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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범 / 물질과 에너지, 또는 육체와 정신

이선영

물질과 에너지, 또는 육체와 정신

  

이선영(미술평론가)

  

정재범의 최근 작품들은 한 작품의 제목 [염력(念力)_psychokinesis](2019)이 알려주듯, 검증되지 않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도전한다. ‘정신적으로 물체를 움직임’이라는 의미의 염력은 철학적으로 본다면 관념론이다. 근대과학은 종교를 비롯한 기존의 관념론을 일소하고자 했으며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철학 또한 과학을 통해 무균실의 언어 같은 상태를 연마해 왔다. 논리실증주의가 대표적이다. 예술 또한 자기 정의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차례로 없애면서 결국에는 개념만 남겨두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논리의 끝자락에서 관념은 되돌아왔다. 그것은 과학 또한 관념론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과학주의에 기반하여 자못 엄격한 척했던 현대철학이나 예술 또한 빈곤한 자기지시성만 남겼다는 성과이자 한계를 노정했기 때문이다. 좋은 의미로든 아니든, 합리성과 비합리성은 매우 가까이에 있다.

  



(참고)[염력(念力)_psychokinesis], 돌, 유리, 가변크기, 2019



염력쌓기_수집한 돌(지리산), 유리, 가변크기, 2019



바벨_침목, 작기, 260x250x230cm, 2019



(참고작품) [무지개 폭포_Rainbow falls], 나무, 모터, 체인, 기어, 타이머, 487x80x284cm(2점, 가변설치), 2017



정재범은 어떤 기능을 충족시키는 물건을 만드는 분야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던 작가다. 그가 디자이너가 아닌 현대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되면서 선보인 작품들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정교함을 무화시키는 부조리함이 두드러진다. 특히 기계적인 것을 통해 부조리함을 표현한다. 부조리한 기계는 기계문명의 부조리성을 동종요법으로 표현하려 했던 다다(dada) 이래, 현대미술의 주요 어법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는 촘촘해 보이는 시스템 내부의 거대한 동공(洞空)이 자리함을 본다. 그러나 그러한 부조리함은 변화를 위한 여지이기도 하다. 고대 원자론자들의 상상처럼, 허공이 있어야 원자들의 이합집산이 가능한 것이다. 정재범의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인 [무지개 폭포_Rainbow falls](2017)는 엘리베이터와 똑같은 규모와 기술이 적용되었지만, 되돌이표 같은 무위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이전작품에서 연필이 만다라 같은 원을 그리면서 동시에 지우개가 지우는 [파이_Pi(π)](2017)나 세수대야를 수직으로 배열하여 물을 끝없이 순환시키는 작품 [자연스러운 낙하_Natural fall](2017)도 나무 엘리베이터처럼 무위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무위가 무효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진정한 무위일 수 있지만, 작가는 애써 그러한 부조리한 기계를 만들어서 그러한 현상을 가시화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수고롭게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러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수학의 불확실성을 엄밀한 수학적 언어로 논증한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와도 같은 방식이다. 그의 작품은 건조하다. 이런 것들이 예술작품일까 싶을 정도로 썰렁하다. 주로 기능적 물건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각목이나 합판 등이 날 것으로 등장하는 무장식성이 그러한 인상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마냥 썰렁하기만 한 여느 작품들과 다른 점은, 치밀한 제작이 뒷받침된다는 점이다. 기능주의든 기능주의에 대한 풍자이든,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정확하며 새로운 매체의 언어를 활용하기 위한 투자도 상당하다. 이번 전시에 활용된 전파측정기는 기계 판매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구입했다. 




(참고) [자연스러운 낙하_Natural fall], 버려진 사다리, 세수대야, 플라스틱 바가지, 호스, 모터펌프, 타이머, 가변크기, 2018



(참고) [파이_Pi(π)], 캔버스, 종이, 나무, 연필, 모터, 전선, 1092x794mm, 2017



세부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어떤 실험결과가 나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분업화된 시스템을 풀가동하여 얻어내는 데이터를 한 개인의 작업으로 가능할까 싶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예술과 과학에 동시에 걸쳐있는 목표로 작업(이자 실험)을 진행 중이다. 작품 [염력(念力)_psychokinesis]에서 납작한 돌 사이의 투명한 물질은 마치 돌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난 여름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는 풍선들로 돌 사이를 채웠는데, 풍선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재료를 찾은 듯하다. 전시장은 실험실이 아니고 수많은 변수에 노출되어 있는 공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돌 사이에 놓인 재료에 대해서는 단단함보다는 투명함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묵직한 나무 사이에 튜브 끼워 놓은 작품도 마찬가지 방식이다. 이 묵직한 것들은 중력에 반응하기 보다는 미끌어짐을 비롯한 뭔가 이질적인 힘에 의해 움직이는 듯하다. 반석 위에 새겨진 메시지들이 있듯, 돌은 가장 안정된 실재인데, 작가는 여기에 불안정성을 극대화했다. 특히 그는 지리산 자락의 돌같이 깊은 산세의 기운을 받는 돌에 관심이 있다. 


