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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섬과 정원, 밤과 꿈, 그리고 무의식의 방

고충환

이지원/ 섬과 정원, 밤과 꿈, 그리고 무의식의 방 


섬, 정원, 관계, 그리고 근작에서의 그라운드. 이지원의 그림을 지지하는 키워드들이다. 추상회화에서처럼 제목이 무의미하거나 아예 주제가 생략된 경우도 있지만, 주제며 제목이 의미를 견인하는 그림도 있다. 서사적인 그림이고 문학적인 그림이다. 이지원의 그림이 그렇다. 여기서 작가의 그림을 서사적이고 문학적이라면서도, 정작 재현적인 그림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선뜻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재현을 양식화하고 도식화한 그림, 재현을 재해석하고 자기화한 그림, 재현적이면서 재현적이지 않은 그림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여기서 섬과 정원 자체는 지정학적 개념이고 장소개념이며 실물개념(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대상에 붙여진 개념)이다. 그러나 작가의 경우 그곳(혹은 그것)은 실재하는 대상으로서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불러낸 가상현실이다. 마치 철인이 지배하는 섬(플라톤)이나 비너스가 사는 섬(시테르)처럼. 그런 이상세계며 유토피아와도 같은. 작가의 상상력이 섬과 정원을 불러냈다고 했다. 섬과 정원은 말하자면 작가의 내면이 투사된 세계다. 작가가 그리는 세계며 예술에 대한 관념이 축도된 세계다. 
특히 섬은 정신분석학을 계승한 초현실주의에서 결정적인 메타포이기도 하다. 처음엔 의식이 없었다. 오직 무의식만 있었다. 이후 점차 무의식의 샘에서 길어 올린 일부 무의식이 의식이 되었다. 그러므로 무의식이 의식의 원천이다. 따라서 무의식이야말로 생생한 현실이며 진정한 현실이다. 다시, 그러므로 예술은 바로 그 생생하고 진정한 현실을 탐구하는 것에 바쳐져야 한다. 여기서 의식과 무의식을 매개시켜주는 것이 섬이다. 수면에 드러난 섬의 일부가 의식이라면, 여전히 물밑에 잠겨있는 섬의 대부분이 무의식으로 남아있다. 그저 미지의 영역이며 알 수 없는 차원으로서보다는 끊임없이 의식을 간섭하고, 의식을 재정의 하게 만들고, 의식의 원인으로서 작동하는 계기 내지는 운동성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작가의 그림 중 물밑 섬을 그린 풍경이 이런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성에 부합하는 것이 흥미롭다. 물속 정경을 그린 것임에도 정작 물속에 있는 것과 물밖에 있는 것이 같이 그려져 있다. 무의식과 의식이 상호작용하고, 상호 간섭하고, 상호 삼투되면서 서로를 형성시키는 계기와 운동성을 그린 것이다. 그 경우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작가의 다른 그림들을 해독하게 해주는 모본(혹은 같은 말이지만 모태)으로 봐도 되겠다. 
그리고 근작에서의 그라운드는 바닥이란 말이고 배경이란 말이다. 무엇을 위한 바닥이고 무엇의 배경이란 말인가. 의식의 바닥이고 배경이란 말이다. 무의식이다. 의식과 상호작용하고, 상호 간섭하고, 상호 삼투되는, 그리고 그렇게 의식을 형성시키고, 매번 매순간 의식을 재정의 하게 만드는 무의식의 계기와 운동성을 그린 것이다. 그렇게 섬은, 정원은, 그리고 그라운드는 작가의 내면을 상징하고, 의식과 무의식이 상호작용하는 운동성을 상징한다. 그 운동성과 더불어, 그 운동성에 의해서 기왕의 관계가 재설정되기도 하고, 없던 관계가 새로이 생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나와 너, 나(외면적인)와 나(내면적인), 주체와 타자, 의식과 무의식, 세계(세계 자체)와 의미(세계의 개념 혹은 이름)와의 관계가 재정의 되고 재설정되는,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긴박한 현실을 그린 것이고 그 드라마틱한(겉보기에는 그저 정적으로 보이기만 한) 현장을 그린 것이다. 

