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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 오래된 사물과의 새로운 만남

이선영

오래된 사물과의 새로운 만남

  

이선영(미술평론가)


 

1986년 마흔 즈음에 한국을 떠나 20여년 넘게 유럽 등지에서 유목의 삶의 살던 작가 김주영은 한국에 정착한 지도 꽤 오래됐지만, 여전히 이 땅에서도 유목을 한다. 한국에서 김주영은 ‘디아스포라 작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순히 거주하고 작업하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고정된 스타일 없이 많은 형식적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유목민이다. 물리적 유목은 정신적 유목과 연동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유목적 주체]에서 유목주의란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사유방식과 행동방식에 안착되기를 거부하는 비판적 의식을 지칭’하며, ‘유목적 상태를 정의하는 것은 관습 집합의 전복이지 글자의 뜻 그대로의 여행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유목민은 ‘집 없음이나 강제적인 장소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유목민은 ‘고착성에 대한 모든 관념, 욕망, 향수를 폐기해 버리는 종류의 주체를 형상화’한다. 


즉 유목은 작가가 언제 어디로 다녔는가에 대한 물리적 사실보다는. 작품의 형식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아마도 김주영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작품은 평생을 한두 가지 형식으로 갈고닦는 방식일 것이다. 경쟁지상주의 사회에서 브랜드화에 다소간 유리할지 모르는 장인적 방식은 거부된다. 작가는 소재는 물론 형식조차도 섭렵의 과정으로 삼는다. 한편으로 한가지 기술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시도들은 타자와의 대화와 협업이 절실히 요구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규모인 황토집 짓기가 그렇다. 2012년에 안성에 작업실을 짓고 정착한 이후, 요즈음의 작업은 실제의 이동이기 보다는 제자리에서 떠나는 여행이다. 실제든 가상이든 길 떠나는 자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에게 유목은 정확한 출발과 종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대한의 단축 거리를 계산하면서 전전긍긍 살아가는 인생과 지도도 없이 미지의 길을 가야 하는 예술적 삶은 차이가 있다. 유목은 불가피하게 출구가 확실하지 않은 미로와 연결된다. 


유목의 결과물인 이야기는 미로에서의 탐사나 방황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김주영의 작품에는 여기까지 온 이야기가 있다. 자크 아탈리는 [미로]에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인간 최초의 오락이었으며 일상생활에서 도피였고 가상의 유목생활이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신화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다시 말해서 머릿속에서 죽음을 떨쳐내고 죽음을 멀리하는 방법이다. 특히 [기억 상자] 시리즈는 작가가 통과해온 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비록 관객은 그것들을 실제로 열어볼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이어가는 단편들을 찾아볼 수 있다. 김주영의 작품은 예술가와 유목민의 정신적 공통점을 잘 알려준다. 유목민이란 다름 아닌 매개자, 즉 ‘소통의 중개인, 사제, 이야기꾼, 음유시인, 마법사, 예언가, 전도사 등 온갖 부류의 인물들’(자크 아탈리)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리 일상어에서 관용적 표현이 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는 말은 유목과 서사의 관련성을 암시한다. 


유목, 그리고 그것과 연동된 이야기들, 그것이 김주영의 다양한 작품을 이어주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이다. 실타래가 엮을 수 있는 작품들의 스케일은 천차만별이다. 기억이 담긴 작은 상자부터 등신대 크기의 오브제들이 들어갈 수 있는 준 건축적 스케일의 작품까지 이른다.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펼치고 접는 스타일의 작품들은 유목하는 작가에게 필수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설치물인 황토집은 이 길 저 길을 떠도는 유목민이 꿈꾸던 아늑한 집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황토집은 전형적인 유목민의 거주지라고 할 수 있는 천막집 보다는 정착과 더 어울리는 듯싶지만, 그 역시 한시적인 구조물이다. 그 규모가 얼마이든 전시가 끝나면 미련없이 허물어야 하는 것이다. 로지 브라이도티가 ‘유목민은 어느 곳에서든지 집터를 다시 창출할 수 있다’고 했듯이, 유목민은 정착과 안주가 아니라 집을 짓는 방법만이, 자신이 순간 머문 곳에 기둥을 세우는 방식만을 가질 따름이다.


