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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미술프로젝트 / 함창, 고령가야의 설화 속에 잠자는 시간을 깨우다

고충환

마을미술프로젝트 / 함창, 고령가야의 설화 속에 잠자는 시간을 깨우다


  <함창 예고을-금상첨화>가 2014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의 자유제안 부문에 선정되었다. 자유제안 부문은 아마도 잠재적인 아이템 개발과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운 주제에의 접근과 해석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획으로서, 앞으로도 그 순기능으로 인해 점차 확대되지 않을까 싶다. 

  그 세부를 보면 경북 상주시 함창읍의 쇠락한 마을을 미술마을로 조성한 사업으로서, 국비 3억과 지방비(경북 상주시) 4억을 합해 총 7억이 사업비로 충당되었다. 지방비가 상당액 투자된 것으로 봐서 지방이 사업유치를 위해 열의를 보였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일은 국가적 차원으로만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의 자발적인 동참이 있어야 함을 생각하면,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된 과정은 바람직한 경우로 보인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은 말하자면 지역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지역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끌어내는 계기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고, 그런 만큼 지역에 방점이 찍히는 경우로 보면 되겠다. 



함창 마을미술프로젝트


  그렇다면 함창에는 무슨 이야기가 숨어 있는가. 지역 커뮤니티를 하나로 묶어낼 만한 스토리텔링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아마도 지역 특성화 사업과 관련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상주 함창은 지역적으로 과거 6가야 중 하나인 고령가야의 고도로 알려져 있고, 지금도 전(傳)고령가야왕릉과 왕후릉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상주는 삼백(명주, 쌀, 곶감)으로 유명한데, 그 중 함창은 특히 명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후 중국산 비단 수입이 성행하는 것으로 인해 명주산업은 옛 명성을 잃고 지금은 쇠퇴하고 쇠락한 도시로 전락한 것이 현실이다. 이로써 함창의 스토리텔링으로는 옛 고령가야의 전설 내지 설화를 아님 역사를 되살리는 것, 그리고 명주와 비단에 얽힌 생활사를 복원하는 것에 그 포커스가 맞춰질 수 있겠다. 

  이에 착안한 2014 마을미술프로젝트는 함창 구도심에 <함창 예고을-금상첨화>를 주제로 한 총 21점의 작품을 조성해 소위 미술마을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도시를 재생시켰다. 그 세부를 보면 한때 경북지역의 교통요충지로서의 몫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무인역으로 남아있는 함창역과, 전고령가야왕릉과 왕후릉이 조성된 증촌리 가야마을, 지금도 여전히 오일장이 열리고 그 한쪽에선 가내수공업 형태로 생산된 명주가 거래되고 있는 함창전통시장, 그리고 읍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구양조장건물(약 500여 평에 달하는 세청도가)을 중심으로 한 함창바탕골 등 4곳을 집중적으로 조성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복안이다. 부연하자면, 여기에 함창전통시장을 예술매개공간(예술을 매개로 지역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으로, 그리고 함창바탕골을 함창예술골(예술을 바탕으로 한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그 복안이며 계획 그대로 이렇게 조성된 지역아트로드 투어를 위한 동선과도 일치한다고 보면 되겠다. 여기에 이번 프로젝트의 특징으로 치자면, 사업장소 내에 유독 빈집이며 빈 건물들이 많아 이것들을 갤러리로 조성한 점이 특이하고(이렇게 조성된 갤러리는 향후 여러 형태의 지역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매개공간으로 이용되고 전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체 환경의 특정성에 맞춘 사업개발과 접근에 의미 있는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함창 마을미술프로젝트


