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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서 / 무지갯빛 이상을 찾아나서는 극적 여정

이선영

무지갯빛 이상을 찾아나서는 극적 여정

지니 서 전 (2009. 5.21--7.19, 몽인 아트센터)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승을 떠날 때  ‘무지개다리를 건너다’라는 표현을 있는 것처럼, 지니 서의 설치 작품 전 ‘end of the Rainbow’는 서글픈 느낌이 담겨있다. 무지개라는 말도 그렇고 끝이라는 말도 그렇고,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는 이상주의나 노력의 허망함을 예시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1층 전시장의 회색빛 철망 판들이 만드는 길과 검은 색 강철 띠로 휘감긴 2층 전시장은  무지개의 다채로운 색상이나 비물질적 느낌과는 대조적이다. 그것은 무지개 끝자락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호기심에 찬 질문과 이러한 순수한 희망들에 대해 끝없는 배반을 불러오는 현실과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딱딱한 혹은 부드러운 기하학으로 가득 찬 지니 서의 작품은 이러한 인생의 역설에 대해 직접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간은 전체가 일련의 길이 되어 관객을 그 내부로 끌어들이고, 그 곳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독특한 경험과 상념을 부여한다. 공간을 통과하는 경험은 각자 가지고 있는 상념이나 감정의 진폭을 더욱 크게 만든다. 


그것은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 아니라, 전체 공간을 하나의 무대로 삼아 관객이 이동하는 시간의 축을 따라 이야기를 만들도록 한다. 이 시간의 축은 길로서 비유되는 인생이 그러하듯, 확실한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불확실한 기상현상인 무지개라는 소재가 그렇다. 2008년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서 비닐 접착시트를 이용하여 ‘빛의 폭풍’을 연출한 대규모 설치 작품 [storm]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번 전시에서, 대각선을 가르는 높이 3미터의 강철 망이 공간을 다양한 각도로 구획하면서 관객이 이동하는 통로를 만드는 1층 전시장은 가상의 벽면들로 이루어진다. 철망이 만드는 가상의 벽면은 다양하게 중첩된 면을 생성하면서 관객의 시선을 교란시킨다. 뻥 뚫린 공간에 철망으로만 구성된 공간은 예상과 달리 그 투명함을 잃는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밖으로 뚫린 공간을 향하게 되는데, 관객은 안의 막다른 지점에서 건너편을 내다볼 수 있을 뿐 더 전진할 수 없다. 여러 각도로 뻗은 통로의 시선을 교란시키며,  빛이 쏟아지는 저편으로 더 이상 통과할 수 없게 설치된 구조물로 인해 통로는 잠재적인 미로로 변화한다. 

  

 직선적 투명함으로 빛나는 공간은 더 이상의 전진 불가능함이라는 좌절감과 현기증을 낳고 있는 것이다. 2층은 벽면을 따라 휘감은 강철 띠로 인해 흐르듯이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중력을 받는 묵직한 검은 색 띠의 흐름의 한 가운데에 놓인 관객은 또 다른 압박을 받는다. 공간 전체를 휘젓는 역동적인 흐름은 동시에 안으로 조여 오는 움직임을 낳으며, 갈라진 띠들로 이루어진 면들은 약한 충격에도 출렁거리고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색상이나 하늘하늘한 베일이 아니라, 회색빛 도시의 날선 구조물이나 모든 빛을 흡수하는 육중한 색의 흐름은, 적어도 내적 속성에 있어서만은 무지개와 닮아 있다. 금방이라도 닿을 듯이 떠있는 목표를 향한 여정에 예기치 않게 맞딱뜨리는 상황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 속의 무지개가 그러하듯이,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이동하는 시선에 의해 형성되는 환영들이다. 무지개를 향한 여정에 나선 이들은 다가가는 만큼 멀찍이 물러나는 대상을, 그리고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막다른 골목을 만나게 된다. 


