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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판화 1958-2008

고충환

한국현대판화 1958-2008, 판화의 장르개념을 넘어 판법의 형식개념에로


국립현대미술관 / 2008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현대판화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전시 <한국현대판화40년전>을 기획한 것이 1993년의 일이다. 물론 이외에도 <한국현대판화드로잉대전>(1980), <한국현대판화전>(1999), <한국현대판화모음전>(2003)이 있었지만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한국현대판화 전체를 대상으로 그 의의와 위치를 짚어낸 경우로는 이 전시가 그 진정한 효시라고 할만 하다. 그리고 벌써 십수 년이 지나기도 했지만, 이와 함께 특히 내년이면 1968년에 창립된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40주년을 맞는 해여서 이번 전시 <한국현대판화 1958 - 2008전>의 의의는 그만큼 더 크다.


1950.60년대, 한국판화협회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창립


한국현대판화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대개 한국판화협회가 창립된 1958년을 그 시점으로 잡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각에서는 해강 김규진의 시전 ‘난초’가 석판화로 제작된 1905년을 그 시점으로 보기도 하지만, 편지지를 위한 밑그림으로 제작된 그 판화에 대해서는 엄밀하게는 생활판화로 범주화된다. 따라서 판화의 장르적 특수성이나 고유의 미적 대상성을 의식한 경우와는 구별된다.

한국판화협회가 창립된 1950년대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립된 1960년대(1968년) 당시 국내화단은 크게 아카데미즘 풍의 형상미술 계열과 추상미술 계열로 양분되며, 이는 국전에 의해 지지되고 있던 세력과 이에 반대하여 반국전을 기치로 내건 추상미술 계열의 구분과도 일치한다. 특히 추상미술은 소위 뜨거운 서정추상을 표방하는 앵포르멜 경향과, 상대적으로 차가운 추상을 표방하는 탈앵포르멜 경향, 그리고 설치와 해프닝을 통한 탈평면의 경향이 공존했다.        

그리고 70년대는 모노크롬 회화가 대세를 이룬 시기로서, 예술의 자율성과 장르적 특수성의 추구로 특징 된다. 이는 서구 모더니즘 회화의 순수주의, 형식주의, 절대주의, 환원주의의 논리를 바탕으로 회화에 있어서의 모더니티를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연이은 80년대는 현실주의 미술과 순수주의 미술과의 이념 논쟁이 첨예화된 시기로서, 진작에 현실참여를 표방한 민중미술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제도권 미술에서 마저 소위 한국적 개념주의 미술과 미니멀리즘을 아우르는 모노크롬 회화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 경향이 시대정신과는 동떨어진 예술의 자기논리에 한정된 지적 유희에 머물러 있다며, 이를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국내 화단은 80년대 중반에 도입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바탕을 둔 다원주의 경향을 보이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돌이켜 보면, 초창기에는 판화를 회화를 위한 형식실험의 한 방편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만큼, 화가가 판화를 제작하는 형태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후, 판화 자체의 장르적 특수성을 인식하고 판화만을 전문으로 하는 본격적인 판화가가 등장한 것은 유학파들이 교육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초창기의 현상을 형식실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판화의 내적 특수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것만큼이나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분방하고 치열한 판화제작환경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현대판화의 도입과 현대미술의 도입이 그 시기를 같이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국현대판화의 태생적 배경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말하자면, 현대판화는 회화와 밀접한 관련 하에서 태어났고, 이를 근거로 자기 정체성을 발전시켜온 것이다.

