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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화/ 예술과 영성, 걸레에서 영성을 보다

고충환

그림시, 시는 그림처럼 그림은 시처럼 

김병화는 시를 쓰면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서 조각을 한다. 그에게 시와 그림과 조각은 다만 그 형식이 다를 뿐, 처음부터 장르적 특수성을 따질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 근거며 이유를 따져 묻는 것은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적어도 돌이켜보면 그렇게 보인다. 예술에 관한한 무학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그렇지 않은 경우라서 난감하고 의외다 싶다. 세속적인 구분과 학문적인 나눔에 구애받지 않는 분방함과 자신감의 표현일까. 아마도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저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예술가적 자의식(보기에 따라선 그 자체 종교적 소명의식과도 무관하지가 않은)의 표현일 것이다. 여기엔 이런 자의식 이상의 보다 실질적인 의미도 있다. 서로 상보적인 것, 서로 통하는 것, 공감각적인 것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시의 직관화가 그림이요, 그림의 개념화가 시라고 했다. 시를 직관적으로 함축한 것이 그림이고, 그림을 개념으로 풀어낸 것이 시라는 말이다. 이처럼 시와 그림의 상동성 내지 상보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시나 그림이나 똑같이 언어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고, 언어를 빌려 의미를 생산하는 재현적이고 서사적인 매개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의 인식은 알고 보면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닌데, 전통적인 서화동원론 혹은 서화동체론이 그렇다. 글과 그림은 그 뿌리가 같다는 말이다. 서양으로 치자면 고대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가 그림은 말이 없는 시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고 했다(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인은 가인 곧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시는 그림처럼, 이라고 했다. 여기엔 그림은 시처럼, 이라는 잇따른 문구가 생략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자명한 사실이 그동안 왜 실현되지 못했을까. 장르적 특수성을 따져 묻는 모더니즘패러다임의 탓이 크다. 음악을 소리로, 문학을 재현과 서사(이야기)로, 조형예술을 순수한 시각의 소산으로 한정한 것이 결정적이다. 그러므로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모더니즘패러다임에 의해 억압된 한정을 풀고 허물어서 그 처음상태를 복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유래한 것이 그림시다. 그림으로 시를 쓰는 것이다. 다르게는 이미지시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그림시는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는데, 문자 텍스트를 그림 모양으로 배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이 있고, 아예 그림이 암시하는 의미(시상?)를 겨냥한 경우가 있다(물론 그 이전에도 마치 눈앞에 그림을 그려보이듯 재현적이고 묘사적인 시 경향을 지칭하는 이미지즘 시 분파가 따로 있었지만). 이 가운데 작가의 그림시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동안 그림시로 두 권의 시집을 냈다(내 피곤한 영혼을 어디다 누이랴, 1988년, 청하/ 밀짚광배 예수, 1996년, 도서출판 빛남). 이 시집을 보면 이러저런 그림시들이 있지만, 이 그림시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아마도 삶과 죽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삶 속에 죽음이 죽음 속에 삶이 이미 들어있었다는 상관적이고 상보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이, 그러므로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일 수 있다는 자의식이 그림시를 견인하고, 조각을 견인하고, 예술혼을 견인한다. 이를테면 바로 놓인 밥그릇과 거꾸로 놓인 밥그릇을 대비시켜, 사는 것이란 결국 먹고 사는 것의 문제이며, 먹고 사는 것이란 알고 보면 죽음(무덤)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임을 주지시킨다(죽기 위해서 산다? 죽기 위해서 먹는다?). 그리고 그렇게 똑같은 사물대상(밥그릇)이 삶처럼도 보이고 죽음처럼도 보인다. 또 다른 경우를 보자면 아파트 층층이 누운 사람들과 무덤 속에 누운 사람이 똑같다. 삶도 관(감옥?)이고 죽음도 관이다. 그리고 그렇게 삶과 죽음이 똑같다. 마지막으로 산 사람이 무덤 속에 누운 사람을 쳐다본다. 그리고 누운 사람은 알고 보면 산 사람의 그림자임이 밝혀진다. 죽음은 삶의 그림자임이 밝혀진다. 밝혀진다? 그러나 알고 보면 비밀도 아니다. 이처럼 자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람들은 죽음과는 상관없는 듯, 최소한 내 일이 아닌 듯 산다. 특히 생산성으로 존재가치를 따지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성이 제로에 이른 죽음은 지극한 금기에 속한다(조르주 바타이유). 작가는 그 금기를 부여잡고 산다. 그리고 금기를 각각 그림시에, 조각에, 예술혼에 분배하고 스며들게 한다. 이 도저한 부여잡음을 다른 말로 옮기면 결여의식이 되고 결핍의식이 된다. 토마스 만은 예술이란 결핍 위로 솟아오르는 무엇이라고 했다. 의식 속에 결핍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 작가는 그 결핍(존재에 대한 연민?)을 원동력 삼아 저만의 예술을 견인하고 실천한다. 


