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리얼리티 vs 모더니티, 움직이는 좌표 위의 여성주의 미술

이선영

리얼리티 vs 모더니티, 움직이는 좌표 위의 여성주의 미술

  

이선영(미술평론가)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는 문예사조사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관계에 상응한다. ‘-ty’로 끝나는 단어는 ‘-ism’으로 끝나는 단어보다 말랑말랑하다. 그것은 유동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단단해지는 과정의 운명일 것이다.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관계보다는 유연하다.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는 동전의 앞면, 또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관계에 있다. 산업 자본주의의 리얼리티가 모더니티였다. 모더니티니는 현재에만 국한되지 않는 미래를 품은 리얼리티였다. 모더니즘은 언어(또는 형식) 자체의 리얼리티를 강조했다. 문예사조사에서 모더니즘은 고전주의-낭만주의-사실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등장했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전사(前史)인 고전/낭만주의를 배제한다면, 19세기 중반의 리얼리즘과 후반의 모더니즘은 동시대성을 가지고 경쟁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역사적 배열을 우리의 1980년대에 대입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그러나 양자를 동시대성에 대해 대별되는 태도로 이해할 때,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라는 외국어는 우리 현실을 해석하는 것에도 참고할 만하다. 가령 우리는 ‘고전적’, ‘낭만적’, ‘사실적’, ‘현대적’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은 전자에서 파생되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진보 또는 발전을 견인했던 모더니티는 합리적이거나 도구적 이성을 전제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자의식적인 반응인 모더니즘은 합리성이나 이성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특히 양차 대전은 그러한 판단에 확신을 주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전성기를 구가한 유럽의 모더니즘은 양차대전을 계기로 위축되었으며, 전쟁없이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으로 문화적 헤게모니가 넘어간다. 전쟁의 광기를 치달은 거짓 이성이 지배하는 부르주아의 세계에 대한 경멸은 모더니즘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게 모더니즘은 부르주아적인 것과 한 묶음으로 생각되었다. 추상적 비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에 따른 것이다. 


한편 리얼리즘도 단지 비판에 머무는 단계(비판적 리얼리즘)와 비판을 넘어서 전망까지 제시하는 단계(사회적 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로 나뉠 수 있다. 리얼리티와 리얼리즘 또한 쉽게 포착할 수 없는 과정과 고정된 형식 간의 긴장이 내재해 있다. 그러나 그 모두는 산업자본주의의 전개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현실 및 모순의 발현과 관련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동시대성을 포착하려 한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는 전통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일단 한번 시동이 걸리면 결코 뒤로 가서는 안되는 발전도상의 사회, 즉 근대에 중립적인 과거는 없었다. 전통은 역사의 격동기에서 ‘살아남은 과거’(레이먼드 윌리엄스)를 말한다. 근대에 전통은 지양해야 할 것으로, 또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지향해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그 과정을 19세기에 마무리 짓고, 이후 독점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 및 전 세계를 무대로 한 항시적 생산/소비의 경쟁상태에 돌입했다면, 1980년대 한국자본주의 역시 그렇게 편성된 세계질서와 연동되면서 성장했다. 








(참고도판) 1980년대 서울의 모습 (사진출전;http://cafe.daum.net/dotax/Elgq/2954563?svc=daumapp )



한국은 긍정적 의미든 아니든 역동적 국가로 각인됐다. 그러나 그러한 역동성의 기조에는 경제적 발전의 방법과 성과를 둘러싼 자본/노동의 대립이 있다, 계급이 있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이 대립은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때 더욱 격화된다. 성장만큼 노동강도는 세고 분배는 더욱 불균등해지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1980년대 남한이 그러했다. 여기에 더해 남한의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는 자본주의/사회주의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적 대립 구도 속에 있게 했다. 80년대 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은 특별한 역사적 배경을 이룬다. 1980년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동시대성에는 발전, 진보, 전망, 혁명, 역사의 주체, 계급, 민족 등등, 거대 서사에 관련된 관념들이 그물망처럼 얽혀있었다. 모더니티와 리얼리티는 문화 예술적 범주로 이러한 그물망에 끼어든다. 산업사회로 접어든 고도성장의 시대인 1980년대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탄생했던 19세기 역사주의(historicism) 처럼, 일신우일신 하는 역사의 열기가 있었다. 인생과 비교하자면 청년기와도 같은 시대였다. 


