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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숙/ 인연과 고향, 상실한 것을 그리워하는

고충환

인연과 고향,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 최원숙의 회화를 관통하는 주제며 키워드들이다. 그 중 인연과 고향이 실제적인 주제에 해당한다면, 자연과의 교감은 그 주제의식을 뒷받침하는 인문학적 배경에 해당한다. 인연과 고향이 표면이라면, 자연과의 교감은 그 표면의 이면에 면면히 흐르는 정서적 질감이며 성분으로 봐도 되겠다. 
먼저 인연은 흐르는 물과 같다. 물처럼 맺힘이 없고 막힘이 없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오고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간다. 그래서 무심하고 무감하고 무상하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는 모든 것들은 무상하다. 이처럼 무상하지만 억겁의 세월을 돌고 돌아 나에게 오고가는 것인 만큼 덕이든 업이든 인연치고 귀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작가는 그렇게 자기에게 들고나는 귀한 인연을 그린다. 원앙 한 쌍, 오리 한 쌍, 물고기 한 쌍, 제비 한 쌍, 나비 한 쌍을 그린다. 한 마리나 여러 마리가 등장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대개는 한 쌍을 그린다. 인연은 관계를 의미하고, 관계를 그리기 위해서는 짝이 있어야 한다. 작가의 그림이 도상학에, 인연의 상징에, 그 표상형식에 기대고 있음을 알겠다. 비록 자기를 찾아온 인연을 그린 것이지만, 그래서 각별하고 남다른 사건을 그린 것이지만, 동시에 그 화법이 보편상징에 기댄 것이란 점에서 객관성을 얻는다. 개별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시켜 공감을 얻기 위한 미학적 장치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고향은 상실감과 관련된다. 역설적 표현인 것인데, 상실감은 현대인의 징후며 증상이 되었고, 특히 고향에 대한 상실감은 그 중 전형적인 경우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게오르그 짐멜은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원형에 대한 상실감, 다르게는 뿌리의식에 대한 상실감에 연결시킨다. 뿌리도 정처도 없이 부유하는 부박한 삶을 사는 현대인의 초상을 예감하고 예시한 것이다. 이처럼 고향 자체는 지정학적 개념이지만, 동시에 그리고 이보다는 오히려 인식론적 개념(사람들은 고향을 그리고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와 관련된) 특히 존재론적 개념(사람들은 고향을 그리고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어떻게 느끼고 겪는지와 관련된)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그렇게 작가는 고향을 그리고 유년을 그린다. 사실은 상실된 고향을 그리고 상실된 유년을 그린다. 상실된 것을 그린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리움을 그리고 향수를 그린다. 인연에서처럼 비록 작가 개인사를 그린 것이지만, 동시에 고향을 상실하고 유년을 상실한 현대인의 보편적인 경험을 그린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객관성을 얻고 공감을 얻는다. 때로 작가는 나비를 고향으로 그리고 더러 제비를 유년으로 자기 대신 날려 보내는데, 작가의 분신이며 전령으로 봐도 되겠다. 그렇게 작가가 주제화한 인연은 소외가 첨예화된(아무도 인연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에 제안된 것이어서 오히려 더 귀하고, 고향연작은 역설적으로 현대인이 상실한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어서 그만큼 더 의미가 있다. 