탈조각, 조각을 넘어 다시 조각으로 


작가는 보통의 조각 전공자들이 그렇듯 사실주의 조각으로 자신의 예술가적 이력을 시작한다. 당시 작품 중에 눈에 띠는 경우로 구두닦이 소년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조각이 있다. 이 조각은 사실주의적이면서 동시에 그리고 이보다는 현실주의적이다. 여기서 사실주의는 사물대상의 닮은꼴을 추구하는 방법적 측면이 강하고, 현실주의는 현실로부터 발견된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조각을 매개시키는 현실 참여적 측면이 강하다. 세계를 대면하는 창작주체(혹은 개별주체)의 태도와 입장에 방점이 찍힌다. 돌이켜보면 작가는 체질적으로 사실주의보다는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처음부터 조각이라는 장르적 특수성이며 고유한 형식과 방법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후 사실주의적 재현을 추구한 조각이 없지 않지만, 대개는 도대체 조각 고유의 형식과 방법에 구애받지 않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고, 그 행보는 대개 현실주의적 참여의식에 의해 지지되는 것이었다. 조각 고유의 형식과 방법을 넘어서(파괴하면서) 결과적으로 조각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헤겔식으로 말하자면 부정을 통해서 긍정을 얻는 지양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실주의조각으로 치자면 양 김 씨와 노태우 대통령과 같은 특정 정치인을 소재로 한 경우,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시대상황을 소재로 한 경우가 대표적이며, 시기적으로 주로 1980년대 이후의 암울한 시대감정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화법으로 치자면 직설화법에도 불구하고 풍자와 해학으로, 과장과 왜곡으로 각색된 것이 양가적 감정(서늘한 웃음? 블랙유머?)을 느끼게 한다. 시대에 대한 거침없는 논평과 함께 시대를 껴안는 포용력을 느끼게 만든다. 아마도 작가가 조각을 빌미 삼아 평생 예수를 형상화하는 일에 천착하게 된 것도 이렇듯 암울한 시대감정과 존재에 대한 연민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시대정신의 표상으로서의 예수? 아니면 인간실존의 존재론적 메타포로서의 예수?). 


이상으로 현실주의조각은 내용을 중심으로 본 경우다. 그렇다면 형식적으로 작가의 조각은 어떤 의미심장한 의미를 탑재하고 있는가. 이 부분은 조각의 장르적 특수성과의 관련 속에서 논의될 것이다. 조각이 자기를 실현하는 형식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우선 눈에 띠는 것이 소위 종이조각이다. 무슨 등처럼 철사로 얼개를 만든 다음, 그 위에 종이를 덧발라 만든 조각이다. 종이로는 주로 한지를 쓰지만, 더러 광고 전단지나 시사적인 내용의 인쇄물을 빌려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르네 마그리트의 새장 그림을 전투경찰 형상으로 전치시킨, 새를 부리는 마술사를 사람을 부리는 권력의 도구로 전치시킨 조각이 인상적이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다반사인 현실(마술 같은 현실)에서 초현실적 비전을 보았을 것이다(현실 자체가 이미 초현실이다). 


항아리와 연탄 등 일상적인 소재를 한지로 재현한 경우도 있는데, 일상성 담론에 대한 공감과 생활철학을 반영했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의 자소상이며 어느 정도 우리 모두의 초상에도 해당할 광대를 통해서 무기력한 현실인식을 반영하기도 했다. 이런 시사적인 작업들이 있지만, 대개는 텅 빈, 심지어 얼굴조차 그리고 표정마저 없는 사람들이 공허한 느낌을 준다. 텅 빈? 조각의 본질이 여럿 있지만, 그 중 결정적인 경우로 치자면 양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작가의 조각은 이런 양감을 결여하고 있다. 조각에 반하면서 조각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볼 수가 있겠다. 이를 통해 작가는 아마도 빈껍데기로 한 시대를 살아내는 보통사람들의 영혼 없는 초상을 조형한 것일 터이다. 


