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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사 혹은 상호영향사의 관점에서 본 전혁림의 회화

고충환




나의 회화의 원점과 그 발상은 우리나라의 미술문화의 조형문화, 한국적인 미의식감정, 정서, 색채, 형상, 생활문화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겠다. 더욱 최근의 나의 작품은 나의 신조형이고, 그 명확한 선과 원색에 가까운 그 색채, 도식적인 색면, 형상, 그 구성이 나의 과제이고 탐구대상이다. 회화는 색채와 형상에 의한 공간의 창조라고 나는 생각한다...궁극적으로 몬드리안이 말한 선과 순수한 색채와 순수한 관계의 새로운 미학에서 순수한 구성만이 새로운 회화예술이 될 수 있을 것 같다(작가의 말). 


예외가 없지 않지만, 작가들은 대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 인색한 편이다. 작업이 말을 하고 작업을 통해서 말을 하는데 새삼 얘기는 무슨, 이라고도 하고, 그림 자체를 봐야지 의미는 무슨, 이라고도 한다. 개념을 세우고 그림을 그려도 그 과정에서 더욱이 그 결과가 처음의 개념대로 되지는 않는 그림의 생리와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전혁림의 경우엔 살아생전 육성을 채록해 놓은 것이 있어서 다른 작가들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굳이 육성이 아니더라도 작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그림과 관련한 이러저런 감회를 전해주고 있는데, 그 중 이 말은 아마도 전혁림 회화의 핵심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한손에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을 쥐고 있다면, 다른 손엔 순수회화의 궁극이 쥐어져 있다. 이 두 축이 길항하고 부침하면서 작가의 평생 화업을 이끌어온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 평생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순수회화의 궁극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작가는 어쩜 본질주의자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몸에 밴 민족정서에 천착했다는 점에서 작가는 민족주의자(?)일지도 모르고, 순수회화의 궁극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모더니스트일지도 모른다(뒤에 보게 되겠지만 작가에겐 탈모더니즘적인 일면도 있다. 여하튼). 


본질주의라고 했다. 말하자면 작가의 이 말은 작가의 그림에서 항상적인 것에 대해 말해준다. 소재가 바뀌고 주제가 바뀌고 형식이 바뀌어도 한눈에 전혁림의 그림임을 알아보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항상적인 것이다. 이런 항상적인 것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뭔지를 밝히는 것이 이 글의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호영향사의 관점을 취하고 적용해보는 것이다. 작품 자체는 작가의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소산이지만, 의식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사상과 이해를 공유했던 사람이나 이론(혹은 이즘)은 있는 법이다. 이와 관련해서 작가는 사실상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만큼 스승은 없으나 교과서는 있었다. 일본의 미술잡지(미술수첩)와 특히 아트인아메리카를 평생 구독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평자들은 이따금씩 현대미술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이해에 놀란 경험을 전하고 있다.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의 환경결정론 

양식사에 보면, 환경결정론이란 것이 있다. 민족적인 기질, 지리적이고 기후적인 조건, 정치체제와 같은 외계환경이 특정 양식을 결정하거나 최소한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다. 예술의 존재이유를 열린 개념에서 찾는, 그리고 개별주체양식을 유형화할 수 없다는 다분히 급진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일정한 한계를 갖는 것이지만, 예술에서의 항상적인 것을 규명하게 해주는 논리로 보면 되겠다(예술은 항상적인 것과 비항상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심화되는 것과 확장되는 것을 날실과 씨실삼아 직조된다).  

환경결정론과 관련해서는 대개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이나 이폴리트 텐느(Hippolyte Taine)와 같은 경우가 알려져 있지만, 그 중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경우로 치자면,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을 들 수가 있겠다. 핵심만 짚어보자면, 주체와 외계환경과의 관계가 친화적이고 우호적일 때 주체는 외계에 감정이입하고 외계를 재현하고 싶다. 이에 반해 주체와 외계환경과의 관계가 적대적일 때 주체는 불안을 내면화하고, 그렇게 내재화된 자기내면을 그림으로 승화시킨다. 그로부터 표현주의와 추상양식이 유래한다. 그러므로 보링거의 입장에서 볼 때 표현주의는 추상의 예비단계에 해당하고, 추상과의 상호연속적인 계기가 된다. 그리고 보링거는 감정이입의 경우를 남부유럽양식(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그리고 추상의 경우를 북유럽양식(고딕)에 결부시킨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결정론이 전혁림의 회화를 규명하는 데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전혁림의 회화를 규명하게 해주는 항상적인 것, 본질적인 것, 원형적인 것, 전혁림이 물려받은 예술가적 유전자에 해당하는 것, 전혁림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해 평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통영의 쾌청한 하늘빛과 쪽빛 바다색을 꼽는다. 청색이다. 허구한 날 눈에 밟히는 청색이 작가의 감성으로 스며들고 인격을 키우고 예술혼을 형성시켜준 경우로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작가는 청색에 빗대어 감성을 우려낸 색채화가다(이에 대해 송미숙은 작가를 드러내놓고 색채화가로 지목하고 있고, 작가의 회화를 밝혀줄 키워드로서 색채상징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와 동향인 김춘수는 색채가 다름 아닌 화가의 사상이라고도 했다). 

