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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음악과 경쟁 사이를 네트워킹 하는

고충환

전시(대구미술관 스코어전 2.21-5.21)주제 스코어(Score)는 연주에 관한 모든 파트를 종합해서 기록한 보표로서 풀 스코어라고도 한다. 실제 연주에 쓰이는 개개의 파트 보는 이 스코어를 기초로 만들어진다. 각각 다른 소리를 내는 기악과 성악을 위한 개별적인 보표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종합적인 보표로 보면 되겠다. 스코어는 말하자면 상호간 이질적인 소리들이 모여 하모니(조화)를 이루고 합주를 일궈내기 위한 것이다. 이는 상호간 이질적인 지점과 지점들을 네트워킹 하는 과정을 통해서, 탈맥락과 재맥락의 과정을 통해서 제3의 의미, 의외의 의미, 다른 의미를 발생하고 파생시키는 현대미술의 생리와 통한다. 특히 전시 공학적으로 현대미술전시의 생리와 통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개별 작가의 주제의식으로서보다는 큐레이터가 주축이 돼 전시를 매개로 작품을 만드는 기획전을 위해 적절한 주제로 보인다. 전시된 작품을 마치 오브제처럼 사용해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특정의 개념을 주지시키고 부각하기에 적절한 경우로 보인다. 여하튼 이 스코어란 주제로부터 각각 음악, 조화, 합주 그리고 탈맥락과 재맥락의 하부개념(혹은 소주제)들이 파생된다. 그리고 이보다 일반적인 경우로서 스코어는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득점이 기록되기 위해선 경쟁을 해야 하고, 경쟁을 하다보면 득점하는 사람도 있고 실점하는 사람도 생긴다. 이로부터 경쟁과 배제라는 하부개념이 파생된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의 의미론적인 폭은 음악이라는 장르적 개념으로부터 경쟁이라는 사회적 개념까지를 싸안고, 합주라는 통합개념에서 배제라는 배타적 개념까지를 아우른다. 너무 넓은가. 그런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하튼 상호간 이질적인 지점들을 네트워킹 하고 그 접점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한 장의 제안으로 보면 되겠다. 그러므로 어쩌면 큐레이터를 위한 전시며, 기획전다운 전시의 예시로 보면 되겠다. 



음악이 발생되는 미학적인, 사회학적인 지점들 


섹션 1(오선과 그리드)을 보면 단색화(?)(김기린)도 있고 그리드(이교준)도 있다. 그리드는 기하학적 포맷을 변주한 경우로서, 고대 그리스 시대 그러니까 미학이 생성되는 초기에 음악은 수학이었고 기하학이었다. 아마도 엄정한 규칙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았고 터이고, 이로부터 조화, 균형, 비례 그리고 나아가 황금분할과 신성비례와 같은 가치론적 개념이 파생되면서 음악과 미술과의 상관성이 인정된다. 그리고 캡슐형태의 일인용 노래방(이불)은 심지어 놀이나 유희에서마저 이를 봐주고 들어줄 관객이 없는 세대, 외롭거나 냉소적인 세대를 대변한다(원래 놀이와 유희는 공동체 문화를 전제로 한 것). 그리고 브루스 나우만은 자신의 신체를 작품을 위한 오브제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목 뒤로 두 손을 깍지 낀 채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걷기>를 시도한다. 간신히 사람 하나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를 오가는 동작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불편한 자세가 좁은 통로와 무관하지가 않고, 특히 콘트라포스토 자세와 무관하지가 않다. 콘트라포스토는 자연스런 포즈로서 미술사에서 예시된 것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이념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때로 이념이 실제를 억압할 수 있다는 논평을 담고 있다. 섹션 2(캐논변주곡)에서 강서경은 우리나라 전통악보인 정간보의 한 칸을 이루는 작은 사각이 캔버스의 최소단위며 프레임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그 칸 혹은 사각을 철제 프레임으로 형상화했다. 이런 철제 프레임과 각종 구조물들이 서로 지탱하는 형국을 통해서 이질적인 것들의 상호유기적인 관계며,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맞추며 살아가는 관계를 예시해준다. 그리고 오민은 다양한 물건을 정리하고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음악의 구조를 시각화했다.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로도 유명한 주경의 <격조>는 오르피즘 경향의 음악적 율동을 구성주의적 방식으로 재구성한 그림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배제를 다룬 경우로서 정은영과 윌리엄 켄트리지 그리고 일제강점기 만문만화가 주목된다. 정은영의 비디오작품은 여성국극을 기록한 것으로서, 여성국극에서 남성을 연기했던 여성들에 초점을 맞춘다. 남성만이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중국의 경극과는 반대되는 경우로서 젠더라는 타자를 문제시한 경우로 보인다. 윌리엄 켄트리지의 <나는 내가 아니고, 그 말은 나의 것이 아니다>는 제목은 한눈에도 자크 라캉을 상기시킨다. 나는 내가 하는 말 속에 들어있지 않고, 지금여기에 없다는. 배제로 치자면 주체가 주체를 배제하는 것이고, 화법으로 치자면 유체이탈화법(?)으로 봐도 되겠다. 그렇게 전제주의 혹은 전체주의의 배제를 예시해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만문만화 <여성선전시대>와 <이 꼴 저 꼴>에서는 신여성을 바라보는 당시 가부장적 주체에 의한 여성의 배제를 엿볼 수 있다.



