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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은 / 숲을 이루는 생각의 뿌리

이선영

숲을 이루는 생각의 뿌리

  

이선영(미술평론가)

  

그림이나 설치작품으로 나타나는 김조은의 초상들은 반인반수의 존재이다. 반인반수(樹)라는 동음이의어 장난을 하다가 나무(樹)와 동물(獸)의 의미를 가진 한자어가 우연치않게 같은 소리임을 새삼 인식한다. 김조은의 평면이나 입체작품에 나타나는 나무는 인간이라는 동물에서 뻗어 나오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맹렬한 확장성이 동물성을 떠올린다. 전시 공간이 허락하는 한, 이어진 가지들이 담긴 패널을 계속 이어붙일 수 있는 개방적 구조를 가진 작품에서, 식물은 자신이 자리한 주변환경과 최소한의 상호관계를 가지는 수동적인 유기체라는 인상을 불식시킨다. 알뿌리 같이 생긴 인간의 초상에서 뻗어 나온 가지/뿌리가 종횡무진 확장하는 작품에서 식물은 끊임없는 분지를 통해 이동하는 듯하다. 뿌리줄기들은 비록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지속적인 이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탈주로 이해한 사상도 있다. 이동 또는 탈주는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 모두에서 진행된다.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전시전경




식물에서 지상에 보이는 나뭇가지만큼 지하의 뿌리를 가정할 수 있다. 로베르 뒤마(Robert Dumas)는 [나무의 철학]에서 깊은 뿌리박기는 가지의 무성함을 위한 조건임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는 땅속에서 묻혀서 뻗어 나가고 다른 하나는 공기 중에 펼쳐져 태양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뿌리와 가지의 차이는 없다. 프랙털 이론 등에서 강조된 바 있듯이, 나무의 가지/뿌리는 다른 자연현상과도 유사하다. 하늘에서 번개 치는 장면에서 나무의 가지/뿌리의 구조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위아래로 확장되는 줄기들에서 잠재적 동감이 느껴진다. 머리로부터 출발하는 양상은 이러한 뿌리줄기의 정신적 맥락 또한 강조한다. 김조은의 작품은 마치 평행우주론의 가설처럼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의 동형성을 말한다. 나무의 가지와 뿌리는 동형적 구조이며 대칭적으로 배열된다. 작가는 같은 모양새를 가지는 조각을 거울 위에다 놓는 연출을 통해, 반영 상 또한 작품의 주요한 부분으로 끌어들인다. 


회화작품에서는 캔버스라는 잠재적인 현실반영의 형식을 활용하여 거울 상같은 이미지를 암시했다. 보이는 것만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가정은 보이는 것만을 현실로 간주하는 피상적 사고를 비판한다. 눈감은 얼굴은 사유의 가지/뿌리를 말한다. 회화에서는 조각과 달리 완벽한 대칭은 아니다. 그것은 거울처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 또는 창으로서의 그림은 실제가 아니라 상상의 장이기 때문이다. 김조은의 작품에서 초상의 시작은 자신의 얼굴이었지만, 굳이 자신의 외형을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시각 대신에 타자의 시각을 활용한다. 특히 동화 작가가 꿈이라는 딸아이가 그려준 자신의 모습을 참고한다. 주체의 독백보다는 타자와의 대화적 관계를 중시하는 작가에게 딸과의 ‘협업’은 흥미롭다. 자식을 엄하게 키우면서 화를 참기 위해 잠시 눈을 감은 자기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자신을 닮은 딸아이는 어머니를 닮은 자신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모계적 관계 속에서 닮음은 미묘하다. 딸은 나로, 나는 어머니로 결코 환원될 수 없는 개체이면서도 유연관계를 가진다. 










