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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각가협회/ 아카이브, 질문의 기술과 이야기의 기술

고충환

한국조각가협회/ 아카이브, 질문의 기술과 이야기의 기술 


예술의 종말 이후. 헤겔은 의식의 발전단계를 정신이 자기를 실현해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먼저 의식이 주관정신의 상태에 머물 때 중교가 지배적인 시대양식이 되고, 객관정신의 상태에 이르면 그 자리를 예술이 물려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의식이 절대정신을 실현할 즈음에 예술은 그 자리를 재차 철학에게 내어준다. 헤겔이 보기에 예술은 이념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고전주의에서 정점을 찍은 연후에 의식(혹은 시대의식)은 이념의 단계로 접어든다. 감각이 지배하는 시대양식이 주술과 상징이라고 한다면, 의식은 점차 이런 감각적 확실성의 옷을 벗고 순수이념의 상태에 도달한다. 그 과정에서 매개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이고, 자신의 매개역할이 끝나면서 예술은 종말을 맞는다. 


이처럼 헤겔은 예술의 종말 이후 이념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봤지만, 요새 식으로 치자면 개념미술이 이런 이념의 시대에 걸 맞는 시대양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현대미술을 내다본 헤겔의 혜안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개념미술 곧 어떤 감각적 매개도 없는 예술이란 사실상 순수이념의 표상 단계를 넘어 그 자체를 순수이념의 제시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예술(적어도 감각적 예술)이 간여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혹은 아예 없는 경우로 보아야 한다. 여하튼 예술의 종말과 함께 어떤 감각적 매개도 없는 예술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놓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감각적 매개도 없는 예술이란 무슨 의미인가. 도대체 감각을 매개하지 않은 예술은 가능한가. 이념의 표상이 아닌, 그 자체가 이념인 예술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고 아서 단토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앤디 워홀의 재 제작된 레디메이드를 근거로 예술의 종말론을 다시 불러낸다. 피상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예술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 상상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허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구분하게 해주는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에 상황만이 남겨진다. 그저 예술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상황이 예술을 대신한 것이고, 이런 상황논리가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을 가름하게 해준다. 한마디로 예술이 상황논리로 축소되고 한정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그렇담, 이념으로서의 예술(헤겔) 그리고 상황논리로서의 예술(아서 단토)은 무슨 의미이며, 또한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을 일이다. 


이런 예술종말론을 배경으로 놓고 보면 현대미술의 난맥상이 좀 눈에 들어올 것도 같다. 현대미술의 많은 부분은 알고 보면 이렇듯 이념의 표상이 아닌 그 자체가 이념인 예술, 어떤 결정적인 예술이 아닌 다만 예술적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가변적인 상황논리로서의 예술을 제안하고 제시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현대미술의 전망이란 다름 아닌 이념들의 장(이념들의 표상들의 장이 아닌)을 향해 열리고, 상황논리들의 장을 열어놓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현대미술은 이런 이념들이며 상황논리들을 전시하는 것인데, 어떤 표상형식을 뒤집어쓰기 이전의 이념 자체이며, 어떤 결정적인 의미로 의미화 되고 형식화되기 이전의 가변적인 상황논리의 민낯이 바로 아카이브와 만나진다. 


