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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이들과의 대화

이선영

얼굴 없는 이들과의 대화

  

이선영(미술평론가)

  

(불)가능한 얼굴과 재-현


미디어극장 아이공 기획전 ‘(불)가능한 얼굴과 재-현’ 이라는 전시 부제는 다소간 난해하다. 해체주의에서 ‘말소하에 놓임’을 뜻하는 사선처럼 불(不)이라는 접두어에 그어진 선은 뒤에 나오는 단어들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아닌지를 불확실하게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문장의 단정적 표현과 좀 더 포괄적이어야 하는 예술작품의 양상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는 있다. 기획자들은 어떤 내용이라도 다 포괄할 수 있는 제목을 정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는가. 작품 제목이나 전시 부제는 작품을 적절히 재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재현은 불가능하다. 또는 불필요하다. 어떤 주제가 어떤 문장으로 완벽하게 재현될 수 있다면 굳이 작품을 만들거나 전시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작가 또는 기획자가 주장하고픈 것은 바로 ‘그것’일 테니까. 이처럼 재현이란 불가능과 동어반복 사이에서 표류하는 난감한 관념이다. 그것은 마치 원래부터 짝인 것처럼 보이는 말과 사물의 거리를 최대로 벌리면서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특히 이 전시의 작품들처럼 얼굴 없는 재현이 쉽지 않은 것은 불명하다. 




안정윤,[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 (video, 2017, 19분 28초, HD, 컬러, 사운드)



김혜이,[이야기의 얼굴], two channel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2018



이 전시에서 얼굴을 부재의 위치에 할당하는 것은 타자를 대상화하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관련된다. 이 전시의 작품들은 죽음과 광기라는 타자를 다루고 있다. 타자는 쉽게 재현될 수 없다. 그들이 다루는, 정확하게는 대화를 통해 서서히 드러내려는 타자는 위대하거나 핍박받는 사람, 아름다운 여자, 숭고한 자연, 사고 싶은 물건들처럼 쉽게 재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개 그렇게 쉽게 재현될 수 있는 것은 동일자가 자기 기준에 따라 타자를 분류하고 소유하기 쉬운 대상들이다. 대상은 물론 개념도 재현될 수 있다. 그러한 식의 재현은 지배적 질서에서 흔히 일어나는 도그마나 폭력과 비슷한 양상이다. [재현의 정치학]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듯이, 재현은 정치적이다. 고전주의나 사실주의의 규범을 이루어왔던 재현주의는 현대 예술이 개시된 이래 계속 지탄받았다. 중심/주변을 나누는 이항대립적 사고는 플라톤 이래 재현주의의 근간을 이루어왔다. 


상징적 우주는 그것을 부당한 폭력이 아닌 정당한 질서로 간주하게 한다. 죽음은 삶의 타자요, 광기는 이성의 타자이다. 삶은 죽음을 배제하고 이성은 광기를 배제한다. 주변화된 유령같은 존재를 재현하기는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쉽지는 않다. 타자의 유령화는 지배와 저항의 관점에서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 중심은 주변을 없는 존재로 취급한다. 또는 왜곡한다. 부재의 자리에 할당된 이들은 지배적 재현에 저항한다. 이때 두 가지 전략이 전개될 수 있다. 하나는 유령화 또는 괴물화를 거부하고 본래의 얼굴을 드러내는 일종의 주체화 과정이다. 가령 핍박받기 때문에 해방되어야 하는 노동자나 여성, 민족 등의 예가 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 자나 조현병 환자 등이 등장하는 이 전시의 작품들은 얼굴을 숨기는 전략을 취했다. 비판과 저항, 좀 더 약화 된 표현으로는 대안이라는 명목 아래 한번 더 대상화되는 사태를 피하려는 것이다. 가장 명확하게 다가올 수 있는 얼굴 대신에 그들은 끝없는 해석을 낳게 할 흔적들의 추적을 택했다.

