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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주 / 자연의 소리들

이선영

자연의 소리들

 

이선영(미술평론가)



강인주의 율동적 화면은 나이프로 하는 작업과 밀접하다. 부드러운 붓으로 칠하기 보다는 단단한 나이프로 물감을 이겨 바르는 그의 작업은 몸동작을 화면에 직접적으로 표현하게 한다. 방향을 급격하게 틀면서 생겨나는 속도감 있는 형태들은 공간예술에도 내재된 시간적 측면을 강조한다. 전자기기의 단말기에 접촉하는 손가락 동작과 달리, 화구를 든 화가의 손은 몸 전체와 관련된다. [The Sounds]로 붙여진 작품들은 소리를 소재로 하며, 마치 지휘하듯이 춤추듯이 했을 동작이 연상된다. 언어학자나 음악가가 아닌 화가가 소리에 대해 가지는 관심은. 그것이 가장 보편적인 감정의 원천이어서일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멜로디 속의 소리는 우리에게 단지 소리로써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감정의 표시로도 작용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강인주의 작품에서 보이는 힘찬 동작의 궤적은 생명의 약동을 전달한다. 40회가 넘는 국내외 개인전을 통해 오랫동안 화업을 이어오면서 배인 손동작이 자동적으로 나올 수 있다. 




THe Sounds 65.2×50.0cm (15호) Oil Canvas 2020



초현실주의에서의 자동기술까지는 아니어도, 나이프를 쥔 손동작에서 무의식 또한 활성화된다. 치밀하게 계획된 섬세한 예술 작품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의 공간을 열어놓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매번 실행하는 작업에서 새로움과 이질성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인주의 작품에 나타나는 소리의 시각화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을 벗어난 추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을 시작했던 작가들에게 소리나 음악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전 예술은 대상의 묘사와 관련된 의미에 방점을 찍었다. 주로 종교적, 역사적, 문학적인 서사를 담았다. 그림은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수단이었다. 예술작품에는 완전히 의미화할 수 없는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 추상미술은 의미를 전달하는 투명한 도구가 아니라 불투명한 존재에 머문다. 조형 언어의 자율성을 위해 대상을 괄호 치는 추상은 음악처럼 의미보다는 감흥을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음악에도 가사의 역할이 있지만, 음악의 주된 형식인 악기의 연주는 추상적인 차원에 있다. 강인주의 작품을 연주와 비교하자면 하나의 악기가 아니라 여러 악기의 협연이다. 그의 작품에는 화면 전경에 배치된 주된 ‘소리’가 있고 배경에 잔잔한 소리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이프로 시원시원하게 표현한 전경의 형태에 비해 배경은 좀 더 가느다란 선적인 흐름들로 채워진다. 선은 가늘어도 속도감은 유지되며 여기에도 에너지가 가득하다. 화면 가운데를 관통하거나 가로로 펼쳐진 큼직큼직한 형태들 뒤에 가늘게 긁어 만든 곡선들이 빼곡하다. 물론 배경의 소리/형태도 어느 순간 전경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전경과 배경의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귀는 민감하다. 조형 언어의 추상미술 또한 자연과 관련이 있지만, 그것은 자연의 외양이 아닌 자연의 과정에 상응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작품은 한순간 고정된 현실의 단면으로서의 회화가 아니라 시간성을 포함한다. 자연의 외양이 아닌 그 내재율을 담는 것이다. 




THe Sounds 65.2×50.0cm (15호) Oil Canvas 2020 



강인주의 [The Sounds]는 정념, 말, 음악의 공통적 기원인 소리를 소재로 한다. 그의 작품은 추상적이지만 많은 부분이 자연의 풍경을 떠올리기에 자연의 소리로 여겨진다. 하지만 소리의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은 차이가 있다. 루소는 위의 책에서 동물과 인간의 언어를 구별한다. 그에 의하면 벌같이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의 경우에는 상호소통하기 위해 자연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의 선천성을 강조한다. ‘타고나는 언어이기에 하나같이 모두 어디서나 같은 언어를 가진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관습적이다. 언어는 동물들 사이에서 사람을 구별시켜준다. 언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민족을 구별시킨다. 인간은 좋게든 나쁘게든 진보하며 동물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루소) 이미지는 문자나 말보다 보편적으로 소통된다. 작가는 미술의 보편성과 소리를 연결시킨다. 그리고 그 소리는 자연에 뿌리를 둔다. 자연의 외관을 벗어나 그 본질을 추구한다.  