보기에 따라서 작가의 그림은 색채도 그렇지만 면구성(색면구성?)이 마티스(H enri Matisse)를 떠올리게 한다. 알다시피 마티스는 색채화가로 알려져 있다.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표현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표현은 기실 색채를 의미했다. 그리고 눈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을 때 마티스는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것으로 그림을 대신했다. 당연히 작가와 같을 수는 없지만 색채에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나, 색면 구성을 변주해 보이는 것이 상호영향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어쩜 전혁림을 한국의 마티스로 부를 수는 없을까. 마티스는 안락의자처럼 편안한 그림,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는데, 전혁림의 그림 역시 그렇게 볼 수는 없을까. 그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작가의 그림은 통영쪽빛 바다색으로 표상되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고향이며 상실한 원형의식을 일깨워주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이 마티스의 소망과도 통한다고 생각된다. 

특히 송미숙은 작가의 그림을 해석하는 한 계기로서 색채상징주의를 들고 있는데, 그렇다면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청색의 감성은 어디서 어떻게 연유한 것인가. 그리고 그 색깔이 표상하는 상징적 의미는 뭔가. 작가에게 청색은 말할 것도 없이 통영의 바다색으로부터 유래했고, 우리나라의 쪽빛 하늘색에서 유래했다. 오방색 중 하나이기도 한 청색은 희망을 상징하며, 그 상징적 의미가 청기사로 표상되는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청색과도 통한다. 칸딘스키에게 청색은 푸른 말을 타고 오는 기사, 미래를 열기 위해 오는 기사, 새로운 정신적인 시대를 여는 기사를 의미했고(칸딘스키는 신지학에 심취해 있었고, 신지학에서 청색은 순수정신 내지는 정신적인 승화를 의미했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란 저작도 알고 보면 이와 무관하지가 않다), 그 상징적 의미가 특히 마르크(Franz Marc)의 회화에서 보다 적극적인 형식을 얻는다. 

동양에서도 그렇지만, 서양의 문화사에서 보면 청색은 꽤나 의미심장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노발리스(Friedrich von Hardenberg Novalis)의 <푸른 꽃>에 등장하는 청색은 빛을 정화시켜주는 어둠을, 낮을 정화시켜주는 밤을, 삶을 정화시켜주는 죽음을(그리고 아마도 에로스를 세척하는 타나토스를) 의미했다. 칸딘스키에게 청색이 희망을 상징한다면, 그 상징적 의미가 현세보다는 내세를 지향했던, 다분히 프로이트(Sigmund Freud)를 선취했던 낭만주의적 색채로 이해되어졌던 경우와 비교된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브 클라인(Yves Klein)에게 청색은 우주적인 색채며 근원적인 색채를 의미했다. 오죽하면 클라인은 인터내셔널이브클라인블루라는 가상의 색채를 가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보다 가깝게는 영화 그랑블루에서 청색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대양을, 심연을, 고독을 의미한다.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청색의 기저에 흐르는 정서는 아무래도 쪽빛 하늘색과 코발트블루로 나타난 통영 바다색이 만들어준 것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상에서 본 심리적인 그리고 때론 존재론적인 청색의 상징적 의미와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청색의 스펙트럼, 이를테면 청색에서 청회색까지, 쪽빛에서 군청색까지, 그리고 코발트블루에 이 모든 상징이며 정서가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고도 볼 수가 있겠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아폴론적 충동과 디오니소스적 충동 

