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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바라보는 네 가지 방식 전 / 미술, 정체성과 현실을 묻다

이선영

미술, 정체성과 현실을 묻다

미술을 바라보는 네 가지 방식 전 (2008. 3.28--6.15, 서울 시립미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서울 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젊은 작가 25명으로 꾸려진 ‘미술을 바라보는 네 가지 방식’ 전은 정체성과 현실을 주제로 한다. ‘선과 색의 울림’(책임 큐레이터; 최정희)은 선과 색이라는 조형적 요소를 통해 회화의 정체성을 살펴보고, ‘상상의 틈, 괴물 되기’(강효연)는 괴물을 통하여 주체성의 경계를 모색한다. ‘일상의 발견’(양혜숙)은 삶을 지속하기 위해 유지되어야 하는 항상성을, ‘물로 쓴 슬로건’(조주현)은 무반성적으로 지나가는 삶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의도한다. 각각의 섹션은 조형적 형식에 대한 자기비판의 미학을, 개인에게 극단을 강요하는 문명의 병적 징후에 대한 심리학을, 현대성과 한 짝을 이루는 일상의 사회학을, 그리고 예술의 현실 비판적 정치학을 내포한다. 미술에 대한 자기비판이나 일상에 대한 탐구가 쿨 하게 접근된다면, 메타적 차원이 필요한 정체성이나 정치성에 대한 접근은 보다 뜨겁다. 물론 네 가지 범주는 분리되지 않고 서로 얽혀 있다. 가령 어떤 정체성을 가진 작가인가에 따라서 미술작품이나 일상, 현실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 


 먼저 섹션 1의 ‘선과 색의 울림’전을 채우는 것은 말 그대로 선과 색의 향연들이다. 조형요소에 대한 분석적, 감성적 접근이니 만큼, 추상 작품이 대세이다. 많은 작품이 조형의 기본적인 요소이자 형식인 선과 색의 환원에 치중한다. 티끌하나 없이 말끔하게 칠해진 색 면들을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적 세계가 연상된다. 현상과 환영, 복제와 모조의 기원이 되는 원형의 세계 말이다. 본질과 현상을 구별하고 양자 간에 위계적 관계를 설정하는 이원적 세계관은 재현주의의 근간이 되며, 미술을 헛된 가상의 영역으로 퇴출하고, 본질을 위한 도구적 기능으로 강등시키는 측면이 있다. 대체로 기성세대의 모더니즘적 추상이 이러한 관념적 본질주의에 의존했다. 그러나 젊은 작가들의 추상 작품에서는 관념성보다는 생생한 감각성이 전면에 드러나 있다. 이러한 감각성은 추상의 자연적 기원을 잊지 않으려는 면으로 나타난다. 그 자연에는 인간의 정서도 포함된다. 따라서 조형 언어의 자율성이 극대화 된 경우에도, 개념의 매개 없이 감각에 직접 호소하려는 측면이 두드러진다.


평행의 색 띠로 칠해진 이경의 작품은 작가가 관찰한 때와 곳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풍경화이다. 원래 음악을 전공했다는 라유슬은 반투명 색채의 어우러짐을 통해서 화음과 선율을 표현하며, 겹쳐진 색선들에서 동물의 이미지도 발견할 수 있다. 우윤정은 캔버스 하나하나를 가득 차지하는 순수한 색 면을 보여주는데, 가장자리를 흐리면서 뿌옇게 떠있는 색채 위에 번들거리는 실리콘 처리를 하여 정신성보다는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을 강화한다. 이현주는 54개의  나무 판에 색을 입혀 그 조화로움을 표현하거나, 중심으로부터 발산되는 직선의 패턴을 보여준다. 바닥이나 전시장 모서리를 적극 활용한 이 작품은 설치의 개념이 강하다. 그것은 조형적 요소가 그 무엇의 재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환경의 일부가 되려는 경향이다. 하비비는 붓이 아닌 롤러를 사용하여, 마름모꼴의 반복적 단위를 통해 색채적 요소에 몰두하게 한다. 강연희는 추상적 평면들 뒤로 그림자를 그려 넣어 조형적 요소의 자립성을 강한다. 그것은 마치 실재처럼 자기 반영 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부러진 벽에 투사된 애니메이션 추상화에서 조형적 요소들은 자기 스스로 발생하고 움직이고 증식한다. 


