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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운, 황금시대를 넘어 침묵 속으로

고충환

눈은 마음의 창이다. 그리고 그림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그렇게 눈은 그림과 통하고 마음의 창은 세상을 보는 창으로 변주된다. 주체의 관념이 투사되는 창이 그림인 것이며, 여기서 주체의 눈은 그림이 존재하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윤병운은 눈의 창을 통해, 마음의 창을 통해, 그림의 창을 통해 무엇을 보는가. 세부적인 차이를 도외시한다면 작가의 그림은 황금시대로부터 침묵으로, 다채로운 그림에서 잿빛 화면으로 변화해온 것 같다. 전작에서 보자면 다채로운 색채감정이 황금시대의 주제의식에 부합하는데, 주로 미술사에서 차용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이 등장하는, 뒤틀린 시간과 적요한 풍경을 그려 보이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여기서 황금시대는 고대 그리스로마에 해당하는 시대로서, 모든 황금시대는 언제나 과거지사에 속한 것이라는 시대감정이 낭만주의를 낳았다. 그리고 그 시대감정에 따른 상실감이 작가의 회화적이고 존재론적인 무의식을 파고들면서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은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황금시대의 역설적 표현과 사용이 작가의 그림을 맴도는 우수와 서정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은 온통 잿빛 풍경으로 변한다. 계절도 일순간 겨울로 돌변한다. 색채로 치자면 거의 흑백모노톤에 가까운 색채감정이 절제되고 금욕적인 느낌마저 든다. 감각적이기보다는 관념적이다. 온통 흐릿한, 뿌연, 희끄무레한 풍경이 흡사 겨울의 적요를 담요처럼 두르고 있는 풍경, 보기에 따라선 겨울이 긴 북유럽의 이국적인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마치 크리스마스카드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인상을 준다. 사람이 없지 않지만 대개는 사람이 없는, 겨울이 주제인 것 같고, 풍경이 주제인 것 같고, 겨울풍경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주제인 것 같다. 그 감정을 작가는 침묵이라 부르고, 눈부신 그림자라고 부른다. 흔히 겨울에 풍경은 침묵 속에 잠긴다고 한다. 여기서 침묵은 겨울풍경을 형용하는 감정이 된다. 그리고 침묵은 감각적인 그림에서 관념적인 그림으로 그 축이 옮아온 저간의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그렇다면 눈부신 그림자는? 알다시피 겨울에 그림자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겨울처럼 희뿌연 대기 속에서 그림자는 없지 않지만 사실상 없다고도 할 수가 있다. 그렇게 없는 그림자를 작가는 눈부신 그림자라고 강조하기조차 한다. 없어서,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서, 침묵 속에 잠겨 있어서 오히려 더 눈부신? 내면의 그림자 그러므로 어쩌면 존재의 그림자를 강조한 역설적 표현이다. 상실감을 동반하는 황금시대라고 하는 역설적 표현에 이어, 겨울에 더 깊어지는 내면화의 경향을 강조한, 내면으로 숨는 그림자, 내면에서 더 눈부신 그림자를 강조한 또 다른 역설적 표현이다. 

다채로운 그림도, 잿빛 화면도, 황금시대도, 침묵에 잠긴 겨울풍경도 그리고 눈부신 그림자가 암시하는 역설적인 표현도 빛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빛이 없으면 그저 잠재된 가능성일 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빛을 표현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림이 아닌 입체며 설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 혹은 빛다발을 입체로 조형한 것인데, 때론 뭔가에, 아마도 벽과 같은 모서리에 부닥치면서 굴절된 형상(빛의 굴절현상)을 포착한 경우도 있다. 작가의 그림엔 유독 창문이 많다. 그래서 이번 전시 주제도 <다섯 개의 창>이다. 그동안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림이라는 또 다른 창을 통해 세계를 보면서 자연스레 시각현상에 주목했을 것이고 빛의 질료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렇게 비로소 자기 몸을 가지게 된 빛과 더불어서 작가의 그림도 덩달아 지금까지보다는 좀 더 실질적인 의미(폭발하는 불구덩이?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미사일? 전운? 불안? 시대감정?)를 가지게 될 것이다. 어떤 실질적인 의미를 어떻게 가지게 될 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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