유목민은 허물고 다시 짓기에 익숙하다. 이별과 새로운 만남에 익숙하다. 그들에게는 고정된 익숙함 자체가 낯설다. 유목민은 거듭해서 떠나는 자기에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볼 수 있다. 2000년 DMZ프로제트를 시작으로 왕래하다가 2005년 완전히 귀국한 이후, 오창을 비롯한 서울 근교 도시의 페허들은 새롭게 다가왔다. 행복의 파랑새에 관한 동화처럼, 보물은 먼 곳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가까운 곳에, 심지어는 자기 안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김주영의 작업은 떠나는 자만이 새롭게 만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소 외양간이었던 곳을 작업실로 삼아 마당에 천막치고 작업을 시작한 작가에게 동네 여기저기에 있었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보물처럼 여겨졌다. 허물어져 가는 동네의 폐가들은 김주영에게 발굴해야 할 것들이 많은 보물선이나 다름없다. 방앗간에서 가져와 검정 칠을 한 기둥들은 현대의 조각 작품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최소한의 가공만 한 미니멀리즘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시골에서 주워 모은 버려진 농기구나 살림살이 등이 활용되었다. (재)개발  과정 중에 폐기되어야 마땅할 쓰레기들은 마법같은 변환과정을 통해 예술로 환생한다. 작업실을 안성 분토골로 이주한 이후에도 근처의 폐허가 된 방앗간에서 구해온 자재들을 활용하는 등, 지금 여기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작품들을 다수 만들어오고 있다. 물론 해외 체류의 체험은 한데 합쳐진다. 전시되는 작품들 또한 파리에서 해왔던 20여년의 작업을 기초로 한 것이다. ‘20년간 살면서 에펠탑 한번 안 올라가 봤다’는 작가에게 유목은 단순한 이국적 구경거리 차원을 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김주영의 고색창연한 작품 소재들을 보면 모더니티나 모더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근대적 진보의 개념을 다시 바라보는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서구에서는 진보사상의 위기가 포스트모더니즘을 탄생시켰다고 진단한다. 그에 의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보다 나은 미래라는 개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진보 자체가 부정될 수 없지만, 하나의 폭력적인 방향성은 거부되어야 한다. 즉 진보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진보로 거듭나야’(에드가 모랭) 할 것이다. 김주영의 작품 소재들은 단순한 향토주의나 회고취미라기 보다는 비판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오래된 미래’로부터 온 것들이며,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거나 재연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작은 티벳으로 불리는 라다크로부터의 교훈을 말하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특히 현대의 자본 및 에너지 집약적 생활방식의 낭비와 비도덕성을 지적한다. 작업하는데 최소한의 도구만을 구입하며, 자신이 서 있거나 발로 갈 수 있는 범위 내의 버려진 것들 중에서 선택하는 김주영의 작업 스타일은 ‘더 많은 자원착취와 더 많은 기술혁신, 더 큰 이윤을 향한 무자비한 추진력’(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 특징인 현대적 경제 시스템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다. 현대사회의 지배적 시스템에는 모두가 동의해야만 하는 선적 시간이 깔려있다. 그러나 작가가 젊은 시절부터 즐겨 유목하던 곳들은 시간이 느릿하게 가던 곳이었다.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이 있었던 곳이었다. 그것이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만들었다. 세계화가 파괴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다양성이다. 김주영의 작품에서 보다 인간적인 규모의 탈중심화된 삶의 패턴을 담고 있는 사물들이 발견된다. 한국에 다시 왔을 때 새롭게 보였던 전래의 기물들 또한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소재주의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 점은 황토집처럼 연출한 이번 전시의 한 작품에서 확인된다. 황토집 안팎을 채우는 기물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시하는 상징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꼴라주와 오브제라는 서양미술사의 방법론은 그것이 원래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하게 한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연출되어 있다. 한편 그것들은 이제 한국 사람들에게도 낯선 물건이 되었기 때문에 진기한 구경거리가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이전 작품에서도 많이 활용되었던 한옥의 문을 비롯해서 가마솥, 항아리, 등잔 등, 여러 가지 ‘발견된 오브제’들이 있다. 


