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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재 / 자연의 구조적 모방

이선영

자연의 구조적 모방

  

이선영(미술평론가)

  

김근재는 용접을 통해서 공간 속에서 드로잉 하는 듯한 ‘조각작품’을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조각은 3차원 현실 속에 일정한 부피를 가지고 존재하곤 하는데, 작가는 선으로 부피를 만들면서 조각이 가지는 특유의 묵직한 느낌을 덜어냈다. 식물의 엽맥 같은 패턴의 선들 사이에 끼워 놓은 나무토막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작품은 선과 부피를 대조시킨다. 용접이라는 방법론에 의해 종횡무진 뻗어 나갈 수 있는 금속 선은 자연물에 바탕 한 유한한 부피를 초월한다. 현대조각에서 용접은 단지 붙이거나 깍는 것에 추가된 또 하나의 기법을 넘어서 근본적인 형식의 변화를 야기했다. 김근재의 작품에서 자연물과 함께 구성된 추상적 금속선은 자연물에 내재한 에너지가 외화된 듯한 느낌이다. 가령 나무토막을 이루는 기본입자가 있을 터인데, 우리가 물리학에서 배운 바로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인 원자가 있다면 그 주변에는 궤도를 이루며 돌고 있는 전자가 있다. 이러한 물질의 모델에 의하면 물질은 덩어리만큼이나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조각은 이러한 허공을 작품 내부로 끌어안았다. 김근재의 작품에서 조각의 네거티브 스페이스는 모더니즘을 포함하여 자연에 바탕 한 이전 시대의 조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배낭의 틈 사이에서 나오는 연기, 또는 구름이 나오는 듯한 작품은 배낭을 고체에서 기체로 기화시키는 듯한 모습이다. 무게감의 소거에 대한 관심은 많은 작품에 나타나며, 공중에 매달리는 작품에서 절정을 이룬다. 물론 김근재의 작품에서 주재료가 금속이고, 나무토막을 비롯하여 다른 소재들이 결합 될 수 있는 구조물은 실제로 매우 무거울 수 있다. 그러나 용접 조각 특유의 투명한 속성에 의해 공기를 품은 형태이자 중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형태가 강조된다. 그것은 시각적 경량감을 야기한다. 이러한 특징이 김근재의 조각에 두드러진 현대적 요소를 이룬다. 정보화로 대표되는 코드로 이루어진 세계는 실재나 현실에 대한 관념을 급격하게 바꾸었다. 이러한 변화는 조각이 원래 무덤이나 건축 같은 육중한 구조의 일부로 존재해 왔던 기념비적 대상이었다는 점을 상대화시킨다. 


환경의 변화는 의식적 무의식적 차원에서 작용하여, 조각의 역사를 거슬러서 깊은 뿌리를 가진 자연물처럼 존재하는 조각을 공중에 매달리는 모빌로까지 변화시켰다. 그의 최근 작품은 옷이나 쇼핑백 등 일상적 물건을 그물망 형태로 구성하거나, 전방으로 그물을 던져 무엇인가 포획하는 느낌의 추상 조각, 궁극적으로는 공중에 매달린 날렵한 형태까지 다양하다. 나뭇가지와 잎새들로 만든 옷 모양의 작품은 몸과 자연의 유비(analogy) 관계를 표현한다. 반 팔 티셔츠 형태지만, 옷이 몸의 연장이라고 볼 때, 수많은 신경망이나 혈관망으로 이루어진 몸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이 옷이라면 작가는 옷에 그러한 자연의 패턴을 무늬로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무늬가 몸통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단단한 재료를 구성해야 모양이 유지될 수 있다. 작가는 자연의 모방, 또는 자연으로부터 추상된 패턴을 용접을 통해 만들었다. 주요 몸통을 이루는 나뭇가지 형태는 잔가지를 뻗치면서 쭉 뻗어가다가도 소매나 어깨 부분에서 형태를 구부린다. 여러 색의 이파리들은 안쪽에 배치하여 포인트를 주었다.


쇼핑 백을 나뭇가지와 이파리 모양으로 만든 작품도 같은 맥락이다. 김근재의 작품은 자연, 몸, 상품, 그리고 그 상품을 넣는 포장까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다. 예술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예술은 상상력을 통해서 이 세상의 다양한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낭만주의자들은 근대과학이 갈라놓은 것을 상상력이 이어준다고 했지만, 현대과학은 다시 통합적 사유로 돌아간다. 가령 심미적 사고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프랙털 이론 같은 것이 그렇다. 김근재의 작품은 자연으로부터의 추상, 추상에서 구성으로, 구성에서 해체로 진행되는 현대조각의 역사를 압축하는 점이 흥미롭다. 추상에서 구성으로의 변화는 보다 불연속적이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모방하는 구성은 인간적인 기준이나 규모를 넘어설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이다. 전 세계를 그물망으로 엮는 정보의 회로망은 특히 속도와 복제 면에서 인간이 더이상 따라 잡을 수 없는 차원을 가진다. 


