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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온, 시 같은 그림

고충환

지금 시인들은 스마트폰에 깔린 노트기능을 사용하지만,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전에 시인들은 대개 노트를 가지고 다녔다. 순간적인 발상, 착상, 단어를 포획하기 위해서다. 대개는 그렇게 포획해두었다가 나중에 꺼내어 쓸 요량으로 그렇게 한다. 본격적인 시작을 위한 유용한 재료로 쓸 요량으로 그렇게 한다. 최초의 착상, 처음 발상은 너무 날 것이어서 비록 예리하지만 하나의 온전한 시로 갈무리해내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대개가 그렇고, 아주 드물게 이런 최초의 착상이며 처음 발상 그대로 시가 되고 시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항상 날을 세우고 있어야 이런 착상들이 찾아오고, 날이 가장 첨예한 순간에 찾아온 착상이야말로 그대로 진정한 시어라고 본 것이다. 이걸 임시로 저장해두고 다시 꺼내 쓰고 하다보면 그 사이에 그만 의미의 날은 무뎌지고 처음 착상 그대로의 생생한 강도도 사르라든다고 본 것이다. 플라톤도 시작법에 의한 시와 영감과 직관에 의한 시를 구별하면서, 영감과 직관에 의한 시야말로 진정한 시라고 본다. 여기서 영감과 직관에 의한 시도, 순간적으로 찾아든 착상도 시인에게 속해져 있지는 않다. 플라톤은 그 시어가 신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고, 속된 말로는 소위 그 분이 오셔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여하튼 시인이 하는 것이지만. 
채온은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상태를 회화로 기록하는 것이 자기 작업이라고 했다. 이 말은 날 선 시인을 찾아온 순간적인 발상, 처음 착상 그대로가 아닌가. 너무 날 것이어서 예리한 단어 그대로가 아닌가. 마치 시인들을 찾아온 최초의 착상과 발상과 단어의 날 것 그대로의 상태를 고스란히 회화로 옮기고 기록한다는 기획이고 프로젝트가 아닌가. 말을 뜯어보면 작가는 날 것 그대로의 상태가 가공되는 것을 저어한다. 시로 치자면 시작법 속에 한 편의 착한 시로 갈무리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시가 그렇다면, 그림에서 날 것 그대로의 상태, 처음 상태를 가공하는 것은 뭔가. 작가는 뭘 저어하고 뭘 두려워하는가. 뒤집어 말하자면 작가는 어떤 회화를, 어떤 회화의 상태를 지향하는가. 바로 그림에서의 시작법에 해당하는 이미 알려진 형식논리들 바깥을 지향한다. 의미론으로 치자면 하나의 최종적인 의미로 결정화되기 이전의 의미, 선의미, 미처 의미로 부르기조차 어려운 어설프고 설익고 생경한 의미, 마치 몸처럼 생생한 의미, 가능태로서의 의미를 향한다. 
보기에 따라서 그건 오염된 의미로부터 의미의 처음 상태 그대로를 복원하고 구제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오염된 의미로 치자면 자기동일성의 논리, 회화로 치자면 재현의 논리에 의한 의미의 클리세(빤한 의미)를 들 수가 있겠고, 그 클리세로부터 의미를 구제하고 처음 상태 그대로의 의미를 복원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아방가르드의 낯설게 하기도 여기에 맥이 닿아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회화적 기획은 비동일성의 논리, 탈재현의 논리, 차이의 논리, 이행의 논리를 향한다. 다만 00 같아 보일 뿐 00로 환원되지는 않는 그림, 00처럼도 보이고 동시에 00와는 다른 00처럼도 보이는 그림, 동일성을 이용하면서 배반하는 그림, 재현에 기생하면서 결국에는 재현을 숙주로 삼는 그림이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예술(숭고)을 항상적으로 일회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의미 이전의 사건이라고 했고, 어떤 결정적인 의미로 환원되거나 한정되지는 않는 사건 자체라고 했다. 사건이 뭔가. 예술은 인식론의 대상이 아닌 존재론의 문제다. 겪음의 문제다. 숭고를 빌려 예술을 말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숭고가 뭔가. 도약이고 비약이 아닌가. 무엇으로부터의 도약이고 비약인가. 빤한 의미, 빤한 논리, 자기동일성의 논리, 재현의 논리로부터의 도약이고 비약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빤한 의미가 파열되면서 다른 의미가 열리고, 빤한 세계가 파열되면서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작가의 그림은 어쩌면 날 것 그대로의 의미, 날 것 그대로의 세계를 열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렇게 열리는 다른 의미며 다른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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