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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펑크: 믿음·소망·사랑 전 / 지금 여기에 집중된 관심 또는 공허함

이선영

지금 여기에 집중된  관심 또는 공허함

  

이선영(미술평론가)

  

2019년 아르코미술관 주제 기획전인 ‘미디어 펑크: 믿음·소망·사랑’은 영상의 생산과 소비를 일상화시킨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이 일반화된 현실을 반영한다. 전시장 한켠에 초대된 여섯 작가/팀과 더불어 한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미디어아트 관련 아카이브는 그동안 미술관이 쌓아왔던 관심사를 반영한다. 정기간행물을 비롯해서 모아 놓은 여러 자료들은 미술관이 미술품의 전시를 넘어서, 다양한 콘텐츠를 소통시키는 플랫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당장에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관에서 봐야 할 영상이 따로 있는 것처럼, 영상 분야에서 꾸준히 역량을 쌓아온 작가들의 작품을 현대미술/문화의 맥락 속에 배치하여 다시금 소통시키려는 것이다. 다양한 기계를 활용하는 가상현실과의 접속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서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주기가 빨라진다면 가상과 현실 중 무엇이 먼저인가의 문제는 무색해진다. 




전시 포스터(이하 사진 자료 출전; 아르코 미술관)



움베르토 에코가 전망했듯이, 중세시대의 종교적 현실도 미디어가 지배하는 포스트모던 문화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강력한 환상은 현실이고, 미진한 현실은 괄호 안에 넣어져 무시된다. 이 전시의 주요 형식인 미디어아트는 그 출발부터 가상/현실의 문제를 중심에 놓았으니만큼 자연스럽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전시 부제는 너무나 소중하면서도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그래서 자주 풍자되는 관용어들이다. 이러한 가치들이 중시되는 일상 그 자체는 예술이 아니다. 1957년생부터 1989년생까지 다양한 세대가 포괄된 참여 작가들은 그러한 일상에 대해 메타적인 차원으로 대응한다. 메타적 차원이라고 해서 초현실이나 이데아적 차원에서 시뮬라크르가 잠식한 현실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씨름선수처럼 상대방의 힘을 역 이용하는 게임을 펼친다. 현실과 가상을 구별할 만한 적절한 거리가 상실되어 표면처럼 펼쳐진 가상/현실 속에서 밀도와 강도를 높임으로서 우리가 직면한 가상/현실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그들의 작품은 흔히 소통되는 콘텐츠보다 더 황당하고, 더 환상적이며, 더 혼란스럽고 더 재미있었다. 일상 속에서 영상은 편재하지만, 굳이 미술관이라는 장소까지 찾아가서 볼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래서 그다음은?’ 에 대한 답은 회피한다. 전시 키워드의 하나로 제시된 펑크는 그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애초부터 거부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펑크든 사이버 펑크든 음악적 장르로서의 펑크든, 펑크는 강렬한 현재만을 추구한다. 거칠고 요란한 펑크 문화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지만, 펑크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비전을 선형적으로 연결하는 모든 주의 주장이 결국은 개인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데올로기로 되돌아오곤 하는, 주류 문화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의 표출로 지지받곤 한다. ‘미디어 펑크: 믿음·소망·사랑’ 전은 키치적인 풍자가 우선 눈에 띄지만, 과격한 아나키즘부터 죽음에 가까운 욕망인 열반(nivava)에 이르는 펑크적 감수성이 작품들 면면에 나타난다. 




파트타임스위트_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노재운_오로라Aurora



한편 펑크는 앞과 뒤를 생각지 않는 정신분열적인 문화와도 밀접하다. 문화비평가들은 자본주의 문화 자체가 바로 그렇다고 본다. 정신분열증적 세계는 환자 또는 소수의 아웃사이더들이 탐닉하는 별도의 세계가 아니라, 어쩌면 자본주의 문화의 논리를 더욱 가속화 한 것이다.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이 [포스트모더니즘-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에서 자끄 라깡의 정신분열에 관련된 분석을 문화비평에 적용했을 때, 그는 뮤직 비디오같은 영상물을 염두에 둔다. 그러한 영상물에서 기표와 기표는 의미론적으로 연결망을 이루지 않고 단절된 채 영원한 현재를 구가하곤 한다. 수많은 장소와 시간 속에서 ‘레디-고!’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단편들이 (재)조합되는 영상은 비록 문화생태계를 이루고는 있지만, 자연은 아니다. 그것은 기술과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는 생산물이며, 이렇게 짜깁기된 현실은 그다지 견고하지 않다. 즉 언제라도 그 공허하고도 위험한 틈을 벌릴 수 있다. 이 전시의 예술가들 또한 이러한 문화가 공기처럼 편재하는 상황 속에서 작업한다.  