그러나 1980년대의 전형적인 역사적 이미지와 달리, 각자의 선명성을 위해 이편저편으로 갈려 투쟁만 했던 시대는 아니다. 흑백 사진 속 희뿌연 최루탄 터지는 풍경과 더불어 화려한 디스코 리듬이 함께 했던 시대기도 했다. 어제와 다른(또는 달라야 할) 오늘이라는 비전 속에서 내일의 예술, 즉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공유한 희망 사항이었던 ‘진보적 예술’은 어떠해야 했을까.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단절되어 있을 때조차 연결된다. 그러나 한 시대에도 한 개인에게도 공존할 수 있는 미묘한 복합성은 단호한 선택에 직면했다. 민중미술 진영에서 자주 회자되던 당파성같은 관념은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될 것을 단적으로 요구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관계를 일련의 서사로 엮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달랐다. 리얼리즘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반영이 변혁의 조건이라고 믿으며 언어의 투명성을 전제했다. 이해되지 않은, 읽혀지지 않는 예술은 진보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리얼리즘은 대중적일 수 있다. 그러나 리얼리즘에 반영된 부정적 현실은 대중들이 누리기에는 부담이 된다. 남한의(그리고 북한도) 민중은 민중미술을 싫어한다는 냉소적 평가도 있다. 그것을 지배 이데올로기에 일방적으로 도출된 대중의 허위의식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현실과의 상상적 관계’(알튀세)로서의 이데올로기는 예술에도 스며들어 각 진영의 미학적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각각의 진영은 현실인가 형식인가의 갈림길에 직면했다. 양자 간의 대립 속에서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하는 정체성(동일성)의 문제가 진지하게 대두되었다. 문제는 현실도 형식도 단순한 동일성의 논리로 환원될 수 없다는데 있다. 현실과의 동어반복, 그리고 공식으로 굳어진 형식의 반복은 양자 간의 대립을 무색하게 했다. 내용적인 전형이든 형식적인 전형이든, 보다 역동적인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를 포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현실과의 동어반복에 머물 수 있는 리얼리즘은 소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과학과 비교해도 객관적일 수는 없었다. 


현실 자체가 언어의 산물임을 강조하면서 언어의 혁명이 현실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은 모더니즘에서 언어는 투명하지 않았다. 언어는 그자체가 미디어, 즉 물질성을 띄었다. 언어는 무엇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자체로 존재의미가 있었고, 더 나아가 언어로부터 모든 것이 파생된다고 믿어졌다. 리얼리즘이 현실의 총체성을 강조한다면 모더니즘은 형식의 자족성을 전제한다. 80년대가 지나가면서 부각된 다양한 ‘post-’ 국면의 공통적 특징은 이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현실이든 형식이든 굳어져 있고 닫혀있는 관념에 대한 비판이었다. 1980년대에 극심한 권력 투쟁의 와중에 그어진 전선은 자기지시성을 강조했다. 리얼리즘 진영에서는 그 상태를 자본주의 사회의 전반적인 물화 현상과 연결지었다.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언어의 불투명성은 자본주의의 물신성을 반영할 따름이며, 모더니즘의 입장에서 리얼리즘의 언어적 투명성은 보수적으로 간주되었다. 리얼리즘의 형식에 아카데미즘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비판적, 또는 사회적 리얼리즘은 문명 한국의 근대화, 즉 모더니티와 관련된 예술이었지만, 그것이 모더니즘은 아니었다. 