  그렇다면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인 금상첨화는 무슨 뜻인가. 원래 금상첨화란 비단에 꽃을 더한다는 의미이다. 비단에 꽃(꽃문양?)이 더해졌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마도 함창지역이 예로부터 명주(비단)산지로 유명했던 점에 착안한 주제일 것이다. 여기에 프로젝트팀은 꽃 대신 그림을 더한다는 의미로 개작했다. 비단길에 그림을 더한다는 의미이며, 그림으로 옛 비단길을 복원하고 재생한다는 의미이다. 이로써 명주의 산지로 유명한 함창의 특산물인 비단과 여기에 예술작품이 어우러진 금상첨화의 예술마을을 조성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커뮤니티하우스와 아카이브관


  최근에 커뮤니티아트와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새로이 부각되고 있다. 그 자체가 미술계 전반의 달라진 환경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지역미술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미술을 매개로 죽은 마을을 재생한다는 기획에 바탕을 둔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성격과 관련해서도 핵심적인 의미기능에 해당하는 개념 축으로 봐도 되겠다. 대개 커뮤니티하우스와 아카이브관은 사업의 규모로 보나 거점 역할이 갖는 중요성으로 보나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가 직접 주축이 돼 진행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2014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가 함창역사를 아카이브관으로 꾸몄다. 함창역사를 함창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프로젝트에 출품된 작품을 해설하는 아카이브 공간이며 지역커뮤니티센터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역사 천장에는 물레를 설치해 함창지역이 명주산지임을 알리는 아이콘 역할을 하게 했다. 더불어 역시 추진위원회가 주축이 돼 가야마을의 중앙우물터에다 우물터가 있는 빈집 마당을 이용해 마을주민들이 오가며 쉬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쉼터를 꾸몄다(가야사랑마을 공작소). 그리고 우물터가 있는 빈 집은 각각 방 2개와 마루 그리고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 프로젝트팀 2반이 <커뮤니티하우스 Zip in 집>을 조형했다. 집 속의 집이란 의미와 함께 함창지역의 역사를 압축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물리적 오브제인 빈집이라는 공간에 함창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응축해낸 것이다. 

  이처럼 커뮤니티하우스와 아카이브관은 커뮤니티의 자료박물관 성격과 함께, 지역주민과 이 지역을 찾는 외지인들을 매개하는 일종의 관문 내지는 안내 역할을 도맡을 것으로 보인다. 


스토리텔링, 사운드텔링, 사운드아트 


  지역커뮤니티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결정적인 경우로 치자면 그 지역만의 스토리를 발굴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스토리텔링을 발전시킨 것이 사운드텔링이다. 이야기 형식에 소리를 접목시킨 것인데, 최근의 과학적 성과를 이용한 의미 있는 형식적 시도로 볼 수가 있겠다. 

  예컨대 오승환은 <사운드텔링>에서 함창의 지역적 아이덴티티에 예술가의 감성적 해석을 더해 GPS 기술에 기반을 둔 사운드 지역 매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함창 지역을 방문한 사람이 GPS 기술을 통해 개발된 어플리케이션을 본인의 스마트폰에 다운 받은 후 재생하면 관람객의 이동경로와 현재 위치 값에 따라 내장된 사운드가 자동 재생되게 했다. 그리고 있다1팀은 <함창감음>에서 함창의 특산물인 비단을 여러 각도에서의 감각으로 재발견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여기에 토대를 둔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을 함창전통시장의 한 공간에다 설치, 여기에 함창주민들이 반응하는 인터렉티브 퍼포먼스 작품을 조형했다. 그런가하면 이재형 박정민 팀은 수직의 선들로 이루어진 영상이 관객의 손동작에 반응해 소리를 내는 미디어 인터렉션 작업 <디지털가야금>을 선보였다. 