색채 애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전혁림의 그림에 나타난 색채 중 청색 다음으로 많은 것이 적색이다. 청색도 그렇지만 적색 역시 단독으로서보다는 다른 색들과 어울리는 가운데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주조색의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주지하다시피 작가의 그림은 올오버페인팅도 색면화파도 모노크롬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청색과 적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다른 색과 어울리는 경우를 전통에서 찾아보자면, 색동옷과 깃발 그리고 단청을 들 수가 있겠다. 특히 단청과 관련해서 김춘수의 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중엽 문화예술진흥원(지금의 문화예술위원회) 고문으로 있었던 김춘수는 당시 진흥원 미술관(미술회관)에서 열린 전혁림의 전시를 보고 기하학적인 선과 면도 그렇지만 특히 색깔들이 다름 아닌 사찰 건물의 단청을 닮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춘수는 이렇듯 우리 것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박생광의 경우와 비교한다. 만년에 박생광이 인도를 다녀 온 뒤에 우리의 무속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경우와 비교한 것이다. 사실 청색과 적색의 대비로 치자면 박생광의 중요한 회화적 특질이랄 수 있겠고, 이로부터 생기의 무한분출과 에너지의 발현과 같은 생명력의 실현을 얻는다. 작가도 생전에 박생광과의 교류가 있었고(아마도 남달랐을), 여기에 언젠가 박생광과의 상호영향관계를 지나가듯이 언급한 적이 있지만, 특히 색채를 매개로 한 전통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두 작가가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가 있겠다. 

내친 김에 김춘수는 박생광을 디오니소스에, 그리고 전혁림을 아폴론에 비유한다. 이 비유는 말할 것도 없이 니체의 예술충동 논의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논의에 의하면 니체는 예술의 원동력으로서 디오니소스적 충동과 아폴론적 충동과 같은 두 충동을 끌어들인다. 여기서 아폴론적 충동은 질서(코스모스, 다르게는 에토스?)를 추구하는 의식을 말하며, 디오니소스적 충동은 생명력의 무한분출과 실현(카오스, 다르게는 파토스?)을 추구하는 의식을 의미한다. 예술가의 창작 혼속에는 이렇듯 상반된 두 충동이 동거한다. 대개는 이렇듯 상반된 두 충동이 한 예술가의 인격 속에서 부침하는 것. 그리고 이는 갈등(형식논리로는 긴장감)과, 이에 뒤따른 갈등의 해소(형식논리로는 긴장감의 해소)로 나타난다. 그리고 때로 그 충동의 기울기 여하에 따라서 디오니소스형 예술가로, 그리고 아폴론적 기질의 예술가로 나뉜다. 

이 분류법에 의하면 박생광의 그림은 서정적이고 다이내믹하다. 그리고 전혁림의 경우는 지적이고 추상적이며 정적이다. 김춘수는 이 자질을 전혁림 회화에 있어서 근원적인 것으로 봤다. 그의 그림에는 언제나 아폴론적인 싸늘한 지적 시선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본 것이다. 인격이 작용하고 생활체험이 작용하는(현실주의?) 형의 예술가가 있고, 사물에 대한 인식이 지적으로 작용하고 생활체험은 직접 작용하지는 않는(관념주의?) 형의 예술가가 있다고 하면서, 전혁림을 후자 즉 인식의 예술가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김춘수의 이런 해석은 전혁림이 엄밀한 기하추상주의(신조형주의)자 몬드리안(Piet Mondrian)을 회화적 전범으로서 언급하고 있는 경우와도 부합하는 것이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그럼에도 김춘수가 박생광과 비교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혁림 회화의 특질을 정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이냐면, 전혁림의 회화적 특질을 지적이고 추상적이고 정적인 것으로 정의한 것은(전혁림의 공공연한 회화적 특질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것이지 그 자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하튼 이런 관점에서 전혁림의 그림을 보면 사물대상을 화면의 논리에 맞춰 재구성하는 것이나, 특히 기하학적인 포맷의 그림들이 그렇게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엄밀한 기하추상과는 거리가 있고, 모르긴 해도 작가의 체질과도 맞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기하추상은 순수한 형식논리의 소산으로서보다는 사물대상(이를테면 전통적인 모티브와 생활 오브제와 같은)이 추상적인 형태와 색면과 패턴과 문양으로 환원된 경우로 보아야 하고, 그것들이 회화의 논리에 맞춰 재구성된 경우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하추상의 와중에서도 유기적인 형태며 포맷이 상호 간섭하는 경우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략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고 지적인 형태 속에 유기적인 형태를, 전통적인 혹은 원형적인 정서의 질감을 응축해놓고 있는 경우로 보면 되겠다. 


