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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공간회 50년, 반세기를 넘어 새로운 반세기를 열며

고충환

현대공간회가 올해로 창립 50년을 맞는다. 그동안의 세월이 짧지 않았던 만큼 1968년 6월 당시 창립멤버로 참여했던 작가들(고영수, 오종욱, 이정갑, 최종태, 최충웅, 최병상, 주해준) 중에는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다. 1968년이라는 창립연도가 예사롭지가 않다. 국내외적으로 격변이 심했던 해였고, 특히 유럽이 그랬다. 상황주의와 구조주의가 실존주의에 대한 반격을 시도한 것도, 근대성 논의에 이은 후기근대와 후기구조주의 논의가 예비 된 것도, 신생학문인 문화과학을 중심으로 학제가 재편되기 시작한 것도 다 그 즈음에 일어난 일이다. 삶에 대한 인식론적 틀이 지각변동을 일으킨 당시 변혁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소위 68혁명이란 이름으로 기록되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소위 전위예술이 한창이었고, 그 여파에 힘입어 회가 창립된 만큼 당시 여러 경로의 선언문에 반영된 결의와 결기를 현대공간회 역시 공유하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50년이면 강산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변하고도 남을 햇수다. 돌이켜보면 현대공간회도 변했다. 그동안 허다한 그룹들이 부침을 거듭했지만, 자기변혁에 성공하지 못한 그룹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예는 없다. 이러한 사실은 거꾸로 현대공간회가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변신을 꾀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특정학교 출신 작가들로 한정된 관문을 열어 유능한 작가들을 대거 수용할 수 있었고, 그때그때 세대교체를 이뤄내 새 피가 수혈될 수 있게 했다. 결정적인 것은 전시행태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어떤 주제를 특정한 기획전이 아니라면 작가들을 그룹전에 동원하기란 쉽지가 않다. 더욱이 그룹 차원의 운동보다는 각개전투에 능한 작가들의 생리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가 있다. 이런 걸림돌을 타개하고 작가들로 하여금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래서 협회가 성공하기 위해서 의미 있는 전시, 성격 있는 전시, 기획력이 돋보이는 전시는 결정적이다. 

