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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간이 없지 작가가 없나

이선영

우리가 공간이 없지 작가가 없나

 

이선영(미술평론가)

 


2020년에 ‘레트로봉황 레지던시’의 작가 매칭 프로그램에 처음 참가했을 때, 기획자(남효진)를 비롯해 참여작가와 스텝진들이 거의 여성들이어서 잠깐이지만 긴장한 적이 있었다. 멘토 역할을 했던 내가 여성이어서 망정이지 남성이라면 더했을 것이다. 지역과 관련된 명칭인지 모르고 핑크빛 디자인에 감싸인 ‘봉황’이란 말에 처음에는 페미니즘 예술 단체인가? 페미니즘을 비롯해서, 내가 ‘oo 이즘’을 주장하는 필자가 아닌데? 하지만 이후에 보니 남성 작가와 스텝진들의 참여가 제한된 것은 아니었다. 미술대학을 비롯해서 미술계의 구성인원이 여성이 많다 보니 어느 해는 자연스럽게 그런 성비가 나온 경우였다. 2017년 김해시 봉황동에서 시작된 레트로봉황 레지던시도 대부분 20대의 젊은 신진작가들이 활동하다 보니, 성을 포함하여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조형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적 관점 또한 발견되기도 한다. 특히 활동 무대인 김해 지역은 이주 여성 노동자가 많아서,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연계하는 연구와 작품발표, 강연 등이 이어졌다. 






2020년 2기 작가들이 전원 여성이라는 결과는 굳이 구성원의 성비를 맞춤으로서 역차별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을 피했기 때문이다. 미술대학 졸업 후 레지던시가 필수코스가 되다시피 하면서, 어느 레지던시든 경쟁률이 높다. 하지만 레지던시는 더 ‘난립’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다. 다다익선이다. 제도를 위한 제도같이 헛발질하는 정책도 적지 않은 가운데, 레지던시만큼 작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작가로서의 등단과 지속적 활동을 위한 전시회나 판매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작업실, 그리고 개인적인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공적 지원이 필수다. 미대가 취업률 낮다고 대학 당국으로부터 온갖 눈치는 다 받고 있지만, 다른 과들이라고 크게 다른가. 평균 50세가 되기 전에 떨려나갈 직장이 아닌, ‘지속가능한’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미대 아닌 일반학과도 근 30세까지 취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률 때문에 배움 자체가 부정되어야 하겠는가. 


특히 지방 소재의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더욱 강화되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항시적인 위기 속에 있다. 하지만 레지던시는 지방이라고 인기가 없거나 수요가 줄지 않는다. 각 지역의 레지던시를 통해 전국의 작가가 교류하고 있다. 그 지역에서는 그 지역작가만이라는 고집을 부리는 곳도 있지만, 타지역의 작가에도 오픈해야 그 지역작가도 다른 지역의 레지던시에 참여할 수 있다. 국내외 작가의 교환에는 대개 그런 실용적인 전략도 깔려 있다. 레지던시는 공유자산인 셈이다. 그곳들에서의 작업을 통해 해당 지역은 작품에 길이길이 남는다. 예술과 자연은 그 장소를 기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북, 동/서가 극도로 분열된 와중에 국가의 경쟁력을 이끈 것도 결국은 과도할 만큼의 교육에 대한 의지는 아닌가. 사회는 배움을 꽃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한 투자에 힘써야 하며, 청년을 위한 정책에서 예술계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레지던시에서 빠지지 않는 멘토링 프로그램은 앞에 ‘독립’자가 붙는 이론가나 기획자에게도 공적 활동의 무대가 되어준다. 


문화예술에 관련된 사업은 일반공무원의 방식으로 풀기 힘든 면이 있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문턱인데, 그것은 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에 대한 요구다. 대학에는 실기 출신뿐 아니라, 예술학과, 미학과, 미술사학과, 큐레이터 학과. 더 나아가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타 분야 학과 출신 등 인적 자원이 많은데, 이들을 매개로 해서 좀 더 내재적인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 책상머리에서만 각을 재는 편의적 발상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의 활동 경험이 정책에 활용돼야 한다. 레지던시의 멘토링 프로그램이 지금처럼 보편화된 지는 대략 십수년 정도 된 듯하다. 내 기억으로는 대략 2010년 전후부터는 초창기에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는 난지, 고양, 창동 스튜디오 이외의 다양한 레지던시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레지던시라는 공적 무대에서 신진작가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고, 이 또한 소중한 추억으로 켜켜이 쌓이고 있다. 레지던시는 지역의 문화재단의 출범에 의해 더욱 활성화된 제도로, 그 이전에는 미술대학이나 화랑, 잡지 같은 몇 안 되는 제도의 틈바구니 속에서 작가 뿐 아니라 이론가들의 입지도 좁았다. 


먼저 청년 시절을 보낸 중, 장년 세대의 경우 부러울 만한 제도다. 레지던시는 지역의 주요 미술관과 연계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한국같은 재개발 공화국에서는 비어있는 건물도 많으니 잘 활용되면 상대적으로 가성비 높은 문화정책이 될 수 있다. 시골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동사무소 자리가 레지던시로 탈바꿈한 경우도 봤다. 사회는 하드웨어를, 예술계는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것이다. 미술계 현장에서 레지던시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던 시기에 개인이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미학자 양은희가 사재를 털어 빌딩의 빈 공간들을 활용한 단기 레지던시를 운영(2008-2011)한 예가 그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희생에 의한 제도는 지속되기 힘들다. 레트로봉황 레지던시의 경우에도 1인 기획자가 중심이다. 몇 해 멘토로 참여한 바로는, 기획자만 확실하고 장소가 불확정적이다. 작가들이 전국의 레지던시에 입주할 기회를 찾아 유목하는 가운데, 기획자 또한 같은 신세라니 안타까운 지점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작업하는 이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이라는 점도 인정돼야 한다. 


이때 기획자는 다음 해의 공적 지원이 불확실한 가운데도 레지던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 작업을 쉬지 않고 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 기획자는 대개 사업 기간 1년이라는 짧은 기간 성과를 내야 하는 레지던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작가들의 동향을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파악하는 일을 수행한다. 그들의 활동 이후에야 미학이나 미술사, 비평이 따라붙을 수 있다. 그리고 점점 덩치가 커져가는 미술시장에 새로움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젊은 작가군이 준비될 수 있다. 그동안 레트로봉황 레지던시에 참여한 바로는 허름한 장소도 있었고 깔끔한 장소도 있었으며, 다소간 외진 곳에 있기도 했고 찾기 쉬운 중심지에 있기도 했다. 공간에 관한 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부침이 심했다. 하지만 오픈스튜디오를 겸한 중간 발표나 강연, 최종적으로는 전문 전시 공간에서의 전시회까지 통상적인 레지던시가 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이행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먼 곳의 필진 또는 강사 또한 요청이 있는 한 지속적인 참여가 가능했고, 지역의 미술인들 또한 1년의 작업 계획에 레트로봉황 레지던시에 참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었다. 


출전; 레트로봉황레지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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