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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묵/ 정체성 상실을 앓는 나에게, 길을 잃은 너에게

고충환

김판묵/ 정체성 상실을 앓는 나에게, 길을 잃은 너에게 


작가 김판묵은 여느 작가들이 그렇듯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여기서 창은 주체가 세상을 보는 틀과 프리즘, 관념과 가치관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특정의 틀을 통해 세상을 보고, 특정의 가치관과 관념의 프리즘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편견 없이 세상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한편으로 창은 세상과 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막 바깥쪽 세상은 위험천만이지만, 적어도 막 안쪽에 있는 한 나는 안전하고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이다. 막 바깥쪽 세상은 욕망을 억압하고 감시하지만, 막 안쪽에 있는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작가는 바로 이 부분에 관심이 있다. 창에 대한 관심이 욕망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 재생산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그렇게 나는 욕망을 실현하고 싶고, 제도는 욕망을 억압한다. 나의 욕망과 제도의 욕망이 충돌하는 것인데, 여기서 내가 찾아낸 타협점이 가면이다. 가면 뒤에 숨는 것이다. 가면은 알다시피 그 어원이 페르소나에서 왔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나, 타자들이 욕망하는 나, 타자들의 욕망에 부응하는 나, 그러므로 사회에 내어준 주체(사회적 주체)며 제도적 주체다. 그리고 나는 그 가면 뒤에 숨는다. 아이덴티티다. 그렇게 나는, 나의 정체성은 페르소나(가면)와 아이덴티티(진정한 주체)로 분열된다. 이중인격으로 분열되고, 다중인격으로 파열된다. 그렇게 나는 너무 오래 동안 가면을 쓰고 있어서 종래에는 가면이 난지 내가 가면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동안 아이덴티티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 가면이 되었다. 
작가는 현대인의 전형적인 징후 혹은 증상이랄 수 있는 정체성 혼란과 상실 문제에 민감하다. 그 징후며 증상을 앓는 와중에서도 결코 가면을 포기할 수는 없다. 가면을 벗는다는 것은 곧 내 욕망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들킨다)는 것이며, 제도가 금지한 금기를 위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매번 가면을 갈아 쓰는데, 그때그때 상황논리에 따라서 알록달록한 가면으로 갈아 쓰기도 하고(위장), 마스크로, 돋보기로, 안경으로, 망원경으로, 잠망경으로, 그리고 방독면으로 갈아 쓴다. 그리고 그렇게 마침내 나 자신 가면이 되었듯, 나는, 나의 얼굴은 마스크로, 돋보기로, 안경으로, 망원경으로, 잠망경으로, 그리고 방독면으로 변주되고 변태된다. 예전에 창문 안쪽에 있을 때 나는 안전하고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듯이 지금은 마스크와 돋보기, 안경과 망원경, 잠망경과 방독면을 쓰고 그렇게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방독면인지 아니면 방독면이 난지 알 수가 없다. 나 자신 방독면이 된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그럴듯한 무언가가 나타나 가면을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방독면이 내 얼굴이 되어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작업과 관련해 짚고 넘어갈 부분으로 공몽이 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똑같은 꿈을 꾸는 것이다. 집단무의식과 집단최면에 걸린 전체주의를 표상한다. 작가는 천체망원경을 전체망원경(전모를 보여주는 망원경, 차라리 전체를 볼 수 있다는 환상)으로 비틀어 전체주의를 재차 풍자한다. 기계인간처럼 똑같은 생각, 로봇처럼 똑같은 의식, 사이보그처럼 똑같은 비전을 요구하는 사회를 비판한 것이다. 그 숨 막히는 사회 속에서 작가도 길을 잃고, 나도 길을 잃고, 우리 모두 길을 잃는다. 그리고 그렇게 잃어버린 길 위에서 작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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