 ‘상상의 틈, 괴물 되기’에서는 정체성의 경계가 와해됨으로서 야기되는 애매한 존재, 즉 혼종, 또는 이종 복합체들이 출몰한다. 외계와 구별되는 적절한 경계는 한 존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생물학적, 심리학적 기반이다. 그러나 경계는 일종의 금기의 선이 되어 위반의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상징적 질서를 유지하는 경계선은 침범되고 섞일 수 없는 것들이 섞여든다. 정체성 확보를 위하여 초자아와 사회로부터 억압되고 축출된 타자성이 복귀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형식적 구조를 벗어나 불확실한 영역에 있는 것들, 경계를 넘나드는, 또는 경계 선 위에 선 존재들은 억압되지만 때로 전능한 힘을 가진다. 무당이나 괴물이 그러했고, 예술가의 정체성도 그와 가깝다. 신체의 경계는 위반을 가시화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신체에 뚫린 구멍들은 안과 밖의 경계선이 확실치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경계가 무너진 신체는 병적 징후를 보인다. 그러나 병적 증후는 새로움과 다양성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상상과 현실이 연관되듯이, 괴물은 현실적 요소로부터 추출되고 재조합된 양상을 보인다. 고양이와의 강한 동일시를 통해, 고양이와 인간이 합체된 모습을 보여주는 성유진, 식물에 동물성 요소인 털을 결합시킨 유지현의 작품이 그렇다. 이서준은 사이보그적인 상상력을 통하여, 기계의 덩어리들을 합체시키는 연결 부위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김재옥의 경우, 범주의 교차를 통해 괴물이 만들어진다. 그의 작품은 지구나 세포같이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을 건너뛰면서 인간의 몸을 발견한다. 서고운은 의식이 헐거워지는 꿈의 세계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건져 올리며, 기괴한 것들이 출몰하는 그림을 자아 분석의 단초로 삼는다. 이소정은 쌓인 눈에 가려진 수수께끼 같은 파편적 기호를 통해, 가려진 진실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승현의 [미확인 동물]은 종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생명체로, 그러한 괴물이 서식할법한 비밀스러운 장소가 아닌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더욱 공포스럽다.  


  ‘일상의 발견’은 매일의 삶을 채우는 반복된 일상을 소재로 한다. 일상은 삶의 위대한 지속성과 권태로움을 동시에 낳는다. 일상성을 벗어나는 상황은 재난 아니면 축제에 비견된다. 그러나 거대한 집중을 통해 위험 요소를 높여가는 현대사회에서 탈 일상의 시나리오는 축제보다는 재난 쪽의 가능성이 높다. 그 와중에서 일상의 유지에만 전전긍긍하는 삶은 비루하다. 그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다시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되돌이표 인생도 가혹하다. 현대사회에서 일상성은 상품이라는 기호적 회로를 통해 체계적으로 재생산된다는 점에서 현대성과 결합된다. 그래서인지 일상의 풍경 속에는 유난히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서지선의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카페나 스시 바를 촬영한 이동주의 작품은 카페나 식당 등 전형적인 일상 공간 속에서 잔잔하게 지나가는 평범한 풍경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포착한다. 화면의 강약이 없는 파노라마 시점은 인상의 밎밎한 면과 어울린다. 장석준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일상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장소인 도시의 파편들을 수집한다. 누추한 가옥이나 상가 등 비슷한 장소나 소재를 죽 붙여서 재구성한 풍경은 미세한 차이들이 반복되면서 일상의 무늬로 짜여진다. 이상미는 정물을 실로 재구성하는데, 실의 연속성은 일상이 결코 끝이 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상징한다. 강현덕은 몸과 비유되는 집의 이미지를 통해 서로 비슷하지만, 그 비슷함이 오히려 그들을 고립시키는 대중의 실존을 표현한다. 이단비는 상상 속에서 일상의 상징인 침대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나선다.


 ‘물로 쓴 슬로건’ 전은 무심히 지나가는 학생들 발밑에 씌여진 정치적 구호가 시간이 지나면서 증발하는 과정을 담은 오재우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물과 슬로건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의 조합을 통해, 현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은유한다. 슬로건 하면 피, 또는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무엇과 연관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채 알아보기도 전에 금방 말라버리는 물과 비유함으로서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한국에서는 뜨거운 사회적 변혁기인 1980년대에 서구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붐이 일어났다. ‘대서사의 종말’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슬로건에는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예견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 모순이 존재하는 한 대서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대서사가 위치하는 층위가 바뀔 뿐이다. 오늘날 대서사는 의식에서 무의식의 층위로 옮겨갔다. 예술은 자신의 소외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소외의 사회적 뿌리를 더듬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의식화 된다. 


박종호의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 인간의 눈빛을 닮은 돼지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떠오르게 하는 냉소적인 캐릭터로, 대중과 대중으로부터 초월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풍자한다. 정윤석은 인터뷰로 이루어진 다큐멘타리 [우리나라에도 백악관]에서 흔한 상호로 쓰이는 백악관을 통해 ‘우리도 그들처럼’ 되고 싶은 식민지 풍의 허위의식을 들추어낸다. 신기운은 최신 핸드폰이나 게임기기가 갈리고 다시 복구되는 영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통해 무한 회전하는 소비의 체계를 풍자한다. 이준용은 세계지도나 고가의 미술품 이미지에 곰팡이를 피웠다. 그것들은 세계화나 물신주의를 상징하며, 그것의 연결 고리는 거대한 자본이다. 그 위에 피어난 곰팡이는 노동의 산물인 잉여가치에 기생하는 자본에 대한 고발이다. 아이잭 신의 [아티스트를 위한 고해 성사 실]은 작가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예술의 힘을 단계별로 보여주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들 이름으로 자막처리 한다. 그것은 예술이 가지는 원초적 힘이나 지향과 시장이 과연 화해할 수 있을까를 묻고 있다. 


출전;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 기사입력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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