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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민 전

이선영

배지민 전 (10.25—2019.11.21.예술공간 수애뇨339) 

  

이선영(미술평론가)

  

  

추수가 끝난 들녘이나 변화하는 계절의 여운을 간직한 산등성이, 특히 작물이나 식물들의 색이 빠지는 즈음의 산야는 그자체가 수묵담채로 그린 동양화 같다. 가끔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동양화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느낀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유수의 화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정교하게 조탁 된 화론이 있지만, 관념보다는 현실을 강조하는 화풍이나 화론이나 화풍도 있었다. 동양화든 서양화든, 현실은 새로움과 소통을 위한 출발이 된다. 차창 밖으로 실시간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이 감탄스럽지만, 여행자의 관조적 입장은 자연에서 생산물을 얻는 고된 노동을 생략한 지나가는 이의 입장이다. 그림 또한 자연으로부터의 생산물이니, 관객 또한 생산자의 고통을 생략한 채 작품 속으로 여행한다. 배지민의 ‘걸어 다니는 바다’ 전에 등장하는 주요 장소는 바다가 있는 도시, 즉 작가의 생활 터전인 부산이다. 대개 자신이 사는 곳에서 여행자의 시각이 생겨나거나 유지되기는 어려운데, 부산 토박이 작가는 그곳을 여행하는 시점으로 그렸다. 




배지민_별이 되는 여정 the stellar journeyⅠ.Ⅱ_삼베(_)에 수묵, 채색(가변설치) _500×150cm_2019, 설치전경



배지민_가벼운 다리_Ligter Bridge_193x130cm_장지에 수묵, 호분_2019



배지민_바다 내음_scent of waterⅡ_117x80cm_장지에 수묵, 호분_2019



그것은 현재 부산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핫 플레이스로 토박이들조차 낯선 곳이 되었을 가능성을 말한다. 작품 [a walking ocean]에 나오는 남국의 나무처럼, 부산은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바닷가의 80층 높이의 초고층 아파트에서 살면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하다. 배지민의 작품에는 이러한 주제에 흔히 끼어들곤 하는 사회적 시선은 없다. 거기에는 개인적 시각보다 거시적인 사회적 시각, 사회적 시각보다 더 거시적인 시각이 있다. 낯선 행성처럼 표현된 거시적 시각과 개인적 감상은 중첩된다. 거기에는 만들어진 것을 포함한, 있는 것을 자연처럼 받아들이는 관점이 있다. 예술은 자연이 아니지만, 자연으로부터 나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듯한 태도가 있어왔다. 특히 동양화에서 그렇다. 


그러나 배지민이 그린 부산의 풍경은 이미 자연과는 거리가 있다. 직선으로 나아가는 빛을 제외하고는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는 직선이 가득한 도시에서 어떻게 자연스러운 풍경이 나올 수 있을까. 배지민의 작품은 어울리지 않는, 또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걷어내고 도시 문명의 자연적 측면을 드러냈다. 먹의 농담을 최대한 활용하여 기상 현상에 의한 것처럼 여백을 여러 방식으로 채우고, 도시를 이루는 구성요소를 일부분만 표현하는 방식이다. 먹의 농담만으로 공간을 처리한 [a walking ocean], 화면 상단의 얼룩들은 후각을 시각화한 공(共)감각적으로 처리한 [바다 내음]이 그렇다. 다리 중간이 잘린 듯 허공에 걸려있는 [가벼운 다리], 마천루가 포함된 도시가 대양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바다의 휴식]에서 잡다한 사회문화적 배경은 생략된다. 도시적 풍경을 시야에 나타나게 하는 것도 사라지게 하는 것도 자연이다. 불 켜진, 또는 낙조를 반향 하는 붉은 기운은 작가가 색을 매우 아껴 쓰고 있음을 알려준다. 




_배지민_a walking ocean_33x24cm_한지에 수묵, 담채_2019



배지민_Last vacation_바다의 휴식_ordinary rest of the ocean_126x135cm_한지에 수묵, 담채, 금분_2019



한지에 수묵담채로 그린 [a walking ocean]에서는 붉은 점 하나로 도시 한가운데의 태양을 표현했다. 예술공간 수애뇨의 바깥 공간에 걸린 한 쌍의 작품 [별이 되는 여정Ⅰ.Ⅱ]는 자연화 된 도시풍경이 실제로도 그런 맥락에 있을 때의 상황일 보여준다. 삼베에 수묵과 채색으로 그려진 길이 5미터의 대작들은 깍아지른 건물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설치되어있다. 자연과 건축이 적절하게 조화된 평창동의 건물 외벽과 어울리는 이 작품은 시멘트 빛 도시와 수묵의 조응이다. 마침 비오는 날에 이 작품을 보았는데, 회색빛 하늘이 포함된 도시를 반영하는 듯했다. 도시의 비둘기가 도시의 색감에 맞게 진화했듯이, 제2의 생태계가 된 도시 문명은 이전의 원초적 자연을 대신한다. 예술 또한 그러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공(共)진화할 것이다. 

  

출전; 월간미술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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