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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전 / 잡동사니로 쓴 시

이선영

잡동사니로 쓴 시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전 (5. 22--6.30, 성곡미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회고(Retrospective)와 재생산(Reproduce)이라는 의미의 두 단어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 ‘리프로스펙티브 REPROSPECTIVE’를 전시 부제로 붙였다. 신조어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상황에서 만들어지기 마련인데, 전시된 작품들은 세상에 없던 전무후무한 새로움을 창조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것들은 아니다. 4개로 나뉜 전시장 중 ‘낭만 결핍증’ 방에 있는 한 작품명 [잡동사니](2012)처럼, 잡동사니의 모임같은 인상이다. 물론 새로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작업은 자신들이 출발했던 생각과 재료 등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관객은 그들의 작품에서 스누피와 도라에몽 같은 도상을 알아볼 수 있다. 뒤샹이나 말레비치같은 유명 작가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관심 또는 무관심을 상징하는 대상을 수집해서 나열하는 방식과 다른 점은, 그들이 기존의 것을 변형한다는 점이다. 




헌터 S 톰슨 사냥꾼 선글라스 Hunter S Thompsons Shooter Shades 2009 (사진제공; 성곡미술관)



네 머리를 써라 Use your noodle 2011 



그래서 흔히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이나 생각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것들, 여러 형식의 제작과정을 거친 것들은 모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이 의도적인 난해함이나 수수께끼를 풀어보라고 압박하지는 않는다. 다중심적인 구조를 가지는 그들의 작품은 오히려 일의적인 ‘해석에 반대’(수잔 손탁)할 뿐이다. 예술작품, 사물, 상품, 도구, 개념 등이 혼재되어 있는 전시는 상호텍스트적이다. 작가가 심어놓았다고 가정되는 하나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기표들의 미끄러짐이 만들어내는 유희를 권한다. 그들의 작업에는 일단 어딘가로 올라가면 사다리는 걷어차야 하는 것이 예술작품으로서의 신비를 간직하는 방법인데, 굳이 그들은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게 중에는 특정 요소를 잘 뽑아내서 작가 특유의 ‘브랜드’를 만들만한 것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현실화시키지 않고 가능성으로 남겨두었다. 

  

예술, 사물, 상품, 그리고...


그리다 만듯한, 만들다 만듯한 많은 작품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최초에 그들에게 영감과 재미를 주었던 상태에 머물게 한다. ‘제대로 된’ 예술이나 상품은 최초의 영감과 재미를 넘어서 이후의 노동을 거치거나, 자기 손을 떠날 수도 있는 객관적 매뉴얼을 통해 ‘완제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최초의 영감과 재미는 휘발되고 만다. 이전 시대보다 더 많은 스펙터클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예술은 더욱 위축되고 있는 시대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그들의 작품은 하나의 스타일을 확립한다는 야심 대신에, 일상적 삶 속에서 만난 것들로 꾸준히 작업한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전시의 복잡다단한 작품들은 둘이 함께 예술을 하고 있다는 일관성만을 가진다. 부스러기처럼 보이는 단편들은 각각의 시기에 작가에게 다가왔던 것들이 응집된 덩어리들로, 그러한 단편들이 모자이크처럼 모이고 쌓여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라는 정체성이 형성될 것이다. 




아키텍토닉 Architect n tonix 2009



고고 학 스누피 Archeo logic Snoopy 2008



각각의 덩어리는 다른 덩어리와 언제든 다른 방식으로 어우러질 수 있다. 그들은 굳이 한 작품/전시에서 하나의 선율을 뽑아내지 않는다. 그들의 작품은 다성(多聲)적이다. 하나의 층위가 아니라 여러 층위에서 나오는 소리의 조합이다. 작품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들은 화음부터 불협화음까지 광폭의 스펙트럼을 가진다. 이 전시의 많은 작품들은 조합되기 이전의 것들로 다시 분해할 수도 있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작품의 감흥은 대개 서로 다른 것의 충돌로부터 야기된다. 이러한 방식은 허술하고 난삽하다는 느낌도 준다. 준 회고전적 성격을 가지면서, 드로잉부터 설치까지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는 50여 점이 넘는 많은 작품에서, 50대 중반의 작가로 중간쯤 온 시기의 단면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여러 기원을 가진 것들을 하나로 녹이기보다는 병렬한다. 병렬은 반복 속에서 차이를 유지하는 위한 방식이다. 


