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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에서 기본소득으로

이선영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기본소득으로

    

이선영(미술평론가)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최근 인류는 급작스런 변화에 직면해있다. 급격한 변화가 세계화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재난은 인류라는 먼 단어를 개인에게 매순간 적용되게 한다. 지금 가장 큰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국가가 제시할 수 있는 해법은 유폐일 따름이어서 효과가 크지 않다. 미국에서는 하루 코로나 사망자수가 9.11테러 당시의 사망자 수에 육박하는 가운데에서도 다국적 기업에서 급하게 개발 중인 백신만 바라보는 사태는 개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공정책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전 같으면 일상적이었던 모든 행위들이 위험해지고 금기시되었다. 방금 본 뉴스에서는 벨기에의 한 요양원에서 자신이 확진자임을 모른 채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지고 간 자원봉사자가 수퍼 전파자가 되어 악몽의 크리스마스를 맞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나눔과 소통은 사회적 미덕이었는데 말이다. 


이제 어딘가로 피난할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현대의 철학자는 변신을 한 가지 방식으로 제시한 바 있다. [변신]으로 유명한 카프카는 ‘카프카적(kafkaesque)’이라는 단어가 형용사가 될 만큼 보편화되었다. 근현대 예술 및 문화는 카타르시스도 주지만 동시에 기괴한 비전으로 가득 차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중 및 하위문화에서 ‘고딕’이나 ‘컬트’라는 코드도 인기 있다. 그 비전은 물컹거리는 생물학뿐 아니라, 동일자와 타자를 구별하는 통제 시스템과 밀접하다. 위험은 생물학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다. 공적 영역에서의 정책적 대안은 있는 것일까. 감염 병이 야기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가장 어두운 측면은 빈부 격차를 더 크게 했다는 점이다. 이미 존재하던 차별은 위기를 통해 더 강하게 작동된다. 백신 없는 전염병으로 고통 받던 2020년에는 정규적인 문화 예술 지원 사업 외에 예술가에 대한 지원책이 급하게 편성되었는데, 성과가 그다지 크지 않음은 유감이다. 


일자리 창출에 관련된 통계치에 기여할 몇 십 명 이상의 단체에만 공공미술 사업에 대한 지원 기회를 줌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할 상황에서 단체들만 혜택을 받은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명의 작가가가 추진한 사업도 공공적일 수 있으며, 단체여도 사익을 추구할 수 있다. 오랫동안 준비한 기획전이나 개인전이 미술관 봉쇄 때문에 큰 차질을 빚었다면, 선물처럼 뚝 떨어진 공적 기회를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적지 않은 세금이 투입되었지만, 문화예술 정책이기 보다는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 도와준 복지(?) 정책이 되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상황이 급박할수록 정책 효과가 무색한 사각지대가 늘어난다. 그럴 바에야 기본소득의 개념이 한시라도 빨리 도입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본소득은 누가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예술계에도 편재한 권위주의나 형식주의를 일소하는 근본적 방식으로 다가온다. 어느 날 닥친 바이러스의 창궐은 AI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단순한 유토피아적 상상부터 현실에 바탕 한 정밀한 경제적 연구에 이르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인간의 노동이 좀 더 존중받고, 노동하지 않아도 될 자유가 부각되는 와중에 예술의 진면목을 사회에서 널리 인정받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분야가 따로 없어도 삶 자체를 자유롭게 운용하는 시회에 대한 이상은 예술가나 철학자들에 의해 일찍이 개진된 바 있다. 예술은 다른 역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변화를 기록해왔다. 근대는 변수 자체가 상수가 되어 새로움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환영받았다. 예술에서의 변화란 근현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재현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러나 어떤 내용적 차이로 형식이 변화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변화의 속도는 빨랐다. 형식의 변화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일어나며, 이는 요즘 매일 듣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슷한 메카니즘을 가진다. 사회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현대예술은 그 내부에 사회의 위기를 이미 각인하고 있다.  


출전; 서울 아트 가이드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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