작가는 돌이라는 실제에 내포된 허구의 몫을 강조한다. 자연계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의 조합에는 허(虛)의 공간 또한 존재한다. 이 빈 공간들을 채우는 미시적 존재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많은 모델을 제시했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기(氣), 또는 얼, 또는 에너지라고 이해한다. 어떤 용어로 이해하든,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것들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령 철새들은 그 자체가 거대한 자석인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여 정확하게 자신이 가야 할 장소를 찾아간다. 이러한 힘들은 신비적으로 보여서, ‘자연의 이치’나 ‘예정조화’로 이해될 수 밖에 없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뉴턴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당시의 다른 과학자들은 그의 사고가 신비적이라고 비판했다. 물질과 같은 또는 그보다 더 비중이 큰 빈공간에서의 소립자의 운동은 사물 고유의 진동수로 측정된다. 작가는 돌이나 나무에도 안테나를 설치하곤 하는데, 그것은 물질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참고) [void, 해방공간](2019)



인간은 외계와의 메시지 송수신을 위해 축구장 몇 십개 크기의 망원경도 만들지 않는가. 물질 속 에너지의 힘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가공할만한 무기도 만들지 않는가. 물론 잠재력이 충전된 것도 있지만, 소멸된 것도 있다. 최근 작품 중 [void, 해방공간](2019)은 미군부대 이전으로 유령화된 도시에서 수집한 연탄재들 쌓아 설치한 것이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던 그곳에서 매일 수집한 수백 개의 연탄재는 부피를 온전히 보존하면서 이제 껍데기만 남은 삶의 터전을 채운다. 재가 된 물질, 즉 극대화된 엔트로피는 폐허를 비유한다. 그는 자신의 유사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인간사회를 말하고자 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는 종교적 메시지가 새겨진 나무가 공중에 붕 떠있는 듯이 연출된 작품 [바벨](2019)은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믿음의 대표적인 방식인 종교를 호출했다. 마음으로 물질을 움직이는 식의 유심론적 사고는 애니미즘부터 종교에 이르는 관념의 역사에 선명하다. 


얼마 전 발표한 작품 [믿음, 미신, 연금술](2019)에서 그는 바위 위에 붙은 돈을 보여주는데, 중력을 거슬러 바위에 붙은 듯이 보이는 금속 조각들(돈)은 실제로 거대한 불상이 있는 팔공산에서 발견한 것이다. 어떤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신도가 바위의 틈마다 붙였을 동전을 보고 작가는 믿음에 대해 생각한다. 동서고금의 종교를 추동하는 주된 힘을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염원과 무관하지 않다. 형이상학의 가장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물질주의는 역사상 종교의 역기능과 순기능으로 나타났다. 신을 대신해서 면죄부를 판매했던 부정한 세력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막스 베버의 고전적인 연구가 밝혔듯이,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요한 것은 허구도 실제가 되고 그 역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물질과 정신이 맞닿아 있었던 인류의 상상 중에서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연금술이다. 작가는 작품 [연금술](2019)에서 돌에다가 금속 성분을 입히는 전기분해 방식을 이용하여 현대의 연금술을 보여준다. 




[연금술], 2019.



[믿음, 미신, 연금술], 2019



[방언_glossolalia],VLF안테나, 훌라후프, 전선, 나무, 삼각대, 카세트녹음기, 가변크기, 2019



방언_VLF안테나, 앰프, 스피커, 전선, 가변설치, 2019



그는 돌을 금으로 만들고자 했던 연금술사들의 소망을 금속공예 기법의 하나로 표현한다. 연금술사에게 우주는 그저 텅 빈 공간이 아니었다. 우주가 빈 상자같은 무덤덤한 중성적 공간임을 밝혀냄으로서 고대 이래의 신비주의를 일소한 근대과학자 뉴튼 조차도 말년에는 연금술에 깊이 몰두했다는 전기가 있다. 21세기의 시점에서 우주를 채우는 것은 샤르댕이 믿었던 것처럼 정신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근접하는 것이다. 월드 와이드 웹(www)로 대변되는 시대에 허공에는 송수신되는 기호들로 이미 가득하며 자기들끼리 상호작용 하기도 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이젠 사물과 사물의 소통이 예기되는 시대에, 작가는 특이한 안테나를 세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수신하여 관객에게 송신할 도구이다. 작품 [방언_glossolalia]은 훌라우프, 전선, 나무, 삼각대, 카세트 녹음기 같은 다소간 허술한 재료로 만든 안테나로, 인간이 느낄 수 없고 볼 수도 없지만, 분명히 편재하는 어떤 에너지-정보를 수신하고자 한다. 인간의 믿음 또한 허구적일 수 있지만 실행되고 물질화도 된다. 정재범의 최근 작품들은 예술이 잠재적인 것을 현실화하는 실험적 과정임을 알려준다.

 

출전; 대구문화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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