그들은 기성품을 선택함으로서 반복하지만, 그것을 변형함으로서 차이를 만든다. 변형은 무분별한 병렬을 저지하고 한껏 열려있는 작품에 최소한의 의미의 방향타를 설정해준다. 기성품은 변형시켜서 작품을 만드는 그들 스스로가 붙인 방법론은 ‘Handmade ready-mades’이다. 초현실주의가 레디 메이드를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장으로 활용했듯이, ‘레디 메이드’와 ‘핸드 메이드’의 조합은 우연적 선택에 필연적 맥락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한날한시에 같은 주형에서 탄생했을 대량생산품은 그들의 선택과 변형에 의해 특정 연도와 제목이 붙은 유일품(=작품)이 될 수 있다. 혼자가 아닌 둘이 하는 그들의 작품에는 대화가 깔려있다. 국적도 다른 두 작가(한국+독일)가 제3국(프랑스)에서 부부작가로서 한 몸처럼 작업을 해왔다면 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예술작품이라는 내밀한 것을 함께 만들어내기 위한 대화는 다국적어였을 것이다. 




관계부재 이웃Relationships do not exist neiborhud 2010-12



네가 알아내라 You figure it out 2012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언어의 소통은 오독과 오해를 야기한다. 같은 나라 사람도 서로를 어휘를 이해하기 힘든 시대이다. 오독은 오류를 낳고, 오해는 불화와 갈등을 낳는다. 그러나 오독과 오해는 어이없는 소통의 결과가 야기하는 유쾌함이나 창조성도 있다. 오독의 역사로 문예사조사를 다시 쓴 저자도 있을 정도이다. 유쾌함에도 블랙 유모어부터 파안대소까지 다양한 계열이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어법에 의한 오독과 오해가 필연적이라면 거기에서부터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수많은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자로서의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4번의 국내외 전시가 병렬된 이 전시는 과거의 전시 제목을 그대로 살렸다. 레디 메이드의 한켠을 차지하는 개념 또한 작업에 포함되다 보니, 각 방에 붙여진 제목들이 의미심장하다. 그러한 부제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자평으로도 읽혀진다. 

  

오독과 오해에서 야기되는 창조성


‘무감각의 미’(2006년 뮌헨)는 작가가 심어놓았으리라고 가정되는 깊은 의미로부터 벗어난, 즉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 성격을 보여준다. ‘시스템의 목적은 그 시스템이 하는 일’(2009년 서울)은 시스템의 자기지시적 속성을 풍자한다. ‘무아 자기도취’(2014년 오클랜드)은 자기만의 거울의 방 속에서 부유하는 문화와 관련된다. 가장 최근에 열렸던 전시를 바탕으로 하는 ‘낭만 결핍증’(2017년 뉴델리)은 ‘무감각의 미’와 ‘무아 자기도취’와 조응한다. 그런데 각각의 방에 속하는 작품들이 방에 붙여진 제목과 완전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가령, 이것저것 되는 대로 걸친 패션을 풍자하는 작품 [무아 자기도취](2014)는 ‘무아 자기도취’ 방이 아니라, ‘낭만 결핍증’ 방에 속해있다. 그들의 작품은 기성품의 변조뿐 아니라 기성 전시의 맥락 또한 변조된다. 15년여에 걸쳐 생산되고 전시된 작품들은 이 전시를 통해 다시 맥락화 된 것이다. 




