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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서체를 변용한 회화, 서체와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조형

고충환

김진혁/ 서체를 변용한 회화, 서체와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조형 


서화동원이라는 말이 있다. 글과 그림은 그 뿌리가 하나라는 말이다. 글과 그림이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글과 그림이 서로 보완한다는 말이다. 미처 글로 한정할 수 없는 의미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림으로 못다 한 말을 글로 표현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글은 그림을 암시하고, 그림은 그 속에 의미(글)를 담는다. 그리고 그렇게 글은 그림이 되고 싶고, 그림은 글을 그리워한다. 시는 회화처럼 회화는 시처럼, 이라는 서구의 전통적인 미학과도 통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이미지(그림)와 의미(글)가 될 것인데, 이처럼 이미지와 의미의 상동성에 대해서는 진즉에 동양이나 서양 할 것 없이 서로 통하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김진혁의 그림이 그렇다. 그의 그림 속에서 그림은 글과 통한다. 그림은 글이 되고 싶고, 글은 그림이 되고 싶다. 작가의 그림 속에는 곧잘 한문자가 등장하고, 글에서 그림으로 그림에서 글로 이행 중인 기호가 등장하고, 글과 그림이 경계를 넘어 하나로 몸을 섞는 변태 중인 부호가 등장한다. 그렇게 그림 속에 들어온 글은 그림과 더불어 하나의 조형요소로 기능하면서 그림의 표현영역이며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보기에 따라선 버드나무나 대나무 같은 사물대상을 정의하는 붓질도 서체에서의 필과 획이 중첩되고 해체되는 양상에 따른 것이고, 나아가 풍경에서마저 서체의 기본인 점찍기와 선긋기가 그 바탕이 되고 있다. 한편으로 점찍기와 선긋기는 서체의 기본이면서, 동시에 그림의 기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글과 그림은 다시 통한다. 
그렇다고 문자그림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작가의 그림은 문자를 추상화한 그림이 아니며, 그림과 문자가 그 경계를 허물어 공존하는, 그리고 아마도 종래에는 합체되는 회화적 차원이며 경지를 열어놓는다. 문자가 그림에 부수되는, 회화 쪽에 방점이 찍힌다는 말이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서 글은 그림을 돕고 그림은 글을 돕는다. 글과 그림, 의미와 이미지가 상호작용하면서 그림을 확장시키고 의미를 증폭시키는 형식실험의 한 경우를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작가는 그림보다 글에 먼저 입문했다. 학창시절에는 전국학생휘호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문교부로부터 미술서예 특기생으로 지명 선발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서예 부문 특기자로는 전국 1호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그림을 본격화한 이후에도 서예와 서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그림의 저변을 지배하는 정서며 형식논리로서 작용하고 있다. 다시, 그런 만큼 작가의 회화적 본성은 자연스레 글과 그림이 합치되는, 이미지와 의미가 합체되는 형식실험의 장을 향하고 그 가능성의 지점을 향한다. 
서두에서 필과 획이, 점찍기와 선긋기가 서예의 기본이며 회화의 근본이라고 했다. 이런 사실의 인식과 관련해 작가의 초기 회화행보가 주목된다. 1970년대 후반 당시 대구는 한국화단을 견인하는 선구적 역할을 했는데, 그 중심에 대구현대미술제가 있었다. 서울보다 먼저 전국 최초로 열린 대규모 현대 미술제라고 한다. 여기에 작가는 당시 최고 막내작가로서 전시에 참여했는데, 그 출품작품이 예의 점찍기와 선긋기의 기본을 조형화한 작업을 보여준다. 아사천의 올이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엷은 묵을 올려 일획으로 그린 반복적인 행위의 흔적에서 탈재현적인, 행위와 조형을 동일시한, 행위 자체에서 조형의 존재이유를 찾은 당시 주류 회화경향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 확인된다. 유사 경향을 보이는 다른 작가들과의 차별성이 있다면, 이미 충분히 체화된 서체에 대한 감각이 조형 위로 밀어올린 자연스런 발로가 주류 경향과 (우연히?)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물론 그 회화경향을 의식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여하튼). 
그리고 그동안 모노크롬 회화(색채감정으로 치자면 금욕적이고 절제된)에서 이후 색채며 화면이 눈에 띠게 다채로워지는 형식상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회화의 바탕으로서의 서예며, 회화와 서체와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이해가 작가의 작업에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를테면 회화를 위한 붓질 자체가 서체의 본을 따르고 있는, 혹은 암시하는 것이 그렇다. 여기에 점찍기와 선긋기와 같은 서체의 기본요소가 회화의 기본요소 내지 조형적인 성질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한눈에도 드로잉이 강한, 체화된 감각과 즉발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역동적인 화면운영을 보여주는 것이 그렇다. 

특히 근작과 관련해 소재 혹은 주제 면에서 흥미로운 것이 상해임시정부를 테마로 한 그림들과 조선 호랑이를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다. 이 일련의 그림들에서 작가는 각각 시대정신과 전통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상해임시정부 테마 그림은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보고 감명을 받은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각 김산, 김구, 안중근, 이희영 등 독립운동열사들과 더불어서 그들의 기개와 정신세계를 소나무와 대나무 등 자연에 빗대어 그린 그림이다. 동시대적인 상황논리와도 맞아떨어지는(이를테면 상해임시정부를 대한민국 건국의 시작으로 보는) 이 일련의 그림들에서 작가는 현실참여로 나타난 작가적 책무를 실천하고 있다. 작가적 책무라고는 했지만,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에서 예술의 당위성을 찾는 작가정신의 자연스런 표현(혹은 표출)으로 볼 수 있겠다(작가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고, 시대는 작가 곧 개인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한편으로 중국 쓰촨성 대지진, 남대문 화재, 촛불시위와 같은 시대정황을 테마로 그린 <Seven Stories>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옆으로 긴 하나의 그림 속에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7개의 이야기를 담아낸 그림이 전통적인 두루마리 그림의 전형적인 포맷을 현재로 소환해 재해석하고 있다. 일종의 변형된 책처럼 읽히는 두루마리 그림이 이야기그림 곧 서사적 회화의 한 가능성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조선 호랑이를 소재로 한 일련의 그림들에서 작가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꾀하고 있다. 탈 혹은 비 원근법적인 화면, 평면적인 화면, 양식화된 화면과 어우러진 해학적인 표정의 조선 호랑이가 전통적인 민화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작가는 평면을 위주로 하면서 설치작업으로의 확장을 꾀한다. 이를테면 서체의 기본인 필과 획을 11개의 연이어진 선으로 표현한 입체조형조각이 그렇고, 자신이 수집한 전통 제기를 오브제로서 도입해 그림과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그 표현영역이며 의미를 확장시키는 것이 그렇다. 서체에서 시작된 기본형이 각 그림으로, 입체조형으로, 그리고 오브제의 도입으로 확장 변주되고 있는 경우로 보면 되겠다. 이 가운데 오브제의 도입은 일상 속에서 예술의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발굴하는(예술은 발견이다), 생활철학 내지 생활감정과 관련이 깊다. 
이러저런 면면에서 볼 때 작가는 전통과 현대의 유기적인 관계에, 전통(특히 근대)과 현대의 연속성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 관심을 서체를 변주한, 서체와 회화가 경계를 넘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작가 고유의 형식논리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작가는 현재 자신의 호를 딴 학강미술관(고미술 중심의 컬렉션으로 이루어진)을 운영하고 있다. 인문학적 연구를 통해 창작의 깊이를 더하려는, 창작과 이론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평소 작가의 소신이 반영된 경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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