1958년에 창립된 한국판화협회 작가들은 한국현대판화 1세대 작가들이랄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68년에 창립된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작가들은 그 2세대에 해당한다. 한국판화협회는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석판화가로 알려진 이항성이 창립했다. 이항성은 1956년에 광화문 근처에서 미술교육출판사를 경영하면서 계간 '신미술'지를 발행했으며, 오프셋 인쇄기법을 응용한(주로 교정기를 이용) 석판화를 제작했다. 석판화란 원래 석회석에 지방기가 있는 묘화 재료를 사용하여 찍어내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판화기법이지만, 그는 주로 아연판을 이용해 판화를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아연판과 알루미늄판은 석판의 대용으로 널리 사용돼 왔다. 이후 아연판은 공해 문제와 비싼 가격, 무엇보다도 일정량의 에디션을 찍어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 사용이 점차 기피되었는데 반해, 알루미늄판은 현재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항성은 1958년에 아연판에 제작된 석판화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이러한 기법으로 자신의 판화 이외에도 이상욱, 김정자, 유강렬 등의 작품도 찍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이봉상과 함께 최초로 석판인쇄에 의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제작하는 등의 일찍이 인쇄와 판화와의 친근성을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석판화 기법에 대한 그의 시도 및 업적은 이후에 동일 장르에 대한 한 모범적 사례가 되고 있다. 

그의 석판화는 전통적인 먹그림과 붓글씨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편이며, 먹의 번짐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판종 고유의 특징을 살린 것이다. 그는 1958년 미국 신시내티미술관에서 열린 제5회 국제현대컬러리토그래피전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이항성은 본 협회를 창립하고, 같은 해에 제 1회 한국판화가협회전을 중앙공보관에서 개최했다. 당시 이항성을 비롯한 유강렬, 이상욱, 김정자, 최영림, 정규, 임직순, 장리석, 변종하, 차혁, 박성삼, 박수근, 최덕휴, 전상범, 이규호 등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항성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우드컷으로 판화를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본격적인 판화제작이 어려운 당시의 열악한 여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랜 목판화의 전통에 대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공감이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대략을 보면 목판의 무늬를 그대로 살려낸 유강렬의 목판화에서는 전통적인 서체의 자유분방한 변형이 돋보이며, 닥지에 찍어낸 이상욱의 목판화는 심플하면서도 서정적인 화면이 특징이다. 향토성 짙은 최영림의 목판화는 일본 태평양 미술학교 유학 시절, 당시 일본의 목판화가 무나카타 시코의 영향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리 부는 소년과 나체의 여인들을 소재로 한 목가적인 전원 풍경화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934년과 40년에 각각 일본창작판화가협회전에서 입선하기도 한 그는 국내 최초의 현대판화작가로 평가된다. 또한 1956년 국내 최초로 목판화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한 정규의 목판화는 심플한 구성과 회화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화면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석재인 화강암의 표면질감을 도입한 박수근의 목판화는 당시 한국의 서민들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둘투둘한 표면질감과 굵고 간략한 선으로 축약된 인체 표현을 통해서 그의 목판화는 그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경우로 생각된다.

