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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ma(Tomoko Omata) /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공존의 기술

이선영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공존의 기술

  

이선영(미술평론가)

  


2013년에 첫 개인전을 하면서 작가로 데뷔한 Ouma(Tomoko Omata)는 전직 수의사이다. 작가는 2011년에 동일본 지진의 여파로 무력감을 느껴 수의사를 그만두기 이전에도 자신의 환자인 동물들을 즐겨 그리곤 했다. 치료는 외과적인 차원뿐 아니라 내과적인 차원이 있기에 정상적 또는 비정상적 세포를 스케치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자전적 배경은 생명과 생명의 기본단위인 세포 등이 떠올려지는 다양한 도상들로 나타난다. 수의학보다는 예술에서 더 자유로움을 찾은 그녀는 현재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도 중간 기착지 정도쯤 된다. 테미 예술창작센터에서 국외 입주 예술가로 참여하면서 진행한 개인전 부제는 ‘생물과 비생물의 경계에 대한 조사연구’이다. 이 거창해 보이는 주제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다루어왔던 이에게는 자연스럽다. 또한 경계의 문제는 과학에서 예술로 관심 분야를 변경시킨 자신에게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보이는 세라믹 작품 [미토콘드리아씨 Mitochondria-san]는 세포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고온으로 구워져 단단해지기 이전, 부드러운 흙을 주물럭거리면서 작가가 느꼈을 생명에 대한 이미지가 전달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독립적 개체였지만, 다른 개체와 공생관계를 이루다가 내부기관이 된 경우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생명의 그물]에서 공생기원설(symbiogenesis)을 소개한다. 이 이론은 항구적인 공생적 배열을 통해 새로운 생물형태가 창조되는 것을 모든 고등동물의 주된 진화 경로로 간주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생물학자 마굴리스에 의하면 미토콘드리아가 원래는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던 박테리아였고, 아득한 과거에 다른 미생물 속으로 침입해 들어가 그 속에서 항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으로 추측한다. 작가가 수많은 세포 내 기관 중에서 미토콘드리아를 주목한 것은 그것이 경계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나이면서 타자이기도 한 이 기관에서 중요한 점은 공생에 대한 메시지이다. 생물학 또한 오랫동안 세계관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으며, 그러한 혐의는 가치 중립적인 과학의 시대에도 극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예술은 과학보다는 가치 지향적 인데, 작가는 경쟁이나 적자생존, 약육강식, 우세종 같은 유아독존식의 범주보다는 공존과 공생을 강조한다. 하나이면서 연결되는 작품들이 여러 형식으로 포진해 있다. 설치작품 [집합생명 Ⅱ Life Continuous Ⅱ]은 일본 종이와 한국 종이로 이루어진 것으로,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얼기설기 연결되어 있다. 야생적으로 연출된 영역으로 관객 또한 들어갈 수 있고 걸려있는 종이들을 찢고 연결할 수 있다. 세포라는 미시적 우주 속으로 세포로 이루어진 개체가 들어가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소우주는 대우주가 되고, 대우주는 다른 차원의 소우주가 될 수 있다. 생태학적 차원으로 확장하면 그것은 생명의 그물을 떠올린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생명의 그물]에서 ‘인간들이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단지 그 그물 속의 한 올일 뿐’이며, ‘ 그 그물에 가하는 모든 일은 스스로에게 향한 것’이라는 말을 인용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유기체적 사고는 기계의 약진을 통해서 변화해 나간다. 생물학자 출신의 사상가 다나 해러웨이는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에서, 그리스인들은 시민(citizen), 도시(city), 우주(cosmos)가 같은 원리로 건설된다고 상상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개체가 살아 있는 거대한 우주적 유기체의 일부라는 사상을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기계와의 접속을 필수가 된 현대에 와서 확장될 필요가 생겼다. 오우마의 주제인 생물/비생물의 경계는 더욱 문제시될 것이다. 그것은 과학기술만큼이나 정치와 예술의 문제가 된다. 다나 해러웨이가 강조했듯이 무엇이 단위로, 즉 하나로 간주하는가의 문제는 영구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열린 경계는 생명으로 친다면 질병이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변화된 생태계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종을 창발하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집합 생명]에서 하나의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여 거대 유기체가 될 수 있듯이 찢고 연결하는 행위에는 생명의 과정을 압축한다. 또한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세분화 되고 낡아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생물에게 이러한 시간적인 과정은 필수이다. 연극무대의 세트와도 같은 설치작품은 시시각각 전개되는 과정과 그러한 과정을 주관 또는 향유하는 몸의 지각을 중시한다. 공간적 지각은 시간적 기억과도 연결된다. 일본의 화지와 한국의 한지는 얇기의 차이는 있지만 원재료는 같으며, 붉은 색종이는 시각적인 강조점을 준다. 간헐적으로 보이는 붉은 종이는 여러 세포들을 돌면서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치우고 외부의 적에 대응하는 피를 연상시킨다. 오우마가 활용한 종이라는 소재는 나무라는 생명체로부터 만들어진 생산품이며, 서로 다른 국가의 종이를 사용한 것은 작가가 입주해 있던 시기에 불거진 한/일 관계 또한 반영되어 있다. 