작가가 된 이래 자신으로부터 만들어진 작품들 또한 동일성과 차이의 관계에 있다. 딸이 나를 보는 관점에는 내가 거울을 볼 때와 같이 무엇인가 끼어든다. 나무와 접합된 초상 또한 미묘한 변신의 무대이다. 자연 화 된 인간의 모습에서 치졸한 자기중심주의는 무디어진다. 익명성이 특징이지만 하나는 남성이 다른 하나는 여성이 떠오르는 최소한의 차이는 남겨두었다. 이러한 차이의 공존은 긴장감이나 상호보완, 조화 같은 맥락을 형성한다. 캔버스들이 좌우로 덧붙여질 때는 간격이 없지만, 위아래의 대칭성을 가질 때는 간격이 있다. 그렇지만 간격 또한 연결의 여지를 말한다. 가령 작가는 위아래의 가지/뿌리가 서로 연결되는 지점들을 보여준다. 석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듯, 인류학적 상상계에서 나무는 사유에 대한 이미지로 간주 되어 왔다. 체계적으로 분지된 나무의 이미지는 질서 있는 사유의 이미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앞서 인용한 [나무의 철학]에 의하면, 나무는 물리적 체계의 상호작용으로 내부의 직경과 힘이 작용하는 흐름의 법칙과 최적의 배열과 공간 점유의 법칙을 결합하면서 발달한다. 로베르 뒤마는 나무의 분지체계가 추상적인 계획과 분석과 비교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들은 번개만큼이나 강줄기에 잘 맞고 나무 만큼이나 혈액순환 기관의 분맥에 잘 적용된다고 비유한다. 김조은에게도 나무는 단순한 소재에 머물지 않는다. 가지/뿌리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사고와 상상의 이미지이다. 초상이 포함된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 나가며, 때로 아래쪽의 반영 상이 같은 방식으로 확장된다. 하지만 복잡하기 그지없는 가지/뿌리는 질서와 체계보다는 얽히고 설킨 착종(錯綜)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 또한 나무가 가지는 주요한 성격이다. 줄기와 뿌리줄기가 함께하면서 확장성을 가지는 것은 실제 생태계에서도 발견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생물체는 ‘환도’(pando-라틴어로 ‘확산’이라는 어원을 가진다)라고 이름 붙여진 식물 군락이라고 한다. 이 ‘나무’는 하나의 뿌리로부터 나와 DNA가 동일한 개체들이 지하에서 뿌리줄기처럼 얽히면서 5만 그루 이상의 나무들로 자라나 숲을 이룬다. 한두 그루가 죽어도 군체로서의 생명력은 유지되어 온 것이다. 











생물학자들이 수천년에서 8만년 정도의 수령으로 추정하는 이 나무/숲은 공간적 확장성과 시간적 확장성을 동시에 가진다. 뿌리가 깊지 않아도 주변의 나무들의 지하 연결망을 통해 오랜 세월 생존해온 나무/숲의 존재는 적지 않게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지하 연결망은 공존이나 공생에 대한 훈훈한 메시지를 전달해주지만, 이러한 생태를 인간사에 적용시켜 본다면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우선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작품의 차원에서도 끝없이 뻗어 나가는 상상력은 어딘가에서는 정리되어 보기 쉽게 알기 쉽게 재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분절되지 않은 것은 의미로 전달되기 힘들다. 예술 또한 언어처럼 경계가 중요하다. 김조은의 작품에서 나무의 가지/뿌리라는 이미지는 인간의 사고나 계보와 연결되면서 캔버스라는 유한한 공간에 무한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재현할 수 없는 무한한 자연의 시공을 제시하는 방식은 계열로 나타난다. 하나의 틀에서 나온 작은 조각상들은 배치 방식을 통해 사유가 복제되고 확장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림처럼 위아래로 배치하기도 하고, 하나만 있는 것 마주해 있는 것 등 여러 가지 방식이며, 그때마다 서사의 방점은 달라진다. 


조각상들은 조합의 방식을 통해 말한다. 그림 또한 설치적인 방식으로 운용된다. 가령 ‘현대미술의 눈’ 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은 물결치는 바다에 솟아 나온 사람의 머리에서 자라난 민화 스타일의 붉은 꽃이 전시장 벽면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그것은 그림과 부조, 그 옆의 작은 조각상 등이 한데 어우러져서 씨앗으로부터 자라나는 사고나 상상력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출발점의 인물상들은 눈을 감은 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지만,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성장(또는 변신)이란 고통을 전제로 한다. 작가의 말대로 작업이란 ‘고통스러운 내면을 끄집어내는 과정’이다. 특히 조각작품에서 잎새가 하나도 없는 날카로운 가시나무의 이미지는 나무에 얽힌 따스한 이미지를 걷어낸다. 정수리에서 자라나는 나무는 머리통을 양분 삼아 자라며, 성장하는 만큼 그 씨앗이 되는 주체는 쪼그라들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썩여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종교적 메시지처럼 말이다. 사라짐을 통한 생겨남이라는 역설적 메시지는 초로 만든 자소상이 연소되는 과정을 보여준 이전 작품의 예가 있다. 생활인이자 작가로서 수없이 중단되고 다시 시작되었던 작업과정은 죽음과 부활을 거듭하는 식물계의 이미지와 닮았다.


 








출전;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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