한국판화협회는 정기적인 협회전과 함께 1968년에 처음 개최된 이후 1975년까지 존속된 신인 공모전을 통해서 송번수, 이승일, 김진석, 김태호, 백금남, 이인화 등 차세대 판화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 경향을 보면 이승일은 주로 펄프 릴리프와 새리그래피를 혼용한 작업으로써 공(空)을 주제화하고 있다. 또한 백금남의 실크스크린 판화는 글자를 변형시키고 양식화한 일종의 문자조형 작업이랄 수 있는 칼리그래피의 한 전형을 내놓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인화는 마치 무수한 비정형의 얼룩들이 중첩된 추상화면을 연상시키는 딥 에칭 작업, 회화의 자율성과 목판 고유의 물질적 특성을 극대화한 목판화, 그리고 전통적인 기물이나 소품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컬러 메조틴트 작업을 각각 선보이고 있다. 사물의 장식적인 재구성을 보여주는 메조틴트가 구상화적인 감수성을, 그리고 에너지의 방출이 느껴지는 딥 에칭과 목판화가 추상화적인 감수성을 각각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68년에 창립된 한국현대판화가협회에는 강환섭, 김민자, 김상유, 김정자, 김종학, 김훈, 배륭, 서승원, 유강렬, 윤명로, 이상욱, 전성우, 최영림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여기서 일부 작가들이 한국판화협회 창립작가와 겹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한국판화협회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는 그 정체성이 구별되기보다는 연장된 경우로 봐야 할 것이다. 1968년 제 1회 한국현대판화가협회전을 신세계화랑에서 개최한 본회는 1970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데에 결정적인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시기와 관련하여 주목할 점으로는 당시에 주한 미공보원을 통해 흘러나온 실크스크린 재료와 판법이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충동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특히 배륭, 강환섭 등이 실크스크린 판법을 본격적으로 수학함으로써 이후 동일 판법에 의해 제작된 판화의 붐을 조성하게 되는 한 단초가 되었다. 당시 시중에는 상업적 목적으로 시설된 실크스크린 공방이 몇 군데 자리하고 있어서 발주에 의한 제작도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경향을 보면 배륭의 실크스크린 판화에서는 컬러풀한 색면 대비 효과와 함께, 문자의 도입으로 인해 팝아트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와 함께 기하학적인 구조물 속에 위치시킨 인물에게서는 일말의 명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또한 탈앵포르멜을 표방한 '오리진'의 맴버이기도 한 서승원의 석판화 <동시성> 시리즈는 기하학적인 형상과 중첩된 색면 구성이 특징이며, 근작에서는 색면이 더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리고 윤명로가 60년대 초 실크스크린 판화로 제작한 <문신> 연작은 당시 앵포르멜 경향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 석판화로 제작한 <얼레 짓>과 <익명의 땅> 시리즈는 해먹에 의한 석판화 특유의 미세 얼룩과 번짐 효과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근작에서는 겸제 예찬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과 함께, 리토그래피 제작에 토너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특기할 만한 사실로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창립에 자극 받은 이항성이 동년(1968)에 <한국현대판화 10년전>을 기획 전시했다는 점이며, 당시 이항성을 비롯하여 김영주, 정규, 유강렬, 최영림, 배륭, 김정자, 강환섭, 이상욱, 윤명로, 김상유, 김종학 등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들 작가의 명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판화협회작가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작가들을 아우르는 사실상의 당대의 현대판화가들을 망라한 전시였다. 


1970.80년대,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와 공간국제판화전 창립과 민중목판화운동


1970년에는 동아일보가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를 개설한다. 격년제로 열린 본 전시는, 72년의 2회 전시와 81년의 3회 전시 사이에 공백이 있었고, 이외에도 5회 전시 때는 외국인 심사위원이 배재되는 등의 대외적인 위상과 공신력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본 전시가 우리 판화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가 배출한 주요 작가들로는 김상유(1970), 송번수(1972), 김태호(1986), 지석철(1992)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김상유는 정상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판화를 습득했다는 점에서 한국현대판화사에 있어서 특이한 존재로 생각된다. 그는 실크스크린과 목판화 기법을 혼용한 <출구 없는 방>으로 첫 회 대상을 수상한다. 흑백의 모노톤의 화면에 담아낸 함축적이고도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가 암울했던 당시 시대적 정황에 대한 인식을 고지시키는 한편, 인간 실존의 부조리함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 평가받았을 것이다. 이외에도 그는 마치 전통적인 문양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일종의 모자이크화를 보는 듯한 에칭 동판화를 내놓고 있는데, 이로부터는 소박하고 고답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런가하면 연못을 끼고 있는 정자 한가운데에 정좌해 있는 노인(아마도 작가 자신의 초상일 듯싶은)을 소재로 한 근작들은 전통적인 선비 정신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포토스크린 판화 <판토마임>으로 2회 대상을 수상한 송번수는 근작에서 페이퍼캐스팅을 매개로 한 가시나무 형상을 다변화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김태호의 판화는 그의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재료로서 도입된 안료의 물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한편, 그러데이션 기법에 의한 색면 구성과 함께 중첩된 화면에 바탕을 둔 추상화면이 특징이다. 