주제 분석을 통해 볼 때가 그렇고, 형식적으로 작가의 그림은 전통적인 유산을 동시대적인 감수성으로 각색하고 재해석하는, 그리고 그렇게 자기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민화와 특히 규방문화가 그렇다. 민화 중 화조도나 초충도 같은 주로 여성주체 작가들에 의해 제작된(그림으로 그리거나 특히 자수의 형식을 빌려 표현된), 전통적으로 여성의 생활사와 성적 정체성과 관련된 규방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 그런 만큼 작가의 그림은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적이고 때론 수수한 감각성분들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미학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화법에서 전통적인 성과를 차용하고 재해석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전통에서 유래한 실제 제작기법이며 과정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전(자개)을 차용하는 것인데, 자개를 붙인 화병에 소복하게 핀 꽃다발을 그려 넣어 대비시킨다거나, 그려진 사물대상의 가장자리를 자개를 이용한 끊음질 기법으로 경계지운다거나, 짧게 끊어 친 자개 파편을 집적시켜 섬세하고 질박한 소나무 껍질의 표면질감을 연출하는 식이다. 여기서 자개는 빛에 반응하는 성질로 인해 미묘하게 변화하는 형언할 수 없는 색감이 화면에 장식성을 더한다. 이런 시각적 효과와 함께 일정한 촉각적 성질을 더해 감각적 경험을 확장시키고 있는 점도 유념해볼 부분이다. 
그리고 작가는 화면에 황토를 발라 올려 일정한 두께를 만든 연후에 조각도로 원하는 형태를 새겨 넣고 그 위에 채색을 올리는데, 전통적인 도자기법 중 하나인 상감기법에 착안한 경우로 보인다. 두드러지지는 않지만(오히려 그래서 더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일종의 저부조 형식을 적용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고, 이로써 평면적인 화면에 물질성을 더하는 한편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식실험을 꾀하고 있는 경우로 보인다. 여기에 한복 천을 원하는 형태로 재단해 화면에다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넣는데(예컨대 버선), 일종의 오브제를 도입한 경우로 볼 수 있겠고, 이로써 마치 실물로 그림을 대신한 것 같은 실재감을 강조한 경우로 보인다. 
이와 함께 그려진 부분을 보면, 화면은 얼핏 색면화파의 그것처럼 평면적이고 균질해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같은 색조의 비정형의 얼룩들이 미묘하게 조성돼 있어서(때로 붓질에 의한 그리고 더러는 기법에 의한) 화면에 일정한 울림(리듬?)과 함께 깊이감과 밀도감을 더한다. 오랜 숙련과 기법에 대한 지난한 형식실험의 결과일 것이다. 이외에도 작가는 다면화로 나타난 전통적인 병풍그림 특히 병풍자수의 형식을 차용하기도 하고, 전통적으로 책장을 장식했던 능화판의 문양과 패턴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 과정에서 전통이 재생되고 새로운 의미를 덧입는다. 그리기와 만들기, 회화와 공작이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적재적소에 적용되고 대비되면서, 화면에 대한, 회화적 표현에 대한 감각경험을 확장하고 심화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는 연꽃, 진달래, 목련, 양귀비, 원앙, 백조, 제비, 그리고 나비와 같은 자연소재를 풍경과 함께, 도기와 화병 등 생활기물과 함께 화면에다 부려놓는다. 전통적인 민화에서처럼 이 소재들은 그저 소재 이상의 의미를 상징하는데, 인간의 삶과 유관한 의미를 상징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의 질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에 의해 차출되고 편집된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에 등장하는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고, 목련은 순수를 상징하고, 연꽃은 진흙에도 더러워지지 않는 고귀한 정신을 상징한다. 원앙은 부부간의 금실을 상징하고, 십장생도의 하나인 괴석은 무병장수를 상징한다. 의미론적으로 전통적인 상징 혹은 도상학에 대한 관습적인 이해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졌다고는 하나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의 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며 상식적인 소망을 담보하는 상징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말하자면 예전에 민화를 그렸던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규방문화의 생산주체인 여성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조형 속에 보통사람들의 생활사를 담았고 그들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그네들의 욕망과 소망을 담았다. 이를테면 꽃버선을 소재로 한 작업에다 꽃길만을 걸어라, 는 소박한,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한 덕담도 없지 싶은, 그런 염원을 담았고 기원을 담았다. 그 의미를 캐보면 다른 그림들도 다 그런 식이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하나같이 좋은 의미를 담았다. 호시절은 물론이거니와 때로 삶이 그대를 속일 때 위로가 되는, 그런 의미를 담았고, 그런 그림을 그렸다. 나를 찾아준 귀한 인연을 그렸고, 돌이킬 수 없는 유년에 대한 그리움을 그렸고, 상실된 고향에 대한 향수를 그렸고, 때로 삶이 나를 배반할 때 위안이 되는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쉽게 공감을 얻고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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