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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 변신을 위한 놀이의 장

이선영

변신을 위한 놀이의 장

  

이선영(미술평론가)


  

인간은 자연을 소유하기 위해 축소하여 곁에 두곤 했다. 크게는 정원술이 그렇고 작게는 수석이나 분재같은 취미활동이 그렇다. 사진의 발명 이후에 이러한 가상적 소유는 더욱 일상화 됐다. 현대인은 풍경을 만나면 사진기부터 들이대곤 한다. 그것은 마주한 경이로움을 급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사진보다 더 오랜 전통을 가진 그림 또한 그러한 욕망에 부응해왔다. 소비 중심의 일상에서 사진은 그림의 자동화에 다름 아니다. 서구 미학의 양대 산맥인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서, 고전주의는 앎을 통한 이해와 지배, 그리고 소유라는 이성적 원리에 따라 자연의 축소모델을 지향했다. 영국식 정원과 대조되는 프랑스식 정원이 대표적 예다. 그 풍경의 소실점을 군주/신의 시점에 맞춘 권력의 중심을 향한 욕망의 풍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 했던 낭만주의는 재현주의적 방식보다 야망이 컸다. 낭만적 숭고는 현대미술의 기조에 깔려있다. 



1.假山_놀이,110 x110cm, 장지에 채색, 2017


2.假山_놀이,230x170cm, 장지에 채색, 2017


3.假山_놀이, 230x170cm, 장지에 채색, 2017


4.假山_놀이, 110x110cm, 장지에 채색, 2017



유혜경이 뒤늦게 미대에 편입하여 박사까지 꾸준히 해온 형식적 바탕인 동양화를 고전/낭만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한 경계를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무한한 주름을 잡아넣는 작품은 근본적인 두 경향을 화해, 또는 종합하려는 야망을 보여준다. 그것은 잡을 수 없는 것을 동경만 하거나 잡지 못하기에 잡을 수 있는 것만 현실로 인정하려는 두 극단을 배제한다. 상자나 서랍, 창문 바깥으로, 배경을 가득 채운 최근 작업, 또 책가도 형식을 취했지만 경계를 넘나드는 도상, 심지어는 설치작업을 시도하면서 화면 바깥으로 확장하려는 기미가 선명하다. 하지만 대체로 그림이라는 틀을 인정한다. 이 틀 때문에 규모나 차원의 변주도 유의미해진다. 저쪽 방 또는 벽면에 배치된 청록산수가 경계를 넘어오는 작품 [眞境_HeterotopiaⅠ](2020)에서 사람들과 산해경 속에 등장할 법한 동물이 공존한다. 이질적 공간인 헤테로피아에는 동질적 존재보다는 이질적 존재가 자연스럽다. 괴물은 개별 종의 경계를 넘어 그 단편들이 조합된 이질적 존재를 말한다. 


소설가 보르헤스는 [상상 동물 이야기]에서 키메라에 대한 최초의 언급을 [일리아스]의 한 대목--‘이것은 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앞부분을 사자를 닮았고, 중간 부분은 암산양을 닮았으며, 마지막 부분은 뱀을 닮았다’--에서 찾아낸다. 괴물은 차이들이 뒤섞인 것이다. 유혜경의 작품에서 이질적 존재들의 출전은 [신해경]이다. 동양의 고전에 대한 참조는 대학 때 연구했던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어서 그림으로 전공을 바꾼 작가의 이력을 반영한다. 산해경에는 여러 기이한 존재가 등장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자신의 상상을 보태서 괴물의 항목을 무한정 늘려나간다. 어떤 형태에는 그에 맞는 서사가 뒤따른다. [眞境_탈각된 공간](2020)에 나오는 존재는 산해경에 나오는 제강(帝江)이다. 작가에 의하면 제강은 ‘천산에 살며 그 형상은 누런 자루처럼 생겼는데, 마치 활활 타는 불처럼 붉은색이다. 또 짤막한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를 달고 있고, 얼굴이 없는데 노래하고 춤추며 돌아다닌다’고 전한다. 눈에 잡힐 듯 선명한 이미지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5.山海經,150x215cm,장지에 먹드로잉,2019


