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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전 / 큰 그림의 밑그림들

이선영

큰 그림의 밑그림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전 (2019. 3.27--5.26, 아르코미술관 제 1, 2 전시실) 

  

이선영(미술평론가)

  

늘 다니던 길목의 건물에서 새단장하는 공사가 이루어질 때, 원래 그곳이 뭐 했던 곳이었는지 종종 기억이 안 나는 때가 있다. 살고있는 동네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집 근처에 이삿짐 센터 차가 왔을 때 누가 이사 가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중앙청 철거나 남대문 소실처럼 사회적 관심사가 몰려 있었던 큰 사건이 아니라면, 건물들이 들고났던 자리는 배 지나간 자리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도시는 제 2의 자연과도 같은 곳이지만, 이 살아있는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생태계의 주요 요소이기도 한 건축은 지각되거나 기억되지 않는다. 그러한 도시환경은 자체의 자동적인 주기로 순환할 따름이다.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귀국 전인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무려 50년 전의 기억을 호출한다. 1-2년이 새로운 한국의 건축 환경의 역동성을 생각할 때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도 (재)발견의 기회를 준다. 동시에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좋았던 것은 사라지고 나빴던 것은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 또한 알려준다. 1층 전시장에 마치 높은 빌딩처럼 세워진 진열대는 자료 하나하나에 마치 상장과 같은 존재감을 부여하고 있으며, 위에서 보면 여러 자료들이 공시적으로 배열된 투명한 서랍장 형태의 구조 또한 건축가들의 공간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참고도판)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EH,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참고도판)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EH,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귀한 자료들인지 모두 봉인되어 있다. 그것들을 굳이 가려진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인터페이스로 작동한다. 한편으로 그러한 아카이브는 공기처럼 편재했던 건축과 그에 관련된 자료들은 그 시대의 공기와 함께 사라졌음도 말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문화 잡지인 [공간] 등, 정기간행물이 포함된 자료들에는 단 한 권만 남아있는 것도 있으니, 불과 100년이 지나지 않은 우리의 건축적 환경에 얼마만큼의 무관심이 팽배해있었는지 알 수 있다. 대중적 관심을 모으는 국제행사 및 그것의 국내적 재현에는 많은 인력과 기술, 자본, 즉 힘이 들어간다. 무엇인가를 벌일 수 있는 권력은 억압적인 것만은 아니다. 푸코가 말했듯이 담론으로서의 지식/예술은 권력과 밀접하다. 베니스에서의 전시와 한국에서의 그 재연 또한 국가의 역할이 컸다고 볼 때, 권력은 부정/긍정을 넘어서 자본처럼 편재하는 것이다. 권력은 곧장 예술과 정치의 관련을 생각하게 한다. 아방가르드의 역사에서 보이듯 정치는 예술에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가에게 예술은 낯설 것이라 생각된다. 정치적 성공을 위한 주요 전략은 집단화다. 반면 예술은 개인주의적인 것이라 양자는 융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예술이 분화되지 않은 시대에는 자연스러웠다. 외교관이기도 했던 루벤스, 혁명기의 국가적 행사를 총괄했던 다비드 등은 화가로서의 비전을 사회적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좀 더 분화된 현대사회가 도래하자 각각 다른 언어와 문법을 가지게 되면서 종종 불행한 결말을 낳는 만남으로 귀결된다. 대개는 정치가와 예술가 사이에 서로의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순간이 파탄이 난다. 2011년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러시아관의 책임 큐레이터이기도 했던 철학자 보리스 그로이스가 [아방가르드와 현대성] 주장했던 것처럼, 정치도 예술이 되는 시점이 있다. 미술사에서는 히틀러나 스탈린 등 독재자들이 그렸던 큰 그림에 대한 예가 풍부하게 등장하곤 한다. 독재자들은 사실주의라고 주장했지만, 대개는 철 지난 고전주의풍이 많다. 현대에 와서 고전주의는 그자체로 관철되지는 않지만, 대규모의 위용을 자랑해야 하는 프로젝트에는 숭고한 정신을 깃들게 하려고 노력한다. 예술에서의 전위가 ‘예술의 정치화’를 꾀했다면 독재자들은 ‘정치의 심미화’(발터 벤야민)로 대응했다. 




