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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엽 / 푸른 행성에서의 동행

이선영

푸른 행성에서의 동행

 

이선영(미술평론가)



권경엽의 작품에는 주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 그려져 있지만, 대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선남선녀, 귀여운 반려동물, 잘 가꾸어진 식물은 누구나 좋아할 법한 소재들이다. 현실이 어둡고 추할수록 환하고 예쁘게 다가오는 이미지다. 작품 속 존재들은 사람이라면 젊고 아름답고, 동식물이라면 완전한 보호 및 관리 아래 놓여있다. 생존경쟁에 찌든 인간이나 약육강식의 압박에 황폐해진 자연이 아니다. 그것들이 자리하는 곳은 꽃향기 가득한 정원이나 푸른 하늘 아래여서 공기 또한 쾌적하다. 유한한 인간은 늘 이러한 이상적 상황을 꿈꾼다. 이상은 그것이 꿈꿔지는 것만큼의 현실성을 가진다. 예술 또한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허구지만, 누군가에게는 강력한 현실이다. 현실 또한 코드화를 통해서 인간의 꿈과 이상을 부단히 재현하려 하며, 대중은 소비를 통해서 그것을 구매하고 향유한다. K-팝에 등장하는 인형같은 인물들이 권경엽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화면은 인물의 비중이 높지만, 초상화가 아니라 이상적인 코드들이 조합된 유형이다. 




Flying Blue Bird, 116.8X91cm oil on canvas 2023.



대중문화의 주인공은 물론 메타버스의 캐릭터 등에도 많이 등장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머리칼 색이나 눈동자 색 등도 꾸밈의 대상이 된 현대에 인종이 불확실하다. 작품 [Flying Blue Bird](2023)에서는 성의 구별조차 무색하다. 티끌 하나 없는 뽀얀 피부를 가진 그들은 모두 젊고 예쁘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평선을 배경으로 있는 인물은 의상의 색으로 자연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여기와 저기를 오가는 파랑새 또한 그렇다. 인물은 생각에 잠긴 듯 정적이지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소통한다. 식물 시리즈에 등장하는 꽃들이 함께 함으로서 청명한 공기에는 향기 또한 가득하다. 다양한 요소들간의 조화는 색감의 조율이라는 형식적 장치에 힘입은 바 크다. 그 모든 것들이 조화로운 색의 배치를 위한 실험으로 불려온 것은 아닌가 할 정도다. 작품 [Flying Blue Bird)]와 [Blue Jacket & Blue Bird](2023)는 나란히 걸면 마주 보고 있는 방향으로 인물이 배치된다. 


미소년들은 서로 닮아서 거울 상 같기도 하다. 특히 눈을 꽃으로 가린 이는 나르시시즘적이다. 작품 [Fantasy](2022)와 [환상을 보다](2023)는 크기는 다르지만, 쌍을 이룰 법한 정사각형 화면 속 인물이다. 꽃으로 눈을 가림으로서 향기가 이끄는 것을 더 잘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현실을 보지 않으며,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보여지는 존재다. 하지만 사랑받는 존재는 타인의 욕망에 부응하는 충만함을 실제로 소유한 것은 아니다. 사랑은 결국 상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욕망하는 것이기에 기대는 늘 어긋난다. 미란 보조비치는 [암흑지점]에서 사랑하는 자의 위치는 욕망하는 주체, 결여의 주체라고 말한다. 특히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다. 미란 보조비치는 마리보의 소설 [마리안느의 생애]의 예를 든다. 마리안느는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대상으로 제공하는, 하지만 사랑을 결코 되돌려주지 않는 여자이다. 