  


안정윤; 현대사회의 편재하는 죽음


안정윤의 작품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에는 지인의 죽음이 깔려있다. 2013년에 일어난 케냐의 쇼핑몰 테러 사건 때 죽은 59명의 사망자 중에 포함된 1명의 한국인 희생자가 바로 작가의 전 직장 동료였고, 작품 속 자막에 실리는 내러티브는 희생자 남동생의 시점이다. 총기 난사와 수류탄 등이 터져 난장판이 되었을 참사 현장은 멀리서 포착된 뉴스 화면을 일부 사용했다. 선혈낭자했을 장면이나 현장의 소음 등은 제거되고 누나의 비참한 시체를 확인했던 동생의 말투는 그 엄청난 슬픔도 다 말라버린 듯 건조한 느낌이다. 화자는 테러와 관련된 푸티지 영상이 나오는 가운데도 인터넷에서 영화 파일이나 포스터 등을 수집하는 한가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화자는 ‘그런 것을 하면 시간이 잘 간다’고 하면서 작품 제목처럼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그런 취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누나의 어이없는 죽음이 영화처럼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안정윤,[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 (video, 2017, 19분 28초, HD, 컬러, 사운드)



안정윤,[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 (video, 2017, 19분 28초, HD, 컬러, 사운드)



화자의 ‘쓸데없는’ 수집 행위에는 자신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었던 동병상련의 내용을 가지는 영화에 대한 공감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흥미롭게도 참사가 벌어진 케냐의 도시와 유사한 한국의 한동네를 함께 편집했다. 케냐는 매우 멀리 떨어진 이국적인 나라인데, 보이는 구조가 비슷한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언덕길 저편으로 검은 연기가 나는 건물, 늘어선 전신주, 구급차, 교통표지물 등, 보이는 것만으로는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전경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흑인 경찰을 빼면 한국의 한 동네 풍경과 다를 게 없다. 한국의 풍경에서는 오가는 사람들과 택시들이 케냐의 풍경과 동형적 구조를 이룬다. 그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현대적 풍경인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테러 사건의 범인은 소말리아 이슬람 반군 '알 샤바브'라고 나와 있다. 테러는 흔히 인종이나 종교의 갈등으로 해석되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적인 문제이고 세계화는 그 갈등을 더욱 부추켰다. 


세계화로 비좁아진 상황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은 더욱 빈번해지며, 사건을 저지르는 세력이나 마무리하는 세력이나 정해진 매뉴얼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자막에도 나오지만 테러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재난이 됐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진단했던 ‘위험사회’는 변수가 아닌 상수이다. 비슷한 화면의 교묘한 병치는 무고한 희생자를 낳은 재난이 일어났던 먼 이국과 여기가 동일한 질서에 속해있음을 암시한다. 지인의 죽음에서 출발한 작품은 그 죽음이 불운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불운은 현대사회 어디에나 편재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건은 뜨거웠지만, 사건의 배경은 차갑다. 뜨거움은 의미로 나아가는 기승전결의 구성이 있지만, 차가움은 중심 없는 구성을 취한다. 사건을 다루는 작가의 밋밋한 태도는 현대사회에 편재하는 위험이 ‘투명한 악’(장 보드리야르)임을 말하는 듯하다. 또 다른 작품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어요]는 사고가 아닌 자살자의 언니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카메라는 유서도 없이 죽은 사람의 흔적들을 천천히 훑는다. 




안정윤,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어요],  (video, 2018, 20분, HD, 컬러, 사운드)



안정윤,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어요],  (video, 2018, 20분, HD, 컬러, 사운드)



자살자가 찍은 흐릿한 사진은 그가 잠시 보았을 세상의 단편이 담겨있다. 개인의 소소한 취향을 반영하는 실내의 물건이나 여행지의 풍경은 그것이 해상도 낮은 한 장의 사진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한다. 마치 숨겨야 될 것처럼 모자이크 처리된 장면들도 있다. 죽은 자의 안과 밖을 이루고 있던 것은 3자의 눈으로 보면 지루할 만큼 진부한 일상적 풍경이다. 동생의 죽음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언니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살펴본 한 자살자의 생전 흔적들은 디자이너를 꿈꿨던 20대의 젊은이의 것이다. 여기에는 거의 자연적 운명처럼 다가온 사회적 진출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현실보다는 이상의 몫이 컸을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좌절 또한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지 오래다. 그러나 탈출구는 없었다. 세상은 해상도 낮은 사진들처럼 창백하고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안정윤의 작품은 외적 사고이든 내적 사고이든 두 죽음의 원인과 의미를 밝히지 않는다. 죽은 자의 얼굴도 소리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대세계의 일상성’(앙리 르페브르)을 이루는 익명적 체계와 죽음이 멀지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김혜이 ; 프레임 속에 갇힌 이들

 