6.山海經Ⅰ(산해경),150x215cm,장지에 먹드로잉,2018


7.眞境_책가도(右), 190x50cm, 장지에 채색, 2020


8.眞境_책가도(左), 190x50cm, 장지에 채색, 2020



범주들이 너무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가령 그것은 사과와 배, 또는 호랑이와 사자가 합쳐진 것이 아니다. 범주의 이질성, 나아가 무정부성은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의 시작을 가능하게 했던, 보르헤스의 책에서 발견된다. 보르헤스의 책에 인용된 중국 어떤 백과사전에는 동물이 ‘ 황제에게 속하는 것, 향기로운 것, 길들여진 것, 식용 젖먹이 돼지, 인어, 신화에 나오는 것, 지금의 분류에 포함된 것, 미친 듯이 나부대는 것, 수없이 많은 것, 아주 가느다란 낙타털 붓으로 그린 것, 기타, 방금 항아리를 깨트린 것 , 멀리 파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셀 푸코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존재물의 무질서한 우글거림을 완화해 주는 정돈된 표면과 평면을 모조리 흩어 뜨리고 우리의 매우 오래된 관행인 동일자와 타자의 원리에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오래도록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사유, 우리의 사유, 즉 우리의 시대와 우리의 지리가 각인 되어 있는 사유의 친숙성을 깡그리 뒤흔들어 놓는’ 어떤 사유를 발견한다. 


위의 내용이 남긴 [말과 사물]의 저자가 속해있었던 서구는 소위 말하는 합리적인 분류체계를 발전시켰지만, 분류의 기준에 내재 된 자의성을 감춘다. 과학으로 대표되는 중립적인 듯한 분류체계 또한 상대적이다. 오늘날 미디어를 매개로 한 코드화는 결국 가격표를 붙이기 위한 체계 아닌가. 하나의 기준이 휩쓸면 나머지들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예술은 상상을 통해서 사회의 지배적 상징계로부터 벗어나 전혀 다른 범주들에서 빌어온 것들을 한 평면 위에 놓고 놀이할 수 있다. 유혜경의 작품의 놀이적 특성은 존재의 판을 상대화시키는 급진성을 띈다. 예술은 늘 무질서와 해방 사이의 어딘가에서 의구심을 받아왔다. 유혜경의 [山海經] 시리즈에는 깍아 지른 기이한 절벽에 산해경의 괴물들이 여기저기 출몰한다. 봉우리 하나에는 하나의 얼굴에 많은 몸이 달린 인간 괴물이 서 있다. 장지에 수묵으로 그린 [山海經Ⅰ](2018)에 대해 작가는 ‘북송의 거비파 산수를 표방하여’ 작업하였다고 밝힌다. 




9.眞境_탈각된 공간, 110x110cm, 장지에 채색, 2020


10.眞境_muse를 찾아서, 110x110cm, 장지에 채색, 2020


11.live in a garret, 85x160cm, 장지에 채색,2012


12.假山_놀이,116x74cm, 장지에 채색, 2017


13.와유산수_臥遊山水, 162x65cm, 장지에 채색, 2017


14.山水_놀이,110x60cm, 장지에 채색, 2017



산해경은 고풍스럽고도 이국적이지만, 유혜경에게 기이함은 일상에 존재한다. 작품 [眞境_달콤한 시간](2020)에는 미닫이 서랍 안에 청록 산수가 들어가 있다. 작품 [眞境_탈각된 공간](2020)에서는 욕조 안팎에서 비누 거품처럼 증식하는 산수가, 작품 [假山_놀이](2017)에서는 상자 안의 하얀 산아 마치 연기처럼 솟아오른다. 진기한 경치와 만나고 싶은 희망사항은 거품이나 연기처럼 증식되고 또 푹 꺼져버릴 수 있는 욕망과 유사하다. 작가는 산을 그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산이 아니라 덩어리를 그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욕망의 덩어리일 터이다. 욕망은 늘 경계를 넘으며, 작품 속 기이한 존재들 또한 경계를 넘나든다. 작품 [眞境_muse를 찾아서](2020)의 제목처럼 작가에게 이 기이한 존재는 시적 영감을 준다. 거대한 진열장 안에 안치된 청록산수를 보여주는 [眞境_탈각된 공간](2020)에서 관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관조의 대상은 경계를 넘어 관조하는 자들의 영역으로 넘어오기도 한다. 


