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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목 / 몸의 정치학을 넘어 피부의 정치학에로

고충환





유충목의 유리조형작업은 상식을 파괴한다. 여기서 상식을 파괴한다는 것은 흔히 현대유리조형작업이 그렇듯 그저 기능중심으로부터 조형중심으로 작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다만 현대유리조형작업의 전제일 뿐(이를테면 아름다운 그리고 감각적인 유리조형을 만드는 일과 같은), 그 자체가 상식 파괴의 구실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상식 파괴는 유리와 다른 재료가 결합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지퍼 시리즈에서 유리조형과 실제의 지퍼가 결합한다든지, 피부 시리즈에서 유리판과 사진이 결합되는 식이다. 매체들은 저마다 다른 매체와는 구별되는 고유의 물성을 가지고 있다. 그걸 매체특수성이라고 한다. 이런 매체특수성의 경계를 넘어 다른 매체를 하나의 조형으로 결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더욱이 그 경우가 유리조형이라면 상식파괴랄 만하다(언젠간 지금의 상식파괴가 상식에 편입되겠지만). 작가는 유리조형을 바탕으로 이런 이종매체간 결합에 관심이 있고, 이를 위한 조형실험은 앞으로도 더 확장되고 심화될 것이다. 


물집(세부), 유리, 2015

그리고 작가의 작업에서 확인되는 상식파괴의 경우로는 서사적인 표현을 들 수 있다. 조형일반에 관한한 서사적인 표현 자체가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감각적인 조형에 맞춰진 현대유리조형의 경향을 생각하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고 주목할 만한 일이다. 여기서 단순하게 말하자면, 감각적인 조형은 감각적인 쾌감을 유발하는 조형에, 그리고 서사적인 표현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매개에 방점이 찍힌 경우로서 구별될 수가 있겠다. 작가의 작업에서 그 예를 찾아보자면, 지퍼 시리즈에서 자기반성적인 경향성이, 그리고 피부 시리즈에서 인종담론의 주제의식이 각각 부각되는 것이 그렇다. 그래서 어쩜 서사적인 표현이란 조형과 함께, 혹은 조형보다는 주제의식이 강조되는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전작을 간략하게 스케치해 보면, 지퍼 시리즈에서 작가는 지퍼가 달린 큰 유리조형 속에 작은 유리조형이 담기는 형식의 작업을 선보인다(유리의 물성을 이용한 추상적인 작업도 있지만, 이보다는 형상적인 작업이 주제의식에 부합하는 편이다). 겉 조형과 속 조형이 별도의 조형으로 구별되면서 하나로 결합된 경우로서, 일종의 이중조형(그림으로 치자면 이중그림에, 그리고 소설로 치자면 액자소설에 해당할. 여기서 이중과 액자는 단순한 겹 구조를 의미하기보다는 상호간 이질적인 서사가 서로 대비되고 충돌하는 미학적 장치를 겨냥한)이 시도되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그렇게 양식화된 몸속에 다른 몸이 빠지고, 확대된 유방(가슴) 속에 몸이 빠져든다. 여기서 몸속에 빠지는 몸은 성적욕망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고, 다르게는 원초적이며 원형적인 자궁(세계의 기원? 생명의 원천?)에로의 회귀의식을 표상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조형 속에 숨은 관조적인 표정의 얼굴 형상이 이런 서사며 욕망에 대한 사색과 번민에 빠진 주체를 예시해준다. 



그리고 작가는 인종담론을 주제화한다. 웬 인종담론이냐고 하겠지만, 작가는 인종차별의 폐습이 폐기되지가 않고 여러 다른 경우와 형태로 변주되면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보는데, 작가의 이런 진단과 이에 따른 주제의식은 지금도 여전히 타당해 보인다. 작가는 유학시절 자신을 응시하는 낯선 시선을 느끼면서 이방인의식이며 소외의식을 내재화하고, 이로부터 정체성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 문제가 인종담론을 주제화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그런 만큼 인종담론은 정체성 문제에 연동된다(유학파들은 초기에 대개 이런 정체성 문제를 통과하기 마련인데, 작가는 비교적 직설적인 화법으로 표출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물집(정면), 유리, 2015