Blue Jacket & Blue Bird_116.8X91cm oil on canvas 2023



마리안느는 모든 사람의 응시를 끌어당겼던 반면에, 그녀 자신은 어느 누구도 보지 않는다. 그녀는 어느 누구도 보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에게 보여진다. 현대의 대중 또한 보는 것, 또는 보는 것, 또는 보기를 통한 소유의 허무함을 깨닫고, 보여지는 것을 택한다. 스타들처럼 보여지는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은 SNS를 비롯한 사이버 문화 속에 팽배하다. 거대한 거울의 방에 갇혀있는 정보사회에서 대중은 자신의 반사상을 수시로 만나고, 이러한 반사상은 대개 이상적이기에 현대는 나르시시즘의 신화를 불러들인다. 소비는 정보화와 맞물려 더욱 고도화된다. 하지만 행복한 소비를 위해서 불행한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없다. 예술은 단순한 소비와는 다르다. 아름다움이라고 해서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권경엽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예술에 담는다. 예술하는 삶 자체도 이상이니 만큼 이상에 이상을 더했다고나 할까. 


최근 작품에 신선한 바깥공기가 대거 유입된 것은 몇 년 전부터 함께한 반려견 때문이다. 작가는 근래 작품에 대한 개념어로 ‘오티움(Otium)’을 든다. 작가에 의하면 그것은 ‘휴식을 즐기고 정신을 고양시키고 여가를 즐기는 장소’를 의미한다. 작업하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서 하루 두 번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일과는 단순한 여가를 넘어선 활동이다. 오티움은 ‘공부하고 배워서 즐기는 적극적인 여가생활’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석고 데생을 시작했을 정도로 작가로서 이른 출발을 하면서 수십년간 다루어온 물감이나 재료를 여전히 연구한다. 그림 또한 오티움인 것이다. ‘블루 시리즈’는 최근의 관심 색을 알려준다. 관념 속의 푸른색이 아니라 산책을 위해 매일 체크하는 날씨와 관련된 색은 보고 느끼는 것과 알고 만들기를 결합한다. 블루 시리즈는 아름다운 인물이 한가운데 자리하지만, 푸른색 계열의 물감만큼이나 많은 푸른 하늘빛이 주인공이다. 




Fantasy_60.6X60.6cm_oil on canvas_2022



환상을 보다_45.5X45.5cm_oil on canvas_2023



인물에 적용된 색은 사파이어, 에머랄드, 세루리안 블루 등 다양하다. 하늘의 빛은 초월성을 내포한다. 마가레테 브룬스는 [여덟 가지 색으로 풀어본 색의 수수께끼]에서 파랑은 신들의 색이라고 정의한다. 신들은 거대한 창공 속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에바 헬러는 [색의 유혹]에서 파랑을 신성한 색, 영원한 색이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지속되기를 바라는 모든 것, 영원히 계속되어야 할 모든 것에 파랑이 결부된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현실감과 거리가 있다. 에바 헬러에 의하면 어떤 색이건 멀어지면 흐려지면서 파란빛을 띤다. 물과 공기는 실제로 파란색이 아니지만, 파랑으로 느껴진다. 공간이 깊어지면서 모든 색이 파랑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파랑은 성과 연결된 상징성도 있다. 보통 파랑은 남성, 분홍은 여성으로 간주되지만, 에바 헬러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상징체계에서는 파랑이 여성적 색임을 말한다. 


파랑은 수동적이며 조용한 색으로, 적극적이며 강하고 남성적인 빨강의 정반대라는 것이다. 그것이 동양에서 음(陰)이 여성인 것과 같다. 기독교 문화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여성, 즉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은 파랑이다. 마리아가 당대 이상형의 최고 집합체였듯이, 권경엽의 작품에서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은 성스러운 속성을 가진다. 여기에 현대적 의미의 여가라는 맥락이 깔리면서 파랑은 여러 겹의 상징을 가진다. 에바 헬러에 의하면 파란 시간은 작업 시간이 끝나고 어스름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그것은 휴식과 안정의 색이다, 권경엽의 작품에서 주조 색인 파랑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골드다. 양자는 직관적으로 서늘함과 따스함, 그림자와 빛을 연상시킨다. 골드는 현실 속의 그것처럼 귀중한 것을 장식한다. 에바 헬러에 의하면 어떤 색의 금이건 금은 귀중한 것을 장식한다. 금은 귀중한 것이기에 절제해서 사용한다. 골드는 세밀한 부분만을 차지한다. 




