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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 일상적 삶이라는 특별한 선택

이선영

일상적 삶이라는 특별한 선택

 

이선영(미술평론가)


  

박준우는 아직 서른도 안 된 젊은 작가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온갖 자극적인 것들이 난무하는 현실로부터 잘 보호된 듯한 차분한 작품들이 특징적이다. 차분한 작품들이라고 해서 열정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업실에는 한 장 그리는데 온전히 하루를 쏟아야 하는 정사각형 모양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요즘은 사진찍기로 갈음을 하는, 야외 사생을 하러 가는 발걸음은 지금도 설레 임이 가득하다. 그의 작품들에는 집이나 작업실, 모교 근처의 평범한 장면들이 정사각형 프레임이나 화첩 형식에 담겨있다. 정사각형과 두루마리는 전혀 다른 형식 같지만, 한 작가에 의해서 같은 방식으로 사용된다. 정사각형이든 두루마리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계열들이 담겨있다. 그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있는 것들을 주로 그린다. 즉 그의 작품은 애써 특별한 곳을 찾아다닌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반응이다. 


물론 그가 사는 곳도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는 독특한 풍경이겠지만, 그 속에 살고있는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성향에 의해서건 예술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건 평범한 주변을 주로 그린다는 것은 자연스럽기보다는 특별한 선택이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작가가 전혀 낯선 좌표에 던져졌을 때는 어떠할까. 긴 화첩으로 재현된 베를린 거리의 풍경은 볼거리가 많은 외국에 가서 한 사생도 기본 태도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려준다. 오히려 외국이라서 지나가는 사람들에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그렸다고 한다. 한국의 풍경을 담은 두루마리 그림은 사람들을 피해 어두운 시간대에 그려져서 가로등 아래 명암의 대조가 강한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정사각형 그림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리즈 작업에서 풍경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정사각형 프레임이 인스타그램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면, 그 또한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을 양산하는 문화의 일원일 터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게 정사각형 안에 그렸다는 그는 작업을 하는 순간에는 전혀 다른 모드로 전환하는 듯하다. 인스타그램에 자기가 생산한 이미지를 잔뜩 올려놓고 관심과 ‘좋아요’을 기대하는 순간 그렇게 슴슴한 메뉴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취향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인 10대 이전에 시골에서 살았던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가마솥으로 물을 끓여 목욕하고 주변에 소와 닭들이 있었으며, 모내기 같은 집안일도 도왔다고 말하는 그의 회고는 20대가 아니라 거의 60대 이상의 추억처럼 들려온다. 시골에서 보랜 어린 시절을 부족함보다는 풍요로움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 진귀한 체험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도시 생활은 10세 이후의 일이며, 도시 인프라가 잘 조성되어있는 도시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도시 풍경보다는 초록이 가득한 자연을 그릴 때 더 신이 난다. 


파노라마 등으로 확장되곤 하는 야외 풍경 작업 때는 호불호가 선명한 작가에게 피하고 싶은 장면들이 끼어들어서 곤혹스럽다. 그는 기계적으로 찍어내서 반복되는 대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깔려있는 보도블럭이나 벽돌, 생뚱맞은 인공 구조물은 그냥 건너뛰고 싶을 정도이다. 누군가는 그가 그린 나무들도 다 비슷해 보인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똑같이 생긴 나무는 없다. 나무와 구조적 유사성을 가지는 정맥 형태는 인증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지 않는가. 작품 [63 파노라마](2018)는 종이를 이어서 그린 파노라마 풍경으로, 건물로부터 시작해서 숲으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그린 것으로, 화면 오른쪽 말단 부분의 나무숲은 가장 좋은 것을 아껴가며 그린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작품 [앞산 연구3](2016)는 잡목들이 있는 풍경으로, 도시의 조경과 달리 되는대로 자라난 식물들의 배치가 자연스럽다. 작품 [63나무](2018)는 종이 위에 엷게 그린 나무로, 나무의 강고함보다는 풀 같은 섬세함이 돋보인다. 