 

박재영과 이미연이 듀오로 참여하는 파트타임스위트(Part-time Suite)의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는 16분 분량의 360° VR 비디오 작품으로, 가상현실에서 기대되는 터무니 없는 환상성 보다는 재개발 지역처럼 유령화 된 장소나 유해 조수 취급을 받는 거리의 비둘기같은 비루한 현실을 관객의 눈앞으로 급격하게 당겨옴으로서 현실의 이면을 확장한다. 그들의 작품에서 환상은 바로 현실의 속성이다. 블루스크린을 배경으로 땅이 푹 꺼지는 듯한 어지러움 속에서 현실의 좌표는 불확실해진다. 

웹아트 1세대 작가로 평가될 만큼 2000년 대 초반부터 관련 작품들을 발표해 온 노재운의 [보편영화 2019]는 영화광이 아니라면 원천을 잘 알 수 없는 화면들을 불러들여 전혀 새로운 맥락의 영화를 만든다. 그의 작품은 여러 원천을 가진 것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떤 공통된 분위기에 잠겨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같이 설치된 기이한 형태의 오브제들이나 자연현상과 코드가 조합된 화면 등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 또한 사물이나 자연, 또는 법칙 등과 같이 현실을 구성하는 유력한 퍼즐 중의 하나임을 알려준다.    




김해민_2개의그림자3



김웅용_WAKE



김해민의 작품 [두 개의 그림자]는 3개의 비디오를 삼면화처럼 연결하여, 독립된 장면들의 연동성을 보여준다. 가운데의 아이는 불이 켜지거나 꺼지는 양쪽의 화면 속 그림자를 주시하거나 외면하는 듯이 보인다. 실루엣으로만 나타나는 검은 형태가 누구의 그림자인지는 불확실하다. 원래 그림자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로 간주 되어 왔으며, 몸과의 분리 가능성만으로도 악마적인 거래를 생각하게 된다. 영상화된 현실은 다시금 플라톤의 동굴같은 상황에 처하게 했다. 그러나 그림자를 유일한 현실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핍이나 박탈감은 희박하다. 

단채널 비디오 작품이지만 주변의 화려한 조명과 함께 작동하는 김웅용의 [WAKE]는 카메라의 분석적 시점을 활용하여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그러나 미스테리물처럼 흘러가는 그 영상에서 수수께끼가 끝내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원천이 다른 영상들이 교차 편집되는 가운데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영상은 자세히 보려 하면 할수록 픽셀화된 모습으로 흐릿해진다. 반복해서 들려오는 ‘빛을 주시하라’는 말은 어두운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명령하는 안과 의사같은 어조지만, 모호한 현상의 진위를 가려줄 전능한 존재가 있을 것인가.  




최윤, 이민휘_오염된 혀



함정식_기도(pray)



음악가 이민휘와 작가 최윤의 작품 [오염된 혀]는 초창기 노래방 비디오같이 어이없을 만큼 유치한 영상을 배경으로, 6가지 노래들을 부르는 퍼포머가 등장한다. 그 주변에는 길거리 전단지 같이 조악하게 인쇄된 악보들이 배치되어 있다. 야생화라는 노래 가사를 들어보자. 작가는 ‘최대한 크고 높은 소리로, 날카롭게’를 주문한다. ‘즉각  하라’는 가사에서 태극기 부대의 주말 도심 시위 때문에 아르코미술관 방문을 비롯하여 하루 종일 동선이 꼬였던 악몽을 떠올린다. 그들의 풍자적 작품은 웃기지만 절대 웃을 수 없는 진지한 현실을 담고 있다.

함정식의 [기도](퍼포먼스 버전)에는 종교적 신념에 찬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신도는 무겁고 진지하기보다는 영화 메리 포핀스의 유쾌한 굴뚝 청소부, 또는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같은 유머러스한 모습이다. 죽음의 무도에 어울리는 묵시록적 의상을 입은 신도는 지나치게 반짝거리는 미러볼을 들고 재개발 지역의 누추한 골목 여기저기를 신나게 누비면서 경쾌한 리듬에 실린 복음을 전파한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유토피아적 비전은 빛을 발한다. 그의 작품은 예술이 무겁든 가볍든 간에 삶과 죽음 사이에 걸친 개인의 행복 문제를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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