흔히 정체성은 아이덴티티와 페르소나로 구별된다. 아이덴티티는 내적 인격을 말하고, 페르소나는 가면이란 어원이 말해주듯 사회적 주체며 제도적인 주체를 의미한다. 여기서 정체성이 문제시되는 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인격이 아닌, 사회적 주체며 제도적인 주체를 판단근거로 삼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주체며 제도적인 주체란 뭔가. 그건, 사실상 신분과 계급이다. 그리고 몸이 그 신분과 계급을 반복 재생산한다. 속된 말로 몸값을 올린다는 말(단순히 스펙을 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회와 제도가 요구하는 몸에 부응하는, 상품화된 몸의 요청에 부합하는)이 이런 사실을 증언해준다. 그 밑바닥에 인종차별(요새로 치자면 사람 차별?)과 인종담론이 깔려 있는 것. 인종차별 자체는 식민시절의 유산이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변주되고 변형된 경우로 보면 되겠다. 계몽적인 몸에서 상품화된 몸으로 바통 체인지 된 경우로 보면 되겠다.    


그렇게 작가는 인종 인덱스를 만든다. 각기 다른 인종들의 피부색을 사진으로 찍어 유리판에 전사한 부채꼴 모양의 조형을 펼치면 한 사람의 옆얼굴(프로필)이 나온다. 저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인종 지구본을 만든다. 각기 다른 인종들의 얼굴선을 유리로 조형하고, 그걸 지구본 형태로 조합했다. 저마다 얼굴 형태는 다르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지구를 이룬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각각 인종 인덱스를 피부색과 얼굴 형태로 표현한 것인데, 피부색이 루비통의 광고(똑같은 색깔의 심장을 가진 흑인과 백인과 유색인의 얼굴을 비교한)를 연상시키고, 얼굴 형태가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게슈타포가 정통 아리안 족과 유태인을 가려내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얼굴 틀이 나오는)를 떠올리게 한다. 두 경우 모두 인종차별에 대한 풍자적인 코멘트를 다루고 있고, 작가는 그 코멘트를 짐짓 진지하게 재현하고 제안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피부 자체에 주목한다. 자신의 피부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찍어 유리판에 전사해 열처리한 것이다. 타자의 피부색을 채집하고 분류한 아카이브로 인종담론을 주제화해온 그동안의 작업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자신의 피부를 채집한 아카이브로 자기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투명한 유리판에 전사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전사를 위해 백유리판을 사용하는데, 불투명한 화면이 일종의 막 역할을 해 이미지를 부각시켜주기 때문이다. 크게는 피부 시리즈와 물집 시리즈로 나뉜다. 의미상으로 피부 시리즈는 마치 지문이 그런 것처럼 자기정체성이 등록되는 장으로서의 몸의 좌표를 탐색하는 것이며, 여기서 몸을 탐색하는 것은 그대로 정체성을 탐색하는 것에 연동된다(몸의 문제는 곧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한 것). 그리고 물집 시리즈는 외관상 피부의 표면에 기생하는 이물질을 형상화한 것이지만, 내용상으론 자기정체성을 형성시켜주는 타자, 자기정체성의 일부로서의 타자(그 자체 일종의 관념적인 이물질로 볼 수 있는)를 표상한다. 그리고 피부에 난 물집은 동시에 일종의 외상 곧 트라우마의 표상일 수 있다. 


그렇게 작가는 잔털과 미세한 주름, 땀구멍, 털과 머리카락과 같은 피부의 세부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탐색해 보여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세부를 강조하면 할수록 차이가 덩달아 부각되기는커녕 오히려 엷어지고 지워진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몸을 채집한 것이지만, 보기에 따라서 그 몸은 우리 모두의 몸이기도 하다(굳이 의학적으로 캐려들면 차이를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저 물리적인 그리고 질료적인 층위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세부를 강조하면 할수록 차이가 줄어들고, 이질성을 부각하면 할수록 오히려 동질성에 가까워진다. 존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시각정보의 착각 내지는 착시현상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그렇게 작가는 자신의 몸을 탐색하면서, 사실은 자신을 형성시켜준 타자, 자신의 일부인 타자, 자신의 몸에 아로새겨진 타자의 흔적을 탐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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