  옛날에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수되는 구전문학의 형식을 띠었다. 그리고 이후 문자로 기록되는 문자문학 내지 기록문화의 형태로 발전했고, 이후 디지털기술이 발전되면서 그 양상은 다시 한 번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아마도 이야기에 소리를 접목시킨 사운드텔링이 그 전망을 예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사운드텔링은 문학과 음악, 서사와 소리를 하나로 아우르는 형식이 될 것이고, 이는 그대로 사운드아트에도 연동된다. 참고로 사운드아트는 전기와 전자 그리고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플러그드아트와 자연음, 우연음, 채집음, 일상음에 바탕을 둔 언플러그드아트로 구분된다. 이처럼 이야기가 소리에 접목되는 형태는 디지털기술 이후 새로운 소통방식을 열어놓고 있다. 그동안 추진해온 마을미술프로젝트의 형식이며 방법론을 확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이를 통해 동시대의 미술형식이며 그 성과를 담보한다는 점에서도 특히 주목해볼 대목이지 않을까 싶다. 


이정표와 랜드마크 


  저마다 형식은 다르지만, 마을미술프로젝트에서 빠질 수 없는 대목(품목 혹은 아이템)이 이정표와 랜드마크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승원은 명주의 염색기법과 명주 틀의 기본원리를 이용해 본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장소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와 안내판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안경진은 마을의 주민들과 아이들이 공유할 만한 함창마을의 기억과 추억이 아로새겨진 장소를 찾아가게 해주는 이정표를 만들었는데, 특히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탄생한 함창마을만의 특별한 이정표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돌멩이에 그림을 그리는 식의. 작품제작에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협업형식의 사례가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가하면 김성석의 <가야의 명주로드>는 전(傳) 가야 왕릉과 왕후의 구전 이야기에 착안해 주변마을과 길로 연이어진 형상을 조형했는데, 명주의 고장 함창의 지역적 특수성과 연관 지어 명주로드라는 신개념으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이 작품은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제법 먼발치에서도 눈에 띠는 것이어서 본 프로젝트와 관련한 사실상의 랜드마크 역할을 도맡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누에고치와 명주


  함창지역의 스토리텔링으로 치자면 단연 이곳이 과거 유명한 명주산지였다는 점을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그리고 옛 6가야 중 한 곳인 고령가야의 고도였다는 사실과 함께). 그런 만큼 이번 프로젝트에는 유독 누에고치를 조형한 작가들과 작품들이 많다. 

  이와 관련해 육근병(터)은 1936년 발견된 누에 저장고인 냉동고를 현대화한 작품을 만들었다. 계란 형태를 절반으로 자른 조형물 속에다가 모니터를 설치해 사람들의 생활사를 담았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랄 수 있는 봉분 속에서 깜박이는 눈이 그 원형이다. 봉분은 알다시피 우리나라 고유의 무덤에서 그 형태가 유래한 것이며, 그 속에서 깜박이는 눈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소위 메멘토모리의 전언을 담고 있다. 누에처럼 하얀 이 조형물에 부쳐진 터라는 제목이 예사롭지가 않다. 전작에서의 죽음의 터전(삶의 베이스로서의 죽음)과 대비되는 삶의 터전(삶의 바탕으로서의 생명력 내지 생활사)을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의지가 조형한 누에고치 형상의 조형물(숨)은 세부적으로 6개의 금속 구를 천으로 감싸고 있는 형태로 구조화돼 있다. 6가야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형상을 상징한 것이다. 한편으로 이창호가 조형한 누에고치 형상의 조형물(가야의 혼) 역시 고대 가야의 설화 내지 역사에 착안한 것이다. 고령가야의 왕과 왕비 무덤을 재해석한, 마치 침을 적셔 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방처럼, 번데기에서 나방으로 변태하는 고치처럼, 시간과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설화 속에 묻힌 이야기를 새롭게 재조명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의 작품은 누에고치면서 동시에 타임캡슐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기계적인 외양 때문일 것이다. 어쩜 설화 속에 묻힌 오랜 이야기를 지금 새삼 발굴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을 것이다. 더불어 어쩌면 현재 함창지역주민의 생활사를 봉인해 미래에 전해준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가하면 누에고치는 번데기가 될 때,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실을 토해내고, 그 실로 몸 바깥을 둘러싸는 일종의 집을 만든다. 누에가 나방이 돼 떠난 뒤에도 이 집은 명주실이 되고 비단으로 재탄생한다. 김경아 오유경 팀은 이 누에고치 형상의 가상정원을 조성했다(Cocoon Garden). 이 작품은 집의 재탄생을 예고하고, 누에에 바탕을 둔 함창의 스토리텔링을 상징한다. 그리고 백용성은 구 형태의 수많은 오브제를 주민들과 함께 설치한 <아트아케이드>를 조성했다. 여기서 구 형태의 오브제는 말할 것도 없이 누에고치를 상징하고, 상주시의 3백(白)으로 불리는 명주와 곶감과 쌀의 이미지를 암시한 것이다. 제목으로 차용된 아트아케이드는 작품 자체가 함창전통시장(함창예술시장)의 아케이드 구조의 내부 천장에 설치된 것에 착안한 것이다. 더불어 아케이드라는 용어 자체는 발터 벤야민을 연상시키고,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사유의 저장고며 시간의 저장고를 연상시킨다. 그 자체 마을미술프로젝트의 기획에 인문학적 배경을 더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다.  