그리고 1980년에는 월간 건축미술문화 잡지 '공간'의 창간자인 고 김수근에 의해 공간국제판화전이 창립된다. 특히 공간국제판화전은 공간국제소형판화전이 원래 명칭이며, 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형 판화의 미학적 가치를 지향했다. 실제로 출품판화의 규격을 10x10cm로 제한함으로써 판화 고유의 작은 맛과 세밀함을 중시했으며, 최근에는 이러한 제한 규정이 본 전시의 특수성과 관련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 향후 보다 자유분방한 현대판화를 수용할 요량으로 소형 판화의 규격 제한을 폐지했다. 공간국제판화전이 배출한 주요 작가들로는 장영숙(1980), 김형대, 김태호(1982), 전경자, 손철호(1986), 이재호, 강승희(1988), 정상곤, 김연규(1990), 박정호, 이상기(1994), 정헌조, 서희재(1996), 배선미(1998), 구자현(2002) 등이 있다. 

특히 구자현은 공간국제판화전에서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로 공식명칭을 변경하는 것을 계기로 소형판화 제한규정을 철회한 직후 대상을 수상한 것이 여타의 작가들과는 다른 점이다. 이처럼 공간국제판화전은 비록 최근에 그 제한규정을 철회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소형판화 특유의 밀도감을 강조하는 것에서 그 진정한 의의가 발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의 인식은 단순히 크기의 문제라기보다는 느낌의 질과 관련이 깊다. 

그 경향을 보면, 장영숙은 컵과 그 속에 담겨진 물을 소재로 한 심플하고 관조적인 인타글리오 판화 <Water>로 제1회 대상을 수상한다. 그의 판화에서 화면의 대부분은 여백에 할애된 채로 남겨지며, 화면은 최소한의 선과 면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절제된 화면이 실제와 비실제가 공존하는 다차원적인 공간을 열어 놓는가 하면, 판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풍경의 존재감이 지나치게 희박해서 마치 망각의 심연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아스라한 심경을 갖게 한다.

그리고 강승희의 수상 작업은 정적과 여명에 싸여 있는 도심의 변두리 풍경을 통해서 삭막한 도심의 이면을 들추어내 보인다. 근작에서는 새벽녘의 한강변을 소재로 하여 어스름하고 파르스름한 대기의 분위기가 강한 시적이고 서정적인 화면을 재구성해내고 있다. 형상을 실루엣으로 단순화시키고 화면의 상당 부분을 여백에 할애함으로써 새벽녘의 대기를 강조하는 작가의 방식은 대상을 즉물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작가의 내면에서 한차례 걸러진 일종의 내면화된 풍경을 보여준다. 

또한 박정호의 판화는 주로 여체와 꽃 그리고 달이 떠 있는 텅 빈 밤의 정경을 결합시키는 방법으로써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정적이고 관조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화면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어둠이 지배하는 절대 침묵의 공간 속을 부유하는 생명의 상징들이며, 그 상징의 편린들이 화면을 일종의 내면화된 우주의 메타포로서 재편해내고 있다. 흑과 백의 대비가 강한 공간 속에서 생명을 암시하는 여체와 대지 그리고 달의 신화적 의미가 결합된 정적인 화면이 명상의 계기에로 유도한다. 

그런가하면 1980년대 국내화단은 소위 순수미술 진영과 민중미술 진영간의 이념 대립이 첨예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민중미술은 민중을 계몽하는 한편, 자신의 이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줄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서 벽화운동과 걸개그림 그리고 민중목판화운동을 널리 전개하기에 이른다.

특히 민중목판화운동과 관련하여 오윤을 그 대표적인 경우로서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오윤이 제작한 판화는 널목판 형식의 목판화(우드컷)와 일부 압축고무판화(리놀륨) 작업들이다. 칼맛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선이 굵고 질박한 목판화는 여백과 모티브 부분을 하나로 넘나드는 데서 오는 호흡으로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며, 이념성(메시지)과 도상성(전형성)이 강하게 부각된 인물 표현을 낳고 있다. 원래 조각을 전공했던 작가가 정작 조각보다는 판화에 주력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판화가 갖는 특징 즉 특정의 이념을 보다 손쉽고 효율적으로 표현, 전달하고 소통시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주요 판화 작품들 대개가 유명을 달리 하기 불과 수년 내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것들이어서 그런지 어떤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이로써 일종의 정한의 미(한을 자기 내부로 불러들여 정조화한)로 정의할 만한 미적 감수성의 한 경지를 예시해준다.