클레멘테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평면, 모더니즘과 모더니티 

이런 청색과 적색에 응축된 정서며 상징적 의미 다음으로 전혁림 회화의 이면에 면면히 흐르는 항상성으로 치자면 단연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을 꼽을 수가 있겠다(청색과 적색 자체가 이미 한국적 미의식의 원형이기도 하다).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각종 전통적인 모티브나 생활오브제와 같은 소재들이 이와 무관하지가 않고, 특히 민화의 영향과 재해석은 작가의 그림에 있어서 결정적인 부분이랄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민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화면의 구성, 모티브, 색채 혹은 시대성이 그것, 이라는 작가의 전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화는 특히 작가의 회화적 특질이랄 수 있는 색면구성과 색채감각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시대성이란 작가가 부연한 대로 당시 지배계층의 미감을 무시하고 서민들의 애환을 유감없이 화면에 담았던, 바로 그 애환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성에 대한 인식 혹은 자의식은 정통성을 부여받은 소위 제도권 미술의 형식논리와 권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형식에 충실했던 작가 자신의 경우며 처지와도 부합하는 것이어서 쉽게 공감을 얻고 설득력을 얻는다(작가는 국내 화가 중 누구보다도 먼저 추상형식의 그림을 선보였고, 화단이 추상과 구상경향으로 나뉘어 헤게모니를 선점하기 위해 다툴 때, 이미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하나로 아우르는 그림을 그렸다). 이로써 작가가 평생 구독했던 미술수첩과 아트인아메리카가 현대미술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면, 민화는 작가의 뿌리의식과 정체성인식을 도와준, 다르게는 전통 내지 원형에 해당하는 것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자기화할 수 있게 해준, 또 다른 교과서였다고 할 수가 있겠다. 