그러한 사물 중 하나는 작가의 라이프 캐스팅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물건을 만들지만, 물건들 또한 인간을 만들 것이다. 그러한 것들에서 자신의 욕망에 딱 들어맞는 사물들을 찾기 위해 파리의 골목길을 배회하던 초현실주의자의 시선으로 시골길을 다니던 행적들이 발견된다. 작품에 깊이 심어 놓아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20세기의 물건이라고 할 수 있는 영상기기도 빠지지 않는다. 황토방에서 흘러나올 영상은 작가가 직접 찍은 것들이며, 부조처럼 입체적인 평면작품의 일부에서도 흘러나온다. 현대의 유목민에게 영상 또한 수집의 도구가 된다. 그러나 김주영의 황토집은 반드시 수수깡이 들어간 한국의 황토집만을 모델로 한 것은 아니다. 유목의 여정에서 만났던 중동과 중앙 아시아 등지의 오지 소수민족들의 주거지는 수도승의 굴 집 같은 신성한 느낌을 주었다. 안성의 작업실을 지을 때도 황토가 사용되었다고 하니, 작가의 안팎을 이루는 사물들에는 삶과 작업을 일치시키려는 작가의 태도가 읽혀진다. 


평면작품 역시 수집된 것을 재활용하여 구성하는 방식이 유지된다. 캔버스가 아닌 나무판을 지지대로 한 작품 [여인의 도시] 시리즈에서는 네온과 영상도 함께 조합된다. 평면 위에 얹혀진 것들에는 헌 집을 뜯어낼 때 나오는 쓰레기들, 새 박제 등 종류도 다양하다. 검정 바탕은 다양한 것을 한데 모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길이 10미터가 넘는 광목천에 그려진 검은색 그림들은 웬만한 공간에서는 전체를 다 펼치기도 힘들다. 김주영의 평면작품을 특징짓는 우울하면서도 신비한 검은 색조는 파리에 있을 때부터 작가가 탐닉한 것으로, 배고플 때 먹고 싶었던 밥(여기서는 쌀)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시장 하나를 모두 채우는 검정은 그 자체로 강력한 느낌을 자아낸다. 에바 헬러는 [색의 유혹]에서 색과 감정의 관계는 우연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일생을 통해 쌓아가는 일반적인 경험, 어린 시절부터 언어와 사고에 깊이 뿌리 내린 경험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전쟁통의 가난 속에 성장하던 어린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오랜 타국 생활을 해온 작가에게 가난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김주영은 자신의 어두운 감성의 기조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색채학자들은 검은색의 심리학을 많이 연구해 왔다. 에바 헬러는 모든 것은 검정으로 끝난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부패한 고기는 검게 변한다. 식물이나 치아가 썩어도 검게 된다.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는 검정 옷을 입고 있다‘ [색의 유혹]은 ‘검정의 내적 음향은 가능성이 없는 허무, 태양이 꺼진 뒤의 죽은 허무, 미래도 희망도 없는 영원한 침묵과 같다’(칸딘스키)고 인용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검은 태양]에서 멜랑콜리와 검정과의 관계를 논한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멜랑콜리는 물질의 부패를 의미한다. 멜랑콜리라고 부르는 인간의 체액이 새까맣게 탄 검은 담즙처럼 보이고 그것이 슬프고 음울한 기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작업실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검정 두루마리들이 전시회에서 얼마나 펼쳐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두루마리 그림들은 어떤 장소에서도 접힘과 펼침에 유동적일 것이다. 


김주영은 파리에 간 이후 틀에 끼운 캔버스를 산적이 없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선택에는 미학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 캔버스 대신에 다양한 ‘그림’의 방식이 실험되었다. 가령 작가는 한옥집에서 수집한 나무문에다 광목을 씌우고 제소칠을 해서 캔버스 대신에 사용하곤 했다. 물감 또한 자체 제작하곤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황토 물감이다. 모시같은 천에 접착제를 섞어 만든 황토 물감은 자기만의 색을 만들어 가야 할 작가에게는 소중한 매체이다. 광목에 직접 그린 작품들은 거의 두루마리이다. 화이트 큐브에 질서 있게 걸리는 액자작품과 김주영은 거리가 멀다. 캔버스 대신에 나무 판과 광목을 사용한 평면작품은 대개 대규모이며, 설치적인 방식으로 배열된다. 작가는 영상, 조각, 회화, 디자인, 건축 등등을 구별하지 않는다. 김주영의 작품은 전략적이고 체계적이기 보다는 유희적이고 자유롭다.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다. 본능과 욕망은 작품의 의미가 생성되는 과정에 결정적이다. 


