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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두홍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이선영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이선영(미술평론가)

  


‘성장;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라는 부제로 열린 여두홍의 전시는 미소하지만 강인한 면모를 통해 삶에 교훈을 주는 자연을 추상 어법으로 표현한다. 난초나 대나무가 힘차게 쭉쭉 뻗고 생장하는 모습은 삶이나 예술 또한 그렇게 힘차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겨있다. 식물에 투사된 마음은 전시 작품에 1점 포함된, 식물의 잎들이 머리칼을 대신한 자화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죽과 난의 고결하고 줏대 있는 형태 또한 좋았을 것이다. 생화는 조화와 달리, 질 때가 돼서 질망정 먼지가 끼거나 때가 타지는 않는다. 벌레가 갉아 먹을지언정 식물의 얼굴인 꽃은 말끔하다. 워낙 짧게 피어있기도 하지만, 식물이 매 순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야생의 존재들은 먼지가 앉을 틈 없는 미동부터 폭풍우 같은 강한 바람까지 온몸으로 받아낸다. 식물적 소재다 보니 생태적 배경 또한 중요하다. 그의 작품의 배경은 바람과 빛, 빛과 향기가 결합 되곤 한다. 




윤슬미술관 전시전경





전시 작품들은 ‘바람 빛’, ‘빛 향’, ‘묵언’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분류된다. 이 세 주제는 내적으로 얽혀있어, 실제로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이 주제들은 자연으로부터 왔다. 그는 ‘대숲에서 무심결에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은 화지가 되고 잎들은 붓이 되어 바람이 하늘에 드로잉을 하는 것이 아닌가...잎들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과 빛에 의해 가지와 가지는 선과 선이 되고 잎과 잎은 면과 면이 되어, 색이 되고 상이 되어 나에게 왔다’고 말한다. 식물 외에 식물을 에워싼 빛, 바람, 향기는 추상적 요소로 작품에 끼어든다. 대상이 삭제되거나 간결화되는 추상은 다른 감각을 끌어들여서 추상에 따라올 수 있는 환원의 약점을 보충하곤 한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 수동적인 존재인 듯하나, 작가는 그 소재에 대한 오랜 작업을 통해서 많은 은유를 끌어냈다. 한여름의 햇빛을 가득 받는 이파리들은 어느 평면보다도 강건하다. 전체가 아닌 중간 부분의 포착은 선적 인과관계를 초월하는 강렬함을 포착한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그려진 작품들은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중간 영역에 자리한다. 여백을 생각하게 하는 밝은 배경, 묵을 생각하게 하는 진한 형태는 난과 죽이라는 고전적인 소재와 더불어 동양화를 떠올리지만, 그의 작품은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그려진 ‘서양화’다. 그가 이전에는 수채화를 주로 그려왔다는 점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서양화 중 동양화와 가장 가까운 것이 수채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종이와 물을 잘 써야 한다. 여두홍은 2012년 뉴페이스 선정전까지만 해도 주로 수채화로 전시했다. 하지만 종이 크기 때문에 수채화의 한계를 느껴서 주요 매체를 아크릴로 바꿨다. 100호 이상의 작업을 하기에는 매체적 한계가 있던 수채화 작업은 뒤로 했지만, 당시부터 했던 식물적 소재와 추상적 어법은 지속된다. 이번 전시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집중적으로 작업했던 아크릴 작품이 주를 이루며, 대작이 많이 포함됐다. 





작가는 식물 자체는 물론 그것의 조형적 번역인 동양화를 분석한다, 식물의 선적 요소는 성장이라는 움직임을 담은 면이 되었다. 바탕 작업을 세 번 이상하고, 형태 또한 너댓번 이상 붓을 댄다. 테이프도 종종 사용하여 절도 있는 표현을 꾀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견고한 느낌이다. 얇은 종이에 스미는 먹에 바탕 하는 동양화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동양화에서 영감받은 추상표현주의가 즉발적인 붓질을 중시한다면, 여두홍의 작품은 정교한 쌓기의 결과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는 ‘단순하지만 간단하지는 않은’ 자신의 작업이 ‘즉흥이 아닌 구축’이라고 강조한다. 즉흥은 자연에, 구축은 인공에 가깝다. 즉흥과 구축과의 차이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중의 한 작가인 칸딘스키의 예를 들면 명확할 것이다. 칸딘스키는 자연으로부터 시작하여 신지학을 비롯한 정신적 영향을 거치고, 당시의 국제적 구성주의의 영향 아래 기하학적인 추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순수미술부터 디자인, 장식미술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섭렵한 칸딘스키는 자연을 배제하지 않았다. 칸딘스키는 추상적인 미술이 자연과의 연결을 배제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칸딘스키에 의하면 추상미술은 외부 세계와 나란히 하나의 미술의 세계, 정신적인 성격의 세계를 제시한다. 그것은 ‘오로지 미술에 의해서만 성립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요, 실재하는 세계’(칸딘스키)이다. 추상미술도 현실에서 출발한다. 모든 미술이 추상적임과 동시에 모든 미술이 무엇인가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재현적이다. 칸딘스키는 그의 저서 [점 선 면]에서 예술과 자연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추상예술은 자연형태 없이 이루어 질 수 있지만, 자연의 법칙 아래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추상과 사실성의 대립은 변증법적으로 종합된다. 미술사적으로 추상미술의 선구자들은 시각적 경험을 보편화함으로서, 특정한 것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보편적인 세계에 이르고자 하였다. 