그렇게 본 작가의 그림은 친근하고 낯설다. 그림 속 모티브 하나하나가 하나같이 알만한 것들이고, 그 의미가 곡해될 여지는 사실상 거의 없어 보인다. 앞서 말했듯 작가의 그림은 재현적이면서도, 사실은 재현을 도식화하고 양식화한 그림이다. 마치 도안책에서 오려낸 스티커를 콜라주한 느낌이다. 자기지시성이야말로 도식화되고 양식화된 그림의 관건이다. 명료한 의미며 개념전달이 필수다. 회화적인 성질들, 이를테면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사물대상의 양감과 실물성(사물대상을 실제로 보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특히 분위기(이를테면 우연한 붓질이나 비정형의 얼룩으로 조성된)는 명료한 의미며 개념전달을 훼손할 수 있어서 삭제된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그림의 의미는 명료하다. 그래서 친근하다. 
그럼에도 낯설다. 모티브와 모티브 간의 관계가 어떤 인과성이나 논리적 개연성을 벗어나 있는 것이 낯설고, 그 관계가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설정돼 있어서 낯설다. 마치 우연하고 무분별한 사물대상을 단순 집합시켜놓은 것 같은, 그리고 여기에 그 관계가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주어진 것인 만큼 탁 털면 우수수하고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사실 사물대상을 가만히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집에서 키우는 화초, 식자재, 장난감, 각종 생활용품과 소품들을 그린 것일 수 있고, 이로써 육아를 하는 주부로서의 생활감정과 주변머리를 그린 것일 수 있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아마도 어느 정도는 그 경험의 분별된 그리고 무분별한 편린들을 재구성한 그림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생활감정과는 거리가 있는 모티브들(이를테면 화가로서의 관심사와 내면 혹은 무의식에 맞닿아 있는)이 중첩된 그림일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현재 세계를 그린 그림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하튼 큰 틀에서 보면 모티브 간의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관계설정이 작가의 그림을 낯설게 만들고, 또한 그것이 작가의 그림을 특징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게 뭔가. 사물의 전치다(초현실주의). 의식의 흐름이다(마르셀 프루스트). 오픈콘셉트다(움베르토 에코). 말하자면 사물의 위치가 달라지면 그 의미 또한 달라진다. 그런가하면 의식은 결코 순차적으로 흐르지도 인과성을 따라 흐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의 의미는 열려있다. 그렇게 작가는 자기의 내면을 그렸고 외면을 그렸다.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을 그렸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상황을 제시할 뿐, 그 의미는 작가(저자)가 아닌 관객(독자)의 몫으로 주어진다. 관객들은  저마다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자기 형편에 맞춰 읽을 수가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 그림 속엔 사람 두상이 있고, 꿈꾸는, 잠자는, 아니면 사색에 잠긴 사람이 등장한다. 아마도 작가 자신일 것이다. 그림은 결국 생각을 그린 것이고 꿈을 그린 것이다. 관객들은 그림 속 사람에게 자기를 이입할 수도 있고, 그 생각 아니면 꿈에 자기의 상상력을 보태 각색할 수도 확장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비록 자기를 그린 것이지만, 관객들을 향해 열린 의미구조로 인해 보편성을 얻고 공감을 얻는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섬 하나쯤 간직하고 있고, 정원 하나를 가꾸고 있다. 작가의 그림은 바로 그 섬, 그 정원을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컴퓨터로 먼저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작은 그림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 그린다고 한다. 컴퓨터가 드로잉이고 툴인 셈이다. 매체가 달라지면 메시지 또한 달라진다고 했다(마샬 맥루한). 사실은 매체가 달라진다고 해서 똑같은 메시지가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 그 질감, 그 느낌, 그 감정(아니면 정서)의 결이며 성분이 다르게 와 닿는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작가는 컴퓨터 세대답게 샤프한, 세련된, 군더더기가 없는, 무미건조한, 중성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서도 무의식답게 그 의미가 오리무중인, 열려있는,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재편집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무의식의 컴퓨터 버전(컴퓨터로 출력된 무의식)을 매개로 컴퓨터를 떠다니는, 그리고 의식을 떠도는(의식은 어쩜 거대한 컴퓨터인지도 모른다) 우연하고 무분별한 정보들을 채집하고 분류하고 정리하고 일일이 이름을 붙이는 정보처리자로서의 예술가상을 제시한다. 그렇게 정보 처리된 섬이며 정원이 어떤 느낌으로, 어떤 정서적 질감으로 와 닿는지는 관객의 몫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는 자기만의 섬과 정원, 밤과 꿈, 그리고 무의식의 방에로 관객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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