2회 여성과 현실전 포스터,1988년. (사진제공; 정정엽)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로부터 발원한 제국의 갈등과 세계화가 야기하는 긴장 속에서 반외세의 흐름 또한 강력했는데, 모더니즘은 그자체가 물을 건너온 것으로 간주됐다. 그것은 80년대의 여성주의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따지면 리얼리즘 또한 마찬가지의 혐의가 있다. 리얼리즘 이론에 깔린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논리, 그리고 모더니즘 이론에 깔린 A는 A일 뿐인 형식 논리는 모두 동일성의 논리라는 공통점을 가지며, 90년대가 되자 지양해야 할 비슷한 몸통으로 간주 된 것이다. 모더니즘은 모더니즘 논리를 이론화한 대표적인 평론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분업화된 현대에 걸맞는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실을 괄호치고 언어의 불투명성(opacity)을 강조한 이래, 그러한 강령은 순수 미학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의 진보적 미학에서 인기 있었던 이론가 게오르그 루카치에게 형식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모더니즘과의 미학적 대결 속에서 가다듬어진 리얼리즘 독법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실재의 반영’(루카치)이었는데, 여기에서 형식은 풍부한 현실을 담아내는 그릇일 따름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모더니즘은 리얼리즘처럼 총체적이지 못하고 파편적이다. 파편적 예술은 반동적이며 퇴폐적이라고 비판되었다. 억압받고 착취되고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부당한 현실의 묘사를 통한 폭로는 형식에 대한 탐구나 유희보다는 앞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리얼리즘 입장에서 모더니즘은 형식주의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과도기나 격동기를 지나면 자연처럼 굳어진 시스템을 구조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보다 정교한 선택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시스템이 시스템을 지시할 뿐인 사회로 진입할수록 시스템 자체의 오류에 의한 혼란 외에 인간이 주체가 된 혁명(시스템의 입장에서는 혼돈)이 앞으로 가능할지 싶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관료제를 비롯한 시스템의 힘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이때 낯설게하기라는 형식주의의 기본적인 방식도 체제에 위협적일 수 있다. 시뮬라크르로 뒤덮여가는 현실을 탈구시키는 것이다. 형식주의도 저항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 입장에서 보자면 리얼리즘은 현실을 재현하는 가운데 인정한다는 동일성의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각자의 위치와 처지에, 취향과 감성에 따라 방점은 달라지며, 당면한 상황에 대한 판단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1980년 5월 군부독재의 시민학살을 시작으로 계속된 민중에 대한 탄압은 풍부한 담론으로 고양될 수 있었던 미학적 담론을 진영의 논리로 환원하게 했다. 따지고 보면 큰 차이가 없는 남성과 여성이 억압적인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차별적으로 구별되듯이, 스스로 그리고 상대편에서 편 가르기를 한 것이다. 각자 정치적 성향이 어떠하든 투쟁의식과 (투쟁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부채의식이 예술가와 지식인의 의식과 무의식에 자리하게 됐다. 예술가들 또한 이러한 동시대성에 적극적으로 상호작용 했다. 


대상과 의식, 말과 사물에 비견되는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는 닭과 달걀의 관계와 같다. 리얼리티, 리얼리즘/ 모더니티, 모더니즘의 관계는 철학에서의 실재론과 유명론의 대립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진다. 비역사적인 이항대립은 지양되어야겠지만, 역사가 자연처럼 반복되는 경향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무엇이 더 먼저—그것도 세계관에 따라 다른 문제지만--라고는 할 수 있지만,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다. 현실(내용)에 방점을 찍는가 언어(형식)에 방점을 찍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새로운 현실에 주목하면 새로운 언어가 필수적이며,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현실은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현실도 갱신하는 효과가 있다. 1980년대 한국은 컬러 TV의 대중화를 비롯한 대중매체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어서, 90년대 이후 PC와 인터넷, 스마트 폰을 비롯한 정보혁명의 시대에 코드로 환원되는 언어적 현실이 더 중요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재의 축을 이루는 자연(몸 포함)을 무시할 수 없다. 




정정엽, 규찰을 서며,55x40cm,목판화_1989년.(사진제공; 정정엽)



1980년대는 평등하게 잘 먹고 잘사는 시대, 철학과 실천에 따라 죽고 사는 문제까지 걸린 시대였다. 이 땅에서 최초로 발원된 사상이 아니었기에 시간적 선 후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태도의 차이이며 각자의 전략적 선택으로 나타났고, 상호 경쟁했다. 그 둘 모두 동시대성을 보다 더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자기화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는 1980년대의 한국의 경치 경제 문화적 변화를 아우를 수 있는 융통성 있는 개념이다. 보다 자의식적인 예술의 유파로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차이를 강조했다. 역동적 사회에 걸맞는 이러한 지향성은 좌우파를 막론하는 일정한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실은 상상이나 상징으로 환원될 수 없는 불확실하고도 광대한 영역이다. 그것은 마치 자연처럼 어떠한 가치평가와 무관하게 그저 무관심적이며 선험적으로 펼쳐진 세상일까, 우주나 자연의 시공에 비한다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에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일까, 쟁취되어야 할 평등이나 자유가 담보된 당위적인 무엇일까. 각각의 비전은 과거, 현재, 미래에 강조점이 놓여있다. 