여기서 작가는 민화에서 화면구성, 모티브, 색채, 그리고 시대성을 배웠다고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그 자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일은 아니라고 본다. 민화에 수반된 유형무형의 그리고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전체를 다만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유형의 그리고 가시적인 경우로 치자면 형식논리가 될 것이고, 무형의 그리고 비가시적인 경우로 치자면 시대성과 정신성, 주술성과 해학성 같은 민화에 반영된 의미내용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민화 전체? 민화의 형식논리와 민화에 스며든 성정 내지 정서적 질감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민화의 형식적이고 시대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민화에는 원근법도 없고 음영법도 없다. 특정의 고정된 시점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원근법도 음영법도 고정된 시점도 없다는 것은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림을 주재하는 주체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알다시피 민화에는 작가서명이 없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민화에서 주체가 다름 아닌 익명적 주체로 대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부분이 민화의 핵심이다. 주체중심주의와 작가주의가 지배해온 미술사 내지 문명사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다. 민화에 내재된 혁명적 계기가 바로 이런 무차별주의며, 심지어 주체의 자리마저도 지워진 무차별주의다. 이런 무차별주의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차별주의와 부닥치고 충돌하기 때문에 혁명이다(예술은 매번 혁명이고 매순간 혁명이다. 예술은 자기갱신에 의해서, 예술에 대한 정의를 재정의하려는 시도며 실천논리에 의해서 추동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원근법도 음영법도 고정된 시점도 없는 그림, 주체도 없고(익명적 주체는 이미 혹은 엄밀하게 주체가 아니다), 계급도 없고 차별도 없는 그림이란 무슨 그림인가(알다시피 민화에 등장하는 모티브들 간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다만 구별이 있을 뿐. 민화는 감각적 실재를 그린 것이 아니라 관념적 실재를 그린 것이고, 보이는 그대로를 그린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그린 것이다). 평균적인 그림이고 평면적인 그림이다. 평면적인 그림? 평면(작가의 경우에는 색면구성)? 평면이야말로 알고 보면 민화에 나타난 형식논리의 핵심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클레멘테 그린버그의 평면과 만나지고, 모더니즘과 모더니티에 맞닥트린다(혹자는 민화에 반영된 익명적 주체를 최초의 혹은 본격적인 근대적 주체의 등장으로 보기도 한다). 민화에 반영된 평면과 그린버그의 평면이 갖는 상호관계성을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두 경우 다 여하튼 모더니즘과 모더니티 곧 근대의식의 표출 내지 표상으로 볼 수는 없을까. 개인적으론 상당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회화에서의 모더니즘 혹은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회화의 장르적 특수성을 추구하는, 회화의 내재적 원리며 내적 필연성을 추구하는, 회화로 하여금 회화이게 해주는 것 곧 회화의 본질을 추구하는, 그림의 의미내용보다는 점 선 면 색채 양감 질감과 같은 형식요소에서 회화의 당위성을 찾는 태도를 말하며, 이 모든 추구와 태도를 견인하는 소위 모더니즘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그린버그는 여기서 나아가 회화의 본질을 평면으로 한정한다. 점 선 면 색채 양감 질감이 없어도 그만이지만, 평면이라는 조건이 없으면 아예 회화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텅 빈 캔버스는 그 자체로 이미 회화다. 이와 관련해 조지 디키(George Dickie)는 예술과 관련한 판단을 분석판단과 가치판단으로 구분한다. 이 구분에 의하면, 그린버그가 제안하고 있는 텅 빈 캔버스는 가치판단이 아닌, 분석판단의 측면에서 회화인 것. 종합보다는 분석에 능한 서양 사람다운 발상이라고 하겠지만, 그린버그가 제안하고 있는 발상, 이를테면 회화의 전제조건으로서의 평면에 대한 인식이나, 그림은 다만 그림일 뿐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 것(그림 자체에 주목하게 한 것)은 이후 현대미술 특히 추상회화가 자기논리를 성립시키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민화의 모더니즘 혹은 모더니티는 어디서 어떻게 찾아질 수 있는가. 알다시피 민화에서 사전에 전제된 규칙이며 규준 같은 것은 없다. 그림을 그리면서 규칙이 찾아지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규준이 성립된다. 말하자면 민화에서 규칙이나 규준은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다(아마도 매번 그럴 것). 그렇게 민화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구상과 가능한 모든 상상력이 자유자재로 실험되고 제안되는, 재편되고 재구조화되는, 마치 백지의 장(아마도 그린버그의 평면에 해당할)과도 같고, 요새 식으로 치자면 의식의 영도지점과도 같다. 실로 현대적인 발상을 선취하고 있는 경우가 아닌가. 모르긴 해도 전혁림이 살아생전 거의 유일하다시피 존경하고 선망했던 피카소(Pablo Picasso)에게나 걸맞을 발상이 아닌가(주지하다시피 피카소는 어떤 형식도 인정하지 않았기에 모든 형식을 창안할 수가 있었다. 문득 피카소가 민화를 실제로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실제로 민화를 연상시키는 그림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민화는 그림은 다만 그림일 뿐이라는 사실의 인식을 전제하고 있었기에 정작 그림으로서보다는 일상품(한번 쓰고 버리는)이며 장식품(보다가 질리면 바꿀 수도 있는)으로 여겨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장식성은 현대미술 중 특히 그린버그가 지지했던 추상회화(특히 색면추상)의 중요한 한 축이기도 하다(꼭 그 때문이라고 볼 일은 아니지만, 장식성 내지 디자인적 요소가 부르는 게 값이 된 아이러니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그렇게 전혁림은 민화를 매개로 모더니즘 내지 모더니티를 담보할 수가 있었다. 한국적인 것, 전통적인 것, 원형적인 것에서 모더니티를 캐내고 발굴해 자기화했다고나 할까. 진즉에 민화에 탑재된 오래된 미래를 알아보았다고나 할까. 알고 보면 김춘수가 언급한 싸늘한 지적 시선이나, 작가 자신이 몬드리안에 빗대어 언급한 순수회화(순수한 색채와 순수한 관계의 새로운 미학에 연유한 순수한 구성) 운운하는 것이 바로 이런 모더니스트로서의 일면을 방증하고 뒷받침하는 경우라고 생각된다(순수회화는 모더니즘의 발명품이다. 체질의 소산이 아닌 인식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가 언급하고 있는 순수란, 마치 민화가 전제하는 장에서처럼, 그린버그의 평면에서처럼, 사실은 어떤 전제도 없어서 자유자재로 시작하고 마음가는대로 이행할 수 있는 경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물론 그린버그의 경우, 회화의 전제를 주지시키는 쪽에 방점이 찍혀져 있기는 하지만). 


탈모더니즘, 통섭과 융합 

국전을 구상, 비구상으로 구분하여 전시를 가지게 한 것도 이런 막연한 무지가 드러낸 소산물인 것이다. 오늘의 미술이 회화나 조각이나 건축할 것 없이 다양한 양식의 혼용 종합으로 형성되어 있다. 한 작품 속에는 구상, 추상, 초현실, 환상, 팝, 옵티칼, 몽타주, 데칼코마니 등등의 양식으로 그려져 있다. 심지어 기존 물품의 첨부, 이용, 테크놀로지적인 표현까지 있으니 어떻게 그렇게 구분할 수 있으며 한계를 명확하게 그을 수 있었을까. 여기에 한 작가가 개성적인 예술을 추구하고 제작했을 경우 엄격하게 따지면 어느 부에도 출품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오류는 화단의 잘못이고 우스운 일이 아닌가 싶다(작가의 말). 