 Blue Sea, 116.8X91cm oil on canvas 2023



Blue Summer, 90.9X72.7cm oil on canvas 2023



‘세속적인 것을 귀하게 만드는’(에바 헬러) 금은 귀중한 것일수록 모조의 위험이 있음을 말한다. 오죽하면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말도 있겠는가. 무엇이든 잘 포장된 것들은 의심이 든다. 하지만 포장 뒤에 본질이 있을까. 시뮬라크르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표면 위로 떠 있는 세계이며, 그것이 이전 시대에 있었다고 믿어진 ‘본질’을 대신한다. 이러한 시대에 다시 블루가 등장하는 것은 시대의 반영이자 대안이기도 하다. 권경엽의 작품에서도 하늘과 바다에서 온 블루는 ‘구원의 색이자 신에게 가까워지는 색’으로, ‘초월과 자유’를 상징한다. 작가는 성모마리아의 옷이 울트라 마린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상쾌함과 신선함을 주는 파랑은 산책의 경험이 반영된다. 작품 속 인물도 블루 컬러의 옷을 입고 반려동물과 산책 중이다. 작품 [Blue Sea](2023)의 인물은 생물학적으로, 정면을 응시하면서 더욱 두드러지는 완벽한 대칭을 통해 젊음, 즉 아름다움의 기호를 보여준다. 


인물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상태도 마찬가지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이와 조응하는 푸른 의상은 자신을 둘러싼 것과 하나가 된 상태를 표현하는 권경엽의 방식이다. 동물들과 인물은 누가 누구의 보호자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서로를 지탱한다. 자연적으로 또는 인공적으로 완벽하게 꾸민 그들은 자신들이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향유한다. 옷의 장식, 새의 무늬, 고양이의 눈 색을 이루는 골드는 블루와 상보적이다. 하늘은 다양한 블루를 경계 없이 풀어놓을 수 있는 장이며, 금쪽처럼 아껴 쓴 골드는 포인트를 준다. 작품 [Blue Summer](2023)는 고양이나 새의 다양한 무늬와 색상에 버금가게 인간 또한 머리카락 염색, 눈동자 색을 조율한다. [Blue Bird & Gold Key](2023)에서 파랑새와 인간, 그리고 고양이는 푸른 눈을 공유하며, 작품 제목이 색 이름이기도 한 [Acua Marin](2023)에서 고양이와 인간의 푸른 눈은 푸른 바다를 본다. 




Blue Bird & Gold Key, 72.7X60.6cm oil on canvas 2023



Acua Marin, 116.8X91cm oil on canvas 2023



인물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반려동물은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작가의 든든한 응원군으로, 인간과 ‘연합하고 정을 나누고 의지하고 삶을 공유’한다. 특히 작가에게 ‘자연 속에서 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시간이자 자연과 연결되는 마법같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등장인물과 동물에게 ‘그 시간은 과거를 망각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잊고 역할과 책임이 없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곁의 동물이 자연이지만 그 동물 때문에 바깥 활동이 늘어나 푸른 하늘과 길가의 식물이 함께 작품 속에 들어온다. 권경엽에게 자연은 ‘인간의 영역이라기 보다 아닌 신의 영역에 해당되는 곳이자 자연의 섭리, 이치, 생태계의 일부’이다. SNS를 포함한 인간 간의 관계가 버거운 부류에게 자연은 대안의 세계가 되고 작품 속에 별천지로 들어온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를 작품에 담는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적 인간 관계에서는 극히 드물며, 모성에서 확인되는 무조건 주는 사랑이다. 댓가에 대한 기대 없이 존재 그자체의 소중함이다. 그것은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작품 속 ‘자연을 바라보고 세계와 소통하는 심미적인 여성상’은 작가의 분신이며, 그 안의 모든 것이 이상화되었다는 점에서 가상적이다. 권경엽은 ‘나의 그림은 디스토피아 같은 세상에서 추려낸 메타(초월)적 유토피아의 세계’라고 말한다. 작품은 단지 그러한 관념의 표현을 넘어서 자연과 함께한 충만한 체험이 상상화 된다. 벅찬 감동을 안겨줬던 바깥과의 소통은 작품변화의 원동력이다. 전능한 존재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간주 된 세계는 확장된 자아와 행복하게 만나게 했다. 치유할 수 없는 운명적 상처나 죽음에 경도된 이전의 세계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하늘과 바다의 색을 반향하는 블루 의상은 작품 속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에 착용된다. 다양한 블루는 빛을 상징하는 골드와 어울린다. 행복의 파랑새도 함께 한다. 




