자신에 대한 주관적 감상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렇게 작가는 사람을 교류시키고 감상(감정)을 교환한다. 옛날에 방물장수가 물건보따리를 구실 삼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듯이, 삶의 흔적을 매개로 익명적인 주체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운세를 조형한다. 운세를 조형한다? 오늘의 운세를 보면 이러저런 운세가 뜨고, 그 키워드를 입력하면 이러저런 이미지들이 뜬다. 그러면 그 이미지들을 조형으로 옮긴다. 이처럼 운세를 이미지로 옮긴 것인 만큼 문자텍스트와 이미지텍스트가 서로 부합해야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운세와 유관한 이미지도 있고 영 아닌 이미지도 있다. 어쩜 운세 자체가 임의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서 이런 영 아닌 이미지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렇게 운세를 조형으로 옮긴 이미지는 오리무중으로 보인다. 오리무중으로 보이지만 그 속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 운세는 목숨을 걸 만한 일이다. 그리고 운세는 행운의 색상과 행운의 방향을 포함한다. 작가는 자기 발을 한 달 30일에 맞춰 30개의 절편으로 나눈 뒤 각 30개의 행운의 방향과 색상을 부여했다. 그렇게 발 전체는 행운에 맞춘 것이지만, 사실은 저마다 다른 오늘의 행운의 방향이며 색상을 좇아 분열된다.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고 절실하기도 하다. 억지와 절실이 기생하는 현실에 대한 풍자 같고, 존재의 부조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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