그렇다면 작가는 다만 전통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재해석한 전통주의자이며 모더니스트일 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는 동년배의 어떤 작가들보다도 현대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지식은 때로 시대를 앞서가는 것으로 인해 평자들마저 놀라게 했다. 중요한 것은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이 다만 지식에 머물지가 않고, 그대로 작가 자신의 작업 속으로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비록 정규미술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오히려 그래서 더 기존의 관습이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아마도 모리스 블랑쇼라면 바깥의 사유라고 했을, 분방한 사유며 실천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이론과 실천 혹은 창작 양쪽을 고루 아우르고 있었고,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론이 창작을 견인하는 실질적인 계기로서 작용한 점이며, 이로써 이론과 실천의 유기적인 통합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이렇듯 작가는 아카데미 풍의 구상미술이 대세이던 시절에 이미 추상미술을 출품해 국전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고, 몇 번인가 출품해본 연후에는 더 이상의 출품을 그만 두었다. 

위에 인용한 작가의 말은 그가 왜 국전출품을 그만두게 됐는지, 하는 이유며 저간의 사정을 알게 한다.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지만, 작가가 출품하던 당시만 해도 국전의 권위는 지금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시절에 비주류인 추상미술로 수상을 했고, 바로 그 한계를 알아본 연후에는 미련 없이 국전을 떠난다. 차라리 외면했다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 예술에 대한 고루한 사고며 경직된 운영방식 그리고 여기에 소위 줄서기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평생 구독했던 미술수첩이나 아트인아메리카를 통해 학습된 견지에서 보면, 당시 국전의 행태가 작가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쉽게 상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처럼 일찌감치 국전 해바라기를 때려 치고 낙향한 탓에 작가는 오랫동안 잊힌 작가로서의 신세를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1979년 계간미술(지금의 월간미술)이 특집으로 기획한 <작가들을 재평가 한다>에서 저평가된 작가로 재평가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기를 맞게 된다(이 대목에서 언론이며 매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차대한지 실감하게 된다. 물론 지금은 채널이 많이 다변화돼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여하튼). 

국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기 위해 쓴 이 글을 뒤집어 놓으면, 그대로 작가 자신의 그림에 대한 태도와 신념 그리고 창작과 실천논리에 해당한다. 먼저, 그림을 구상과 비구상, 구상과 추상으로 나누는 것에 대한 반대와 관련해서는 작가의 평소 회화 관념이며 방법론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를테면 비록 추상미술로 국전에서 수상했다고는 했지만, 엄밀하게는 추상과 형상이, 구상과 비구상이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혼용된 형식의 그림이다. 그리고 그 형식은 이후 작가의 그림에서 비록 그 드러나 보이는 겉모양은 다르지만 그 이면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변주되고 심화되는 지배적인 양식이 된다. 이를테면 작가의 그림은 때로는 형상이 그리고 더러는 추상이 더 두드러져 보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구상 아니면 비구상으로 범주화되지는 않는다(일부 전기를 주변으로 구상이 뚜렷한 경우가 없지 않지만, 대개는). 형상이 해체되면서 추상으로 수렴되고, 추상 속에 형상이 깃드는(이를테면 문양이나 패턴과 같은 형식으로), 그래서 추상과 형상을 굳이 구분할 수는 없는, 그런 경우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작가의 회화는 구상과 추상의 중간지대에 위치하고(이경성), 구상과 추상을 넘어선 종합적인 조형세계를 일궈내고(이일), 전통과 현대가, 동양과 서양이 하나로 만나진다(이석우). 