‘추상화가들은 자극들을 미지의 자연이나 자의적 일부 자연에서가 아니라, 자연 전체로부터 얻으며, 이러한 표현들은 작가 내부에서 종합된다’(칸딘스키) 하지만 서구의 추상미술은 이원론에 바탕 한 플라톤주의나 기독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관념적 경향에 기운다. 안나 모진스키의 [20세기 추상미술의 역사]에서 의하면, 19세기 중반 [미술의 철학]을 저술한 헤겔은 미술의 기능은 철학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성함 혹은 절대적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헤겔주의적 미학관을 가지고 있었던 칸딘스키도 [점 선 면]에서 ‘이 세계에는 모든 개개의 현상이 지닌 공통 근원이 있다. 세계는 정신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본질의 우주’라고 주장하였다. 칸딘스키가 기하학적 국면을 실험했을 때는 조형 언어의 자율성이라는 미학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미술사에서 기하학적 추상으로 분류되는 말레비치의 작품은 ‘인공 세계의 물질적 본질을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우주의 신비에 대한 동경을 전달한다’(아론 샤프)고 평가된다. 


‘절대주의’라는 표현 자체가 관념적이다. 미술사는 현실로부터 단절된 추상은 점 차 자가당착적이 되어감을 보여준다. 추상과 구상 모두 재현이라는 틀거리를 공유한다. 여두홍 또한 초창기 추상화가들처럼 자연으로부터 출발했고, 서사보다는 시각성에 충실한 점은 공통적이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묵언’이라는 주제가 그렇다. 작가는 이 주제에 대해 ‘색이나 형상들을 묵언 묵상으로 지우고 지워 가는 과정속에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도 없는 두려움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안주해 있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추상이 추상하다라는 동사를 전제하듯, 여두홍의 전시 부제에 속한 키워드인 ‘성장’ 또한 동사를 포함한다. 관념이든 무엇이든 굳어있는 것을 거부한다. ‘흔들리다’라는 키워드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움직임에 대한 작가의 조형적 해석은 겹쳐진 형태들로 나타난다. 여두홍에게 바람과 빛을 온몸으로 받고 성장하는 식물은 삶과 예술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묵언](2023) 시리즈는 넓은 붓으로 그은 듯한 기하학적 평면으로 식물의 잎을 추상화했다. 원래 모델이었던 식물의 유기적 형태는 요소로 환원되었다. 잎으로 치자면 여러 잎이 겹쳐진 모습이며, 그 사이로 밝은 바탕 면이 드러난다. 진한 색으로 칠해진 형태 사이의 바탕은 명암의 대조에 의해 빛같은 느낌이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형태를 겹치는 방식은 두툼한 자연적 실재를 강조한다. 작가는 자연의 내재율을 화면에도 옮겨오고자 한다. 맨 위층에 진한 색이 얹힌 작품들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알록달록한 색이 있던 잎은 성장의 주기를 거치면서 검게 변했을 것이다. 석탄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식물의 잔해가 아닌가. 식물을 포함한 생물체의 사체나 부산물들은 인류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였다. 그것은 바이오매스로 활용될 만큼 그 내부에 에너지를 축적해왔다. 그의 작품에서 식물의 유려한 잎은 마치 방패처럼 견고하다. 