  한편으로 누에고치는 그 실을 뽑아 명주를 만든다. 라온 팀은 이 사실에 착안해 명주를 소재로 한 의상과 조각보, 스카프와 모자를 만들어 전시하고, 전시작품들이 바람에 미묘하게 흔들리면서 관객들이 여기에 반응하도록 유도한 인터렉티브 환경을 조성한 라온 섬유갤러리를 만들었다. 함창의 특산물인 명주를 실제 상품 혹은 아트상품으로 구현한 경우가 되겠다. 


고령가야 설화 혹은 역사 


  함창지역의 스토리텔링으로 치자면, 이 지역 일대가 고대 6가야 중 한 곳인 고령가야의 고도라는 점이다(유명한 명주산지라는 사실과 함께). 이런 역사적 사실이며 지정학적 사실은 중요한데, 그로부터 지역을 특성화할 수 있는 이러저런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유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역사와 설화, 신화와 전설 같은, 그 자체 공동체 의식의 구실이며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 그리고 여기에 창작주체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서사들의 보고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마을미술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특별히 주목할 만한 항목이며 아이템 중 하나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양현진은 색유리 벽화로 쌍봉도를 제작했다. <왕의 동산>이라 이름 부쳐진 이 작업에서 작가는 꽃과 풀 사이를 노니는 잊힌 가야 왕과 왕비를 두 마리의 봉황으로 되살려냈다. 그 옛날 영화로운 일상을 유유했을 왕과 왕비처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고순정 윤동환 팀은 <금상천화>(비단에 수놓은 하늘에서 내려온 꽃?)에서 왕과 왕비 이야기를 견우와 직녀 설화를 대입해 개작했다. 인간 세상에 내려온 직녀가 견우를 만나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각각 원화 20점과 만화책 200부에 담았다. 원화 중 2점은 움직이는 영상작업(디지털액자)으로 꾸며 이야기에다가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석환은 고령가야 설화에 착안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펼쳤다(가야별곡). 이와 함께 작가는 현지에 체류하면서 일종의 예술상회를 열기도 했는데, 솟대시연, 토우 만들기, 족자그림, 초상화 시연, 고무신과 티셔츠에 그림그리기 등 주민들 및 상인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상회라는 형식이 주목되는데, 그저 아트상품을 사고파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술 혹은 예술행위를 매개로 지역주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열어놓고 있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생활사, 시간, 역사 


