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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 / 사진적 세상을 다시 찍기

이선영

사진적 세상을 다시 찍기

  

이선영(미술평론가)


  

대학에서 전산을 전공하고 대기업 전산실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있는 홍준호는 일찍이 인간이 코드로 표시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이전 전시 주제 중 하나는 [Digital Being], 즉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였다. 최근 전시에서는 지폐나 우표 등에 코드화 된 인물을 소재로 한 [시대초상]을 선보였다. 누군가의 하루 일정은 그가 사용하는 각종 입 출입 카드나 신용카드, 스마트폰 위치, 인터넷 접속 기록, 차량 블랙박스, 공적, 사적 영역의 CCTV 등에 남은 흔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용의선상에 오른 수상한 사람이라면 지나간 기간도 복구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극렬한 마케팅 활동은 누군가의 (소비)일정 또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기기의 발달로 그러한 그물망은 더욱 촘촘하게 짜여진다. 외적 감시는 내면화되어 자기 조절의 단계에 이른다. 홍준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각종 영수증과 신분증 등은 그러한 흔적의 결과물이다.



Portrait of Generation - Identity #001, #002, #003, #004, #005, #006(대구예술발전소 전시전경)



Portrait of Generation - Identity #001, Archival Pigment Print, 48 × 48cm, 2021



Portrait of Generation – Identity #002, Archival Pigment Print, 48 × 46cm, 2021



Portrait of Generation – Identity #003, Archival Pigment Print, 48 × 46cm, 2021



최근에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뿌려지는 명함 크기의 작은 전단지들에 화투나 서양 카드를 덧찍은 것들을 구조적 단위로 삼아 조합한다. 2021년 열린 [시대초상] 전에서 그는 전단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공중에 붕 띄워 놓았다. 그것은 카지노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카지노 자본주의가 허구적이어도 위계질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피라미드 시대보다는 유동성이 있지만, 현대사회의 풍요와 발전이 계층적 차이를 벌려 나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신을 대신하는 돈은 무너진 바벨탑의 신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독재자가 자신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세뇌시키기 위해 남발한 기념우표 위에 덧쓴 글들은 마치 고대 양피지(palimpsest)를 떠올리는 방식으로 정치적 알레고리(allegory)를 전달한다. 현대사회에서 의미로부터 자유롭게 된 기표(記標, signifié)는 예기치 못한 만남과 충돌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기성 질서의 해체( deconstruction)와 재구축(reconstru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명 비판은 현대예술에 진(眞)과 선(善)의 문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눈을 가린 비너스 상에 표창처럼 꽂힌 전단지들은 무력화된 진선미의 통일에 대한 풍자적 모습이다. 예술이 미(美)의 문제에만 천착하다가 스스로를 무장해제시키고 무의미한 유희(遊戲)나 장식에 머물고 말았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다만 진리와 선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미를 통해서 그것을 경량화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소재나 형식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시스템은 스스로 처리해야 할 것 또한 개인에게 떠맡기며 인간과 시스템이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수렴시키려 한다. 그것이 전면적인 지배의 조건이자 결과이다. 직업이라는 것이 무서워서, 남들은 어렴풋이 느끼는 많은 것들을 전산실 근무자는 코드(code)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육체를 가진 존재가 버텨낼 수 없는 과부하는 병이 되어 돌아왔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Portrait of Generation – Identity #004, Archival Pigment Print, 48 × 46cm, 2021



Portrait of Generation - Identity #006, Archival Pigment Print, 48 × 48cm, 2021



Portrait of G9.eneration - Identity #902, Archival Pigment Print, 47 × 52cm, 2021



Portrait of Generation - Identity #903, #904, #905, #906, Archival Pigment Print, 48 × 46cm, 2021



하지만 홍준호는 여전히 코드들을 만지작거린다. 자신의 의료 사진까지 활용했다. 그 사진들에서 사진의 미학에 깊이 깔려 있는 죽음을 보았다. 그러나 작가가 된 후 모든 코드들은 예술적 거리를 취하면서 다루어졌다. 직장인 시절 돈을 버는 도구로서의 코드는 자기반성과 문화 비판의 재료가 되었다. 마침 대중들도 그에 익숙한 터라 ‘미술 고유의’ 언어 못지않게 표현 및 소통의 도구가 되어주었다. 그가 작가로서 코드를 다루는 방식은 코드의 투명성이라는 기능주의적 신화를 벗겨내고, 그 불투명성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언뜻 그의 작품은 자료로서의 코드를 훼손하는 듯이 보인다. 요리로 친다면 매우 복잡하다. 처음에 반듯했을 이미지는 흐들흐들하게 되면서 물질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은 명확한 것을 애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코드에 깔려있는 의미들을 복구하려는 조치다. 의미의 층위는 복합적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내재한 ‘겹(layer)’과 ‘결(grain)’을 강조한다. 그의 작품이 중층적 구조를 가진 이유다. 