작가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분리보다는 엮임이다. 작품 [노출된 의자 Exposed Chair]는 늘 상 타자와의 협업을 염두에 두는 작가가 내어준 빈자리이다. 의자는 인간을 떠올린다. 보다 정확히는 부재의 자리지만, 부재를 통해 현존이 암시되는 것이다. 붉은색 물감을 뒤집어 쓴 이 의자는 ‘I am stupid’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대사도 목에 걸고 있다. 작가는 생명의 정의를 ‘애착’으로 본다고 말한다. 대전에서 구입한 이 구식 의자는 작가에게 애착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무생물에 머물지 않는다. 붉은색은 의자를 의인화함과 동시에 일본기 또한 떠올린다. 작품 [계통수 Phylogenetic Tree]는 가로가 20cm 되는 작은 종이에 그린 것들로 다른 색으로 칠해졌지만 선이 연결되어 있다. 낱장으로 판매되며 판매된 자리는 비워진 채 그대로 둔다. 따로, 또 같이 작동하는 이러한 스타일의 작업은 2016년 핀란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중국, 일본 등에서도 이어졌고 앞으로의 여정에도 함께 할 것이다. 


여러 나라를 유목하는 작가에게 이러한 방식은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며 확장성을 가진다. 작가는 37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인체의 예를 들면서, 이러한 세포들이 모여 유일무이한 개인을 만들고 개인이 다시 사회를 이루고 있음을 강조한다. 작품이 선물이나 판매를 통해 사라져도 보충이 일어난다. 마치 이 순간에도 계속 갱신되고 있는 몸의 세포들처럼 말이다. 이러한 방식은 다른 이들과의 작업에도 관철된다.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동창작물인 소라 프로젝트(SORA Project)는 초현실주의에서의 이어 그리기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본어로 ‘소라’는 하늘을 의미하므로, 이 작품들은 하늘을 이어 그리는 것이다. 국가는 영공, 영해 등의 개념으로 선이 없는 하늘과 바다에도 보이지 않는 선을 설정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규칙일 뿐 자연의 법칙은 아니다. 한 작품이 하나의 세포, 또한 한 개인처럼 작동하는 공동창작은 한 작품의 주인이 누구인가의 문제도 제기한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서 16개국에서 진행 중인 열린 작품이다. 


천정에 걸린 작품 [표본 Specimen]은 앞뒤로 그려진 그림이며, 병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종을 알 수 없는 기괴한 형태에 더하여, 통상적으로는 앞만 있는 그림의 뒷면까지 채웠으니 비정상적이다. 그러나 예술은 정상/비정상의 경계가 생명보다 더 유연하다. 기이한 형태들은 병리적인 것 또한 ‘질병은 또 다른 생명의 과정’(조르주 깡길렘)임을 보여준다. 조르주 깡길렘은 [정상과 병리]에서 ‘생명의 규범은 정상상태 때 보다 일탈 상태에서 더 잘 인식된다’고 본다. 생물에게는 질병도 생명의 규범을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오우마가 테미에 머물던 2019년에 한국과 일본은 어느 시기보다도 민감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차이가 있다. 국가가 분리하는 것을 사회는 연결할 수 있다. 국가주의를 강조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민간영역, 특히 예술에서는 양심적인 세력이 많다.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소수 의견에 충실한 일본 사람들을 많이 봤다. 예술이 추구하는 다양성의 공존은 분파적인 이익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작가는 대중매체에 의해 오해가 더 쌓이는 양국관계를 예술작품을 통해 치유하고자 했다. 지역의 고등학생들과 함께한 워크숍을 바탕으로 한 [사과 프로젝트 Apple Project]는 한국과 일본의 상호적인 이해를 위한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북한과 일본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보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작업 결과물에 의하면, 국가 간의 관계가 경색된 시기를 반영하는 의견들이 꽤 올라왔다. 21세기의 작품답게 전시장에서의 과정은 SNS와 연동된다. 작가는 취합된 의견들은 일본어로 번역하여 블로그에 소개했다. 자유롭게 가져가라고 놓아둔 100개의 사과들을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일본 사람들로부터 후원받은 것이다. 그것은 상호적 이해를 위한 민간차원의 행동이며, 다양성과 공존을 강조하는 예술적 실천이다. 


출전; 테미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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