김혜이의 작품에는 조현병 환자들이 등장한다. [광기의 역사]를 쓴 미셀 푸코는 프로이트를 따라 (이성적)문명은 광기를 고무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분열증을 비롯한 광기는 근대 낭만주의 시대 이래 예술과도 밀접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를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하는 부정적 견해(프레드릭 제임슨)도 있었고, 더욱 공고화되는 규율과 조절사회에서 탈주로를 제공하는 것이 긍정적 견해(질 들뢰즈)도 있었지만, 그 병이 당사자나 가족들에게는 큰 고통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들 사회적 소수는 정상/비정상의 구별이 모호한 정신의 세계에서 정상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하기 위해 타자화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정상은 정상이기 때문에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이 있기에 정상인 것이다. 현대철학이 말하듯이, 동일자는 자족적인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존한다. 요즘 조현병 환자와 관련되어 연이어 터지는 강력사건에 대한 보도를 보면, 작가가 그들의 얼굴을 왜 드러내지 않았는지 추측된다. 그들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작동될 부정적인 프레임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김혜이,[이야기의 얼굴], two channel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2018



한편으로는 조현병 환자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행동하는 이들은 자기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실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들의 범죄율보다는 현저히 낮지만, 조현병이라는 프레임은 강력하게 작용한다. 조현병 환자들의 얼굴 대신에 다른 지표들을 활용하는 작가는 선정적인 이슈에 묻혀 소비되는 소수자에 대한 담론을 피하고자 한다. 작품 [이야기의 얼굴]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제시한 맨 왼쪽의 화면을 포함하여 맨 우측의 태블릿 PC까지 총 4개의 인터페이스가 펼쳐져 있다. 의료기기를 연상케하는 정교한 장치들을 활용하여 번역한 그들의 육체에 대한 지표들은 정상인과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한 결과는 과학기술에 바탕 한 것이라 더욱 신뢰를 준다. 물론 이러한 장치는 양날의 칼이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정밀하게 탐구된 이래, 어둡고 불투명한 몸은 더욱 환하고 투명하게 드러나 정보화되고 이는 곧장 정치경제학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몸의 상태를 정확히 재현함으로서 그 정보를 활용하는 문제는 권력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재현의 정치학이 보다 고도화되는 시대에 작가는 광기를 비롯해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범주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정신건강 보건센터에서 만난 그들은 나름대로 국가와 사회, 가족의 보호를 받고는 있지만, 타자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기회를 박탈한 채 고립된 섬처럼 존재했던 이들이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어떤 식으로 말할 것인가. 다큐멘타리를 전공한 작가가 활용하는 새로운 미디어는 얼굴이나 목소리의 재현이 아닌 방식으로도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작가와 대화 중인 이들에게 나타나는 ‘동공의 떨림, 상반신의 움직임, 심박수와 피부전도도 등의 신체변화는 여러 가지 센서를 통해 수집되고, 이 데이터들은 미리 짜여진 코드에 의해 실시간으로 시각화’ 되는 과정을 활용했다. 그것은 주체의 대상화가 아닌, ‘과정 중의 주체’(크리스테바)를 드러나게 할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이미지가 한 채널에서 재생된다. 심해의 풍경으로 재현된 화자의 신체 상태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환상적인 풍경이자 또 다른 우주처럼 펼쳐진 별천지로 나타난다. 




김혜이,[이야기의 얼굴], two channel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2018



이러한 몸풍경은 정상인도 유사한 방식으로 ‘재현’된다는 점에서 평등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옆 화면에서는 몸에 대한 수동적 지표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그들의 글, 그림, 사진, 영상 등이 제시된다. 인터뷰 대상자와의 신뢰가 깊어질수록 더 내밀한 자료가 등장할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를 배열한 태블릿 피시의 12개 항목 중에서 관객이 하나를 골라 터치하면 두 개의 채널에서 아름다운 심해 이미지로 나타나는 추상적 영상과 실제로 채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구체적 영상에서, 왼쪽 화면이 그들 또한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음—환각과 환시를 제외한다면 신체적인 특징에서 차이는 없다고 한다—을 알려준다면, 오른쪽 화면은 다소간 차이가 있다. 차이가 차별을 낳아서는 안된다는 소수자에 대한 관점은 인간은 평등하다는 원론적 주장과 차이를 가늠하고 배려하는 그다음 단계의 주장을 나란히 배열한다. 이 작품은 타자의 얼굴이 아닌 다른 지표를 통해 그들의 현존을 제시했지만, 작가는 실제로 수년간 타자의 얼굴을 마주해왔고 이러한 윤리적 자세는 독특한 심미적 결과물을 낳았다. 

  

출전; 미디어극장 아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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