만물이 구성된다는 것을 의식한 이후에 해체는 구성의 이면으로 보다 가까워진다. 만물이 구성요소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구성요소로 분해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추상을 포함한 왜곡된 모방이 죽음이나 이상(異常)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단지 재조합의 문제일 따름이다. 그것은 고대 원자론부터 상상되었지만, 현대과학은 그것을 시각적으로도 보여준다. 김근재의 구성적 작품은 예술의 가장 오랜 전통인 모방이 외적인 차원에서 내적인 차원으로 변모함을 알려준다. 외과적 수술이 있는가 하면 유전자적 차원의 치료도 있지 않은가. 구조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구성의 모델은 유전자라는 지적이 있다. 구성은 단지 보이는 건축적 뼈대의 문제가 아니라, 생성의 원리인 것이다. 기계와 비교하자면 프로그램에 해당된다. 결국 자연을 모방한다 함은 자연의 외관을 넘어서 자연의 법칙을 모방하는 것이고, 이는 기술의 역사에서 선명하며, 예술 또한 그러했다.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차원에서의 모사를 예시하는 사고의 예는 만델브로트가 대중화시킨 프랙털 이론이다. 제임스 글리크는 [카오스]에서 프랙털 이론은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자연의 현상 속에서 차원을 달리하며 반복되는 패턴을 탐구한다고 요약한다. 가령 혈관의 분지는 나무의 그것처럼 프택털적인 성격을 가지는데, 대동맥으로부터 실핏줄에 이르는 연속체를 형성한다. 혈관은 아주 좁아져서 혈구들이 한 줄로 미끄러져 들어가야 할 정도가 될 때까지 갈라지고 또 갈라지는 것이다. 제임스 글리크에 의하면 프랙털적 접근 방법은 총체적 구조를 생성하는 분지 그리고 대규모에서 소규모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행동하는 분지의 관점에서 모든 구조를 포괄한다. 엽맥이나 혈관계 등은 프랙털 조직, 즉 규모가 작아지면서도 자체유사적인 형태가 유지되도록 조직되는 분지를 보여준다. [카오스]는 자연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프랙털 형태가 어떻게 코딩되고 실현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생물학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론은 자연의 외관을 모사하는 단계를 넘어선 현대미술이 다시 자연과 접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대상의 외관을 모방하는 관례가 느슨해지자 보다 자유로운 조합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회화와 달리 조각은 자유로운 조합에 있어서도 균형감이 필수적인데, 그것은 조각이 세워지든 매달리든 엄연히 3차원 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근재가 용접으로 만든 금속 모빌은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동일한 무게의 사물을 얹어놓은 저울처럼 공중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조합과 균형을 동시에 공략하는 작가에게 경계는 넘나들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파리 형태가 날개나 꼬리같이 배치된 공중에 매달리는 구조물은 식물같기도 동물같기도, 곤충같기도 새같기도 물고기같기도 하다. 또는 그 모두가 공존하는 괴물일 수도 있다. 자연에서의 실험이 돌연변이를 낳는다면 예술에서의 실험 또한 인류의 상상계가 신화창조에서 해왔던 과정을 반복한다. 


그것은 추상적인 차원에서도 실험될 수 있다. 안팎이 훌떡 뒤집어진듯한 형태를 보여주는 작품은 용접으로 금속 선을 이어서 안과 밖의 관계가 유동적인 다양체(多樣體, manifold)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각 부분이 이루는 굴곡 면의 변주를 다 봐야 하는 작품이기에 작가는 그것을 공중에 매달아 놓았다. 금속 선과 다른 재료의 조합으로도 다양체를 만들었다. 느낌표 모양의 끝이 뾰족한 타원형 안에 배치된 다양한 굴곡 면을 가진 나무토막들이 그것이다. 마치 던진 그물에 걸린 덩어리같은 모습인데, 추상적 형태의 금속 선들에 의해 지지되어 공중에 흩뿌려진 모습이 그대로 멈춰진 것처럼 배치된다. 추상적 형태의 금속 선들은 만약 바람이나 물이 나무토막들을 움직인다면 보이지 않는 힘의 역학관계를 표현하는 듯하다. 작품의 성근 모양새는 원자와 전자 사이에 존재하는 허공같은 위상을 가진다. 이때 예술작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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