하지만 누군가 원재료도 알고 싶다면 굳이 감추지 않는다. 원래 자료는 완전히 변형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흔적으로 남아서 덧씌워진 것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의미를 변형, 증폭시킨다. 사진을 비롯한 여러 과정을 거치다 보면, 원래 재료는 작가가 던지는 의미의 방향타만 되어줄 뿐이다. 홍준호의 작품 소재는 미술사의 명작들이나 종교적 도상, 박물관의 자연물까지 전방위적이다. 최근 작품에서도 길거리에 흩뿌려지는 지라시부터 지폐에 등장하는 숭고한 인물 초상이나 기념우표까지 다양한 소재를 아우른다. 수집된 오브제가 직접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다양한 소재를 아우르는 주된 형식은 사진이다. 광범위한 자료 조사의 과정을 거쳐서 수집된 것들을 사진으로 찍거나 스캐닝한 후 구겨진 종이 스크린 위에 영상으로 투사하고, 이것을 다시 사진으로 찍는 과정을 거친다. 종이 스크린은 대부분 하얗지만 구김 때문에 그림자가 지고, 부분 촬영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최종 화면은 다(多) 시점이 되는 등, 육안으로 보는 과정과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변형된다. 




Portrait of Generation - Identity #501, Archival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Installation, 2021



Portrait of Generation - Hanging Gardens, Variable installation(Silk screen on the illegal advertisements), 275 × 540cm, 2021



Portrait of Generation - Believed for a while #01, Archival Pigment Print, Photograph Variable installation, 2021



Portrait of Generation - Metamorphosis #01, #02, #03, Mixed media, 50 × 50 × 65cm, 2021



사진 이미지면서도 만지고 확인하고 싶을 정도의 입체감이 있으며, 미세하게 남아있는 복제의 흔적은 그의 작품 소재와 마찬가지로 작품 또한 시뮬라크르(simulacre) 임을 강조한다. 사진의 미학에 깔린 ‘부재(不在)’나 ‘죽음’ 등이 그의 작품에도 유령처럼 출몰한다. 구김의 흔적은 단순하게는 각종 출력 영수증 따위를 구겨서 버리는 일상 속 행위를 포함한다. 하지만 지폐나 우표 등에 등장할 만큼 위대한 인물들에 가해진 구김이나 바탕 이미지와 역행하는 덧글 쓰기 등은 성상파괴적인 충동이 담겨있다. 설사 따로 구기지 않더라도 국내외의 화폐박물관 등에서 작가가 자세히 조사한 도상학들에는 뜬금없는 인물들도 등장하기에 신화는 벗겨지곤 한다. 가령 이승만이나 김일성은 비슷한 시기에 남북의 화폐에 등장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프로이트나 마르크스, 칸트 같은 교과서적 인물이 대중들의 손을 타고 순환했다. 미켈란젤로나 카라바조 같은 예술가도 포함되어 있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만 해도 보편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지폐 위에 인쇄될 만큼 만인에게 공통적으로 수긍할만한 예술가가 존재할까. 당대 최고의 인쇄술에 실려 유통되는 인물들은 돈에게 필요한 권위를 보증해 준다. 하지만 돈의 물질성은 정보화시대에 점차 사라진다. 예술은 일반 상품이 희귀한 사물이 되는 시점에서 선택되곤 한다. 홍준호의 작품이 정치적 입장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때는 부정적 인물이 등장할 때이다. 독재자는 독재자들과 친해서 우민화 과정을 위해 필요했던 각종 기념우표의 발행 당시 한국의 독재자와 함께 등장한 낯선 ‘지도자’들도 가차 없이 구겨진 채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돈지랄’, ‘돈놀이’, ‘더러운 돈’ 등의 일상어에서 확인되듯이,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좋다고 말한 위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편 홍준호의 많은 작품에 내장된 구김의 이미지는 평면을 얇은 부조처럼 입체화시킨다. 




(참고도판)Digital Being - Card #01, Pigment Print, 44.8 x 74.9cm, 2015



(참고도판)Digital Being – Receipt#03,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00 x 70cm, 2019



(참고도판)Digital Being – Receipt#04, Mixed Media(Pigment Print, Receipt, Credit Card), 100 x 90cm, 2019



(참고도판)Homo Ludense #02, Pigment Print(Mixed Medical CT and Water Color on Hanji), 86cm x 76.4cm, 2016



(참고도판)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016,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20 x 89.77cm, 2018



그것은 원근법을 해체하고 공간에 질감을 만들어낸 입체파의 공간 실험을 유희적으로 다시 행한 것이다. 입체파의 실험은 화면 안에 담은 세상을 보다 가까이 당겨왔다. 세잔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입체파에서 보다 진전된 경향은 원근법적 거리가 사라진 보다 즉물적인 세상이 펼쳐지는 과정을 공유했거나 선도했다. 그것은 기표로부터 지시 대상을 떼어내는 과정과 일치했다. 돈 자체가 자유로워진 기표의 대표자다. 금본위제가 무너지고 이제 가상화폐까지 등장하는 등, 더욱 가벼워진 돈은 더 빠른 속도로 세상의 질서를 재편할 것이며, 예술가 또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거나 선도할 것이다. 사진이나 판화 등의 기법을 통해 기표들을 다루는 작업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한다. 보다 많은 기원에 뿌리를 대야 하는 예술은 다양한 이력을 가진 작가들을 필요로 한다. 홍준호는 다소 늦게 미술계에 합류했지만, 빠른 속도로 핵심을 집어가는 중이다.     


출전; 대구예술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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