(참고도판)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EH,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참고도판)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EH,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정치가에게든 예술가에게든 근대적 주체에게 정치와 예술은 매력적인 도구였다. 그것은 주체의 힘을 확장하여 객체에 관철시킬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의지가 구별되는 듯한 두 범주를 하나로 수렴시킨다. 독재자들은 자신이 독재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도 박정희 시대에 대한 발전주의적 관점이 있지 않은가. 예술가들도 권력을 가지면 독재자처럼 될 수도 있다. 예술로 권력을 가질 수 있고, 국가적 기획에 참여하면서 권력을 가질 수도 있다. 이 전시가 주목하고 있는,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KECC)에 포함된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들이 그 경계에 있는 이들이다. 그들이 당시의 집권세력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유령을 떠올릴 만큼 말 그대로 자료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그 시대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권력자가 불러들였다고 해서 다 어용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직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미완의 프로젝트들도 많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기관 소속의 건축가들과 국가 권력과의 관계가 순탄치는 않았음을 추측하게 한다. 


특히 전시회는 건축의 내재한 예술성을 맘껏 펼쳐 보이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원래대로 또는 변경되어 세워졌거나 세워졌다가 무너진 것보다는, 당시 건축가들의 구상에 있었던 것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두 개의 아카이브와 새로운 작품/기획이 함께한 이 전시는 건축, 영상, 문학 등이 어우러진 아카이브이자 작품 전이다. 이 전시가 다루는 영역은 범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로, 공공영역에 뿌리내리고 작동하는 건축은 본래 공공적임을 생각한다면 몇 겹의 공공성을 둘러쓰고 있다. 공공성은 공동체를 전제로 하는데, 큰 축을 이루는 두 개의 아카이브가 ‘부재하는 아카이브’와 ‘도래하는 아카이브’로 정해진 것을 보면, 1960년대 말에 이루어진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과연 공공성/공동체가 있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포함한다. 그것은 도래해야 할 것이지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존재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역사에 대한 주제전은 현재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2층에 전시된 일곱 건축가/팀의 작품에 제시된다. 




(참고도판)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EH,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참고도판)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EH,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건축은 많은 자본과 기술 또한 요구되는 종합예술이다 보니 총체성을 전제하는 계몽주의와 잘 어울리며, 계몽이란 어떤 이상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 만큼 이상주의와도 밀접하다. 그러나 누군가의 유토피아는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일 수 있으며, 이러한 엇갈림은 계급으로 나뉘어진 사회에서 더욱 선명하다. 현실의 벽을 뚫지 못하고 도면이나 건축가의 관념으로만 남은 것도 있고, 실현은 되었으되 최초의 이상과는 다른 누더기 상태가 있을 수 있다. 전시는 하나가 현실화되기 위해 작동했던 열 개 이상의 잠재적 기획들을 건축가의 발언이나 자료들을 통해 드러낸다. 살아남은 것만 중요하다면 우리는 작품의 대상이었던 여의도나 구로동 등을 그냥 둘러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전시나 자료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공식 출판물인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프로파간다프레스)는 전시를 위해 수집했던 방대한 자료들을 모아 출판함으로서 그자체가 또하나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자료를 중시하는 전시가 낳은 또 하나의 자료인 셈이다. 이 전시의 시대적 배경을 이루는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 한국의 건축에서 그 현실성과 잠재성의 역학관계 속에서  아방가르드를 자처한 것은 국가였다. 