이항대립의 한 켠에서 현실이 전형이니 전망이니 하는 추상적 관념으로의 환원은 도식적인 이미지를 낳는다. 또한 형식의 자율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태도 또한 형식에 대한 폐쇄적 이해 때문에 마찬가지의 도식적 이미지를 낳는다. ‘--이즘’으로 굳어지는 안정화 국면에서는 반대되어 보였던 것도 비슷한 것이 되어 버린다. 무엇인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을 때의 초심이 견지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서로를 폐쇄적이며 보수적이라고 비판했다. 마치 거울 보고 하는 말처럼 결과는 비슷한 모양새였다. 현실의 복사판이든 자기비판이든 둘 다 반복하는 것이 문제였다. 예술의 자율성을 신봉하는 것은 현실의 모순에도 눈감는 태도이다 vs 예술은 자율적일 때 진정 정치적일 수 있다. 현실의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반영을 통해 현실을 개혁(혁명)한다 vs 예술을 정치나 철학으로 환원하는 것은 관념적이다. 형식주의는 자본주의 물신숭배를 그대로 반영할 따름이다 vs 현실과 거리감을 둔 형식은 현실을 더 잘 인식하게 한다. 내용이 없다 vs 형식이 없다...등등은 잘 알려진 대립적 논리이다. 


그러나 그 중간의 보다 미묘한, 그래서 더 중요한 흐름들은 이 두 큰 목소리에 가려졌다. 미학적 좌파 진영에서 처음 의식적으로 탄생했던 여성주의도 그 중 하나다. 자본주의 현실이 여성을 다중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자각한 여성 미술가들은 남성 투사들 속에서 성이라는 또 하나의 혁명적 화두를 제시했다. 일터로 나간 여성 농민이나 노동자는 자본에 의해 착취되지만, 집을 비롯한 사적 공간에서 가부장적 지배라는 이중구속에 놓여있다. 최초의 계급적 지배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 속에서 생겨났다는 유물론적인 관점은 자본주의를 넘어서 통시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역사를 다시 보게 했다. 이때 ‘예술’에 대한 재정의도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대한 예술가’는 이전처럼 한 성에 치우쳐 있을 수 밖에 없다. 80년대 중순에 만들어진 [여성 미술연구회], 이러한 집단적 탐구와 창작을 바탕으로 탄생한 [여성과 현실] 전, 그리고 대학가나 사회적 투쟁의 현장에서 펼쳐졌던 수많은 실천적 활동의 예가 있다. 


[여성과 현실] 전은 여성주의가 당대의 진보적 미술인 민중미술처럼 현실을 중요시 했음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중산층 여성이 직면한 현실—학사모를 쓴 채 남편의 발을 씻는 장면을 묘사한 김인순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이다--이었지만, 민중, 시민운동의 열기가 고조되던 80년대 후반에는 민중적 여성의 현실로 확장되었다. 그림 외에 만화, 판화, 꼴라주, 걸개그림 등의 형식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모더니즘에서의 형식을 위한 형식, 실험을 위한 실험과는 다르게 사회적, 역사적 내용을 더 효과적으로 담기 위한 형식이자 실험이었다. 화랑과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에서 펼쳐지지 않았기에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시대와 함께 떠내려간 미술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할 때, 80년대의 여성주의는 그 반을 힘차게 내딛었다는 의미가 있다. 1990년대에 페미니즘으로 합병된—대표적인 것이 1999년 좌우파를 막론한 여성 미술가들이 대거 참여한 [팥쥐들의 행진] 전 이다—여성주의 미술에서, 80년대부터 활동한 대표적 작가로 김인순, 윤석남, 박영숙, 정정엽이 꼽힌다. 




(참고도판) 김인순, [엄마의 대지], 180x120cm, 1994년.

 산업화의 그늘 속에 또 다른 희생양이었던 여성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여성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근대의 노동자를 재생산하며 그녀 스스로도 노동자가 되어 자본/노동의 모순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이 작품에서 환상과 현실은 상보(相補)적으로 작용한다. 



