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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Real City 전 / 폐허와 잔해 속에서 건져낸 삶의 풍경

이선영

폐허와 잔해 속에서 건져낸 삶의 풍경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전에도 도시는 있었지만, 도시가 삶의 주요 무대로 등극한 것은 근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산업 혁명을 거쳐 생산력의 혁명이 이루어지고,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집중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인구뿐 아니라 자본도 집중되어야 했다. 그에 따른 중심/주변화와 상/하의 계층화는 필수적이었다. 도시화의 명/암은 선명했다. 이러한 추세는 한 국가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난다. 발전의 모델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개발주의자들의 청사진은 주로 밝은 면에 맞춰져 있다. 대개 개발은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배적 질서와의 조응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건축의 정치 경제학이라 할만한 것이 생겨난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 타자화된 부류 중의 하나인 예술가들은 대체로 개발의 이익과 관계없는 이들과 가까운 편이다. 자본의 관점과 예술의 관점은 첨예하게 갈릴 수도 있다면, 건축가들은 어떤 입장일까? 우리의 일상적 표현 중에서 ‘건설적이다’라는 말이 긍정적 의미를 가지듯이, 건축가의 입장은 밝은 청사진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건축은 네가티브가 아니라 포지티브한 예술이다. 그런데 이 전시는 그렇지 않은 건축가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메타(우의정, 이상진), 마로니에 파빌리온, 2019, 강관과 아크릴 구조물, 450×900×450cm(사진제공; 아르코미술관)



 김무영, 동네 안 풍경, 2016, 단채널 비디오, 1시간 24분 21초



 리슨투더시티, 청계천 아틀라스, 2019, 단채널 비디오, 30분, 가변설치



그 중 하나가 문화집단 스튜디오 METAA의 설립자이자 sa(서울건축학교)의 운영자이기도 했던 (故)이종호(1957--2014)이다. 독립 큐레이터 심소미와 건축 연구자 이종우가 함께 기획한 ‘리얼-리얼시티(REAL-Real City)’ 전은 건축가 이종호의 사상과 실천에 중점을 두면서 그와 연계되는 건축적 조형적 실천들의 다양한 예를 자료와 작품을 통해 제시한다. 그는 현재 아르코 미술관이 있는 마로니에 공원의 설계자이기도 해서, 전시가 열리는 장소와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미술관 입구에 설치된 작품 [마로니에 파빌리온](METAA ;우의정, 이상진)은 기존의 대상에 연결되어 건설 중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가로와 세로 축을 따라 무한히 분열하는 듯이 보이는 그리드 구조가 그러한 인상을 준다. 그것은 건축가/정치가가 기존의 것들을 모조리 깔아뭉갠 채 자신(만)의 기념비를 세우려는 야심에 찬 주체의 의지를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생성의 장소를 강조했던 생전의 이종호 건축가의 뜻을 구조화한다. 


주체의 짝패인 객체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맥락과 흐름을 포괄하는 상호주체적인 관점이다. 관객은 이 구조물을 통과하면서 짓기와 허물기를 반복하면서 변화하고 있는 도시의 거시적/ 미시적 과정을 압축적으로 체험한다. 전시된 작품과 자료들은 이상적 건축과 그 건축의 확장이랄 수 있는 도시에 대한 비전이 다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카이브 성격의 전시는 담론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기에 현실화되지 않았던 것도 포함된다. 가령 도면으로만 남아있는, 건축가의 머릿 속에서만 있었던 계획은 왜 실현될 수 없었는가, 그렇지만 미래의 씨앗을 담고 있는 부분도 있지 않았는가 등의 물음이다. 담론과 구상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가능성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도면과 모형, 어록이나 강연 자료 등으로 제시된 건축/도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또한 알려준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의 이상은 그것이 구체적 현실을 지향했기에 이상적으로 간주되었다는 역설이 있다. 




 이종호, 프로젝트4 전시장, 광주비엔날레, 2002



 조진만, 입체보행도시로 다시 연결되다, 2019, 혼합매체, 가변설치



통상적으로 이상이라함은 현실과 무관한(또는 현실을 무시하는) 관념주의를 말하는데, 이종호를 비롯한 이 전시의 건축가들은 삶의 구체적 굴곡 면들을 주시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것을 제로 베이스로 만들고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무엇만을 중시하는 과도한 욕망은 그러한 굴곡 면을 무시한다. 특히 재개발지는 그러한 굴곡 면들이 많다. 김무영의 작품 [동네 안 풍경]인데, 무려 1시간 30분가량의 긴 시간 동안 사라질지 모를 산동네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기록 영상은 마치 관객도 그 언덕배기에 올라와 있는 듯한 시점을 보여준다. 물론 허름한 모습이 다 보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생 또한 더불어 사는 공존의 철학이 요구된다. 이 전시의 기록물에는 자생적 생태계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 있다. 거대 도시계획에는 없었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생겨난 것들이다. 삶의 발명품이라 할만한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일소되어야 할 쓰레기로 간주 될 수도 있지만, 대개 그것들은 어떤 시공간 속의 삶을 오롯이 담고 있는 살아있는 유물들이다. 


