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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선금 / 플라스틱 행성의 자전

이선영

플라스틱 행성의 자전

 

이선영(미술평론가)

 


회화나 조각, 또는 수공예와 달리, 대량생산품을 재활용한 원선금 스타일의 작품은 현대에만 가능할 것이다. 현대적 소재를 사용했다고 현대미술인 것은 아니지만, 작품에 대거 동원된 플라스틱 더미를 보면 현대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회화나 조각, 수공예가 기계 복제 시대에 와서 위기에 빠진 점을 생각할 때, 현대 예술가가 손에 닿는 일상적 재료에 눈길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도시에 사는 새가 더 이상 나뭇가지만으로 새집을 지을 수 없듯이 말이다. ‘플라스틱 숲’이나 ‘플라스틱 플래닛’ 같은 작가의 개념어들은 특정 산물들이 전면적인 환경이 되었음을 말한다. 원선금은 현대를 ‘플라스틱 사회’라고 본다. 일회용품이라는 소재를 예술화하는 과정에서, 설치미술이라는 현대적 어법은 필수다. 원선금의 작품은 한 번에 포착할 수 없고 마치 무대같이 연출되며, 그 안에 들어선 관객의 오감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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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 이제 대상이 아니라 공기와도 같이 편재하듯 말이다. 작가의 투명용기에 대한 애호는 그런 것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편재를 은유하기에 적합하다. 플라스틱은 시각적으로도 넘치고 넘치지만, 그 쓰레기들은 잘 처리될 것이라고 믿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선택된 구성적 단위로 조합하는 방식은 재현도 표현도 아니다. 1920년대 서구와 동구를 동시에 휩쓴 구성주의 미학은 예술을 초월해서 디자인이나 건축으로 해소된 것은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한다. 현대사회는 전통사회처럼 자연과의 유대 보다는 문명의 산물과 더 많이 접촉한다. 작업 재료가 상품의 패키지인 작품들은 대량생산/소비사회를 전제로 한다. 대량소비 사회에 편재하는 일회용품을 수집하고 그것을 작품의 요소로 삼아서 구성한다. 고대 시대부터 상상되었던 원자론적 사고를 펼치는 것이다. 


가깝게는 레고 블록 놀이와도 유사하다. 일괄 맞춤형으로 생산된 레고 블록과는 달리, 수집이라는 우연적 행위는 열린 예술작품의 특성을 보여준다. 미립자들이 모이면 거시세계가 된다. 원선금의 작품이 거대한 항성이나 수많은 행성들을 떠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플라스틱은 땅바닥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넘어서 별처럼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작가는 패키지 뒤에 모터를 달아서 그것들이 마치 항성이나 행성처럼 스스로 순환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대한 경제적으로 고안된 대량생산 체계에서 인간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생산 현장에서는 기계를 관리하는 역할만 남는다. 소비의 요구에 따른 생산이지만 거꾸로 생산이 소비를 규정하기도 한다. 고대의 물활론적 사고처럼 인간의 생산물은 자율화되고 생산자들의 조종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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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종류의 플라스틱이 많이 모여 있는 작품의 경우, 세포나 기관처럼 증식하는 느낌도 든다. 이러한 비유를 확장하면 인간 또한 플라스틱 같은 존재다. 코드화된 사회는 코드에 맞는 인간 또한 생산하는 것이다. SF 소설이나 영화처럼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기 전에 이미 인간이 로봇화 된다. 작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모품화 되고 있음을 자각하고 뒤늦게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소재로 활용하는 일회용품을 단순한 도구나 수단을 넘어서 실존적 차원도 담보한다. 원선금의 작품에 나타난 비전에 의하면 인간은 소비하는 로봇이다. 억압가설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소비하는 인간은 욕망하는 기계일 것이다. 생태계의 순환구조를 따라 미세 플라스틱이 체내에 쌓여가는 현상은 원선금의 주재료들이 외부의 대상에 머물 수 없음도 말한다. 외부로 배출된 것이 다시 들어온다. 사물과 예술을 구별하려던 근대적 이론과 달리, 사물은 예술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포장재는 한번 쓰고 버리는 껍데기들이지만, 워낙에 치열한 경쟁사회다 보니까 소비자의 눈길을 끌면서 최대한 경제적인 수준에서 타협된다. 껍데기 그자체가 욕망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원선금이 작품에 활용하는 패키지들은 비슷한 착상으로 기성품을 활용하는 ‘정크아트’와도 거리가 있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재료들에서 쓰레기의 흔적을 지운다. 원래 그것들이 생산 라인에서 출시되었을 법한 그럴듯한 형식으로 재배치한다. 조명은 그것들이 최초에 출시되었을 진열대에서 반짝였겠지만, 이제 예술작품의 소재로 선택된 후 연극무대 같은 장에서도 핵심적이다. 조명에 빛나는 투명용기들이 아름답지만, 그것은 플라스틱화 된 지구의 묵시록적 이미지다. 작가는 가로등 불빛을 이용해서 야외 설치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것들은 별처럼 빛났다. 작품 소재들이 무엇보다 작가의 눈에 먼저 띈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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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적이기 보다는 예쁜 것들이 많다. 최소한의 가공을 거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쌓은 구성적 단위로서의 껍데기는 고대의 조개무덤이나 후대에 현재 시기를 닭 뼈 무더기로 판단할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들은 결코 만족할 수 없어서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욕망의 흔적이기도 하다. 상품이 기획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껍데기들이 더 본질적이다. 알맹이 빠진 껍데기들, 즉 기표는 보다 가벼운 상태로 물신화의 회로 속에 진입하며, 순환의 주기를 빠르게 하고 최종적인 목적인 이익을 극대화한다. 생물학적 욕구는 충족될 수 있지만 자아의 상상적 요구나 상징적 세계의 욕망은 만족될 수 없다. 수집된 패키지들을 색감이나 형태를 고려해서 각을 맞춰 도열시키곤 하지만, 퍼즐은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원선금의 예술작품은 열려있고, ‘플라스틱 플래닛’의 생태계도 앞으로 인간 하기 나름일 것이다.

 

출전; 대구예술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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