그 중 의미 있는 경우로 치자면, 1995년 대우조선소 폐철을 이용한 조각심포지엄, 2001년 광양제철소 철 조각 심포지엄을 들 수 있다. 조각이 무엇보다도 물성을 다루는 장르란 점에서 폐철을 이용한 조각이 조각의 장르적 특수성을 형식 실험하는 유익한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조각심포지엄도 조각공원도 흔한 일이 되었지만, 그 보편화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고, 여기에 지역교류의 계기를 튼 것도 주목해볼 일이다. 조각은 무엇보다도 물성을 다루는 장르라고 했다. 그래서 의미 있게 와 닿는 전시가<종이+>(1999년 원서갤러리)전이다. 회화로 치자면 드로잉에 해당할 에스키스와 함께 여러 질료가 형식실험의 대상으로서 제안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스를 결여한 조각(탈조각?)과 함께 소위 부드러운 조각이 새롭게 인식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조각은 공간을 다루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목되는 전시가 <테마 공간-건축과 조각의 만남>(1998년 포스코미술관)전이다. 아마도 환경조형물에 대한 재고를 염두에 둔 전시였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전시는 그(환경조형물)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비록 일반적이지만 건축과 조각, 건축과 파인아트의 경계를 넘나드는 학제 간 전시방식의 선례에 해당하는 전시가 아니었나 싶다. 건축과 조각, 공간과 장소, 그리고 장소특정성(장소와 운명을 같이하는 조각) 개념을 새삼 재인식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병원, 삶, 공간>(2000년 서울중앙병원 야외광장)전이 주제로는 치유미술, 실천논리로는 생활 속으로 침투하는 예술(조각)을 실현한 경우로 보인다. 정형화된 화이트큐브와는 비교되는 열린 공간, 가변적인 공간에서의 전시공학이 형식 실험되어졌을 것이고, 지금의 용법으로 치자면 대안공간에 대한 가능성이 모색되어졌을 것이다. 강원도 고성 산불을 계기로 자연재해를 주제로 한 치유프로젝트 전시 <불 난 자리>(2003년 인터넷 전시) 역시 예술의 실천논리를 삶의 현장에서 찾은 경우란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정작 이 전시가 주목되는 이유는 인터넷 전시란 점이다. 지금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만, 시대를 앞서간 참신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미셀 푸코는 유토피아와 헤테로토피아를 대비시키면서 유토피아 논의로부터 헤테로토피아 논의로 사회학의 축(장소)이 옮아갈 것을 예견한 바 있다. 유토피아는 실제로는 없으면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적인 장소 개념을, 그리고 헤테로토피아는 이와는 반대로 분명 실재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지워진 장소, 부재하는 장소 개념이다. 푸코는 군부대와 병원, 휴양지나 오일장터처럼 일시적으로만 존재하는, 의미를 얻는, 이해관계에 연동된 장소를 예로 들고 있지만, 요새 식으로 치자면 인터넷과 SNS, 가상현실과 가상공간이 꼭 그렇다. 그 자체 또 다른 대안공간이 될 수가 있고, 이미 되고 있다. 이상의 성과에 힘입어 협회는 2002년 창립35년 기념전시(열린 조각-확장된 공간, 갤러리 라메르)를 계기로 제7회 김종영조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서 어떤 주제를 특정한 기획전이 아니라면, 더욱이 각개전투에 능한 작가들의 생리를 생각하면 작가들을 그룹전에 동원하기란 쉽지가 않다고 했다. 이런 장애요소를 해소하고 작가들로 하여금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협회는 의미 있는 주제전과 함께 일종의 집단개인전 형식을 취했다. 예컨대 지난 2007년 창립 40년을 기념해 소속작가 26명이 참여한 <26 도쿠멘타>를 인사동 일대 13개 갤러리에서 동시다발 개인전 형식으로 개최한 바 있고, 창립 45년이 되는 2012년에는 북촌 전역을 배경으로 한 <북촌프로젝트>(북촌 소재 약 20여 개 공간에 22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집단개인전 형식으로 열린)를 개최한 바 있다. 개인전이니 저마다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가 있고, 한 지역을 하나로 묶으니 조각의 다양한 개성(형식)을 한자리에서 향유할 수가 있다. 
창립 50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 역시 메인에 해당하는 전시 <50년 기념 특별전 1968 현대공간 2017>(김종영 미술관)과 함께, 집단 개인전 형식의 전시 <도쿠멘타 12>(금보성아트센터, 이정아갤러리, 키미아트갤러리, 예술공간 수애뇨 등 평창동 일대 지역 갤러리)가 그런 식으로 열린다. <50년 기념 특별전>에는 창립회원을 비롯한 원로작가 10여명(작고작가 포함)과 현재 회원작가 40여명 등 총 5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며, 전시 기간 중 협회 50년사를 기록하고 정리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그렇게 구축된 아카이브와 영상물이 제작 전시된다. 이로써 그동안 협회가 걸어온 50년을 되돌아보고, 향후 새로운 50년을 설계하는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회원작가 12명의 동시다발 개인전 형식으로 열리는 전시 <도쿠멘타 12>를 매개로 평창동 일대 지역 갤러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평창동 아트벨트를 구축할 예정이다. 전시는 기왕의 조각을 비롯해 평면, 설치, 영상, 그리고 키네틱을 아우르면서 조각의 장르 확장을 예시해주는 장이 될 것이다.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강희덕과 송근배의 조각이 기념비적이고 제의적인 형상성 혹은 형상화의 전형을 예시해준다. 주로 수직성을 강조한 제단을 연상시키는 구조적 특징이 사물대상의 감각적인 측면보다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차원에로의 승화를, 성과 속의 이분법적 대비를 바탕으로 대개는 속에서 성에로의 승화를 주제화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가하면 소위 모더니즘패러다임의 직간접적인 세례를 받은 경우로서 일련의 추상조각을 들 수 있다. 어떤 의미내용의 전달이나 사물대상의 감각적 닮은꼴의 재현으로서보다는 조각의 본질(이를테면 매스와 물성, 구조와 공간감 같은)과 형식요소에 천착한 경우로 보면 되겠다. 스테인리스스틸 구조물과 표면에 홀로그램이 결합된 조각으로 지각과 환영의 문제를 주제화한 최병상, 추상과 형상(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내면풍경을 구조화한 하도홍, 미니멀한 형태의 기하학적 구조를 통해 공간변주를 예시해주고 있는 홍승남과 김민억, 무슨 퍼즐조각처럼 크고 작은 기하학적 형태의 모듈 혹은 모나드들이 이러저런 경우로 짜 맞춰지면서 연출해 보이는 조각설치풍경의 김희성, 전통적인 짜 맞추기 기법으로 구조화된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목 조각을 예시해주고 있는 신년식, 돌 속을 파낸 구조물을 매개로 공과 허를 주제화한 권석만, 매듭을 소재로 물성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하게 만드는 옥현철, 패브릭에 바탕을 둔 섬유조각설치작업의 차원희의 경우가 그렇다. 조각의 본질 중 주로 구조적인 측면을 강조한 경우(구조적 환원주의?)가 많다. 질료에 구멍을 뚫어 막힌 공간을 통하게 함으로써 조각의 공간감을 확장시킨 경우가 있는가하면, 설치작업을 통해 조각을 공간적으로 확장하는 경우, 그리고 부드러운 조각을 통해 조각의 질료를 확장한 경우도 엿보인다. 