유혜경의 작품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놀이 또는 실험의 대상이다. 작가는 [眞境_HeterotopiaⅠ](2020)에 대해 ‘현실과 가상이 구분되지 않는 초현실의 공간, 즉 경계(境界)를 그린 것’이라고 밝힌다. 유혜경의 작품을 문예사조사에서 확립된 어떤 이즘과 연결시킨다면 초현실주의에 가깝다. 초현실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시한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꿈과 현실이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상반되는 두 가지 상태가 이후에 초현실이라는 일종의 절대적 현실 안에서 화합되리라’고 말했다. 브르통에게 이러한 현실이란 ‘생명과 죽음, 현실과 환상, 과거와 미래, 전달 가능과 전달 불능, 높이와 깊이가 모순으로 보이기를 그치는 마음의 어떤 지점’이다. 브르통의 논지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참고한 것이지만, 칼 융도 ‘의식과 무의식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여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시인 노발리스가 믿은 ‘절대적 현실로서의 예술’까지는 아니어도, 현대의 작가 유혜경은 또 하나의 현실을 작품으로 일궈낸다, 




15.眞境_HeterotopiaⅠ, 75x75cm, 장지에 채색, 2020


16.眞境_탈각된 공간, 60x100cm, 장지에 채색, 2020


17.眞境_달콤한 시간,60x100cm, 장지에 채색, 2020


18.假山_놀이,43x72cm, 장지에 채색, 2017



‘무의식을 발견’했다고 믿어지는 프로이트에 대한 초현실주의자들의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 자신은 고대 유물에 무의식이 담겨 있다고 하면서 유물에 대한 수집 취미를 가졌고 초현실주의를 비롯한 당대의 미술은 무시했다. 유혜경의 경우 기법과 도상에서 고전적 출처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프로이트-초현실주의의 해석과 더 걸맞을 수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견지한 3개 층으로 나뉜 심층 모델은 교묘하게 비틀린다. 두꺼운 종이를 구겨서 만든 듯한 미로같은 지형은 복합적인 표면이지 심층이라고 볼 수 없다. 유혜경의 산, 작가는 가산(假山)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면서 환영으로서의 그림의 속성을 반복하며, 동시에 차이를 둔다. 들뢰즈를 비롯한 현대 철학자들은 정신분석학의 혁명적인 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현대적인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로운 모델은 뫼비우스 띠같은 것이지, 무의식의 대해에 떠 있는 빙산 같은 것이 아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유혜경의 작품은 한국화과 출신들의 고질적 고민인 ‘전통과 현대의 문제’를 출렁이는 유동적 표면의 모델로 해결 한다.   


심층 모델이든 표층 모델이든 초현실적 작품에서의 ‘현실’이 반드시 초월적일 필요는 없다. 현대의 작가는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일상을 무시하지 않는다. 초현실주의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한 시인 아뽈리네르는 초현실주의가 ‘새로운 정신’ 즉 ‘경이의 정신과 경탄하는 마음에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은 일상적인 평범한 사실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시인에게는 ‘떨어져 있는 한 장의 손수건조차도 우주 전체를 들어올릴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은 돌멩이처럼도 보이는 산들, 그것들이 놓이는 현대적 인테리어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기이하면서도 유희적인 현실은 단순한 ‘미술작품’을 생산을 넘어서, 작업을 통해 ‘신비와 경이’ 그리고 ‘구원과 해방’을 원했던 초현실주의와 닿아있다. 유혜경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창의 경우에는 그림과 비교되는 틀이다. 큰 창 너머로 보이는 청록산수같은 작품 [假山_놀이](2017)는 그것이 풍경인지 풍경화인지 모호하다. 




