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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구권 미술대학 연합전_Power Packed

고충환

2017 대구권 미술대학 연합전_Power Packed 



지난 2015년 대구권 미술대학들은 의미 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동안 각 대학별로 연례적으로 열리던 졸업전시회를 하나로 통합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시도였다. 그렇게 대구권 미술대학 연합전이 탄생했다. 대구시도 적극 지원에 나섰다. 시 차원에서 미술대학 행사를 지원하고 나선 것도 이례적이었다. 사실 시 차원에서 미술대학을 지원할 일도 없거니와, 혹 지원하고 싶어도 명분과 구실이 있어야 한다. 이번 전시는 타당한 명분과 구실만 있으면 미술대학도 시 차원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지역교육발전을 위한다는 명분과 구실이 있는데 지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대구권 6개 미술대학이 참여하는 대구권 미술대학 연합전 조직위원회가 발족했고, 엄정한 심사과정을 거쳐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들이 최종 선정돼 전시를 연다. 6개 미술대학이 매해 돌아가면서 주관하는 형식의 전시로서, 사실을 말하자면 각 미술대학간 긴밀한 협의와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지속하기가 쉽지 않은 전시다. 좋게 말해 선의의 경쟁이라고는 하지만 알게 모르게 미술대학간 키 재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고, 여기에 각 학교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현실이기에 하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이런 애로와 차이를 극복하고 대학 구성원 모두가 합심해 지역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한다는 대승적 차원의 발상전환이 있었을 것이고, 향후에도 그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시장소도 적절해 보이는데, 최근 수년 내에 대구 경북지역에서 가장 핫한 장소인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열린다. 예비 작가의 강점인 분방한 끼의 발산과 형식실험으로 보나, 젊은 작가 젊은 미술이라는 세대 정체성으로 보나 그 성격과 지향성에 부합하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향후 지역미술계는 물론이거니와 대구예술발전소 자체 기획에도 발탁돼 참여하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있을 것이고, 그러자고 하는 일이다. 


그동안 열렸던 지난 전시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연합전이 열린 첫 해인 2015년에는 6개 대학 185명의 예비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했다. 주제는 <샛마파람>으로 정했는데, 동남풍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대구에서 부는 새 바람이 전국으로 번져나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을 것이고, 대구에서 발진한 작가들이 세계로 도약하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원래 전시는 대구아트스퀘어 산하에 대구아트페어, 청년작가전, 그리고 대구권미술대학연합전을 연계하는 형식으로 열렸다. 작가 발굴(대구권미술대학연합전)에서부터 작가 육성(청년작가전)을 거쳐 미술시장(대구아트페어)으로까지 연결시킨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소도 기간도 달라 사실상 별개의 전시라는 인상을 주었다. 복안 자체는 좋았다. 아트페어 측에선 젊은 피가 수혈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고, 미술대학연합전으로 치자면 새내기 작가를 본격적인 미술계에 진입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좋았다. 그런 만큼 이해당사자간의 긴밀한 협조방안이 모색되어져서 향후 연계전시로 발전 정착시켜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2016년 전시에는 6개 대학 140명의 예비 작가들이 참여했다. 주제는 <거의 최초에 가까운 전시>로 정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진정한 의미의 예술사회 속으로 진입하는 새내기 작가들의 첫 전시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향후 본격적인 작가로 성장한 이후에도 언제나 처음 하는 전시처럼 매 전시에 임해달라는, 초심을 잃지 말아달라는 주문으로도 읽고 싶다. 그리고 올해 2017년에는 6개 대학 100명의 예비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한다. 주제는 <Power Packed>으로 잡았다. 4년간 숙성시킨, 대구권 미술대학 학생들의 노력과 열정, 꿈, 가치를 녹여낸 작품들로 가득 채워진 전시를 의미한다고 했다. 뚜껑이 열릴 새가 무섭게 거품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탄산수처럼, 부글부글 끓는 청년의 패기와 에너지가 느껴진다. 전시가 열리는 대구예술발전소에 걸 맞는, 의기충천한 배터리충전소가 상호 부합하는 느낌이랄까. 

그동안 열린 전시들을 보면 특이한 것으로 매회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숫자가 눈에 띤다. 1회 전시 185명, 2회 전시 140명, 그리고 3회 전시에 100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매회 전시가 진행될 때마다 참여 작가 수가 줄어드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아마도 첫 전시에선 사실상 졸업생 모두가 전시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회를 거듭하면서 선정 작가 수를 좀 더 엄정하게 한정했을 것이고, 이번 3회 전시에는 가장 엄정하게 적용했을 것이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그 기준은 더 엄정해질 것이고, 덩달아 초대 받는 작가 수도 더 줄어들 것이다. 