다음으로 형상을 들 수가 있을 것인데, 형상으로는 단연 인체가 주목된다. 여기서 인체는 그저 인체에 대한 소재적인 관심 이상의 인간과 인간상황을 아우른다. 불상에 연유한 명상적인 조각의 김은현, 납작한 부조 같은 환조를 매개로 한 정적이고 명상적인, 종교적이고 금욕적인 조각의 최종태(아마도 납작한 형태가 금욕적인 정신세계의 표상과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 인체를 최소한의 골격으로 환원한 금욕적인 형태를 매개로 실존적 인간을 예시해주고 있는 이성민, 일상적인 모습을 소재로 한 사실적이고 해학적인 조각의 안경진, 현실주의 조각과 함께 신화를 동시대적인 문법으로 재해석한 심정수, 성과 속, 부처와 예수, 인체와 오브제, 인간과 사물의 급진적인 결합을 통해 종교와 권력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소환하는, 이분법을 무색하게 만드는, 보기에 따라선 불경스런, 최소한 국내에 관한한 조각으로는 그 예가 흔치 않은 박상희의 조각이 그렇다. 그저 인체와 인간의 감각적 닮은꼴을 모사하기보다는 제도와의 관계에 연유한 갈등, 인간의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조건(한계상황?)으로서의 부조리, 그리고 종교적인 승화와 같은 인간내면을 다양한 형태를 빌려 표현하고 표상한 경우들이다. 

형상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인체 다음으로 자연이 주목된다. 발아하는 씨앗을 추상화한 유기체적 조각의 안병철, 삶의 메타포로서의 식물 모티브에 주목한 황영애, 만개한 꽃잎 등 자연에 내재된 생명력을 조형한 목 조각의 이수정, 목이 길고 다리가 긴 동물 형상을 통해 미지의 곳에 대한 그리움(아마도 존재론적 그리움?)을 표현한 정욱장, 인체와 동물을 소재로 한 철 조각의 유승구, 서커스와 투견을 통해 본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과 폭력성을 주제화한 박찬용, 거대한 곤충이나 순록의 뿔(권력의 표상으로서의 뿔?)을 조형한 유기체적 조각의 김지훈, 동물의 뼈를 연상시키는 유기체적 조각의 김승환이 여기에 속한다. 이상에서 보듯 유독 유기체적 형태의 조각이 많은데, 아마도 자연의 본성 그대로를 형태로 옮긴 것일 터이다(누군가가 그랬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괴테? 가우디? 훈데르트바서?). 식물의 경우에는 주로 자연에 내재된 생명력에 주목하는 한편, 동물의 경우에는 동물 자체보다는 이러저런 인간상황을 동물에 빗대어 표현한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달리는 차에 카메라를 장착해 재생시킨 영상설치작업의 조태병, 일종의 유사과학으로 범주화할만한 작업의 이장원, 일종의 디지털미러를 통해 온전한 이미지가 픽셀 단위로 분절되거나 시간차를 두고 재생되는 상호작용 미디어 설치작업의 오창근과 이훈의 작업들이 영상과 디지털프로세스를 매개로 조각의 범주와 표현 영역을 확장시킨 경우를 예시해준다. 첨단의 기기를 매개로 새로운 표현영역을 열어놓는 한편, 디지털미러에서 보듯 자기반성적인 경향과 사유를 위해 첨단의 기술을 매개시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분절되는 나(혹은 너 혹은 현실?), 파편화되는 나, 늦게 오는 나, 언제나 과거지사의 형태로만 붙잡을 수 있는 나와 같이 종전이라면 관념으로나 존재하던 나의 실체를 감각적으로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과 같은. 그리고 때로 평면부조와 사진(김진석), 그리고 더러는 망점이 도드라져 보이는 픽셀처럼 평면성이 현저한 이미지 형태의 작업을 매개로 조각과 사진,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고 허무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기하학적 형태로 재구성된 기계생명체(?)의 이윤석, 우주와 접속하고 교신하는 레이더를 통해 미지의 영역과의 교감(어쩌면 신과 같은 원형적 존재와의 교감)을 주제화한 이상길, 특이하게도 무슨 사생이나 하듯 산에 직접 올라가서 산을 보고 그 모습 그대로 주조한 조각영상설치작업의 서해영, 시적이고 암시적이고 현실참여적인 개념미술의 안규철, 별빛상자에서 벌어지는 동화적 판타지를 소재로 한, 별자리를 매개로 신화적인 서사를 풀어낸 조각과 애니메이션의 김용진, 최소한으로 축약된 실루엣 형태의 각종 오브제 조형물을 매달거나 집적시킨, 때로 문자 텍스트를 조형하기도 한 김건주의 작업들이 때로 조각의 이름으로 그리고 더러는 탈조각의 이름으로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무명의 이름으로 호명되고 호출되면서 조각의 영역과 범주를 가로지른다. 


이상으로 본 바와 같이 현대공간회의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의 협회가 무색하게 다종하고 다양하다(종 다양성?). 무색한 것이 아니라, 그게 맞고 맞아야 한다. 이런 종 다양성을 실현하려면 작가들의 감각촉수는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그 레이더는 세상 끝에 미치고, 세계의 표면을 스캔하고, 인간의 심연을 파고든다. 그리고 첨단의 기기들을 수용한다. 작가들의 열린 감각이야말로 말하자면 저마다의 작업으로 하여금 동시대성을 담보할 수 있게 해주는 방책이고 보험인 셈이다. 현대공간회가 향후 반세기를 내다보며 보험 든 작가들이고 자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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