그는 수많은 나무를 그려왔지만, 나무하면 기대될 법한 엄청난 존재감을 가지는 종류는 발견되지 않는다. 작품 [63 파노라마](2019)는 겨울의 나목들을 그린 것으로. 언덕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나무만큼이나 강한 현실감을 가진다. 작품 [63 파노라마](2019)는 나무 일부가 재현된 것인데, 엷게 칠해진 잔잔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사방팔방으로 뻗은 나뭇가지의 방향을 흥미롭게 관찰한 흔적이 보인다. 이 작품은 그가 나무를 그릴 때 가장 많이 그리는 구도를 보여준다. 햇빛을 받기 위해 가지를 가득 벌린 나뭇가지들은 식물의 가장 큰 특징을 알려준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어떤 기능이 외화된 형태이다. 지지대가 있는 나무 아래를 그린 작품 [사림관 뒤](2018)는 마치 나무를 거꾸로 그린듯한 구도가 특징적이다. 원경에 보이는 다른 나무들에서 잘린 윗부분을 유추할 수 있으며, 나무는 가지와 뿌리의 동형성을 통해 지상에 굳건하게도 자리 잡을 것이다. 


[정사각형 그림들](2018)이라는 중성적인 제목이 붙은 작품들은 집합적으로 작용하며, 설치되는 장소에 따라 가변적이고, 지금도 진행 중인 열린 작품이다. 나무 판넬에 장지를 씌워 만들어진 단위구조 안에 분채와 과슈로 그리는 작품들은 번지거나 우연적인 효과를 사용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 놓는’ 역할을 하며, 보통 수 십 개가 동시에 보여지며 확장성을 가진다, 정사각형 그림들은 그가 접하고 있는 일상의 단편들을 모여있다. 운동장, 테이블, 건물 앞에 주차된 차 등 다양한 것들이 보이지만, 나무가 가장 많다. 나무들은 그가 좋아하는 부분이 주로 포착되어 있다. 밖에서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실내작업을 위해 사진도 필요하다. 그의 작품에는 흥미로운 부분을 잘라서 수집할 수 있는 사진적 특징이 있다. 작가는 자신의 본능이 나무에 가깝다고 말한다. 동물이 여기저기 쏘다니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면, 나무는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수행할 따름이다. 


나무들은 특별한 상징을 담고 있지는 않으며, 가장 나무 같은 부분을 선택해서 그린다. 모교의 모과나무 진해의 벚꽃나무 등, 주변에서 흔하게 발견하는 대상들은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하고, 동시에 평온한 일상의 단편이다. 정사각형 그림들은 작품 내용도 그렇지만 구성방식 자체가 일상과 예술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압축되어 있다. 하루를 온전히 담은 산물인 단편들은 모여서 전시장의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배치될 수 있다. 한 장에 한 장면 담긴 단위구조로서의 작품들은 큐브를 돌리듯이 조합되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그리드 구조로 배치되는 정사각형 그림들은 기승전결 없이 믿믿한 이야기를 펼친다. 현대인은 늘 상 충격적인 사건에 접하고 있지만, 이 충격적 사건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뉴스 시청은 안전한 거리에서 재난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근대미학자들이 미와 숭고 등 미학적 범주를 논했을 때, 필수로 끼워 넣은 것은 주체와 대상 간의 거리감이었다. 


정작 드라마틱한 사건의 당사자는 기록하기 힘들다. 평온한 일상은 꾸준히 작업하는 이의 이상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가로로 긴 작품 [밖에서 그린 그림들](2018)은 건물, 거리, 숲 등을 조금씩 이동하며 그린 시점이 녹아있다. 길이가 2.5m에서 5m에 이르는 화첩들에는 다 연결된 풍경이 담겨있다. 이러한 긴 그림은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떠올린다. 그는 ‘현장 드로잉은 그리는 위치를 이동하며 그리기 때문에 독특한 시점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파노라마 형식의 옆으로 긴 화면을 그릴 때 자리를 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였고 간간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기도 했고 앞, 뒷자리를 옮겨가며 그리기도 했다.’고 밝힌다. 이렇게 그린 그림들은 여러 가지 시점을 가지게 된다. 한 화면에 한 장면이 담긴 정사각형 그림 또한 여러 개를 동시에 배열함으로서 여러 시점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일상의 단편들은 조금씩 자리를 이동한다. 일상은 반복 속의 차이로 기록되는 것이다.  

  

출전; 창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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