슈퍼컴퓨터 드로잉 Super computer drawinx 2001-2



란초 렐락소 Rancho Relaxo 2009



다른 시공간 속에서 선별과 재배치는 필수였다. ‘무감각의 미’ 방에 속해있는 작품 [은색 캔버스](2009- )는 목재 위에 은색 천을 씌운 것으로 일종의 단색화다. [헌터톰슨 사냥꾼 선글라스](2009)는 규모를 변조하는 키치의 전략을 따른다. 보는 시선을 가려지고 보여지는 대상이 드러나는 선글라스는 은빛 단색화와 함께 관객의 시선을 쿨하게 튕겨내는 ‘무감각한’ 작품이다. 작품 [모란디 정물화](2012)은 플라스틱 탁자 위에 유리병에 청자색 아크릴로 칠한 작품으로, 원재료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표면처리가 특징이다. [그레고리마스 인형프로젝트](2003) 또한 인형의 부분들이 분해되어 나열된 작품인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석고라는 재료로 대치했다. ‘무감각의 미’는 ‘분석적 시선이 침투할 수 없는 완고한 표면성’(로잘린드 크라우스)이 특징적이다. 


‘시스템의 목적은 그 시스템이 하는 일’ 방은 분홍색을 배경으로, 전시장 상단부에 그 메시지가 써 있다. 바로 그 아래의 조형물은 관객의 시선에 닿을 수 없다.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일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오늘날 시스템의 정점에는 컴퓨터라는 도구가 핵심적인데 작가는 모눈종이에 먹으로 꼼꼼하게 그린 [수퍼 컴퓨터 드로잉] (2001-2)에서 손의 기술로 대표되는 아나로그 문화로 디지털 문화와 비교한다. 벨벳에 자수로 만든 작품 [두부 플로우차트](2007)에는 그레고리 마스라는 이름도 포함된 복잡한 개념도가 고풍스러운 방식으로 재시된다. ‘무감각의 미’ 방에서 말레비치의 작품을 도자기와 나무 가구의 조합으로 ‘무감각하게’ 변용한 것과 달리, 시스템을 주제로 한 방에서 뒤샹의 ‘무감각한’ 병걸이는 촘촘한 그물망으로, 즉 체계적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방의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단어가 포함된 [완전중립](2010)은 색색의 인조손톱, 플라스틱 단추 등으로 꿰 맞춰진 글자로, 중립과는 거리가 먼 자의성이 특징이다. 




담배 티타임 Cigarettes TEATIME 2010



자기도취 No-ego ego trip 2014



시스템의 목적은 중립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이익을 향한다. ‘무아 자기도취’ 방 벽에 시리즈로 걸린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은 만들 수 있다](2018)는 액자가 끼워진 골동 그림 위에 가필한 것으로, 동양화 위에 외국어 문장들이 크게 써있다. 마치 고대의 양피지(palimpsest,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처럼, 시공간 차이를 두는 두 코드가 겹쳐 있다. 버튼이 달린 탁자, 인공위성 모양의 나무구조물 등은 나무와 어울리지 않는 기계적 이미지를 조합한다. [담배; 티타임](2010) 도자기에 유약, 벽지, 페인팅. 가벼운 분위기의 제목과 달리, 아래의 쿠션이 찌그러질 정도로 무거운 다양한 재료로 만든 거대 담배이다. [열쇠 묶음](2011) 붉은색 고무 다라이를 변형한 것으로, 거기에 줄줄이 달린 열쇄고리들이 마치 왕관 같다. ‘낭만 결핍증’ 방에는 다양한 작은 인형들이 연극적 상황 속에 배치되면서 어떤 관계나 관계의 부재를 표현한다. 작품 [무아 자기도취](2014)은 첨단 패션쇼 현장에서 흔히 발견되듯, 패션의 정점에 극도의 부조화와 부조리함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현대 예술도 마찬가지 아닐까.

 

출전; 아트인컬처 201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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