Flower girl & Cat_권경엽_Louise Kwon



순정만화 속 인물 같은 이들은 순정만화가 미술사의 전범 못지않게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알려준다. 이전에는 모델도 썼지만, 오랫동안 그려오면서 일종의 평균값이 형성되었다. 그 누구라고도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가상의 인물이다. 권경엽은 자신의 그림이 초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가 염두에 두는 것은 르네상스는 물론. 고전주의부터 신고전주의, 낭만주의부터 상징주의에 두루 걸쳐 나타나는 트로니이다. 작가가 드는 가장 유명한 예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이다. 동물과 함께 있는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Lady with an Ermine](1490)를 비롯해서 많은 예가 있다. 현대와 비교하자면, 메타버스의 아바타같은 가상적 존재다. 사실주의에 방점을 찍는 서양미술사는 이를 아류 취급했지만, 사람들의 무의식에 깊이 자리한 모델은 현대의 대중문화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군가와 조금씩 닮았지만 그와 똑같은 이는 없다는 점에서 가상적이다. 평균의 마법이다. 


사회에서 통계학이 활용된 이래 평균은 있지만, 그러한 평균에 딱 들어맞는 이는 없다. 그러면서도 평균은 영향력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00년생 000’이 처음에는 단지 소설이었지만, 일종의 전형성을 가지면서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데 지침을 제공하기도 했다. 시대는 또 흘러서 작가가 어릴 때 즐겨 그리던 만화를 넘어서는 페이스 앱이나 메타버스 등이 등장하고, 이 새로운 세계에서의 가상의 몫을 공유한다. 메타버스에 등장하는 캐릭터처럼 작품 속 인물은 작가의 아바타 역할을 한다. 대개 아바타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며, 그사람 만의 취향이 반영된 상징들이 있다. 블루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들은 유화로 섬세하게 그려진 아바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아바타들은 비슷해 보여도 각자 맡은 바가 다르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블레오(Bleo)는 에너지의 빛으로 메세지를 전한다. 짧은 머리의 중성적인 모습을 한 콜로스(Colos)는 블루버드를 데리고 산책하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본다. 마린(Marine)은 원하는 곳의 문을 열 수 있는 골드키(gold key)를 지닌 새를 데리고 있다’ 




Otium_Louise Kwon



Home Sweet Home, 72.2X60.6cm  oil on canvas 2023



Home Sweet Home_53X45.5cm_oil on canvas_2023



‘여기에서 새와 고양이 강아지는 영험한 존재들이자 수호자이며 동반자’이다. 인물들은 여성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생물학적 조건뿐 아니라 꾸밈에 있어서도 그렇다. 남성 또한 마찬가지며, 이는 작가도 관심을 가지는 현대 대중문화의 흐름과도 부응한다. 이것은 작가의 취향뿐 아니라 개인적 이력과도 밀접하다. 딸로 태어나서 미안해야 하는 시대가 있었다. ‘권경엽’이라는 다소 남성적인 이름 또한 (남성적) 경쟁력을 원한 부모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경제활동을 했으며, 지금도 작품활동으로 자립한 작가에 속한다. 작품 속 사랑스러운 인물은 능력이 아니라, 존재 그자체로 인정받고 싶다는 희망이 투사된 것이다. 작품 [Flower girl & Cat]은 꽃잎 같은 의상을 입은 작가로, 인물 그림 중 유일한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분홍빛으로 가득한 사랑스러운 여성-아이(femme enfant)의 모습을 털복숭이 아기고양이가 반향한다. 