‘국가 아방가르드’나 ‘유령’이라는 표현은 주도적 힘을 발휘했으나 유령같은 실체가 된 권력을 재구성한다. 건축을 비롯해서 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그 안에서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건축 또는 공공적 기획은 권력을 재현한다. 도시는 자생적으로 생성하고 성장하기보다는 위로부터의 기획에 의해 추진된다. 도시 하나가 그냥 생기기도 하고, 그런 도시의 시스템을 수출도 하고 수입도 한다. 대규모 기획은 체계적으로 펼치다 보니 정권과 긴밀하다. 정권 또한 자신의 흔적, 아니 대부분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자연스럽게 잘 흘러가던 4대 강줄기를 바꿔버린 범 국가적 프로젝트는 토목으로 잔뼈가 굵어 정계까지 진출한 한 지배자의 ‘작품’이지 않은가.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제16회 국제건축전의 총감독인 아일랜드 여성 건축가인 이본파렐과 셸리 맥나마라이 제시한 ‘Freespace(자유공간)’이라는 주제는 1968년 한국의 상황을 더욱 역설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당시의 국가가 주축이 되어 그려진 건축의 큰 그림은 혁명적 상황의 전위를 국가로 상정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전위라고는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실체가 완전히 지워진 상태이기에 유령같은 존재가 되었다. 




최춘웅, [미래의 부검],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김성우,[급진적 변화의 도시(세운상가 옥상 통경축)],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가 제시한 키워드 중의 하나인 ‘자유’는 1968년의 혁명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었다. 영미 세계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번져 나갔던 1968년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한국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한국의 1968년은 독재정권하에 근대화가 추진 중이었으며 성과만큼이나 부작용도 컸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예술가보다는 군부정권이 사용했다. 혁명의 목표이자 결과일 자유는 소수의 몫이었다. 단순한 집단이 아니라, 집단이면서도 개인일 수 있는 미래의 시민을 꿈꾸었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1968년의 혁명적 상황을 통해 그러한 다중(多衆)이 도래했다고 했는데, 그는 다중이 탈근대의 기수가 된다고 보았다. 그가 쓴 [자유의 새로운 공간]은 [혁명의 시간]과 함께 1968년의 혁명과 자유공간을 연결짓는 이본파렐과 셸리 맥나마라이의 개념과 조응한다. 1968년 당시 큰 이슈 중의 하나였던 것은 자유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평화였다.


그것은 아무런 명분도 없는 월남전을 계기로 번진 반전(反戰) 문화와 관련된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반동적이고도 억압적인 국가이기도 했다. 68혁명은 서구적 풍요의 산물이기도 했기 때문에, 제국을 모델로 해서 풍요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었던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소원했던 문화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68혁명은 근대적 이성과 주체 이후를 바라봤지만, 한국의 근대성은 시동이 걸린 시점이었다. 후진국에서 군부가 쉽게 정권을 쥘 수 있는 것은 군대가 대표적인 근대적 조직이어서 일 것이다. 공장, 병원, 학교, 기업 등은 모두 그러한 일사불란한 근대적 모델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한국에서는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추진했던 군부 권력에 의해 자유로운 청년문화는 억압되었고 장발과 미니스커트가 단속되던 시대였다. 1960년대가 지나고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국가의 계몽주의적 기획을 시골 구석구석까지 관철시켰다. 대통령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아침저녁으로 틀고 따라부르고, 대궐에 대통령의 휘호가 걸린 나름 예술 국가였던 것이다.