추상미술은 이전 시대의 예술보다 더 보편적인 것을 원한다. 그것은 역사보다 예술이 더 보편적이라는 고대의 미학으로 소급된다. 루소는 말의 기원을 이성이 아닌 정념으로 본다는 점에서 예술의 보편성에 힘을 싣는다. 루소에 의하면 정념은 첫 목소리들을 토해내게 했다. ‘사람들은 추론하기보다는 느끼는 것에서 시작했다. 사람들은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말을 발명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여기에 수긍할 수 없다. 언어는 정념에서 온다...모든 정념은 사람들을 가까이하게 한다.’(루소) 강인주가 주목한 ‘소리들’은 언어의 기원에 대한 근대철학자의 사유가 예술과 연결되는 지점을 강조한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더 유명한 루소의 주장은 단순한 원시주의가 아니라 인간사회의 규칙을 순리에 놓자는 것이다. 물론 자연도 인간사회의 특징인 강자의 우위가 있지만, 자연에서의 주사위 던지기는 공평하다. 자연에서는 힘/권력이 축적되거나 전달되지 않는다. 자연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지만, 인간사회는 처음에는 우연적이었을 강자를 고정시키는 방향으로 ‘진보’한다. 




THe Sounds 53.9×45.5cm (10호) Oil Canvas 2021 



THe Sounds 53.9×45.5cm (10호) Oil Canvas 2021



예술이 궁극적으로 자연 친화적인 이유는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강인주의 작품에서 가는 선만으로 가득한 화면은 색에 따라서 식물의 군집으로 다가온다. 보랏빛이라면 보라색 꽃들이 연상될 것이다. 화면 하단에 나무 받침대같은 형태를 통해서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선들이 식물성임을 암시하는 작품도 있다. 화면을 꽉 채울 만큼 큰 나무의 복잡한 섬유질 구조들이 추상화된 것으로 지글거리는 에너지를 담지한다. 색을 다르게 해서 층을 쌓은 화면은 언덕이나 산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산을 묘사하지 않고도 산의 운율을 담는다. 다른 작품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곡선의 선 다발이 전면에 배치된 작품은 둥근 언덕같다. 등성이에 찍은 점 몇 개가 소풍 나와 마주한 두사람으로 보는 것은 관객의 몫일 것이다. 여러 색의 층으로 만들어진 무지개 같은 언덕, 그 위의 몇 개의 점은 뛰노는 아이의 모습이다. 가상의 추상적 언덕의 색 점들은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자리한다. 


문명의 빛이 밤하늘 가득한 별빛을 가려버렸듯이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묻혀있던 소리를 듣기 위해 걷어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몰입의 조건이자 결과이다. 예술 말고도 몰입할 수 있는 일상의 체험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체험을 구체화시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술, 또는 예술적인 것 뿐이다. 맥락이 없는 영감이나 기회는 그냥 우연으로 떠내려 가곤 한다. 예술은 그러한 우연성을 필연으로 만들고자 한다. 예술의 시작은 몰입이며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형식이다. 몰입하지 못하는 작가는 피상적인 작업을 할 수 밖에 없고, 형식이 부재한 몰입은 소통되기 힘들다. 자신의 맥박과 심장 소리를 포함하여 고동치는 현실을 시각화하고자 하는 작가에게 듣기는 작업의 시작이다.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단순한 평행이동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들리게, 들리는 것을 보이게 하는 감각의 교차가 새로운 감흥을 줄 수 있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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