이 전시에서 이종호를 비롯한 현역 건축가/집단의 작품은 모든 것을 백지화하는 일방적 성장을 지양한다. 거대한 기획을 재현하는 개발보다는 삶의 흔적들을 살려 나가려 한다. 여러 시도 속에서 이상적 환경을 만났을 때 발아하고 성장하고 자라 열매를 맺을 씨앗이라 할만한 모델들도 눈에 띈다. 건축 및 도시계획이 미시적 관점으로 전환 됨으로서 부정되거나 가려져야 했던 것들, 잊혀진 것들이 드러나고 소환된다. ‘리얼-리얼시티(REAL-Real City)’전은 관념이 쉽게 생략하거나 삭제할 수 없는 실제적인 것에 주목한다. 도시는 근대성의 화신이지만, 근대성의 몸통을 이루는 것은 리얼리티인 것이다. 새로운 것, 또는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나는 것도 바로 실재로부터이다. 정보화시대에 실재를 대체해 나가는 코드는 그 자체로부터 새로 생겨나는 것은 없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고 근대적 이성은 많은 발전을 가능하게 했지만, 실재는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것은 관념으로 환원되거나 손쉽게 재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태헌, 성남을 쓰다(초기 성남 풍경), 2019, 출력물, 가변크기




 김재경, 잠실시영아파트, 2004-2005, 3채널 비디오, 무한루프, 가변설치



 정재호, 난장이의 공, 2018, 한지에 아크릴, 600×450(cm)



주제가 삶의 전반에 걸쳐 있다 보니 참여한 작가군들도 다양하다. 건축가와 미술가뿐 아니라, 문화기획자. 영화감독, 디자이너, 건축사진가, 그리고 공공영역에서의 미적 실천을 견인해온 콜렉티브 등이 그들이다. 전시 기간 중에 그들에 의한 많은 워크숍, 강연, 토론회, 대담, 스크리닝 등이 이루어졌다. 기획자의 최종 결과물로서의 전시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도시 또한 하나의 결정적 단면으로 재현될 수 없으며, 지금 이 순간도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변화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 곳곳에 제시된 자료 더미들은 같이 제시된 작품들과 호환성을 지닌다. 관객은 재개발지의 풍경과 그와 더불어 뿌리를 뽑힌 삶을 예감하는 청계천의 장인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인터뷰 영상 속의 장인들은 40여 년 넘게 한 일에 매진해온 장인들은 이제 내일도 같은 작업장에 나와서 손때 묻은 공구를 들고서 같은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이 사회는 급격하게 변해왔고 앞으로는 더욱 급격하게 변화할 것이다. 시간은 더욱 가속도를 붙인다. 작품에 담겨있는(또는 깔려 있는) 현실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도 있다. 승자독식으로 기우는 신자유주의의 질서는 변화가 소수의 기득권과 다수의 희생자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현실화한다. 지배적 규칙의 폭주에 대항하여 누군가는 대안의 현실을 주장할 수 있다. ‘리얼-리얼시티(REAL-Real City)’ 전은 지배적 추세가 간과하는 현실들을 건축과 도시계획을 비롯한 대안의 현실을 구축하는데 고려해야 할 요소로 생각한다. 자연 생태계의 경우 이렇게 생성 소멸하는 과정은 은폐되어 있지만, 인간 사회의 경우 기록될 수 있다. 작가들은 인간 사회를 이루던 그 촘촘한 리얼리티가 사라짐을 본다. 때로 그 과정은 일방적이다. 그래서 폭력적이다. 물질과 몸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장인들의 작업은 리얼리티의 정수일 것이다. 영상은 기록 매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감자꽃스튜디오(남소영, 이선철), 분교의 진화, 2019, 혼합매체, 가변설치



 최고은, White Home Wall, 2018, 스탠딩 에어콘, 2500x180x80(cm)



 김광수, 여기에서 여기를, 2채널 비디오, 2019, CCTV, 반구형 반사경, LED 바, 가변설치



관객은 전시장에서 이러한 과정을 한 장의 그림으로도 볼 수 있다. 정재호가 한지에 아크릴로 그린 [제 4구역]은 재개발로 사라질 청계천과 을지로를 기록한 기념비적인 풍경화로, 그자체가 우리 시대의 삶이 총체적으로 녹아낸 기록이 된다. 벽에 붙어있는 영원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곧 분해될 수도 있는 가벽처럼 불안정하게 설치했다. 작가가 그 풍경을 응시하고 다소간 마음이 급해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아울러 많은 자료들 속의 그의 그림은 예술이야말로 가장 인상적인 사료가 될 수 있음도 알려준다. 오랫동안 성남을 연구해온 작가 김태헌은 [성남의–쓰다]에서 부스러기 풍경들을 모아서 서사로 엮는다. 폐허와 잔해 속에서 건져낸 풍경과 이야기들은 건축가들의 작품과 이질감 없이 맥락화 된다. 건축할 때의 가림막을 천정에 매달은 ‘설치작품’ 이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아르코 미술관이 천정 구조물을 데칼코마니처럼 보여주는 작품 등은 이 전시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대표적으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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