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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전 / 문화와 예술의 가교

이선영

문화와 예술의 가교

이유진 전(8.5--8.19, 두루아트스페이스)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유진의 [communion] 전은 친근한 대중적 도상들을 민화 스타일로 녹여낸다. 당시의 민화가 대중예술이었듯이, 이유진의 작품의 뿌리를 대고 있는 것은 대중성이다. 대중적이라고 해서 기법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적 예술은 완벽한 기법이 특징이다. 그것은 서투른 관념의 일단을 더 서투른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머무는 일부 현대미술의 관례를 거부한다. 대중성에 뿌리를 대고 있되, 대중문화와 다른 점은 이유진의 작품이 대량생산을 될 수 없는 수제 작품이라는 점이다. 작품의 아이디어와 솜씨는 둘째치고라도, 꼼꼼한 제작과정은 많은 시간을 요한다. 작품이 크지 않아도 밀도는 크며, 시리즈 형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유진의 작품들은 보석함 같이 귀중한 것들을 모아서 쟁여놓는 스타일이다. ‘communion’이라는 전시 부제는 동서고금의 도상들을 활용하는 작품의 특성을 말한다. 함께하기는 ‘사랑’이라는 작품 속 명문화된 단어에도 잘 나타난다. 




[Love], 2019, 한지에 유채, 사이즈 80x80cm(사진출전; 두루아트스페이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은 [Love]다. 80x80cm 크기의 정사각형에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소중한 것들이 빼곡하게 담겼다. 여러 도상들은 이리저리 엮여서 서사를 만든다. 사랑이라는 글자를 중심으로 해서 모란, 나비 새들이 자리한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은 여러 소재와 주제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유사 이래 인간이라면 늘 소망해왔던 바로 그 희망을 말한다. 약간의 변조를 더해서 멋진 옷을 차려 입은 새들, 그자체로 아름다운 무늬의 집합체인 나비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모인다. 이유진의 작품에서 동식물은 정사각형, 원 등의 안정적 구도 속에 배치된다. 하지만 그 소재를 제공해 주었을 원래의 자연은 가혹하다. 새나 나비의 절묘한 무늬는 치열한 생존의 전략을 통해 현재의 그 모습이 되었다. 한지에 유채라는 방식은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유화와 한국화 기법의 장점을 종합한다. 동식물로 가득한 소우주 속에 ‘Love’라는 단어는 압도적 보편성을 가진다.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의 영속을 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는 생물학적 견해부터 세계의 주요한 종교가 설파하는 사상에서 사랑은 중심을 이룬다. 작게는 이러한 작품이 걸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탑재한 그림에서 가장자리의 하트 표시가 가운데의 꽃나무의 꽃잎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서로를 부르고 답하는 메아리로 가득한 화기애애한 소우주에 기여한다. 소장 이력을 볼 때 이유진은 미술시장에서 사랑받는 작가에 속한다. 1990년대에 형식주의(모더니즘)와 리얼리즘의 양강구도로 나뉘었던 미술계에 대중 및 하위문화의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군의 작가가 등장한 이래, 키치나 팝 등의 형식은 주요한 미술 언어로 자리 잡아 왔다. 한국 사회가 세계화에 더 동시대적으로 편입되면서 시장의 힘은 더 커졌고, 이는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닌 시대의 흐름이다. 뒤에서 타협하느니 투명하게 승부를 걸어도 될 만큼 미술시장도 확대되는 중이다. 