이처럼 구상과 추상이 그 경계를 넘어 하나로 혼용되고 종합을 일궈낸 작가의 그림에선 탈모더니즘적인 기질이 확인된다. 모더니즘과 탈모더니즘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지만, 편의상 모더니즘을 경계의 논리로, 그리고 탈모더니즘을 탈경계의 논리로 정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을 하나의 규준이나 형식을 파고들어 심화시키는 환원주의(회화가 가능해지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회화를 한정하고 환원하는) 논리로, 그리고 탈모더니즘을 다양한 규준이며 이질적인 형식을 인정하고 추구하는 확산의 논리로 볼 수 있다(작고한 평론가 이일은 모더니즘 경향을 환원에, 그리고 탈모더니즘 경향을 확산에 비유한 적이 있고, 그렇게 환원과 확산은 평자가 현대미술을 읽는 잣대가 된다).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모더니즘은 정체성의 논리(특정의 형식, 특정의 이념, 특정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논리)에, 탈모더니즘은 차이의 논리(차이를 만드는 논리, 논리를 넘어서는 비논리의 논리, 이행의 논리, 생성의 논리)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형상과 추상,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어 하나로 혼용되는 것으로 치자면 현대미술에서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요새 식으론 통섭과 융합의 논리에 부합하는 면이 있고, 거슬러 올라가자면 원래 토탈아트(종합예술)로부터 시작된 예술기원론(예술이 가무와 연극 그리고 미술 등 모든 장르의 예술형식이 하나로 통합된, 신에 대한 제사로부터 유래했다고 보는)과도 통한다. 참으로 현대미술을 선취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런 선취로 치자면, 현대미술을 회화와 조각과 건축 할 것 없이 다양한 양식의 혼용과 종합으로 보는 작가의 태도며 입장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건축과 관련해 서양에서는 진즉에 파인아트의 한 분과로 봤고, 더욱이 파인아트가 종합되고 완성되는 결정체로 봤다. 요즘을 보자면, 파인아트와 건축이 하나로 만나지는 접점에서 다양한 형식실험이며 기획을 위한 구실을 끌어내는 경우가 뚜렷한 전시경향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한 작품 속에 구상, 추상, 초현실, 환상, 팝, 옵티칼, 몽타주, 데칼코마니 등등의 양식과, 여기에 기존 물품의 첨부, 이용, 테크놀로지적인 표현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이르면, 참으로 탈장르와 탈경계 그리고 심지어 탈형식에 이르기까지 각종 탈의 논리를 이미 체득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형식이 됐건 이념이 됐건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이행하는, 그리고 그렇게 이행하면서 다른 가능성의 지점을 생성시키는, 그런 현대미술의 논리를 읽는 혜안이 감지된다.  

작가가 지목하고 있는 세목들 가운데, 정작 작가의 그림에는 없는 경우로 치자면 옵티칼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미처 지목되지 않은 경우에서 찾아보자면 레디메이드 정도(그리고 어느 정도는 팝?)가 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당연히 작가를 탓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아마도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기계적인 패턴(옵티칼)에 대해선 체질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테크놀로지에 대해선 세대가 다른 면이 있고, 기성품 그대로를 제시하는 개념미술(레디메이드)에 대해선 평생 천착했던 회화적 물성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외의 세목들은 하나같이 작가가 실제로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섭렵하고 종합한 것들이다. 굳이 세목을 들면서까지 따져보았지만, 이처럼 다양한 그리고 이질적인 형식의 지점이며 계기들이 하나의 인격 속에서 섭렵되고 종합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작가가 세목으로 지목한 것들 가운데 흥미로운 것이 기존 물품의 첨부다. 기존 물품의 첨부? 바로 기성품이다. 그러나 지적했듯이 기성품은 예술장, 예술계, 예술정의를 직접 겨냥한(혹은 기성품으로 예술품을 대신하려 했던, 혹은 개념으로 작품을 대신하려 했던) 개념미술로서 작가가 평생을 추구했던 감각적인 회화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기성품이 아니라면 그 다음은 혹은 그 차선책은 뭔가. 바로 기성품들을 그러모아 집합시키고 그 자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서 제안하는 것, 그 자체를 작가에 의해 창안된 혹은 고안된 오브제의 한 경우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바로 아상블라주(Assemblage)다. 초현실주의(살바도르 달리와 자코메티)와 신사실주의(아르망), 다다(피카비아)와 입체파(피카소), 그리고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 가난한 미술, 빈약한 미술, 있는 그대로의 미술을 의미하며, 가급적 있는 그대로의 사물 자체를 제시하는. 일본 모노하의 유럽판 버전?)의 핵심개념이고 형식이고 표현이고 방법이다. 