그들은 어떤 기능이나 역할 때문이 아니라, 존재 그자체로 사랑받는다. 작품 [Otium]에서 초코 과자는 디저트로 변신한 고양이 똥이다. [Home Sweet Home](2023)에서 목걸이에 새겨진 ‘love’라는 단어처럼 사랑만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배설물도 때깔이 다르다. 권경엽의 작품에서 현실이 달콤한 환상으로 변화할 때의 정도를 알려준다. 화병에 꽂힌 꽃들과 실내 벽지의 꽃무늬 등이 어우러져 꽃 천지다. 꽃무늬와 실제 꽃의 존재는 뒤섞이며, 그 모두는 그림이라는 또 다른 환영에 담긴다. [Home Sweet Home](2023)은 모든 것들이 보기 좋게 그 자리에 있을 때 감춰진 노고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현실에서 드물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들은 가상적이고, 그것이 가상적인 만큼 더 그럴듯하게 창조되어야 했다. 권경엽은 예술에 대한 여러 규범 중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가상을 가장 현실감 있게 뽑아내는 기법을 펼쳐왔다. 자연의 세밀함을 살려낸 작품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성함을 연결한다. 




Botanic Garden_60.6X72.7cm_oiloncanvas_2021



Orange tree_91X91cm_oil on canvas_2021



아니타 알부스는 [마술의 그림들]에서 ‘신께서는 비록 모든 것이 다 잘 이루어졌지만, 이 상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완벽한 작품에는 신의 위대함을 가늠하고 신의 합목적성을 인식하고 그 아름다움을 사랑해줄 관찰자가 빠져 있었다’라고 하면서, ‘창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다양함 속에서 통일성을 인식하고 자연이라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창조된 인간’의 존재를 말한다. 아니타 알부스에 의하면 고대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로고스를 세계 구성 원칙으로 간주했고, 이를 신과 동일시 한다. 그들은 ‘자연이 신이 아니라면, 자연은 세계 전체 및 그 부분들과 혼합된 신적인 이성이다.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연이 지니고 있는 무궁무진한 형태의 다채로움을 맛보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학교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예술가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지만, 이러한 신적 이성을 드러내는 자로서의 예술가라는 역할은 매혹적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 아니타 알부스는 [마술의 그림들]에서  자연주의 소설가를 인용한다 ‘자연이란 가장 작은 동물로부터 가장 큰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가 거친 폭력에 복종해야만 하는 곳이다. 즉 영원한 먹이사슬 속에서 한 존재의 죽음을 통해 다른 존재의 생이 지속되는 곳이 자연이다’(공쿠르) 공쿠르가 자연주의와 유미주의를 왔다갔다 한점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자연을 사랑하여 그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일수록 자연의 상처 또한 많이 보게 되는 것이다. 권경엽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작품에서 만큼은 완전한 사랑과 보살핌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려 한다. 동물과 동반하는 삶은 치유와 자유를 가능하게 했는데, 권경엽에게는 동물 테라피(animal-assisted therapy)이전에 아로마테라피(Aromathrapy)가 있었다. 그것은 이번 전시에서 식물 그림이 있는 보타니컬(botanical) 시리즈로 나타난다. 식물은 향기의 원천으로 선택된다. 




orange tree_91X116.8cm_oil on canvas_2022



Yellow vibe_97X162.2cm_oil on canvas_2021



‘자연의 주는 회복과 재생의 느낌’을 중시하는 권경엽은 ‘좋은 향기는 아름다운 기억이 있었던 장소로 데려가 준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 속 나비는 꽃의 향기를 시각화한다. 꽃은 극히 섬세한 사실주의가 관철된 듯하지만, 작은 꽃을 크게 그리거나 병치를 통한 패턴화 등으로 변주된다. 향수의 재료가 되는 식물과 여러 보석을 병치시켜 알레고리와 장식성을 동시에 성취한다. 보는 이를 향해 전 존재가 돋보이도록 배치된 [Orange tree](2021)는 나무 안에 이슬처럼 진주들을 배치해서 장식성을 배가한다. [Yellow vibe](2021)에서 꽃들은 노랑, 보라의 색채대비의 장이 되었다. 식물 시리즈는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꽃부터 식물 가꾸기를 좋아했던 어머니와의 기억이 담겨있다. 작품 [Botanic Garden](2021)에서 완전한 야생이 아닌 정원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는 일종의 완충지대다. 반려 식물 역시 동물만큼이나 공여자가 주는 사랑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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