MZ세대를 비롯한 새로운 컬렉터 군들은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겠지만, 한국에 100명도 채 안된다는 주요 컬렉터 군의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소수의 큰 손보다 다수의 ‘개미 투자자’ 내지 소장자들은 미술시장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대중문화는 이미 그러한 성과들이 축적되어 눈부신 역사를 축적해 왔다. 타일러 코웬은 [상업문화 예찬]에서 시장의 기업과 생산적인 부가 문화 생산의 동반자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예술가의 독립에는 경제적 자립과 활발한 시장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그는 자본주의는 개인이 예술 활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부를 키워냈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경로로 재원을 제공함으로서 예술가들이 기량을 연마하고 장기간이 걸리는 작품 제작에 착수하고 자신이 선택한 장르의 내적 논리를 철저히 추구하며, 마케팅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고 평가한다. 결국 경제성장은 우리가 보다 세련되고 전문화된 취향을 갖도록 도와준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보자면, 이유진의 작품은 다양한 층위의 컬렉터 성장에 필요한, 대중성을 갖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배적인 미학적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때로는 조작되는) 대세가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만족하는 문화 소비자들에 맞춰진 작품들도 미술계의 다양성에 기여한다. 이유진의 작품은 만화부터 명품까지 다양한 대중문화의 코드가 심어져 있다. 다소간 난삽할 수 있는 코드들이 ‘communion’(전시부제)을 이루는 것은 기법 덕분이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여러 소재들이 원래부터 하나였던 양 어울리게 하는 것은 미적 판단과 형식의 조율 덕분이다.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모란보다 작은 크기로 줄어든 앨리스는 물가 근처 꽃에 기대어 잠든 모습이다. 머리로부터 자라는 듯한 모란 줄기는 앨리스로부터 가지를 치면서 화려하고 풍성한 꿈을 표현한다. 오리나 새 등 다른 도상에 비해 다소간 난데없는 토끼는 원작 동화와 관련된 도상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카드 여왕]은 붉은 색조로, 푸른 색감이 지배적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짝을 이룬다. 꽃으로 가득한 화면에는 숨은 그림처럼 여러 상징적 도상이 박혀있다. 복잡하게 얽힌 식물 이미지는 그 사이에서 무엇이 튀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배경을 이룬다. 부엉이들이 여기저기에 숨어서 관객과 눈을 맞춘다. 여러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끝없이 성장하는 식물 자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마술적 변신의 장이 된다. 앨리스는 원래 의상인 원피스에 앞치마가 아니라 하트 문양이 박힌 퓨전 한복을 입고 있고, 하마를 타고 있다. 원작에 등장하는 토끼나 고양이도 민화풍으로 각색된다. 민화를 응용한 우주에 서양 동화를 겹쳐 그린 작품은 작가가 지향하는 ‘퓨전’의 한 대목을 보여준다. 작가는 ‘퓨전이란 이질적 요소들이 섞여 조화를 이루는, 고정관념의 틀을 넘는 새 어울림의 문화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유진에게 ‘퓨전’은 여러 이국적인 요리를 담아낸 듯한 달항아리 시리즈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달항아리 시리즈(사진출전; 두루아트스페이스)



달항아리 시리즈는 작은 크기의 패널을 수직 수평으로 이어서 확장될 수 있다. 가운데 도자기 형상이 자리하고 그 안팎에 배치된 문양을 달리하여 동질이상의 특성을 가진다. 달항아리를 중심으로 그 안팎에 배치된 도상들은 다양함 속에서 통일감을 가지고 있어, 어떤 식으로 배열해도 조화로운 전체를 이룬다. 누군가 이 시리즈 중의 하나를 구입한다면 연속적인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수집은 결코 단품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집은 시리즈여야 제맛이다. 도상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도자기 자체가 수집의 대상이다. 거기에 작가는 애플, 나이키, 샤넬, 디오르 등 소비자 대중이 알아 볼만한 기표를 심어놓았다. 거의 인형처럼 보이는 새나 꽃 또한 가세한다. 새들은 샤넬부터 아디다스, 세일러문에서 미키마우스에 이르는 의상으로 치장했다. 청화백자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나 앤디 워홀의 캠펠 스프 깡통 이미지, 스타워스 같은 영화 제목까지 다양하다. 