곧 손에 잡힐 듯한 희망은 사람들을 그리로 오라고 유혹한다. 단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부여잡으려는 이들에게 무지개는 이렇듯 영원한 갈망을 낳게 한다. 무지개를 실제로 찾아나서는 과정은 무지갯빛 찬란함과는 무관할 수 있다. 그러나 지니 서의 작품에서 이러한 살벌함과 어둠은 절망의 코드나 상징이라기보다는, 삶의 길이 예시하는 바의 불투명성과 관련된다. 그것은 관념 속에서 손쉽게 계획되는 바의 투명한 비전이 아닌 길, 요컨대 불확실한 여로에 대한 알레고리에 더욱 가깝다. 무지개를 향한 여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라고 묻는 지니 서의 작품은 시작과 끝 보다는 과정과 추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관객은 작품의 외부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고 이러한 통과를 통해 시시각각 펼쳐지는 장면이나 변화무쌍한 경험이 생성된다. 무지개를 잡기 위해 열심히 나아간 사람이 그 과정 속에서 무지개보다 더 값진 것을 찾을 수 있게 되 듯 말이다. 

 

그것은 관념이나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과정이다. 무지개란 공허한 환영일 뿐이라고 지레 결론짓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 속성이 최대한 활용된 강철 망이나 띠는 그자체로도 인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지니 서의 작품은 전체 구조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이상적인 지점을 찾기 힘들다. 반면 이상적인 지점이 있는 공간, 예를 들면 표상적 공간의 구성에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원근법의 경우, 수량화된 시공간을 전제한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전개가 연속적이며 예측될 수 있는 결정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시공간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지점이 결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중심이 이동되는 지니 서의 작품은 관념이 아니라, 실재를 지향한다. 완벽히 계획되거나 통제될 수 없는 실재는 고전 과학이 전제하는 바의 동질적인 시공간을 벗어난다. 여기서는 정지가 함축하는 조화와 균형 대신에, 끝없는 추이와 과정이 있을 뿐이다. 


비슷한 계열의 대조를 덧붙인다면, 자족성 대신에 지속성이, 영원함 대신에 우연성이, 본질 대신에 현상이, 이성 대신에 몸이, 한계 대신에 무한이, 닫힘 대신에 열림에 방점이 찍혀진다. 전체 공간을 투시할 수 없는 강철망의 교란적인 표면들, 그리고 중력의 방해에 의해 완벽히 제어될 수 없는 강철 띠의 구성은 자족적인 소우주로서의 유기체에 기반 하는 조각적 공간을 해체한다. 그러나 지니 서의 작품에서 해체는 느슨한 이완이 아닌, 엄격한 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실, 합리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가정은 해체를 전제하고 있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해체될 수도 없다. 미술사가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근대조각에서 현대조각으로의 추이를, 구성주의 같은 분석적 체계의 조각이 해체되는 과정으로 서술 한 바 있다. 지니 서의 작품에서 주축이 되는 통로를 지나가는 경험은 시간성을 적극 도입되는 현대 조각의 특징을 보여 준다. 근대조각이 모든 가능한 시점의 총체가 집약되는 하나의 시점을 가지고 있다면, 미니멀리즘 이후의 현대 조각은 이러한 이상적 시점이 와해된다. 

 

현대조각에서는 선험적 공간에 대해 경험적 시간이라는 불확실한 요소를 전면에 대두되면서 전체와 부분, 중심과 주변, 본질과 현상 사이의 투명한 관계가 와해된다. 관념적 환상은 실재의 추이로 대치되는 것이다. 지니 서의 무채색 무지개는 환상 속의 무지개가 아니라, 그것을 찾아가는 실재적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극적인 상황들과 연결된다. 그것은 크라우스가 개념화한 ‘논리적 투명성’과 ‘지각상의 불투명성’의 대조이며, ‘순간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비전’과 ‘실제 시간 속에서 지속의 경험’ 사이의 대조인 것이다. 어른거리는 시각효과를 통해 공간을 투명하게 투시할 수 있는 시선을 차단하는 1층의 철망 구조물과 내부를 투시할 수 없는 두터운 피막으로 뒤덮인 2층의 검은 색 띠는 표면과 깊이의 관계가 불투명한 것, 즉 ‘내부의 원인이 외부로 나타난 결과가 곧 형태의 표면이라는 고전적인 원칙’(크라우스)이 거부된 현대조각의 특징이다. 관념론적인 초월이 아니라, ‘세계 속에 놓여 있는 시간성(temporality)으로서의 주체’(훗설)의 경험을 지향하는 지니 서의 작품은 멈춘 채 꿈만 꾸는 것을 넘어, 무지개를 직접 찾아나서는 이들이 찾게 될 경이로운 세계와의 진정한 만남을 예시하고 있다.               


출전;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 기사입력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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