바래, [꿈 세포],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강현석, 김건호, [빌딩 스테이츠(개념도)],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은 1960년대 개발주의의 주축으로 활동했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KECC)에 포커스를 맞춘다. 한국관 주최 측에 의하면 ‘도시계획과 건축을 담당했던 이 기구에는 윤승중, 유걸, 故김석철, 김원, 김원석 등 당시 최고의 건축가들이 참여했고, 2018년 한국관 전시는 KECC의 2대 사장 김수근(1968-69년)과 그 팀이 주도한 네 프로젝트, 즉 세운상가, 구로 무역박람회,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에 초점을 맞추었다. KECC은 이외에도 한강 연안 개발, 삼일고가,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중문관광단지, 보문관광단지 등의 개발계획을 추진했다’고 나와있다. 이러한 자료에 의하면, KECC는 1960년대 한국 건축의 큰 그림을 그린 단체인데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못해 그 또한 ‘유령’으로 설정되었다. 국가주도의 개발시대에 자유 공간은 과연 누구에 의한 누구의 자유이고 공간이었나. 이 전시는 이러한 질문을 공적으로 제기한다. 비록 그에 대한 답은 각자 해야 하지만 말이다. 공적 질문에 대한 각자의 해석은 2층에 전시된 작품들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예술가들은 60년대와 접속하면서 충분하게 실현되지 않았던 자유의 공간을 상상한다. 1층에 수집된 자료로부터 출발하지만, 자료로부터 보다 자유로운 작품이 전시된 2층은 60년대 당시 북한과도 체제경쟁을 했던 시대를 뒤로 하고 바로 미래로 도약한다. 최춘웅의 [미래의 부검]은 여의도 면적의 몇 배 하는 식으로, 축구장만큼이나 어떤 척도가 된 여의도가 배경이다. 산수화 속의 여의도와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 시민의 휴식공간으로서의 한강변, 그리고 실현되지 않았던 유토피아적 조감도의 병치한 작품은 압축 재현된 근대사 속에서 몇 번은 갈아 없어졌을 풍경에 대해 말한다. 김성우의 [급진적 변화의 도시]는 마치 거대한 기차처럼 도시를 가르고 지나가는 듯한 세운상가가 독특한 시점으로 포착되어 있다. 개발지상주의자들에게는 당장 없애고 마천루로 교체해야 할 콘크리트 덩어리인 현재의 세운상가는 5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의 혁신을 간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경태, [참조점],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정지돈, [빛은어디에서나 온다] 참조이미지,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김성우의 작품 속 세운 상가는 새로운 공공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전초기지처럼 등장한다. 전진홍, 최윤희(바래)의 [꿈 세포]에서 1968년 한국 무역박람회를 위한 자리는 이후 구로공단으로,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영상이 투사되는 벌집 모양의 구조물은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의 거주지를 상징한다. 베니스에서의 설치와 달리 접고 펼 수는 없지만 자연적 건축의 오래된 모델인 벌집은 인간의 규칙이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함을 암시하는 듯하다. 현재의 구로동을 생각할 때 그 작품은 신자유주의 모델에 의해 착취당하는 전 세계의 노동자를 포괄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강현석, 김건호의 [빌딩 스테이츠]는 관객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검은 색 건물 모형이 개념도와 함께 제시했다. 그들의 작품은 건축이 우러러 봐야 하는 기념비가 아니라 시민이 쉴 수도 있는 도시에 대한 이상을 말한다. 김경태의 [참조점]은 철거 잔해물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바닥에 깔린 그 이미지들은 모든 건설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철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근대 유산급에 속하는 아르코미술관 건물 또한 그러한 파편들을 깔고 있을 것이다. 수수께끼같은 단편을 재해석하는 후대의 노력은 새로운 건축의 참조점이 될 것이다. 서현석의 [환상도시]는 국가기관 기공에 관련된 이들의 말과 현실이 대조된다. 말은 이상이자 당위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뉴스 등 공적 매체에 기록된 것은 허위로서의 현실이다. 그의 작품에는 건축가 및 건축 연구자들의 이상과 허위로서의 현실이 교차 되는 장면들이 나온다. 영상작품에 내재한 편집은 그 간극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행사 통역으로 선발된 영문과 여대생의 시점으로 1960년대 말 엑스포 70 한국관에 관련된 건축인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단편소설로 씌여진 내용은 관련 자료들과 함께 전시장에서 들려온다.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덧입힌 듯한 이 작품은 익명적 구조들에 생기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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