그런가하면 정원철은 리놀륨 판화 <대석리 사람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 <초상> 시리즈를 통해서 보통 사람들의 초상의 한 전형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개인사 즉 개인의 삶의 역사가 집약된 일종의 상징이자 기호이며 삶의 지도로서의 초상이 갖는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작가의 판화를 특징짓는 요소로서 초소형 핸드 그라인더에 의한 경직되지 않으면서도 대상의 세밀한 부분까지를 포착해내는 특유의 선묘를 들 수 있다. 조각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속도감이 회화적 깊이를 더할 뿐만 아니라 유기체의 생리를 그대로 닮은 유연한 선묘와 스크레치가 초상에 각인된 삶의 상처를 드러낸다. 근작에서 작가는 기존의 초상과 함께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이건 작가의 판화는 현실주의 미학에 바탕을 둔 리얼리티의 실천에 그 맥이 닿아있다. 

이외에도 주요 민중목판화 작가들로는 김봉준, 김진하, 김종억(김억), 김준권, 남궁산, 류연복, 이철수, 이인철, 정비파, 홍성담, 홍선웅 등이 주목된다. 현재 이 일군의 작가들은 당시의 민중목판화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정신에 맞게 일정한 자기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를테면 도가사상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간결한 묘사와 경구가 함축적인 선 목판화(이철수), 유명 무명의 문화유적지를 답사하고 그 인상을 그림으로 옮긴 기행 목판화(홍선웅), 겸제 정선의 진경정신에 그 맥이 닿아있는 생태 목판화(김종억, 김준권, 류연복), 그리고 장서표(남궁산) 등이다. 특히 장서표는 책의 표지나 뒷면 또는 안겉장에 붙여 책의 소장자를 밝히는 일종의 소형판화의 한 형식으로서, 문자와 그림의 조화로운 결합을 그 기본으로 한다. 이는 예로부터 전래하던 장서인이 더욱 예술적인 형태로 가공되고 독립된 장르로서 정착된 경우랄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서울판화미술제와 내일의 판화전


1995년에는 한국판화미술진흥회가 설립되었으며, 이를 주관사로 하여 본격적인 판화 전문 아트페어인 서울판화미술제를 개최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시 같은 해에 내일의 판화전이 열렸으며, 이 전시는 연이은 3회 전시 이후 폐지되었다. 서울판화미술제가 판화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꾀했다면, 내일의 판화전은 순수 창작판화의 표현 가능성과 실험적 모색에 있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사료된다.

판화의 대중화 내지는 생활화를 기치로 내건 서울판화미술제는 1995년 3월 프랑스 사가(SAGA)에 이어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판화만의 단일 장르로 구성된 판화전문 아트페어로서 이후 매년 한차례씩 개최된다. 서울판화미술제는 1994년에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해 순수한 민간차원에서 기획된 ‘서울판화도시탐험전’을 그 모체로 한다. 이렇게 서울판화미술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기 이전에 실험의 장을 통해 여타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은 시의 적절한 것이었다. 이와 때를 맞춰 ‘한국판화미술진흥회’가 출범해 그동안 다원화돼 있던 창구를 일원화함으로써 종전의 주먹구구식이 아닌 보다 구체적인 행정력으로 작가와 화랑에 대한 입체적인 지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판화미술진흥회가 주축이 돼 판화 무크지 <M.o.o.k>를 발간하기도 했는데, 이는 판화전문잡지가 전무한 현실에서 그 이론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시시적절한 시도로 보인다. 

