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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화가) / 현재와 과거가 중첩된 고향 풍경

이선영

현재와 과거가 중첩된 고향 풍경

  

이선영(미술평론가)


  

구본창의 작품에서 점묘 기법으로 흩뿌려진 작은 점들은 화면의 평면성을 확인해주는 조형적 요소지만, 사실주의적 효과도 있다. 바위를 치는 파도의 포말, 한겨울의 눈발, 봄꽃의 개화와 낙화, 감자밭과 개망초 등이 담긴 작품에서 밝은 점들은 그자체가 물, 눈, 꽃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원자처럼 공간을 가득 채우고 그때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전달한다. 물질은 그자체가 아니라 공기의 운동과 결합 되어 나타난다. 농악 소재의 작품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는데, 춤추며 연주하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음악, 그리고 그에 조응하는 듯한 숲 속 나무의 꿈틀거림 같은 공(共)감각적 표현에서도 입자들은 조형 언어 이상의 역할을 한다. 농악 소리와 솔잎 향기는 점과 색의 흐름에 실려 퍼져나간다. 한편 풍경화에서 종종 나타나는 바위산 같은 표현에서 화면 위에 흩뿌리는 기법은 멀리 보이는 풍경에 물질적 견고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바위의 재질과 화면의 재질이 중첩되는 경우이다. 





당진문예의전당 전시전경(이하 사진출전은 당진문화재단)


추상적 요소와 사실적 요소의 교묘한 중첩은 원래 작가가 사실주의에 충실하다가 2011년 귀향한 후 선택한 점묘 기법과 관련된다. 근대 미술사에서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는 연결되면서도 단절된다. 연결은 양자가 기존의 상징주의나 알레고리에서 벗어나 시각성에 충실하다는 점이고, 단절은 후자가 화면의 평면성 및 추상화로의 길로 나아 간 점이다. 구본창의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풍경화와 관련한 대목만 미술사를 인용해 보자. 앨런 보네스는  [모던 유럽아트]에서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를 비교한다. ‘쿠르베에게 풀은 녹색이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모네와 르누아르는 풀이 빛에 의해 회색, 노란색, 또는 파란색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인상주의 화법에서는 그림자 또한 빛을 머금고 있어서 구본창의 풍경 속 그림자는 검은색이 아니다. 점묘 기법은 견고한 외곽선에 둘려 쳐진 지시대상을 느슨하게 한다. 그러나 대상을 완전히 해체하지는 않는다. 산산이 흩어질 수도 있는 분자적 요소들은 애써 모여든다. 


시지각 뿐 아니라 기억에의 의지는 분자들을 응집시킨다. 1951년생의 작가가 고교 때 떠난 고향에 환갑 즈음에 돌아왔을 때 그곳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고향은 마냥 좋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됐다. 그래서인지 고향 땅은 사실주의 보다는 아스라한 분위기 속에 잠겨있다. 마치 먼 나라에서 기억하는 고향의 모습처럼 말이다. 급속한 변화의 와중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처럼 그에게도 고향은 충만하면서도 아쉬움을 자아낸다. 고향, 귀향이라는 말은 참으로 멋지지만, 이곳 또한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남아있는 세대들은 나이가 많으며, 듬성듬성 빈 집도 많은 다소간 썰렁한 분위기가 있다. 찬란한 자연도 그러한 어두운 구석을 완전히 가리지 못한다. 작가가 사는 곳은 원주민이 100여 가구에 불과한데, 근처 아파트 촌에는 3천 가구 이상이 살고 있다. 그것은 지나친 집중과 주변화의 단면이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 벌어진 중심과 주변의 관계는 다른 차원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1. 농악, Oil on canvas, 53x45.5cm, 2016



2. 농악, Oil on canvas, 53x45.5cm, 2016



3. 겨울 놀이, Oil on canvas, 53x41cm, 2011 



4. 솔바람, Oil on canvas, 61x91cm, 2019



5. 농악, Oil on canvas, 93x61cm, 2014


한편 작가가 청년 시절에 쉽게 미술을 선택할 수 없었던 집안의 갈등, 환갑이 넘어 귀향하고 나서도 농사가 대안이 될 수도 없는 삶, 집 근처에 부모와 자식의 묘가 있는 상황 등을 칠순의 작가로서는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기 힘든 국면들이다. 고향 풍경에 그의 원래 스타일이었던 사실주의보다는 아련한 또는 아린 감정이 투사되는 이유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지만, 생업과 화업을 동시에 포괄하는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본인이 태어난 집에 널찍한 작업실이 있는 남 부러울것없는 환경이지만. 작업이라는 영원한 숙제를 안고 사는 작가에게 어느 자리도 편할 수는 없다. 작가가 보는 현재는 과거가 중첩되어 있다. 장면들은 현재하면서도 기억에 떠오르는 듯한 이중성이 강하다. 엄혹한 시대를 살아왔던 세대에게 과거는 결코 미화될 수 없지만, 시간의 흐름은 뾰족한 것들도 둥글리기 마련이다. 이번 전시의 부제 ‘그곳, 그 사람’은 그가 여기에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를 그곳으로 생각하며, 사람 또한 지금이 아닌 시점에 있던 이들을 떠올린다. 