작품에 ‘여성적 감수성’이나 ‘여성적 기법’ 등, ‘여성성’을 드러낸 작가가 이들만은 아니었지만, 여성 작가들이 하는 작업의 사회적이고도 역사적 의미가 의식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그리 많지 않은 여성주의 미술가들은 이후 미술사적 (재)평가를 받게 된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들이 현재 진행형의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작업의 전개는 그들의 작업의 뿌리가 80년대에 있음을 알려준다. 김인순은 여성 미술가들의 공동창작과 학습을 주도하면서 변혁의 주체로서 여성 노동자와 농민을 부각했고, 이후에 자본주의 문명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신화적 자연의 이미지로 발전시키고 있다. 일찍이 노동 현장에도 뛰어들었던 정정엽은 곡식의 낱알부터 감자 싹까지, 단자(單子)와 다중(多衆)을 아우르는 생명 정치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윤석남은 대안적 여성성으로서의 모성을 강조하면서, 동물들을 비롯한 타자를 품는 여성의 자리를 마련했다. 


박영숙은 여성 신학자부터 여성 예술가까지, 레즈비언 커플부터 소녀같은 할머니에 이르는 여성의 다양한 환몽(幻夢)을 변화무쌍한 정체성—‘미친년’이라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캐릭터로 대표되는—의 연출을 통해 표현했다. 이러한 여성들은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주체(그리고 언어)를 강조한다. 그들 모두에게 리얼리티와 모더니티는 여성 또한 포함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리얼리즘이든 모더니즘이든 현실, 특히 여성의 현실을 말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현실을 반영하고 변혁하는 주체, 자아의 표현이라는 이중의 기획 모두에서 여성이 주변화된 것에 대한 자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유리 천정이 깨지거나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현실이 특별한 현실인 한 그 현실을 잘 포착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도 요구되었다. 사회구성원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비롯하여 급격하게 한국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현재, 페미니즘이라는 틀거리가 여성 작가들의 리얼리티를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비판—그것은 모더니즘의 주요과제이기도 했다—도 필요할 것이다. 

 

19세기 (비판적)리얼리즘, 20세기 사회적(또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모더니즘 모두 동시대성이라는 살아있는 실체를 둔탁한 구식 그물망으로 포획하려 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80년대는 대학의 팽창을 비롯해서 한국 사회의 제도적 기반이 더욱 가속화되었기에 제도권의 안팎의 자리를 둘러싼 경쟁 또한 치열했다. 특히 이론과 긴밀한 모더니즘은 주요한 아카데미에 자리했다. 리얼리즘 진영 또한 경쟁 구도를 가지는 또 다른 아카데미를 장악하여 한국의 화단을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양자 구도로 재편성됐다. 1980년대의 집단적 문화의 배후에 학맥이 있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대학이 보다 대중화된 1980년대에도 여학생들은 많았지만, 그 숫자에 비해 작업을 직업으로 연결시킨 비율은 적었다. 여성의 ‘진정한’ 자리가 공적이기보다는 사적영역에 있다는 선입견 또한 작동했다. 이러한 부조리한 결과가 제도적으로 소외된 처지를 작품에 자의식적으로 반영하거나 표현하는 계기는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적 영역으로 축소된 예술은 한가한 취미로 간주될 위험성이 있다. 


공적 영역에서 작가로서 살아남을 때 사적 영역을 비롯한 중요한 예술적 사회적 광맥은 재발굴될 수 있으며, 페미니즘은 초기부터 그 부분을 강조했다. 1980년대 한국의 예술과 문화에는 현실인가 언어인가라는 다소간 중립적일 수도 있는 선택이 일면화(또는 극단화)될 수 없었던 정치경제학이 있었다. 이러한 각축전 속에서 청년이나 여성, 기타 소수자의 목소리는 묻혔다가 80년대가 지나가는 시점부터 다양한 목소리들이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80년대 말 현실 사회주의의—엄밀한 의미의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국가가 자본을 장악한 국가자본주의 형태—붕괴를 비롯해서, 자본이 제도화를 통해 더 강력하게 현실의 안팎을 구성하고 해체하는 상황에서 여성은 다양성 중에서도 가장 무게가 실린 주체이자 타자였다. 리얼리티가 현실을 지배하는 질서나 소외된 일상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실재(the Real)일 때, 그리고 언어가 실재를 생략하거나 단순화하지 않을 때, 여성적 언어는 예술과 현실 모두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전; 예술경영지원센터(1980년대 미술의 리얼리티 & 모더니티)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