이런 참여 작가 수의 추이 변화는 꽤 유의미한 의미를 시사해주고 있다. 이를테면 사제지간에 누구는 선정하고 누구는 탈락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6개 대학의 졸업전시를 단순히 합쳐 놓은 꼴이 된다면 굳이 연합전 형식의 전시가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졸업전시가 그만그만하고 의례적이었다는 심각한 자기반성이 있었을 것이고, 그걸 타계하고자 연합전시를 생각해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연합전시는 엄연한 기획 전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또한 기획전시는 주제가 있어야 하고, 그 주제에 부합하는 작가들로 전시가 꾸려져야 한다. 그런데, 앞선 전시들에서 제안된 주제는 사실상 엄밀하게는 주제로 보기는 어렵다. 기획전시를 위한 주제로서보다는 격려하는 마음과 의미를 담은 취지에 가깝다. 

그러므로 전시를 위한 주제를 특정하고 작가를 특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외부에서 전문기획자를 초빙해 전시를 일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주제를 제시하고 그 주제에 걸 맞는 그림을 그려보도록 혹은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수업시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를 전시와 연계시키는 활용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여하튼. 혹시라도 이 전시를 아마추어 전시로 생각해선 안 된다. 프로페셔널 한 전시로 생각해야 하고, 본격적인 기획 전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주제를 특정하고 작가를 특정 하는 일이 꼭 선결되어져야 한다. 그러다보면 연합전시 따로 졸업전시 따로 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대로 해결책을 찾을 일이지, 연합전시는 본격적인 기획 전시로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교내외적으로 내성이 생기고 경쟁력도 생긴다. 덩달아 연합전시도 성격 있는 전시로 자리매김 될 수가 있다. 그리고 여담으로 혹 참여 작가 수가 줄어드는 것이 전체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과 무관하지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하더라도, 오히려 그래서 더 작가 선정에 엄정해야 하고 그렇게 엄선된 작가들을 바탕으로 한 본격적인 기획 전시로 키워나가야 할 일이다.  

그리고 현재 전시와 관련해 운영되고 있는 홈피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지속적인 관리와 업데이트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홈피의 생명은 유저들이 들락거리는 방문횟수에 달려있는 만큼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는 홈피를 유저들이 찾을 리가 없고, 따라서 그대로 사장되기 쉽다. 이를 위해선 콘텐츠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본 전시 외에 현재진행형의 미술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세분화된 폴더를 개설해야 하고, 다른 미술관련 사이트와도 광범위하게 링크될 수 있어야 한다. 각 미술대학에서 생산된 인문학적인 자료를 정리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져야 하고(전시통합에 이은 아카이브 통합구축?), 그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관계망이 제공되어져야 한다. 참여 작가들의 사후관리(이를테면 전시소식과 평을 소개하는)도 이루어져야 하고, 3D로 구현되는 온라인 갤러리도 구축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국제적인 네트워크 형성과 경쟁력을 위해서 영문전환 버전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선 홈피관련업체에 맡겨 한 번씩 통째로 업데이트하는 식이 아닌, 상시전문전담인력이 붙어야 한다. 각 미술대학에는 조형연구소(아니면 그 비슷한)가 개설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구소 인력 중 전담인력을 따로 충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구비될 때 비로소 유저들도 들락거리게 되고, 덩달아 홈피도 살 일이다. 이 모든 일들을 하려면 당연히 재정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하고, 필요하다면 관련항목으로 시 지원도 얻어낼 수가 있을 것이다. 


결론을 대신해, 그동안 전시에서 제안된 주제들을 재소환해 현대미술의 경향에 대한, 미술생태계에 대한 두서없는 이야기를 해보자. 어느 정도는 이 전시가 지향하는 혹은 지향해야할 성격을 숨겨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먼저 <샛마파람>은 바람이다. 동남풍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원체 종잡을 수가 없게 분다. 바람이 부는 방향은 예측할 수가 없다. 종잡을 수가 없다? 예측할 수가 없다? 예술은 질문의 기술이다. 이미 알고 있는 답을 향해가는 답습의 과정이 아니고 순례의 과정이 아니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예술은 매번 일회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순간순간이 어떤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사건이라고 했다. 매번 종잡을 수 없는 사건이고, 매순간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다. 항상적으로 자기부정적인 유목이다. 

그리고 <거의 최초에 가까운 전시>에 대해서는 화가가 캔버스와 대면하는 처음 순간처럼 읽힌다. 화가들은 매번 미답의 영토며 처녀지 앞에 선다. 더 이상 내가 기댈 어떠한 관성도 남아있지가 않다. 캔버스 앞에서 나는 오히려 관성으로부터의 탈주를 꿈꾼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막막함, 그 여지없음, 그 순수하게 섬뜩한 처음 상태를 받아들인다(대결하는 것이 아니다). 견딘다. 매번 그렇고 매순간 그렇다. 그렇게 최초에 가까운 그림, 처음 그림은 종잡을 수 없는 사건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고, 일회적인 사건이 된다. 그리고 <Power Packed>.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모든 처음 그림들만이 자기 속에 파워를 내장할 수 있고, 에너지를 응축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이데거 말마따나 세계를 열 수가 있다(하이데거는 예술을 세계의 개시라고 했다). 그렇게 어쩌면 대구권미술대학연합전은 이미 질문(답이 아닌)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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