요즘의 초상화에는 주변 지인들을 그린다. 휠체어 차에 앉아있는 백발 할머니를 그린 최근 작품 [자애](2021)는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의 모습이 관객으로 하여금 미소를 띄게 한다. 하지만 장소는 그곳의 사람들과 간격이 있다. 산천초목은 늙지 않는데 그 안의 사람들은 늙는다. 매해 꽃은 피는데, 새로운 사람들은 유입되지 않고 원주민은 점차 사라진다. 원주민들로서는 고향이 잘 보존되어 있거나 소위 말하는 발전이 있거나 둘 중의 하나여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변하지 않음 또한 매번 재맥락화되어야 한다. 구본창의 작품에서 자연과 인간의 괴리는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이어서 젊었을 때부터 열심히 그려온 자화상에도 요즈음의 회한이 묻어난다. 1982년 젊은 시절의 자화상은 작업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가진 선굵은 화가의 모습이 담겨있다. 1992년의 자화상 또한 모자에 맬빵, 그리고 턱수염을 기른 예술가적 차림새가 특징적이다. 



6. 꽃비, Oil on canvas, 60.6x50cm, 2013



7. 복숭아꽃, Oil on canvas, 51x45cm, 2018



8. 피고, 지고, Oil on canvas, 145x112cm, 2021



9. 풍경, Oil on canvas, 53x45.5cm, 2012


그러나 자화상 속의 인물 또한 실물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 다른 풍경들이 점묘 기법일 때도 여전히 사실주의에 충실한 요즘의 자화상은 눈에 힘이 들어가 있는 젊은 시절에 비해 담담하다. 열정만큼이나 객관성도 작업의 필요조건임을 보여준다. ‘그곳, 그 사람’ 전은 인물화와 풍경화 중심의 이번 전시를 요약한다. 마을 주민들이자 지인들은 고향이 변해가는 것을 본 당진 토박이들이며 작품 속에는 70-80대 노인들이 주로 등장한다. 아니면 손자 손녀 뻘인 아이들이다. 젊은 농사꾼이 60대이며 그 아래로는 없는 농촌 마을에서 아이들은 희망 사항처럼 그림에 담겨진다. 전통 연희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고향 땅 당진은 바다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갯벌을 막아 지은 거대한 제철소는 근대 공업의 상징이자 그곳의 랜드 마크와 다름없지만, 작가의 시선이 많이 머물지는 않는다. 구본창의 작품에서 당진은 공업 도시가 아니라 농촌 마을이다. 


그의 작품에는 근대적 공장 풍경보다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줄다리기나 그러한 공동체 놀이와 함께했던 연희들이 더 많다. ‘송악’, 즉 소나무 숲에서의 농악 풍경은 구본창의 작품의 주요 소재다. 고향마을에는 500년 전통의 줄다리기 행사가 있다. 당진의 줄다리기 박물관은 그 전통을 증거 한다. 작가에게는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줄다리기 하던 어릴적 기억이 선명하다. 이때 난장 식 농악이 공연되곤 했다. 농악대들은 소나무 길을 지나서 집집마다 다니며 기원해주었다. 하지만 그 또한 시간이 갈수록 형식만 남게 되기에 민중연희의 모습은 아련한 공기 속에 잠겨있다. 한국 굴지의 제철소는 작가의 인생 행로를 결정하는데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1960-70년대 개발독재 시절의 공업진흥 정책은 적성에도 맞지 않은 서울의 공업학교를 진학하게 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계속 미술반 활동도 했지만, 결국 미대 진학이나 국전 같은, 소위 말하는 ‘공식적’ 경로를 통하지 않고 전업 작가로서 살아왔다.