작가는 그렇게 잡동사니들을 그러모은다. 합판, 석고, 동선, 철선, 조화, 밀짚모자, 거울 등등. 그렇게 그러모아 접착제로 붙이고 면포로 감싸고 호분을 덧칠한다. 그러면 표면이 단단하게 고착된 유기적인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그 형상은 이제 더 이상 처음의 사물도 잡동사니도 아닌, 작가에 의해 고안되고 창안된, 그 자체 오리지널리티를 갖는 제3의 형상이 된다. 그리고 작가는 그 형상 위에 덧칠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렇다면 그렇게 그려진 혹은 만들어진 형상은 그저 사물인가, 조형인가. 그림인가, 조각인가. 평면인가, 입체인가. 이 대목에서 작가의 기획이 사물과 조형, 회화와 조각,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하나로 아우르는 지경에 이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형상을 색채오브제(오광수)라고 부르고, 입체회화(김이순)라고 부른다. 사물과 조형, 회화와 조각, 평면과 입체(그리고 여기에 공간드로잉까지)를 아우르면서 넘나드는 이 형상에 대해서는 회화는 물론이거니와 조각에서마저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작가 세대에 속하는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보다 젊은 작가 층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마도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유례가 없는 일이지 싶다. 보기에 따라선 피카소에나 비교할 만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살아생전 작가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자신의 전범으로 인정한 사람이 피카소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김이순이 특히 아상블라주를 매개로 두 사람을 비교하고 있는데, 공감할 만한 여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전혁림을 피카소에 비교했다. 적어도 섭렵한 형식의 스펙트럼을 놓고 보면 이 비교는 과장이 아닌 것 같다. 두 사람 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아우르는 그림을 그렸고, 도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도화를 그렸고, 기형 자체를 직접 만들어 그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도자회화를 그렸고(이 부분에 대해서 김이순은 오브제도자 혹은 오브제도예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있다), 도조를 만들었고, 아상블라주를 제작했다. 부연하면, 도자회화는 단순한 도화와는 구별되는, 표면 채색은 물론이거니와 기형 자체가 이미 회화적이거나 조각적인 경우를 말한다(정동훈). 젊은 시절 잠시잠깐 몸담았던 이력이 바탕이 돼 작가는 도자와 관련된 부분, 이를테면 도화, 도자회화(혹은 오브제도자), 그리고 도조에 이르는 형식적 전개를 꾀할 수가 있었다. 그저 이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고, 여기에 작가의 타고난 예술가적 감수성 내지 기질이 더해진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조각과 도자의 중간쯤에 위치할 도조(그리고 여기에 테라코타까지)에 대해서도 작가는 선구적 일면이 있고, 회화와 조각,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타파하는 것을 넘어, 예술과 공예,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돌파하는, 그리고 그렇게 소위 생활 속의 미술을 선취하는 일면마저 있다. 생활 속의 미술(그 전개가 커뮤니티아트에까지 미치는)도 그렇지만, 조각에서의 도조의 위상이며, 기능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발전해온 소위 현대도예의 현실을 생각하면, 작가의 선구적 시도가 갖는 의미비중을 가늠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외에 작가는 사실상 눈에 밟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림을 그렸다. 바가지에 그림을 그렸고, 반닫이와 소반 같은 전통목기에 그림을 그렸고, 사각 목기에다 그림을 그렸다(한때 작가가 실제로 교류하기도 했던, 이중섭이 그랬던 것처럼 은박지에다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사각 목기에 그린 그림에서 작가의 후기 혹은 말년 대표작이랄 수 있는 <새만다라>가 유래했다. 사각 목기에 그린 개별그림들을 무슨 단위세포처럼 한자리에 모아놓은, 부분과 전체와의 상호유기적인 관계를 예시해주는, 이 작품은 어쩌면 아상블라주(집합)의 또 다른 한 형식일 수 있다. 이로써 각각 유기적이고 동적이고 자유분방한 형식의 아상블라주(비정형의 경우)와, 기하학적이고 정적이고 절제된 형식의 아상블라주(정형의 경우)가 실현되고 예시된다. 경우에 따라선 그 자체 음과 양이 대비되고 상보(상호보완)되는 것으로도 설명될 수가 있겠다. 실제로 그려진 그림 때문이라기보다는 구축된 형태가 불교적 색채(이를테면 연화문이 사방팔방으로 핀 사찰의 천장?)를 떠올리게 하고, 대우주(전체)와 소우주(부분)가 공명하는 것 같은 명상의 계기를 열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의 인격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허다한, 그것도 가닿는 지점마다 하나같이 완성도가 높은, 이념과 형식의 지점이며 성분들이 전혁림의 예술혼 속에서 부침하면서 종합되고 있었다. 


참고문헌
전혁림 화집, 동아일보사, 일민문화관, 1994. 
올해의 작가 2002 전혁림, 국립현대미술관, 삶과 꿈, 2002.   
CHUN HYUK LIM, 전혁림 신작전 구십, 아직은 젊다, 이영미술관, 2005.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전혁림 특별전, 경남도립미술관, 2006.
전혁림, 제6회 이동훈미술상 수상작가 초대전, 대전시립미술관, 2009. 
예술사 구술총서 002, 전혁림, 다도해의 물빛 화가 1915-2010. 
국립예술자료원 수류산방, 2011. 
미술평단, 2011 여름 제101호, 전혁림화백 1주기 특집, 2011. 
나는 전혁림이다, 작고 일주년 기념전시, 이영미술관, 2011.
신영숙, 통영 다녀오는 길, 이영미술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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