검정색, 황토색 등으로 대표되는 김주영의 색깔에 깔려있는 정동(affectivity)은 작가의 정체성을 암시한다. 정해진 자리를 넘어서 평면에서 입체로 튀어나오곤 하는 작품들은 시각적이기 보다는 촉각적이다. 그리기 보다는 만들기로, 만들기보다는 수집하기로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수집물 속에 또 다른 수집물이 있기도 하다. 가령 자개장이나 항아리 등에는 영상을 포함한 또 다른 작품들이 똬리를 틀고 있으며, 이 전시에서 그러한 방식의 정점은 황토집에서 발견된다. 작은 스케일로는 [기억 상자] 시리즈가 있다. 1986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파리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50개 정도 된다. 그것은 유목의 와중에서 길에서 주은 것들이다. 가령 발찌와 색 가루, 싸구려 그림들이 함께 있는 기억상자에는 작가가 좋아하는 지역 중의 하나인 인도에서의 기억이 오롯이 담겨있다. 크고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유목민에게 작은 물건들—자크 아탈리가 ‘유목물품’이라고 정의한—과 기억은 중요하다.


기억상자 시리즈는 같은 크기의 상자 안에 들어갈만한 오브제들로 채워져 있으며, 유목민이 결코 큰 짐을 선호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상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방이며 방들이 모여 또 다른 방(전시실)을 채운다. 조합의 방식에 따라 이야기는 다르게 펼쳐질 수 있다. 김주영의 작품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브제들은 아크릴 박스 안에 담겨 에폭시로 봉인된다. 기억 상자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사방에서 볼 수 있는(=읽을 수 있는) 구조들이다. 이 작품들은 지금도 이어서 할 수 있는 열린 작품이다. 누군가 보면 잡동사니처럼 보이지만 본인의 일기 등이 포함된 기억 상자는 그자체가 김주영의 정체성을 담아놓은 외장하드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작지만 밀도 있는 이 작품들은 마치 호박(琥珀) 화석같은 양상이다. 호박 화석은 나무의 수액인 송진이 굳으면서 그 안에 작은 생물체를 비롯한 주변에 있던 것들이 봉인된 것으로, 후세에 이전 시대의 생태 등을 파악하게 해주는 자연적 타임 캡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김주영의 기억 상자는 ‘30도의 해맑고 바람이 불어야 하는 날 몰아서 작업해야 하는’ 방법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길에서 마주친 것들에는 우연적인 만남의 결과가 포함되어 있다. 작업이란 전적인 의도나 전적인 우연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란 우연에 열려있어야 하되, 그 우연들이 낱낱이 흩어지지 않는 가느다란 필연의 고리들이 요구된다. 기억상자가 같은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우연과 필연을 절충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전쟁 세대의 작가에게 가난함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것이며, 그 점은 작품 재료와 방식의 선택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김주영의 작품은 새로움과 화려함 보다는 낡고 버려진 것으로부터 나오는 감성과 아우라가 있다. 자연적, 문명적 생태계를 이루고 사물들 중에서 거칠고 상처가 선명한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들은 야성적이면서도 애수에 차 있다. 특히 [여인의 도시] 시리즈는 2006년에 92세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 활용되어 다소간 묵직한 기억을 건드린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적인 기억들에 바탕하지만, 동시에 보편적이다. 작가는 쌍둥이 언니가 있었는데, 굶어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사진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 1947년(서류상의 연도임. 실제는 생년 미상) 생으로 전쟁 세대인 김주영에게 강인한 전후의 여성이었던 어머니는 특히 기억될 만한 존재이다. 작품 중에는 어머니가 입었던 저고리가 꼴라주 된 것이 있다. 어머니 한복을 입은 작가의 모습이 담긴 작품은 예술하는 삶 또한 전쟁 때와 다를 바 없는 상황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작품들이 비극적 회고적 색조로 물들어 있지는 않다. 여성적 존재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담보하고 있다. 녹색 네온이나 풍구(아궁이에 불 땔 때 바람넣는 기구) 등이 포함된 작품은 희망과 힘이 느껴진다.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투쟁해온’(질 들뢰즈) 유목민은 강인하다. 생명을 보살피는 여성도 강인하다. 작품이라는 생명을 낳는 작가도 강인하다. 겉으로 보기에 다소간 왜소한 체격을 가진 김주영은 이 세 겹의 강인함을 내장하고 있는 역설적 인물이다.  

 

출전; 청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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