그래서 어쩜 현대미술의 많은 부분들이 그리고 의미 있는 경우에 있어서 특히 더 사실상 이런 아카이브 유형의 전시행태와 연동된 것일지도 모른다. 목적보다는 수단(조각의 경우에 기법연구), 완성보다는 과정(프로세스아트), 단서와 단초, 동기와 계기, 인용과 차용(보르헤스), 패러디와 알레고리, 첨언과 첨부와 첨삭, 주석과 주해, 르포와 도쿠멘타(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순간의 포착), 인덱스와 기록물(브라사이), 유사과학과 실험실의 인문학, 상상의 미술관(앙드레 말로)과 세계의 모든 도서관(말라르메), 자연사박물관과 고고학, 고문서보관서와 골상학, 비 내리는 필름과 색 바랜 흑백사진,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퍼링크, 아포리즘과 에피소드, 드로잉과 에스키스, 채집과 수집, 표본과 벼룩시장, 그리고 자동기술과 자유연상과 같은, 마치 예술에 관한한 형식적이고 의미론적인 결정화의 불가능성을 증언하기라도 하는 듯한, 아카이브 자체 혹은 그 변주형식을 전시공학을 위한 한 방법론으로서 끌어들이고 풀어낸 경우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현대조각의 아카이브, 질문의 기술과 이야기의 기술 그리고 전시의 기술. 한국조각가협회가 작년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아카이브전을 열었다. 작년에 처음 시도해 본 결과 이러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러모로 향후 협회전의 성격을 바꿔줄 의미 있는 형식실험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한국현대조각의 대표 혹은 주요작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협회의 위상에 비해 그동안 소속 작가들의 면면을 어떤 일관성을 가지고 들여다 본 기회가 없었고, 덩달아 미술사적인 자리매김을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는 데에서 그 문제의식은 시작되었다. 그런 만큼 협회소속작가들의 흐름과 경향을 짚고, 그 미술사적 자리매김을 시도해보는 데에 그 일차적 의미가 있었다. 


특히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은 탓에 다소간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작가들이 직접 참여하고 진행한 프리젠테이션은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작가의 신상이며 작업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유익하고 실효성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차제에 학술세미나와 같은 좀 더 비중 있고 전문적인 행사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와 더불어 아예 작가연구 내지는 미술사적 연구를 겨냥한 학술 세미나가 함께 열려 상호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원체제로 가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현실적인 그리고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여하튼 그 단초는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전시는 아카이브전이다. 자료와 기록물 그리고 축적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다. 혹 간과하거나 놓쳤을 수 있는 기획을 위한 자리고, 잊힌 기획을 위한 자리다. 가능성으로만 남겨진 기획에 실체를 부여해주기 위한 자리고, 미처 그 형태를 얻지 못한 것들에게 형태를 부여해주기 위한 자리다. 한마디로 가능성으로 남겨진 것들, 미처 형태를 얻지 못한 것들, 미처 의미화 되지 못한 것들, 말로 치자면 혼잣말이며 속말에 머물러 있던 것들, 머리를 비운 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손 가는대로 주물주물 만들어본 것들이며 끄적여본 것들, 무의식의 지층으로 잠수 탄 것들이며 흔적으로 남겨진 것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다. 


무엇보다도 완제품을 위한 자리도 어떤 답안을 얻기 위한 자리도 아니다.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걸기 위한 자리다. 질문을 던지는 형식 자체가 작업이 되고, 이야기를 거는 기술이 곧 표현이 되는, 그런, 어쩜 지금까지의 전시관행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시생태학이며 전시공학이 실험되는 자리일 수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방점이 찍힌다는 점에서 보면 어쩜 전시장보다는 작업장이 더 어울릴 수 있고, 어떤 표상을 덧입기 이전의 이념이 생성되는 현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선 가능하다면 작가의 머릿속을 탐방해보는 것이 더 걸맞을, 그런 형식의 전시일 수 있다. 


실제로 작가의 작업실이 전시장보다 흥미진진한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유리로 만든 주먹만 한 크기의 파리한 두상이 골동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작가의 노동과 동고동락했을 소주병을 고로에 녹여 주물로 떠낸 것이란다. 오목한 그릇에 담긴 수북한 담배꽁초가 흡사 고슴도치가 잔뜩 날을 세우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당시에 저런 파노라마 사진이 가능했을까 싶은(아마도 부분 편집한 전체를 다시 찍었을), 모택동 생전 초기 공산당 시절 각료들의 사진이 어느 이름 모를 작가의 작업실에 떡 하니 걸려 있는 것을 보는 의외의 일도 있다. 


의외라고는 했지만, 이 모든 의외들은 사실은 의외가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작가의 작업을 뒷받침하는, 그리고 작가의 작업의 일부로 스며든 발상의 첨병들이었고 이념의 불씨들이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작업을 뒷받침했을, 그런, 발상의 첨병들이며 이념의 불씨들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이념이 머물고 정신이 화한 흔적들을 발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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