서울판화미술제는 국내외 유명 화랑들이 참여하는 판화견본시장과 함께 특별전 형식의 전시를 병행함으로써 교육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기도 하다. 그 주요 사례로는 1995년 <한국의 고 근대 판화전>, 1996년 <폴 자쿨레의 우키요에 목판화전>, 그리고 1997년 <중국판화의 흐름전>을 들 수 있으며,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함으로써 소위 아시아성 담론의 형성에도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1년과 2002년에는 사진특별전을 연이어 개최함으로써 생리적으로 판화와 사진이 갖는 친근성을 공공연하게 표명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서울판화미술제는 <벨트 BELT전>을 통해 신진작가 발굴과 육성에도 일정한 힘을 기울여오고 있다. 

1995년 연말에는 내일의 판화전이 열렸다. 판화가 지나치게 상품화하는 것을 견제하는 한편, 난맥상을 보이는 현대미술의 장으로부터 판화의 정확한 의미와 위치를 짚어내고, 그리고 판화 고유의 표현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취지 하에 개최된 내일의 판화전은 1995년, 1996년, 1997년 세 차례의 연이은 전시 이후 그 막을 내린다. 이렇듯이 한정적으로 전시를 운영하는 것은 아마도 전시 자체가 정전화로 굳어질 수 있다는 반성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 개략적인 성격을 보면 판화의 개념을 좁게 설정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넓게 설정하고 있는데, 그 광의의 개념이 판화를 대상으로 한 다른 전시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다. 

세부적으론 1995년 전시에서는 정통적인 판화와 함께, 실험성을 수용하되 에디션이 가능한 작품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1996년 전시에서는 정통판화의 기법에 충실하면서도 판화의 규모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100호 이상의 대작을 중심으로 한 점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원판이 존재하지 않는 작품, 모노타이프나 모노프린트, 사진이나 영상작업 중 필름을 직접 제시하거나 인화하고 투영한 작품, 그리고 페인팅과 같은 작품을 제외시켰다. 또한 1997년 전시에서는 평면성의 확장, 간접성의 확장, 복수성의 확장 등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판화를 중심으로 아티스트 북이나 컴퓨터프린트와 같은 실험정신이 반영된 판화를 아우르는 등 판화표현의 경계를 확장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사료된다. 

전시와 함께 비록 1호를 간행하는 것에 그쳤지만 판화전문잡지 <Vision>을 창간해 판화전문 담론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려는 의욕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리고 연이은 3회 전시가 종결된 1999년에는 <off print전>이 열려 <내일의 판화전>이 갖는 의의를 되돌아보게 했다. 강애란, 곽남신, 김용식, 서정희, 송대섭, 안정민, 윤동천, 정상곤, 정원철 등 현재에도 실험성이 강한 판화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일군의 작가들이 참여한 본 전시는 향후 판화의 범주를 그 외의 이접적인 영역에로까지 확장시키는 사실상의 계기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 경향을 보면, 강애란은 투명 폴리로 책을 캐스팅한 오브제 작업, 동영상을 도입한 전자책, 그리고 최근의 도서관이나 서가를 재현한 사진과 영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책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작가는 책 속에서 인간의 역사를 그리고 지식의 역사를 본다. 책은 말하자면 정신적 사유나 지식의 메타포의 한 형태로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곽남신은 일관되게 기호가 내재한 의미, 기호가 발생시킬 수 있는 아우라, 기호를 어떤 상황이나 문맥 속에 놓는 방식에 주목해 왔다. 이는 <우리 시대의 이콘> 연작으로 나타나며, 여기서 이콘이란 일종의 기원 내지는 주술적인 치유력을 암시하는 기호의 특수성을 말한다. 이런 이콘 시리즈와 함께 근작에서는 꽃잎이나 기물 등의 소재를 실루엣의 암시적인 평면으로 환원시킨 심플하고 장식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김용식의 <영원과 한계> 시리즈는 십자가의 변형 이미지와 시계의 변형 이미지 그리고 빛 이미지의 도입을 통해서 영원성에 바탕을 둔 일종의 기독교적인 도상학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나무판이나 유리판 그리고 스텐레스 스틸 망과 같은 지지대를 다변화한다거나, 유리판에 이미지를 새겨 넣는 방법으로써(일종의 유리에칭) 꽃과 같은 자연 소재를 형상화한 서정희의 작업에서는 정통적인 판법과 재료를 확대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형식실험의 일면이 느껴진다.