섹션 3(파라다이스의 노래)을 보면, 박보나의 <파라다이스시티>가 공장에서, 창고에서, 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사실은 안양시민들이 미국 록밴드의 음악 <파라다이스시티>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대략 도시를 떠나 고향(파라다이스시티)에 가고 싶다는 내용인데,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안양시민들 역시 고향에 가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그런데 왜 하필 미국 록밴드인가. 더욱이 가수도 아니면서). 문화충돌이다. 예술을 일상에 되돌려준다는 거창한 구호 아래 비루한 삶의 비애와 애환이 묻어난다. 변순철의 <전국노래자랑>은 과장된 의상과 제스처로 보통사람들의 키치의 문화학을 예시해준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렇지만 이상현은 진즉에 월북무용가 최승희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념(남한)과 이념(북한), 과거(근대)와 현재(현대), 신화(비너스)와 현실(최승희)이 부닥치고 스며드는 현실, 그러므로 어쩌면 상호간 이질적인 현실의 계기들이 하나의 층위로 중층화된 현실을 예시해준다. 배제를 다룬 경우로서 정용국의 <첫 번째 사람>은 암실 벽 위에 빼곡하게 기록된 문자 텍스트를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타자화된 사람들을 일인칭의 주체로 되살려내는 프로젝트의 일부로서, 70년대 노동운동의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경찰의 감시와 가족의 의심 속에 숨죽여 살아야했던 한 사람의 사연을 고백형식으로 재생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의 사연을 귀담아 들어준다는 사실이, 어쩌면 묻혔을 이야기를 새삼 발굴하고 복원한다는 사실이 사회적 치유에 복무하는 예술가적 자의식을 엿보게 한다. 이런 타자를 계기로 작가가 운신할 수 있는 작업의 폭이 눈에 띠게 확장되고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한 영문 제목을 보면 <스코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음악>으로 돼있다. 음악? 이게 음악이라면 도대체 음악의 범주와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 도대체 이게 음악과 무슨 상관인가,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이런 반문과 의아는 스코어의 다른 의미 곧 경쟁과 점수에서 올 것이다. 때로 음악에도 경쟁과 점수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여하튼 적어도 표면적으로 음악과 경쟁의 의미론적 거리는 멀다. 장르적 개념과 사회학적 개념, 감각적 경험과 실존적 경험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이번 전시는 그 차이만큼의 진폭을 수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여하튼 음악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인 만큼 사회학적 개념이며 실존적 경험도 잘 보면 음악과 연결될 수 있는 계기며 구실을 가지고 있고, 그 구실을 찾기 위해 끙끙거려야 하는 수고로움을 전시는 요구하고 있다.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관객을 요청한 것이란 점에서, 관객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에서 전시는 바람직해 보인다. 상호간 이질적으로 보이고 무관해 보이는 지점과 지점들을 네트워킹 해 은폐된 의미며 억압된 의미를 발굴하고 캐내는 것이 특히 전시 공학적으로 중요한 방법이며 미덕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부수적으로 미술관 소장 작품을 적절하게 활용해 전시의 완성도를 높였다(이를테면 적절하게 서사 간 간섭을 꾀했다)는 점에서 전시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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