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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마리 브리쏭, 색 바랜 벽지에서 돋아난 그림

고충환

피에르 마리 브리쏭, 색 바랜 벽지에서 돋아난 그림 


앙리 마티스의 계보를 잇는 프랑스 현대 야수파 작가라고 했다. 그림을 보니 그 평판의 원인을 알겠다. 진즉에 작가는 마티스에 대한 경외감을 품고 있기도 했거니와, 실제 그림도 그랬다. 특히 손에 손을 잡고 원무를 추는 발가벗은 사람들을 그린 그림은 한눈에도 같은 테마를 그린 마티스의 원작을 떠올리게 했다. 사실 마티스의 원작은 고대 그리스 화병이나 도기를 장식한 그림이 그 원형이다. 그렇게 작가는 마티스를 매개로 고대 그리스와 만난다. 파피루스와 아칸서스, 월계수와 수선화와 같은, 작가의 그림에 곧잘 등장하는 식물들은 하나같이 그리스 신화에서 유의미한 표상들에 해당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리스 신화는 서구문명의 원형이다. 이로써 작가는 서구문명의 원형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라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자기화한 경우로 볼 수 있겠고, 마티스가 그 중계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가 있겠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에서 마티스의 영향은 현저한데, 특히 말년의 색종이 오려 붙이기가 그렇다. 세부도 명암도 생략된, 다만 최소한의 실루엣으로만 축약 표현된 모티브가 심플하고 명쾌해 보인다. 평면적이고 모던해 보인다. 여기에 색채의 마술사라는 평판을 뒷받침하는 유명한 보색대비가 리드미컬하고 명랑해 보이는데, 그것도 그대로 작가에게 이식된 것 같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 속엔 마티스의 혼이 살아 숨 쉰다. 단순히 마티스에 머문다기보다는 마티스를 자기화하고 마티스 이후를 예비하는,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의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예시해주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그렇게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콜라주고 데콜라주다.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뜯어내고 그 위에 그림을 덧그리는 것인데, 미술사적으로 미래파와 입체파에서 유래한 것이다. 좀 더 이후로는 유럽의 신사실파와 미국의 팝아트에서 각종 포스터와 벽보를 뜯어내고 붙인 화면 위에 그림을 덧그린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대중문화에 대한 시대감정을 반영한 것이다. 
작가는 뜯어낸 벽지를 지지대 삼아 그 위에 그림을 덧그리기도 하고, 벽지를 패턴으로 만들어 오려붙이기도 한다. 예외가 있겠지만, 대개 유럽 쪽 커튼이며 벽지에는 각종 식물 문양이며 패턴으로 장식한 경우들이 많다. 그 자체 생활문화 내지는 생활사의 관점에서 특정할 만한 여지가 없지 않다. 작가는 남부 프랑스 오를레앙 출신이다. 아마도 주변의 오래된 가옥에서 뜯어낸 벽지일 것이다. 다양한 유형의 식물 문양으로 장식된 색 바랜 벽지들을 최초 뜯겨진 흔적 그대로 오리고 붙여서 화면을 만들고 층을 조성한다. 콜라주 된 종이의 구김이 여실한, 때론 붙이다 접힌 부분마저 그대로 살린, 그래서 벽지의 전면과 뒷면이 똑같은 비중으로 조형에 참여하는 화면이 우연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우연을 가장한 계획된 결과일 것이고, 우연을 감각적으로 해석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게 콜라주 된 화면이 그 위에 얹힌 모티브와 어울려 고답적인 느낌을 준다. 마치 오래 입던 옷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멀리는 고대 그리스, 좀 더 이후로는 오리엔탈리즘과 자포니즘(마티스 역시 그 매력을 알고 있었던)이 하나의 화면 속에 응축된 것 같은, 골동품과 벼룩시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반쯤은 시간이 만들어준 색감이며 질감이 친근한 느낌을 준다. 자신의 생활사며 생활감정이 만들어준 것이니 친근하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지중해>라고 부른다. 콜라주 된 벽지가, 그리고 그 위에 덧칠된 색면이 어우러져 반추상적인 풍경을 부각시키는데, 아마도 지중해일 것이다. 혹 아르카디아(이상향)일지도 모른다. 드문드문 떠있는 섬들 위로, 검푸른 바다 위로, 옥색 하늘 위로 바다제비들이 유영하고, 나비들이 나풀거린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는 남부 프랑스의 생활감정이, 지중해가 키워준 감성이 녹아있다. 그 감성이 이국적이고 친근하고 편안하고 우아하고 장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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