[묵언] 시리즈의 계속 덮이는 구조는 ‘묵언’이 그저 침묵이 아닌 수많은 언명들 간의 관계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단지 할 말 없음이 아니라, 수많은 대화를 포괄하는 어떤 질적인 도약의 단계라는 점에서, 명상 수행과 비교될 수 있다. [바람 빛-성장]은 식물이 성장하는데 필요하거나 그것이 극복해야 하는 요소를 담는다. 식물은 본능적으로 빛을 향하며, 그것을 고정시켜 지상의 생명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자연의 공장이다. 바람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포자를 널리 퍼트리기도 하지만, 강도에 따라 뿌리째 뽑기도 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빈번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번지며 수많은 식생을 잿더미로 만든다. 빛과 바람은 식물을 둘러싸는 생태적 환경을 대변한다. 식물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는 조건이 허락하는 한 성장한다. 자연은 빛이 머무는 시간대를 통해 성장을 조절한다. 가령 24절기 중 하나인 처서(處暑)는 한여름 그 뜨겁게 내리쬐던 햇빛이 줄어들어 식물이 성장을 멈추고 땅이 식는 시기를 말한다. 





봄과 여름의 성장으로 빽빽했던 잎들은 낙엽이 되어 지면 위에 겹겹이 쌓인다. 작품의 다양한 양상에도 겹의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는 여두홍의 작품은 자연적 묵직한 실재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시간이라는 축을 타고 성장하고 시들고 이듬해 다시 탄생하는 생의 주기를 나타낸다. 작가는 난초나 대나무처럼 이미 많은 상징을 가지는 식물뿐 아니라, 마당에 무성한 잡초들에서 질긴 생명력을 본다. 뽑아도 뽑아도 자라는 마당의 잡초를 보고 ‘바람에 시달리고 벌레에게 먹히고 추위를 견뎌내는 과정을 통해 숲을 이루고 꽃을 피우며 향기를 품는 완성의 단계에 다다름을...그림을 그리며 지금까지 온 내 삶, 우리 인간들의 삶과 이 잡풀들이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심미주의자들이 주목했듯이, 난은 풀 중에서는 귀족에 속할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기하적으로 표현된 난초는 그것의 외형적 모습이기보다는 내재적 특징, 즉 난초의 결기를 강조한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비스듬히 겹쳐진 사각형들은 단호하고 힘이 있다. 


난의 꽃이나 줄기 등 그 외형적 요소가 재현된 작품의 경우, 뿌리 부분에 있어야 할 흙을 제거하는 등 필요한 부분만 강조하려는 선택이 있다. 3x3 열로 배치된 캔버스에 담긴 [묵언](2023) 시리즈는 힘차게 내려그은 어두운 면과 밝은 꽃이 함께한다. 중간에 배치된 작품들은 꽃도 기하학적 형태로 그려졌다. 재현적 요소와 추상적 요소가 고루 배치된 작품들은 자연이 시시각각 다른 모습이듯 조형적 변주 또한 그럴 수 있음을 말해준다. 섬세한 꽃과 힘찬 잎의 조합은 여두홍이 파악하는 외유내강의 면모를 가지는 난의 특징이다. 관객은 작은 사각형 두 개로 표현된 꽃과 실제의 외형이 다소간 보존된 꽃을 함께 볼 수 있다. 식물은 씨앗이었을 때부터 접혀 있던 것을 순차적으로 펼친다. 때가 되면 다시 접힌다. 노란 사각형 두 개로 표현된 꽃은 유전자를 포함해 개체 내부에 입력된 생명의 프로그램에 내재 된 엄격한 질서를 나타낸다. 









읽는 순서를 기준으로, 맨 나중에 보게 되는 하단 우측 화면에서 기하학적 요소는 최소화된다. 흙에서 나온 존재는 다시 흙이 될 것이다. 반면 맨 처음 보게 되는 상단 좌측 화면은 가장 기하적이다. 두 번째 화면은 꽃이 얼굴을 내민다. 처음과 마지막의 엔트로피의 차이는 크다. 주변의 모든 가용 에너지와 상호반응하면서 꽃을 피워내고 재생의 주기로 돌입한다. 연작의 방식은 순간을 고정시키는 회화에 잠재적 움직임과 서사를 깔아준다. 정사각형 캔버스가 나란히 걸린 작품 [바람 빛](2020)도 네가티브/포지티브의 방식으로 부재와 존재를 대조한다. 고향 하동에 많이 있던 대나무는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빛을 머금은 것 같지만 희미하게 사라지는 형태와 그림자 같지만 강한 에너지를 내포한 어두운 형태는 존재의 여러 양태, 그 단면에 해당된다. 밝은 작품도 어둠을 내포하고 어두운 작품도 밝음을 내포한다. 밤낮의 길이가 연동되어 변화하듯 자연은 단 한 순간도 멈추는 법이 없다. 바람과 빛줄기를 온몸으로 받는 모든 식물들의 본래 모습이다.

 

출전; 윤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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