  마을미술프로젝트와 관련해 중요한 점으로는 현지밀착형 플랜을 개발하고 제안하는 일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현지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아마도 현지주민의 소소한 생활의 주변머리를 채집하고 기록한 생활사가 그 플랜을 예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내용으로만 보면 아카이브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아카이브와 다른 점은 이를 작업으로 그리고 작품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지는 엽전 모양의 조형물에다가 타공 기법을 이용해 풍속도를 재현했다(거룩한 풍경). 엽전이며 풍속도를 매개로 고령가야 시절의 생활사를 담아낸 것이지만, 그 이면에서 현대의 생활사를 암시하는 일종의 시간여행을 염두에 둔 기획일 것이다. 그리고 이강준은 함창의 생활사를 모노톤 계열의 벽화로 승화시켰다(명주 이야기). 이를테면 물레장면이나 씨름장면 그리고 전통시장을 소재로 한 것과 같은. 이런 벽화로 치자면 있다2 팀의 <요아킴 추이아 갤러리>가 주목되는데, 초현실주의 풍의 벽화로 갤러리를 꾸몄다. 그리고 이보다 흥미로운 점으로는 함창예고을 곳곳에 보면 흔히 시골마을이 그렇듯 자연석이며 낡고 색 바랜 오랜 벽면들이 많다. 그 자연석이며 벽면들은 대개 이러저런 크랙과 함께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아 있기 마련이어서 현지를 찾은 이방인들에게 어떤 알 수 없는 향수에 빠져들게 만든다. 어쩜 자연이 만든 그림이랄 수 있을 것인데, 작가들은 여기에 인공적인 그림을 부가했다. 비정형의 얼룩과 크랙을 조형요소로 끌어들여 또 다른 이방인(?)의 얼굴 초상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동네 어귀를 돌다보면 불현듯 반가운 얼굴들과 만나지는 흥분과 재미가 있다. 

이런 생활사는 시간이 만들어준 것이고 역사가 축적된 것이다. 문제는 시간 자체는 색깔도 형태도 없다는 점이다(이에 비해 역사적 사실은 사료가 있고 자료가 있어서 좀 더 용이하게 접근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시간 개념과는 구별된다). 해서, 이런 비가시적인 형태를 가시의 층위로 끌어내는 데에 작가들의 과제가 있고 숙제가 있다. 함창바탕골에 가면 이런, 시간을 머금고 있는 오래된 빈 집이 있다. 한 때 읍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구양조장건물 세청도가가 그곳이다. 여기에 작가들이 개입했고, 조형을 매개로 비가시적인 시간을 시간의 집으로 가시화했다. 

  그 면면을 보면, 김승영 박기진 팀은 테이블 형태의 바와 책꽂이, 누에고치 형태의 조명등과 고벽돌 등 재료며 구조물을 이용해 술도가 내부를 일종의 타임캡슐로 그리고 시간의 집으로 탈바꿈시켰다(술도가). 그런가하면 이재형은 작업의 제목을 아예 <술, 시간을 깨우다>로 부쳤다. 아마도 정지된 시간을 현재 위로 되불러온다는 의미이며, 정적인 시간을 동적으로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액체 형태의 막걸리가 공기에 의해 부풀어 오르고 줄어드는 과정을 반복해 보여주는 동적 효과로 인해 마치 숨 쉬듯 부유하는 형상을 조형했다(프로세스아트?). 그리고 여기에 은은한 조명과 전통적인 음악 선율이 어우러져서 살아있는 효모로 담근 술인 막걸리에 내재된 생명을 가시화한 미디어아트 설치작품이다. 더불어 막걸리 주전자와 함께 일종의 실루엣박스를 설치해 시간을 조형했다. 


학교미술관, 지붕 없는 미술관, 상상의 미술관


  그리고 상주예총 작가들이 주축이 돼 삭막한 시골 초등학교를 어린이들과 지역주민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학교미술관으로 꾸몄다. 이런 학교미술관은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지향하고 있는 지붕 없는 미술관과도 통하고, 나아가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미술관 개념을 예시해주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로 그림을 그린다. 상상한다는 것 그리고 생각한다는 것은 곧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는 그 날, 예술을 매개로 저마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그 날, 그리고 그렇게 예술이 생활을 파고드는 그 날을 마을미술프로젝트는 꿈꾸고 있고, 그 꿈의 일단이 이번 <함창예고을-금상첨화> 프로젝트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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