10. 마지막 가을, Oil on canvas, 53x41cm, 2021



11. 반촌리, Oil on canvas, 117x91cm, 2021



12. peeking-scenery, Oil on canvas, 53x45.5cm, 2012



13. 계곡 추경, Oil on canvas, 65x51cm, 2015


지금도 호랑이, 수탉, 초상화, 누드화 등등이 있는 그림 목록을 보면 대중에게 호소하는 솜씨 좋은 기술력이 보인다. 주문 제작이나 그림 수출의 시대도 지나간 지금, 고향 집 자리의 작업실에서 또 다시 출발 한지가 10여 년이다. 요즘의 점묘 스타일의 작품은 2011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는 근래에 있었던 전시의 작가 노트에서 ‘채색 위에 선과 면이 아닌 수많은 색깔의 점들이 화면을 채우기 때문에 시간과 밀도가 필요하지만 차곡차곡 쌓여 가다 보면 어느새 나가 바라본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나타난다. 마치 나의 인생 스토리와 같다. 신인상주의 쇠라의 점묘주의와는 또 다른 나만의 느낌을 살려 꾸밈없이 바라본 삶을 그려본다’고 말한다. 점묘법은 구본창이 직접 호명한 쇠라를 비롯한 신인상주의 화파가 화학자 슈브뢸(M.E. Chevreul)이 쓴 논문 [색채의 동시적 대조에 관한 연구](1839)을 바탕으로 정립한 엄격한 과학적 기법이지만, 구본창의 작품에서는 보다 서정적이고 유연하게 적용된다. 


점묘법은 망막에서 광학적 혼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색채를 병치함으로서 생동감을 준다. 구본창 또한 팔렛트가 아니라 화면에서 물감이 직접 섞이는 분할주의(Divisionism) 또한 점의 크기가 일률적이지 않다는 차이점이 있다. 오랫동안 고수했던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스타일을 바꾼 구본창의 작품 이해를 위해 인상파 이론에 대해 간략하게 환기하고자 한다. 버나드 덴버는 [가까이에서 본 인상주의 미술가]에서 ‘대기와 빛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실제 존재 방식’을 표현한 모네를 인상파 화가의 대표자로 평가한다. 구본창의 작품에서도 순간순간의 미묘한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연작으로 제작된 풍경화들이 있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러한 생동감이 주기 위해서 변화시킨 것은 고전주의나 사실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갈색이나 검정을 없애고, 색조 혼합을 피하기 위해 밝은색을 사이사이에 둔 점이다. 버나드 덴버는 당시 비평가와 소설가들의 말을 두루 말을 인용한다. 



14. 오후, 마을길, Oil on canvas, 60x40cm, 2019



15. 마을 설경, Oil on canvas, 134x60.5cm, 2020



16. 길, Oil on canvas, 45.5x37.9cm, 2011


‘인상주의 화가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정밀하고 꼼꼼하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대면할 때 눈을 공격해오는 선과 다양한 색채의 뒤섞인 혼합물을 번역하고 해석하고 풀어낸다’(에밀 블레몽) ‘우리는 한여름 풍경의 셀 수 없는 단면들을 지나치면서 작은 언덕, 초원, 들판이 찬란한 반사광 속에서 어떻게 하나로 녹아드는지 보게 된다. 사물은 햇빛을 받아 반사할 때 대지를 감싸는 천공 아래 주변의 반사광과 한데 뒤섞여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빛과 색채의 진동을 느낀다’(뒤랑티) 인용된 비평가와 소설가의 평은 ‘대상이 자리하고 있는 대기의 아름다움’(모네)을 그리려는 인상파의 작품에 적용된다. 화가들은 특정한 대상보다는 반사광 효과를 관찰하고 표현하고자 했다. 대상의 입체감을 위한 모델링의 관행도 변화했다. 앨런 보네스는 [모던 유럽아트]에서 ‘나는 오로지 색을 가지고 원근법을 표현하려 했다’는 세잔의 말을 인용한다. 


구본창의 점묘법은 농도를 조절한 물감을 점묘 스타일로 뿌린다. 풍경 속 대상들은 즉물적이기 보다는 한 겹 가린 듯이 표현한다. 어슴푸레한 공기의 표현은 미세먼지나 황사 같은 부정적인 기상 현상을 연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경우 고향 주변을 그리고 있지만, ‘고향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도 있다. 일종의 심미적 가림막인 셈이다. 낙향 후에 체택 된 점묘 스타일은 그가 도시에서 수 십 년 간 해왔던 아카데믹한 기법을 새로운 맥락에 놓는다. 점묘 스타일이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다시 자리 잡은 현실의 표현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해안가에서 조개 캐는 여인들이 멀리서 포착한 작품 [조개잡이](2019)는 그림자 부분도 환하게 표현되는 점묘 기법이다. 검은 그림자마저도 색 점으로 표현했던 신인상주의 기법이지만, 구본창 버전의 점묘 기법은 실제를 휘발시키지 않는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나목 윗부분을 화면 가득히 포착한 작품은 나무의 실재감이 드러난다. 