송대섭의 모노타이프 <갯벌> 시리즈에서는 중층화된 화면과 회화성이 두드러져 보이며, 최근의 생태와 환경 논의에 그 맥이 닿아 있다. 그런가하면 다양한 판법을 소화해온 안정민은 근작에서 투명 아크릴 판에 각종 들풀이나 식물의 씨앗을 붙여 압착시킨 작업을 보여준다.

판화 자체로서보다는 개념미술과 설치작업에 주력해온 윤동천은 근작의 디지털프린트에서 일상적인 삶의 현장으로부터 채집해온 일련의 대비되는 화면을 통해 이미지와 정보가 동격으로 인식되는 동시대의 이미지의 존재방식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정상곤은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디지털프린트를 통해 기계적인 프로세스와 아날로그적인 물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해내고 있다. 근작에서는 각종 매스미디어에서 이미지를 차용해와 이를 재구성해 보여주는 식의, 원본과 사본과의 임의적인 경계와 그 조작과정에 천착하고 있다.    


이제 판화는 공정의 전 과정이 수작업에 의해 이뤄지는 한편 에디션 제작이 가능한 소위 순수판화를 비롯한 모노타입이나 모노프린트, 오프셋판화, 입체판화(설치판화), 테라코타와 세라믹의 도부조판화, 수제종이로 떠낸 페이퍼캐스팅, 공정의 상당한 과정이 매체의 도움으로 이뤄지는 디지털프린트, 아티스트북이나 아트북, 멀티플 조각, 홀로그램과 랜티큘러, 그리고 사진과 심지어는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그 외연이 상대적으로 더 넓어지고 유연해진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판화의 표현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과 함께 보편화된 디지털 환경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판화 자체의 매체적 특수성이 이러한 변화된 인식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판화는 태생적으로 인쇄매체와의 상관성을 견지하고 있고, 각종 기록문화와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다. 판을 매개로 한 중간과정이 요구되는 판화의 속성은 특정의 틀을 매개로 한 중간과정이 요구되는 주물조각의 과정에 일치하며, 이는 판화나 조각이 하나같이 멀티플이라는 특정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미지를 찍어내는 판화의 프로세스에서의 고유성은 일종의 빛이 찍어낸 그림에 바탕을 둔 사진의 프로세스에 합치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판화나 멀티플 조각 그리고 사진은 에디션 개념에 의해 하나로 묶인다. 여기에 제록스프린트와 포토샵 그리고 심지어는 3차원 입체 스캐닝과 같은 기계적인 조작과정을 아우르는 디지털 프로세스마저 가세해 사실상의 복수 재생산될 수 있는 모든 것이 판화의 외연을 형성하고 있다. 일면적으론 어디서 어디까지가 판화인지 혹은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판화 자체의 속성만을 놓고 본다면 그 경계와 한정에 대한 논의가 무의미할 정도로 판화의 외연은 넓고 그 경계 또한 열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판화는 온갖 이질적인 장르와 형식의 지점들을 가로지르며 이 모두를 하나로 통합해 들이는 소위 ‘관계’에 뛰어난 미디어인 것이며, 크로스오버나 하이브리드 컬처 그리고 무엇보다도 토탈아트를 지향하는 동시대 미술환경과 관련해 볼 때도 가장 강력하고도 실효성 있는 미디어인 것이다. 이제 판화의 장르 개념 대신 판법의 형식개념을 강조해야 될 시점에 오지 않았나 싶다. 판화를 강조하는 것이 판화를 장르적 특수성 속에 묶어두는 행위라면, 판법을 강조하는 태도는 그 장르의 벽을 넘나들면서 허물게 해준다. 이로써 일체의 유형무형의 이미지나,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이미지를 전사하고 전송하는 모든 미디어와 메커니즘을 아우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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