작가에 의하면 푸른 무늬는 ‘이질적 두 소재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끌어모아 의미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항아리는 무엇인가를 담는다. 그 항아리를 담아낸 것이 그림이다. 여러 도상들이 알레고리처럼 겹쳐진 작품은 여러 겹으로 포장된 선물처럼 하나하나 풀어내는 설렘을 준다. 작가는 이 시리즈에 대해 ‘풍속화, 민화, 책가도를 코드로 감성이 다른 소재를 연결하는 이전작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면서, 이 작업을 ‘Fusion畵’로 명명한다. [Hero]는 다른 작품들처럼 모란과 새, 나비가 있는 구도지만. 동물들이 슈퍼히어로의 복장을 하고 있다. 민화가 당시에 대중문화였다면 현대의 대중문화와 자연스럽게 접속될 수 있다. 슈퍼히어로는 위험이 편재하는 현대사회에서 각광받는다. 더욱 촘촘해지는 사회에서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현실적이다. 민화에 스며있는 기복, 구복 신앙,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손안에 들어올 듯한 작은 새와 나비는 슈퍼히어로 코스튬을 통해 강인한 존재로 자리한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는 슈퍼맨, 캡틴 아메리카, 배트맨, 스파이더 맨, 원더 우먼 등이다. 


대중문화는 하나의 소스로 여러 응용 분야를 가진다. 만화에서 출발한 슈퍼 히어로는 영화화되거나 관련 장난감 등으로 확장된다. 작품 [Love]에 나타나있듯 여러 도상을 섞어 서사를 만들기 위해 비슷한 주제의 영화 이미지가 한데 엮이기도 한다. 가령 [Love]에는 사랑에 관련된 대표적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타이타닉’, ‘메리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등이 포함된다. 작품 [책가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무엇인가 꿈꾸고 상상하는 인물 바로 위에서 출발하는 식물의 줄기는 정신세계의 계통도를 연상시킨다. 지식이나 상상은 꼬리를 물고 자라나는 것이다. [책가도]는 나무 기둥과 줄기들의 분지 체계를 강조하면서 사유의 총체적 특징을 강조한다. 뿌리로부터 가지까지 뻗어있는 금빛 줄기들은 바깥까지 뻗친다. 그것은 질서정연한 계통을 이룰 것이다. 나무 아래에서 책을 보은 아이는 나무 위에도 앉아있다. 두 명이기 보다는 다른 차원에 있는 한 인물같은 모습이다. 


그것은 동양화에서 시간을 공간화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흐른 시간만큼 떨어진 공간만큼, 화면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다.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들은 나무 줄기와 비슷한 색감으로 그 안팎에 어울리게 배치되면서 그 체계의 든든함을 보증한다. 책가도를 비롯해 이유진의 작품 속 민화적 소재는 ‘나쁜 기운을 물리쳐주는 신령스러운 의미를 지녔던 한국호랑이, 벽사의 의미로 가정을 지키는 개, 주위에 날아드는 새들의 지저귐’(이유진) 등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나이키, 아디다스의 로고, 지구본, 해리포터 등 다국적 기업의 인기 상품 기호가 가세한다. 작품 [태몽]은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와 밀접했을 이미지로 [책가도]의 구성과 유사하다. 바위의 틈에서 자라난 나무는 태내와 바깥에서의 성장을 말한다. 한복을 입은 아이가 타고 있는 이국적 동물은 민화 속 강아지나 호랑이와도 잘 어울린다. 작품 [December] 시리즈에서 빛으로 장식된 나무는 12월이 예쁜 선물을 주고받는 축제의 달임을 알려준다. 


[책가도]나 [태몽]에서 호랑이 자리에 표범이 자리하는 등의 변주가 있다. 짝을 이루는 작품에 소년이 있다면, 다른 작품에는 소녀가 있다.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되는 작품에서 계절은 자연스러운 맥락을 만든다. 작품 [체리블라썸]에서 꽃이 가득 피어난 나무 아래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한복의 여성 주위로 민화에 등장하는 강아지들이 모여 있다. 나무 위에는 고양이들과 새가 활짝 핀 꽃들 사이 여기저기에 배치된다. 목마 위에 강아지, 그 위에 고양이, 그 위에 새가 있는 도상은 동화를 민화적 도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들 동물은 모두 반려동물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민화의 시대만큼이나 대중문화의 시대에도 사랑받는 이미지다. 순수함을 위해 미 이외의 것들을 내몰았던 예술은 한 시대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예술이 순수를 고집하는 동안 예술에 포함되어 있던 중요한 것들이 하나둘 기계복제 시스템에 넘어갔다. 이유진의 전시는 예술과 문화 사이에 가교가 필요한 시점을 알려주고 있다. 

 

출전; 미술평단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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