19.眞境_Heterotopia, 110x110cm, 장지에 채색, 2020


20.眞景_Homo Ludens, 162x130cm, 장지에 채색, 2020



넓고 쾌적한 실내 창밖으로 보이는 산수인 [山水_놀이](2017) 또한 창틀과 그림틀은 일치될 수 있다. 어차피 ‘假山’이니까. 하지만 그 역시 오랜 전통이 있다. 작가는 중국 송나라 휘종은 자신의 정원에 만세산(萬歲山)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에 의하면 가산 문화는 ‘북송의 소동파와 백거이 등 많은 시인들도 향유했던 놀이 문화’였고 조선시대에도 그 예가 많이 발견된다. 요컨대 그것은 일상의 공간에 이상의 공간을 중첩시키는 일종의 놀이문화라고 할 수 있다. 유혜경의 작품 또한 ‘휴식공간을 꿈꾸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징적 이상향을 표현하는 요소들’과 현실을 만나게 한다. 막바지 작업을 하는 것을 본 작품 [眞景_1평 타워](2021)에서는 화면을 가득 채우고 밖으로 확장되려는 듯한 청록산수가 있다. 다른 작품들에서 실내에 배치되어 있던 산수가 이제는 건물을 에워싼다. 산수를 제한하는 것은 그림의 틀 뿐이다. 한가운데 놓인 건축물—안양의 지역성을 표현하기 위해 안양예술공원에 있는 건축 형식의 작품을 소재로 들여왔다--은 배경 지형의 인과관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장지에 석채와 분채를 미디엄인 아교에 개어 화면 위에 여러 번 쌓아 올리는 방법’으로 작업을 하여 ‘깊은 느낌을 주는’ 형식은 기법의 까다로움 때문에 크게 확장하기 힘든 산수풍경에 작은 인간이나 기이한 생물을 배치함으로서 풍경을 기념비적 스케일로 격상시킨다. 개미한테 보도블록 몇 장도 거대한 표면일 수 있듯이, 작품 속 개미 만한 작은 인간들은 굴곡진 산세를 무한한 표면으로 삼아 놀이한다. 유혜경이 동양의 오래된 화법을 소화하여 자신의 스타일로 그리는 산들을 보면 산이 애초에 형성되었을 때 강한 힘에 의해 지표면이 주름지는 과정을 표현한 듯한 울룩불룩한 표면이 인상적이다. 또한 작가는 화면 안의 산들을 차례로 그리지 않는다. 여기 그렸다 저기 그렸다가 하는 과정은 재현이 아닌 생성에 방점을 찍는다. 작가는 그리는 행위 그자체도 놀이로 간주한다. [假山_놀이]로 붙여진 시리즈 작업은 놀이의 속성을 강조한다. 작업이 무상의 행위지만 몰입을 야기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21.眞景_1평 타워, 193.8x130.4cm, 장지에 채색, 2021



‘호모 루덴스’라는 인류학적 주제를 포함하는 유혜경의 작품 속 인물들은 산이라는 배경 속에서 대개 등산을 하는데, 등산 자체가 놀이라고 하기에는 엄청나게 빡 센 과정이라는 점은 작업으로서의 놀이 또한 만만치 않음을 암시한다. 어딘가 오르는 인간들은 설치작품으로도 구현한 작품 속 행동은 거의 서커스 수준의 난이도를 보여준다. 놀이는 단순한 이완의 지속이 아니라 긴장 고조 이후의 이완이다. 이완, 또는 긴장만 있다면 극적인 변화가 전제조건인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한다. 생활인이기도 한 작가가 휴식과 경이로움을 주며 탐험도 가능한 자연을 늘 가까이할 수는 없다. 더구나 세계적인 감염병으로 원치 않는 유폐 생활을 강요받으면서 발이 묶인 작가는 즐겨 찾아다녔던 중국의 명산뿐 아니라 설악산 등 한국의 산들도 작업에 끌어들였다. 그것들은 그림에 담기기 전에 한 번 더 담겨진다. 작게는 상자부터 크게는 몇 개 층이 뻥 뚫린 층고 높은 현대식 빌딩에 이른다. 넓고 쾌적한 실내공간에 안치된 청록산수는 그 안에서 여러 행위를 하는 작은 인간들 덕분에 산으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대개 비슷해서 개별적 인물들이자, 애니메이션처럼 여러 동작의 연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동양화의 이동 시점처럼 공간에 펼쳐진 시간인 셈이다. 인물들은 산수뿐 아니라 그것이 놓인 또 다른 공간에도 배치된다. 층계가 있는 실내에 청록산수들이 배치된 작품 [假山_놀이](2017)의 경우 인물들은 계단을 오른 뒤에 산으로 올라갈 태세다. 그들은 종종 공존하는 ‘작가의 뮤즈’들처럼 경계를 가로지른다. 계단 위의 청록산수들 안팎의 인간들은 추위도 더위도 없이 완벽히 조절된 공간에서 놀이한다. 작품 [眞境_Heterotopia](2020)는 초현대적 빌딩의 로비같은 공간에 몇 개층을 차지하는 청색 바위산이 자리하고, 사람과 기이한 동물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작품 [眞景_Homo Ludens]( 2020)에서 넓고 높은 현대식 건물 실내공간 여기저기에 청록산수는 바닥 뿐 아니라 공중에도 지붕에서도 자라난다. 그것은 산의 외양을 한 미지의 무엇이다. 이 덩어리들은 지금도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지 모르는 채 생성 또는 소멸 중이다.


출전; 2021 안양연고작가발굴지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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