그리고 일종의 오브제조각(아니면 레디메이드조각?)으로 범주화할 만한 일련의 경향성의 작업이 있다. 무쇠 솥, 고무다라, 자전거바퀴, 칼, 밀대걸레, 마대, 밀짚모자 그리고 종이박스와 같은 생활소재들이 분별하게 혹은 무분별하게 어우러지면서 이러저런 형상을 만든다. 이를테면 진군하는 전차와 같은. 주로 암울한 시대감정을 표현한 것이란 점에서 사회풍자조각과도 그 궤를 같이한다. 그 와중에서도 꽃구경하는 사람들이 오며가며 쉬다 가라고 내어준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꽃 의자에서는 이런 암울한 시대감정이나 풍자와는 비교되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서로 무관계하거나 잡다한 것들을 한데 그러모아 그럴 듯해 보이는 제3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브리콜레르라 하고, 그 결과물(형상)을 브리콜라주라 한다. 버려진 것들, 용도폐기된 것들, 허접한 것들, 그럼에도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있고 여전히 저를 사용한 사람의 살 냄새를 기억하고 있는 사물들을 되불러와 작가는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작품으로 재생시킨다. 이처럼 거듭난 사물들(사물조각?)을 매개로 작가는 예술과 일상, 조각과 오브제와의 경계를 허문다. 그렇게 경계를 허물면서 조각을 확장시킨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회화조각 혹은 양면조각 혹은 어형조각으로 명명한 일련의 작업들이 있다. 그림처럼 평면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앞뒷면만 있고 측면에 해당하는 두께가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그 꼴이 물고기처럼 납작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림처럼 보이지만 벽걸이로서보다는 공간에 놓이는, 그리고 그렇게 환조처럼 사방을 옮겨 다니며 관상할 수 있는 조각이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허무는 조각이다.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그 둘 모두를 아우르는 경계 위의 조각이다. 주로 예수의 에피소드를 다룬 경우들이 많지만, 그 외에 피에타가 주목된다. 기근으로 혹은 재해로 혹은 전쟁으로 죽은 아들을 부여안고 비통해하는 아버지의 큰 슬픔을 담았다. 마리아의 슬픔이 아버지의 슬픔으로, 신의 연민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연민으로 전이되고 확장되고 번져나가는 것을 본다. 이처럼 작가는 각각 종이조각, 오브제조각, 그리고 회화조각을 통해 조각에 반하면서 조각을 확장시킨다. 그리고 내용적으로 현실주의가 그 형식의 지점들을 지지한다. 그동안 조각의 형식에 대한 의식적인 고민이 없지 않았겠지만, 이보다는 현실주의라는, 현실참여의식이라는 내적 필연성이 사후적으로 형식의 변화를 불러온 것이란 점에서 조각에 대한 작가의 형식실험은 보다 더 진정성을 얻고 설득력 있게 와 닿는다. 


예술과 영성, 예수를 예술로 예술을 예수로 


작가에 관한한 그림시도, 조각에 대한 형식실험도, 현실에 대한 통렬한 공감도, 그리고 이 모두를 지지하는 예술혼마저도 종래에는 예수로 귀결된다. 이 모두가 다만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며, 신을 향한 소명의식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둘(예술혼과 소명의식)은 다른 것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실비판조각으로 나타났다면, 인간실존에 대한 연민이 소명의식의 원인이 된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듯(특히 그림시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은), 작가에게 현실과 이상, 예술과 종교, 세속적인 삶과 신에 귀의한 삶은 다르지가 않다. 서로 별개의 영역이기는커녕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상관적이고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그런 만큼 작가가 조형해놓고 있는 각종 예수 상들은 신성보다는 인성이 강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면면이 강하다. 인간예수, 저작거리의 예수, 세속적인 예수의 면면이 강하다. 이를테면 밀대걸레 예수, 밀짚광배 예수, 박스 예수, 농투산이 예수, 보살 예수가 그렇다. 특히 밀대걸레 예수가 그렇다. 그동안 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충격과 함께 경외감으로 받아들인 것이지만, 밀대걸레로 만든 예수는 예사롭지가 않다. 저는 항상 젖어있지만 스스로 상하지가 않고, 어둡고 냄새나고 더러운 곳을 닦아내는, 인간의 죄를 대신 닦아내 눈처럼 하얗게 만들어주는 걸레 예수다. 신은 낮은 곳으로 임한다고 했다. 이쯤 되면 이보다 더 낮은 곳으로 임하기도 어렵지 싶다. 민중 신학이다(그리고 아마도 해방신학마저도). 루시앙 골드만은 <숨은 신>에서 신은 도처에 은폐된 형태로 편재한다고 했다. 은폐성과 편재성을 신의 존재방식으로 본 것이다. 은폐돼 있지만 잘 보면 보인다.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윤리적 공감과 참여와 연대를 호소해오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타자의 얼굴이 신이라고 했다. 잘 안보이지만 잘 보면 보이는 타자가 신이다? 이웃이다. 농투산이 예수가 그렇고 밀짚광배 예수가 그렇다. 작가에게 예수는 일상 속에 거하고(종이박스 예수), 심지어 종교의 벽마저 넘어선다(보살 예수). 


사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신을 모시고 있다. 정신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신은 영성을 지향한다. 더욱이 예술적 영성과 종교적 영성은 그 성분이 다르지가 않다. 요셉 보이스는 스스로를 무당이라고 했고, 예술가를 현대판 무당들이라고 했다. 현실과 이상, 세속적인 삶과 영적인 삶을 중계하는 매개자가 예술가라고 본 것이다. 그렇게 작가에게 예수는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고, 예술은 예수로 인해 당위성을 얻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걸레에서 영성을 발견하는 것이 예술이다. 작가는 줄곧 그 예술을 실천해왔다. 그리고 그 실천과 더불어서 예수와 예술은 비로소 하나로 통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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