17. 나의 일상1, Oil on canvas, 53x33cm, 2017



18. 안섬포구, Oil on canvas, 79x56cm, 2020



19. 갯바위, Oil on canvas, 79x67cm, 2020



20. 만리포, Oil on canvas, 53x41cm, 2019



21. 풍경, Oil on canvas, 65x53cm, 2016


원경의 소나무와 원경의 붉은 등대가 있는 작품은 점묘 기법이라도 장소의 지형적 특성을 드러내는데 충분하다. 바위산의 표현에서의 점묘도 마찬가지다. 해안가 바위를 점묘로 표현한 부분은 바위의 질감과도 연결되며, 바위를 치는 바닷물의 하얀 포말 또한 밝은 점들의 춤들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점묘는 역시 채우는 공기, 특히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공기의 표현에 적합하다. 물론 고향을 굳건히 지키는 듯한 산세에서도 기(氣)가 품어져 나오는 듯한 풍경이나 물과 물안개의 경계가 모호한 풍경은 점묘 기법이 물질과 에너지의 표현 모두에 적당함을 알려준다. 구름 사이의 해가 보이는 [오후, 마을 길](2019)은 오후의 시골 공기의 밀도를 색 점으로 표현한다. 점묘법은 계절의 느낌을 담은 풍경에 적합하다. 한 장소도 사계절 다른 풍경을 낳는다. 공기 방울이자 색 점으로 작용하는 점묘는 구상과 추상의 중첩이기도 하다. 


거친 돌밭 한쪽에 핀 민들레를 그린 [자화상, 민들레](2021)에서 돌밭 부분은 재현이지만 물감의 질감이 드러나는 추상으로도 보인다. 밭고랑이 보이는 풍경에서 하얗게 흩뿌린 물감은 야생화의 표현에 적합하다. 야생화가 가득한 작품은 색 점의 밀도에 따라서 꽃이 되기도 하고 꽃향기가 되기도 한다. 산천의 진달래나 철쭉도 붉은색 점들로 처리되었으며, 벚꽃 가득한 풍경은 꽃들 하나하나가 색 점에 해당된다. 꽃 풍경들은 점묘와 사실주의가 절충되는 절묘한 소재다. 여기에 인간이 있는 경우 모종의 서사가 발생한다. 벚꽃 가득히 핀 가로수 길가의 할머니를 그린 작품에서 바닥에 떨어진 꽃들을 보는 할머니는 자연의 순환을 암시한다. 또 다른 비슷한 풍경에서 흩뿌려진 물감처럼 밝게 흐드러진 벚꽃들은 곧 새순을 내지만, 사람은 안 보인다. 같은 장소의 다른 작품에서 보였던 할머니는 이듬해에 그 꽃들을 맞이했을까. 아니면 자연으로 되돌아갔을까. 



22. 자애, Oil on canvas, 60x45cm, 2021



23. 자화상, Oil on canvas, 45x37cm, 1982



24. 자화상, Oil on canvas, 46x38cm, 2021


전경에 나무들이 많은 집은 자세히 보면 인적없는 빈집이다. 사람 대신에 나무들이 지키고 있는 모습은 오늘날 농촌의 모습을 알려주는 단면이다. 500년 전통이 있다는 민중연희는 형식만 남은 현재보다는 살아있는 전통이었을 그 시절과 더 조응하는 듯하다. 소나무와 황소, 장승 그리고 작가의 얼굴이 크게 떠 있는 농악대를 그린 [귀촌 자화상](2016)은 관념적인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눈발 날리는 소나무 숲길에서 홀로 탈춤을 추는 풍경은 다소간 초현실주의적이며, 점묘로 표현된 소나무 숲 안의 농악대는 점들로 사라져 버릴 듯도 하다. 농악하는 자세 하나하나를 재현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요즘 그려진 작품은 농악대들의 연주를 감싸는 색 점들이 운동과 소리로 확장된다. 관객 쪽으로 다가오면 줄지어 농악 하는 장면은 솔내음과 소리가 어우러질 듯하며, 소나무의 굴곡진 나무 기둥과 가지들은 마치 농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하다. 구본창이 집중해온 ‘송악’이라는 주제에서, 소나무 숲은 연희자들을 위한 자연의 무대가 된다. 충만한 자연의 무대를 허망한 빈 무대로 만들지 않기 위한 작가의 붓놀림은 계속된다. 


출전; 당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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